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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상25장36~44절
제목 : 악을 막으시고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아비가일에게 일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전해들은 나발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합니다.
다윗은 그를 대신해 보응(報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讚揚)하고,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1. 나발의 죽음과 다윗의 찬송(36~39절)
1) 아비가일이 돌아오니 나발은 잔치를 배설하고 있었습니다(36절)
“[36]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그의 집에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이 밝는 아침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다가”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그의 집에 배설하고. - 나발의 이같은 행동은 자신에게 유익을 주었던(7, 15, 16절) 다윗의 자그마한 요구(8절)를 모욕적으로 거절했던 사실(10, 11절)과는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1) 다윗이 준 유익 : 갈멜에 있는 동안 해하거나 하나도 잃지 않게 하였다(7절)
선대하였으므로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다(15절).
함께 있어 밤 낮 담이 되었다(16절)
(2) 다윗의 요구 :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 주기를 원하노라(8절).
(3) 나발의 거절(냉대) :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10절).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11절)
즉 나발은 자신이 욕심껏 먹고 마시는 데는 아낄 줄 몰랐지만,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의 몫을 조금 나눠주는 데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는 실로 `미련한 자'였습니다(25절).
크게 취하여. - 양털을 깎는 잔치 때에 술에 취하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보편적 이었습니다(삼하 13:23-28).
그러므로 나발이 그 당시의 풍습에 따라 이같이 취했다고 할지라도, 아무튼 술에 취하는 일에는 경건 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정죄되어 마땅합니다(롬 13;13; 고전 5:11; 6:10).
*롬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건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고전5:11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고 말라 함이라”
*고전6: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따라서 성경은 `술취하는 일'을 어리석은 자의 한 특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잠 20:1; 23:21; 26:9; 눅 21:34).
*잠20:1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
*잠23:21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 질 것이요”
*잠26:9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눅21:34 “마음이 둔하여 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마음에 기뻐하므로. - 만취로 인해 정신을 잃을 정도로 방종의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후에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자신의 여동생 다말을 겁탈했던 자신의 이복 형제 암논을 양털 깎는 잔치에 초대한 후, 그가 바로 위와 같은 상태에 빠지면 그를 살해하려고 했었습니다(삼하 13:28).
아침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다가. - 그런데 아비가일이 여기서 이같이 행동한 까닭은.
(1) 나발이 술에 취한 그때는 잘잘못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으며
(2) 술에 취한 나발에게 다윗이 그를 죽이려 했다는 말을 할 경우,
그는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을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같은 점에서, 아비가일은 가히 `총명한 여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3절).
2) 아비가일이 아침에 나발에게 이 일을 말하니 몸이 돌과 같이 되었습니다(37절).
“[37]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에서 깬 후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말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이 일. - 이것은
(1) 다윗이 나발을 죽이러 갈멜로 향했었다는 사실(13절).
(2) 아비가일이 다윗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많은 음식을 다윗에게 가져다 주었으며, 또한 다윗에 대한 나발의 냉대(10, 11절)를 그의 어리석음 탓으로 돌렸다는 사실(Kle- in, Keil, Lange; 25절) 등으로 이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낙담하여. - 문자적으로는 `그의 마음이 그 사람 안에서 죽었다'(his heart died within him, KJV)란 뜻입니다.
즉 나발의 `기뻐하던 마음'(36절)이 이제 `죽어버린 마음'이 되어버린 것을 뜻합니다.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 `돌과 같이 되었더니'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돌이 되었더니'란 뜻으로, 즉 강한 충력(shock)에 의하여 어떤 심인성(心因性)질환에 걸린 것을 말합니다.
3)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었습니다(38절)
“[38]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한 열흘 후. - 여기서 `열흘'은 나발이 병고로 고생하던 기간입니다.
아마도 나발은 어떤 충격 내지는 고혈압 등으로 인한 전신 마비의 중풍(中風)에 걸렸던 듯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 여기의 `치시매'(나가프)는 `상처내다', `쳐
부수다'란 의미로서, 신적(神的) 징벌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삼하 12;15; 슥 14:18).
결국 나발의 죽음은 그의 어리석음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임이 분명합니다(29절).
그가 죽으니라. - 나발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다윗에게 자기 소유물 중 일부를 공급해 주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1) 공적인면에서 다윗은 나발이 속한 민족 이스라엘의 구원자였습니다(17:41-51; 18:5, 30; 19:8; 23:1-5).
(2) 개인적인 면에서 다윗은 나발의 양떼와 소유를 보호해 준 은인(恩人)이었습니다(7절).
(3) 이 외에도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율법(신 10:18, 19)을 생각한다면, 나발이 다윗 일행을 접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발은 예의를 갖춘 다윗의 정당한 요구(4-9절)를,
교만한 말로써 일축하였습니다(10, 11절).
나발의 이 악(惡)한 행동은 스스로가 자기 무덤을 판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즉 나발은 그의 행동에 격분한 다윗(12, 13절)에게 복수 당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공의의 하나님에 의해 병으로 죽게 됨으로써 보응을 받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건은 재물과 돈을 생의 최고 목표로 추구하는 자의 말로(末路)는 파멸이라(딤전 6:9, 10)는 엄숙한 경고와 교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4)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습니다(39절)
“[39] 나발이 죽었다 함을 다윗이 듣고 이르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도다 하니라 다윗이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말하게 하매”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 - 여기서 `욕'은 문자적으로는 `욕의 원인'이란 의미인데, 그 구체적 내용은 10, 11절을 참조하라.
구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억울한 형편(2절)을 살피셔서, 그의 원수를 갚아 주신 것을 가리킵니다(38절).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도다. - 자신이 행한 악한 행위만큼 결국 자신이 그 악행의 대가를 받는 일을 가리킵니다(왕상 2;44).
다윗이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 이와 같은 구혼(求婚)은 미망인의 법적 애곡(哀哭) 의무 기간인 칠 일이 지난 다음에 제안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구혼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즉(1) 그녀는 지혜와 신앙에 있어서 자신의 내조자가 되기에 매우 적격자였으며(3, 33절)
(2) 다윗의 처 미갈이 다른 남자와 재혼하였기(44절) 때문입니다.
2. 다윗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40~42절)
1) 다윗이 당신을 아내로 삼고자 하여 우리를 당신께 보내더이다(40절) “[40] 다윗의 전령들이 갈멜에 가서 아비가일에게 이르러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당신을 아내로 삼고자 하여 우리를 당신께 보내더이다 하니”
전령(사환,에베드) - 아비가일에 대한 구혼(求婚)은 사적(私的)인 문제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공적(公的)인 문제와 관계되어 사용되는 단어인 `소년'(나아르)이라는 단어 대신에 `에베드'가 사용되고 있습니다(8절; 14:1).
2) 아비가일이 다윗의 요청을 받아드립니다(41절)
“[41] 아비가일이 일어나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이르되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전령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 하고”
그가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 이와 같은 겸손한 행위는 그녀가 다윗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취해졌었습니다(23절).
따라서 여기 아비가일의 이 행동은 다윗의 요청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의 겸허한 태도입니다.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전령. - 이미 다윗의 수하에 있던 `전령'들처럼 아비가일도 다윗에게 `내 주'라는 말을 적용시킴으로써, 자신도 그들처럼 다윗의 사람이 될 것을 강력히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발 씻길 종이니이다. - 발 씻기는 행위는 종들이나 하는 지극히 미천한 행위입니다.
따라서 다윗의 구혼을 받은 아비가일은 그러한 다윗의 구혼은 자신의 분에 넘치는 과분한 것으로서 감사하게 받아들임은 물론, 요구하신다면 다윗의 수하에 딸린 전령들의 발이라도 씻기는 지극히 미천한 일도 기꺼이 감당할 것이라고 겸손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아비가일은 다윗의 전령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됩니다(42절)
“[42] 아비가일이 급히 일어나서 나귀를 타고 그를 뒤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전령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
급히 일어나서. - `급히 일어나서'는 아비가일이 이같은 문자적인 의미의 행동을 취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기의 `일어나서'는 특별한 행동을 하려는 사람의 단호한 결심을 시사해 주는 관용적인 말이기 때문입니다.
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 여기의 `처녀 다섯'은 아비가일을 수종드는 시종(侍從)들을 가리킵니다(창 30:4, 9).
아비가일의 집은 대단한 부호였으므로, 이러한 개인 몸종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는 아비가일이 다윗의 아내가 되기 위해 다윗에게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할자라는 점에서 이와 같은 단어가 사용된 듯합니다.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 - 다윗이 아비가일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한 이 사건은 매우 의미 심장한 것이었습니다.
즉 순수한 애정이나 신앙적인 목적 이외에도, 후일 다윗은 유다의 왕이 되기 위하여 헤브론으로 입성할 때 유다 지파에 속한, 그것도 갈렙의 후예인 아비가일(3절 주석 참조)을 대동함으로써, 유다 지파 사람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Klein).
아무튼 이같은 결혼에 따라 다윗과 아비가일 사이에는 `길르압'(삼하 3:3)과 `다니엘'(대상 3:1)등, 최소한 두 명의 아들이 출생하였습니다.
3. 다윗의 아내들(43~44절)
1) 다윗이 또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았습니다(43절).
“[43] 다윗이 또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았더니 그들 두 사람이 그의 아내가 되니라”
이스르엘 아히노암. -여기서 `이스르엘'은 사울의 아내 `아히노암'(14:50)과 구별하기 위하여 덧붙여진 지명입니다.
또한 이 `이스르엘'(Jezreel)은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심'이란 뜻입니다.
추측하건대 이곳은 마온과 갈멜과 십 근처인 헤브론 남서쪽 약 10 km 지점의 고지대일 것입니다(Beek ; 수 15:56).
따라서 잇사갈 지파에 소속된 동일한 이름의 성읍과는 구별됩니다(수 19:18).
한편 `아히노암'은 `나의 오빠는 유쾌하다'란 뜻입니다.
다윗은 아히노암과 결혼함으로써 아비가일과의 결혼에서처럼(42절 주석),
그가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됐을 때에 유다 지파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이끄는데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Klein).
아무튼 다우시은 아히노암과의 사이에`암논'이라는 아들을 두었습니다(삼하 3:2).
2) 사울의 그의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습니다(44절)
“[44] 사울이 그의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더라”
일찍이 사울은 골리앗을 죽인 대가로 다윗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맏딸
`메랍'을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는 변덕스러운 짓을 하기도 했었습니다(18:19).
여기서의 이같은 사울의 행동 역시 메랍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윗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18:8, 10, 11).
한편 `발디'(Phalti)는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란 뜻으로, 삼하 3:15에서는
`발디엘'(Phaltiel)로 표기되었습니다.
그런데 `발디'란 이름과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가 가나안 정탐을 했던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 중에서 발견됩니다(민 13:9).
그는 곧 베냐민 지파의 대표로서 가나안 정탐에 참여한 `라부'의아들 `발디'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의 `발디'는 자신의 조상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음이 분명합니다(22:5).
갈림에 사는. - 문자적으로는 `갈림 출신인'이란 뜻입니다.
`갈림'(Gallim)은 `무더기'란 뜻으로, 이곳은 이사야 10:30에 따르면 예루살렘과 사울의 기브아 사이의 베냐민 지파의 땅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우리를 악에서 구원하시는 분입니다(39a절).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자신의 죄를 막고 악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만일 다윗이 나발을 죽였다면
그 인생과 왕조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을 것입니다.
주님은 악을 행하지 말라 명하실 뿐만 아니라 그 악행에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우리의 막힘없는 악행을 주님의 막힘없는 은혜가 멈춤니다.
이것이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더욱 절실한 이유입니다.
2) 악으로 치닫는 다윗의 걸음을 선으로 돌리십니다(39b~44절).
나발과의 악연은 아름다운 여인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하며 끝납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이 그토록 확신한 자신의 미래에,
남편을 잃은 이 여인이 참여하도록 청혼합니다.
하나님께 미래를 맡긴 아름다운 다윗과 아비가일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은 더 큰선(하나님 나라)을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다윗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 했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악함과 약함마저 선으로 바꾸십니다.
그러니 오늘의 실수와 실패를 끝이라고 속단하지 말고 주님의 선한 역사를 믿으십시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무례한 나발은 하나님이 택하신 왕을 모욕하더니(10절) ‘왕의 잔치’에 빠져 있습니다(36~38절).
그 이름에 걸맞은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의 일에 무지한 나발은 결국 ‘마음이 죽어’(낙담하여) 비참한 죽음에 이릅니다.
세상일에 아무리 밝아도 주의 일에 무지한 자는 어리석습니다.
세상의 지혜는 십자가를 어리석다고 말합니다(고전1:18,21).
*고전1: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나발처럼 스스로 왕 노릇 하는 사람들에게 왕이신 그리스도는 영접해야 할 주(主)가 아니라 조롱과 홀대의 대상일 뿐입니다.
2) 원수 갚음은 공의의 실현입니다(38,39a).
하나님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십니다.
주님의 보복은 단지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공의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해를 끼친 이에게 되갚아달라는 기도보다,
이 땅에 주님의 공의를 세워달라고 기도해야 하지 않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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