앞서 두 성서 구절에서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장례 관습을 발견한다. 첫 번째는 야곱이 그의 아버지가
준비해 놓은 가족 무덤에 묻혔다는 것이다. 성서에는 한 사람이 죽었을 때 “?와 함께 잠들다”라든가 “?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다”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요시야에게 훌다는 “내가(여호와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왕하 22:20)라고 말한다. 사사기는 기드온과 삼손의 무덤을 기록하고 있는데 각각 그들의 고향에 있던 아버지의 무덤에
묻혔다: “[기드온은]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되었더라”(삿 8:32). 삼손은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되었다(삿 16:31). 이것은 그들이 가족 무덤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신,구약시대를
통틀어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은 가족용으로 만들어진 벤치로 둘러싸인 무덤에 장사되었다. 무덤에는 세대를 이어가며 가족을 함께
묻었는데 자연 동굴이거나 바위산을 뚫어 만든 굴 형태였다. 이 가족 무덤의 입구는 석회석을 깎아 만든 짧고 경사진 통로로
연결되었다. 구약시대(이스라엘 왕국시대, 주전 10-7세기)의 무덤은 여러 시신을 매장하기 위하여 연결된 몇 개의 방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며 방안에는 시신을 놓아 둘 수 있도록 바위 벽들을 높게 깎은 벤치들이 마련되어 있었다(그림 1). 벤치의
표면에는 70년대 우리나라 여인들이 고데기로 머리를 둥글게 만 것 같은 “하토르 여신의 머리모양”이 조각되어 있어 머리를 두는
장소로 사용된 예들도 발견된다. 구약시대에 사용된 바위를 뚫어 만든 벤치가 있는 동굴 무덤은 현재 250여 개가 유다 지방에서
발견되었는데 특별히 예루살렘에서 그 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예들이 발견되는 장소를 따라가다 보면 예루살렘이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율법에 따라 성 안에는 무덤을 두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무덤들은 예루살렘 성 밖, 북쪽 St. Etienne
교회 영내와 동쪽의 실로암 마을 그리고 서쪽의 힌놈 골짜기에 주로 모여 있어 구약시대 예루살렘 성의 크기를 알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실로암 마을에서 발견된 무덤의 경우, 높은 곳에 이사야에 의해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파 비판을 받은 (사 22:16)
히스기야 시대 왕실 비서 셉나의 묘지로 추측되는 비석이 발견된 곳도 있다. 신약시대에도 바위 산지를 파서 무덤이 마련되어 있었다.
1m 정도 되는 입구는 돌로 막았고 안으로 들어가면 구약시대의 벤치들보다는 시체를 넣어 둘 수 있는 좁고 긴 터널이 삼면에
있었다(그림 2).
두 번째 이스라엘 장례 관습의 특징은 뼈를 모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것처럼 시체 한 구를 분묘나
석관 등에 매장하여 부패한 후에도 그대로 두는 관습을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기는 한다. 그러나 대부분 가족 묘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
경우 계속해서 늘어나는 후손의 시체를 위해 공간이 필요하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뵈니게아인(페니키아인)들은 화장을 이스라엘에
소개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 관습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하였다. 대신 그들은 시신을 무덤에 일시적으로만 두었다가 살이 부패하고 나면
뼈들을 모아 구덩이나 저장고로 옮겨 놓는 관습을 행했다. 위에서 언급된 구약시대 무덤 안의 벤치들 아래에는 큰 구멍이 파여 있고
그 안에 뼈들을 모아 두었다(그림 3). 구약시대에 사용된 힌놈의 골짜기 무덤들 중 25번 무덤 저장고에서 발견된 뼈들은 이
무덤에 95구의 시신이 묻혔던 것을 증명했다.
신약시대에 와서 저장고는 더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대신 돌로 만든 작은 상자처럼
생긴 유골함을 사용하였는데 시신을 묻고 1년 후 뼈만을 다시 모아 두는 관습이 있었다(그림 4). 이 상자들은 보통 40-60cm
길이의 석회석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파서 관과 뚜껑을 만든 것으로, 상자는 대체로 기형학적인 무늬나 꽃 등을 부조로 조각해
장식되었는데 때로는 건물의 형태로 장식된 것도 있었다. 상자에는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거나 상자를 열지 말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기도 했다. 이스라엘 밖에 거주했던 유대인들은 유골함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기원후 2세기 이후 유골함보다는 석회석 관을 만들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발견된 유골함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예루살렘 남동쪽 무덤에서 발견된, 히브리어로 “요셉,
가야바의 아들”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유골함으로 예수와 동시대에 살았던 대제사장 가야바(마 26:3, 57; 누 3:2; 요
11:49; 18:13-14, 28; 행 4:6)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학자들은 이러한 관습이 행해진 것은 고대 이스라엘에 육체적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별히 에스겔의
평야에 흩어져 있던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는 유명한 환상(겔 37:1-14)이라든가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사
26:19) 같은 구절이 이 관습의 예로 사용되고 있다.

무덤 안에서는 죽은 자가 실생활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유품들도 함께 발견되는데 여기에는 토기, 보석, 빗, 거울,
무기 같은 것들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힌놈 골짜기의 25번 무덤에서는 토기, 철 화살, 뼈와 상아로 만든 값비싼 유물들,
보석들과 함께 300여 개의 그릇들도 함께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두 개의 작은 은 부적 혹은
장신구이다. 이 유물은 발견 당시 돌돌 말린 상태였으나 이를 펴자 히브리어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는 민 6:24-26의 제사장의
축복문과 거의 동일한 것이었다(그림 5).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이러한 유물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인들의 영향을 받아 사후세계를 준비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아직까지 증명된 바는 없다. 무덤 안에서는
많은 등잔들도 발견되는데 죽은 자의 음부로 가는 길을 밝혀주는 도구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