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황사 [美黃寺]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松旨面) 서정리 달마산 중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이다.
749년(경덕왕 8)에 의조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사적기에 따르면
金人이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가져온 불상과 경전을 금강산에 모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많은 절이 있어 되돌아가던 중 이곳이 인연의 땅임을 알고,
의조에게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봉안하라 이렀다고 한다.
이에 의조는 금인의 말대로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가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는데,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
‘미(美)’자와 금인을 상징한 ‘황(黃)’자를 쓴 것이라 한다.
그뒤 수백년 동안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절이 소실되자 1598년에 만선이 중건하였고,
1660년(현종 1) 성간이 중창하였으며 1754년(영조 30)에는 덕수가 중창하였다.
한국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사찰로 경내에는 대웅전(보물 947), 응진당(보물 1183)과
명부전, 달마전, 칠성각, 만하당, 세심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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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안에는 목조삼존불(석가모니불, 아미타불,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의 닷집은 이 곳이 부처님의 집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듯 장엄화려의 극치를
구가하고 있으며, 법당안에는 소종과 법고, 법고대, 괘불등이 봉안되어 있다.
좌측 멀리 산아래 보이는 문열린 작은 건믈이 응진당.
사찰 뜨락 한켠 언덕에 자리잡은 밭에서 쌀보리 추수중.
탐스런 담쟁이 넝쿨위로 대웅보전 지붕이 보인다.
달마산 [達摩山]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및 북평면에 걸쳐 있는 산.
달마봉(일명 불선봉)의 높이 481m
드디어 세연정(洗然亭)에 들어서다. 윤선도 유적지 "보길도"
위 치 :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보길도
출처: 완도군 문화관광과
지정번호 : 사적 제368호
완도읍에서 서남쪽으로 12km쯤 떨어진 보길도는 상록수가 우거지고
물이 맑아 자연경관만으로도 아름다운 곳이지만,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유적으로 더욱 알려진 곳이다.
고산 윤선도, 그의 나이 51세 때인 조선 인조 15년(1637)에 왕이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는 세상을
보지 않으리라 하고 제주도로 향해 가던 중, 상록수가 우거진 아름다운 섬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 섬에 터를 잡았는데, 그 곳이 바로 보길도이다.
섬의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부용동이라 이름짓고,
섬의 주봉인격자봉 밑에 낙서재를 지어 거처를 마련했다. 그 후 두 차례의
귀양을 가고 벼슬을 하여 서울로 가거나 해남의 금쇄동 등 다른 곳에서
지내기도 했으나, 결국 85세로 낙서재에서 삶을 마치기까지 섬 여기저기에
세연정,무민당, 곡수당 등 건물을 짓고,바위등 자연의 경승에 대(臺)의 명칭을
붙였는데, 이 정자와 대가 모두 25여개소에 이르며 오우가, 산중신곡등
많은 가사와 유명한 어부사시사를 비롯하여 자연을 노래한 많은 시를 남겼다.
세연(洗然)
'주변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 지는 곳'이란 뜻으로
[고산연보]에서는 1637년 고산이 보길도에 들어와 부용동을 발견했을때 지은
정자라 하고 있다. 정자의 중앙에 세연정, 동쪽에 호광루, 서쪽에 동하각, 남쪽에
낙기란 이란 편액을 걸었으며, 또 서쪽에는 칠암헌이라는 편액을 따로 걸었다.
세연정 사적 제 368호(1992. 1.21 지정)
보길도는 세연정에서 보는 인공정원의 풍경과 동천 석실에서 내려다보는 전망,
어부사시사의 현장인 예송리 해안에서 보는 바다 풍경들이 대단히 아름다운
빼어난 섬이다. 보길도 이곳 부용동은 조선의 시인 고산 윤선도(1587~1671)선생이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숨어살던 유서 깊은곳이다. 병자호란의 국치와 추잡한 당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부용동의 아름다운 절승에 의탁하여 자기구제와 초속적 자유를
얻었다. 부용동은 고산이 51세때(1637년) 들어와 85세(1671년) 돌아가실 때까지
13년간 살면서 7차례나 드나들었고, 어부사시사 40수와 수십편의 한시를 창작하였다.
고산의 부용동 생활은 격자봉 밑에 낙서재와 무민당을 짓고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학문에 몰두하고 제자를 가르치면서 세상의 근심을 잊었다. 곡수당 지역은 초당,
석가산, 평대, 연지, 다리, 화계, 월하탄이 조성되어 고산이 휴식하던 장소이다.
곡수당 옆에는 서재가 건립되어 고산의 아들들과 제자들이 살던 곳이다.
동천석실은 낙서재 건너편 바위산 험한 경승지에 자리잡고 있다. 쳔여평 공간에
석담, 석천, 석폭,석대 및 희황교와 한칸 짜리 목조건물인 동천석실이있다. 이곳은
고산이 책 읽고 사색하며 신선처럼 소요하던 은자의 처소였다.
세연정 지역은 3천여 평의 계원으로 부용동 입구에 있다.
세연정을 중심으로 조우에 연못 (205여 평)과 계담(600여 평)과 판석재방과 동대,서대,
옥소대, 칠암, 비홍교와 동백나무, 대나무,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서 아름답다.
윤선도 선생은 이곳에서 음악을 연주케하고 기녀들로 하여금 동대, 서대에서 춤을 추게
하거나 동자가 배를 타고 어부사시사를 노래 부르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낚시도
즐기던 곳이다. 또 고산의 유적으로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행사인
유상공수를 행하던 낭음계, 용이 승천하는 승용대, 연정이 있었던 조산과 여름에도
한기를 느낀다는 하한대, 고향을 그리워하며 임금이 계신 궁궐을 바라보던 혁희대,
석전, 미산 등 경승의 산봉우리 마다 고산은 상징적 이름을 붙였다.부용동 유적은
고산의 기발한 착상과 절묘한 자연과의 조화성으로 구성된 한국 최고 최대의
별서조경 유적이다.
판석보
우리나라 조원 유적 중 유일한 석조보로 일명 '굴뚝다리'라 부르며, 세연지의 저수를
위해 만들었으며, 건조할 때는 돌다리가 되고 우기에는 폭포가 되어 일정한 수면을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보의 구조는 양쪽에 판석을 견고하게 세우고 그 안에 강회를
채워서 물이 새지 않게 한 다음 그 위에 판석으로 뚜껑돌을 덮었다.
세연지 계담에 있는 칠암중의 하나이다. 이 바위는 '혹약제연'이란 효사에서 따온말로,
"뛸 듯 하면서 아직 뛰지 않고 못에 있다"는 뜻이다. 즉 혹약암은 마치 힘차게 뛰어갈것
같은 큰 황소의 모습을 닮은 바위를 말한다.
현재는 나선형으로 세단이 남아 있으며, 그 규모는 축단의 한 변이 7.5m정도의 정방형이며,
그 높이는 2.2m에 이른다. 동대와 대칭을 이루고 있는 곳을 동대에서 행했던 군무 행위를
했던 곳으로 춤을 추며 돌면 정성에 오르도록 나선형 계단을 이뤘다.
세연정 동쪽 축단 밑에 계담에서 인공연못으로 흘러드는 터널식 수입구가 있다. 계담쪽에서
물이 들어가는 수구는 다섯구멍이며, 인공 연못쪽으로 나오는 수구는 세구명이다.
이를 '오입삼출'이라하는 하는데, 이 구조는 아주 독특한데 물막이 석축에 다섯곳의 흡수구를
만들어 흐르는 물을 받아들이되,배출하는 구멍은 세곳만 만들어 들어오고 나가는 수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이다.
[보길도지]에는 '세연정이 못의 중앙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정자 서쪽, 제방 동쪽
겨우 한 간쯤의 넓이에 물이 고여 있으며, 중앙에는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의 암석이
있다. 거북이 등에 다리를 놓아 누에 오른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 다리를 비홍교라고 불렀
다. 지금은 그 자리에 잡석을 쌓아 호안과 방단이 연결되어 있어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세연정 주변의 잘생긴 바위 일곱을 지칭하여 칠암이라 불렀는데, 그 중 하나인 사투암은
'옥소대를 향하여 활을 쏘는데 발받침 역할을 하였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연못쪽이 들려진
모습이다. 들려진 부분에 발을 딛고 옥소대쪽 과녁을 향하여 활을 쏘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보길대교룰 건너서 노화도 선착장으로 부릉~
다음일정으로 관람을 접을려니 넘 멀리 있어 다시 오기 힘든곳...
두고 오기엔 못내 아쉬워 자꾸 되돌아 보며 걷는 걸음이 어찌 힘있으랴!
그러나 가야 하므로 다시 땅끝마을 해남을 향해 승선한다.
노화도 선착장에서 승선후...
바다절경을 둘러보며 바다 마음을 담는다.
하루의 동선도 그려보며 꽉짜인 일정대로 알찌게 보내다 보니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휴식이 그리워진다.
둘쨋밤을 해남 송호리해수욕장에서 보내기 위해 부릉~
마침 해송림을 낀 바닷가가 한눈에 펼쳐지는 숙소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아파트처럼 부엌이 딴칸 따로 되어 있는 아주 쾌적한 시설방을 잡곤
4km 떨어진 군내 중앙시장에서 장을 봐 와선 저녁을 일찌감치 해결.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1034-4 폰:061-534-0599
해남 송호리해수욕장
송호 해수욕장은 땅끝마을로 가기전에 펼쳐져 있는 해남의 가장
대표적인 해수욕장이다. 송호(松湖)는 해변가로 노송이 무성하고
바닷가의 고운 모래와 맑고 잔잔한 물결이 호수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이곳 송호 해수욕장은 모래가 곱고 수심이 얕아 아이들이나
가족들이 놀기에 좋으며 수백년된 해송(海松)이 풍치림(風致林)을
이루고 있다 제방을 따라 약 1km 가량 이어서 있어 송림 숲 아래서
야영을 하기에 적합하다.
이 송림숲은 현재 전라남도 기념물 제 14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령이 약 2백년 가량된 6백여 그루의 소나무가 해안방풍림의 기능으로
펼쳐져 있다. -현장에서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