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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시인동인지(KOREAN POETS OF AMERICA) [서성이는 섬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초대시> 10번 윤석산(尹錫山) 우리 형제들이 대기하고 있는 중환자실로 운구 카터가 옮겨져 왔다. 중환자실에서 안치실로, 곧바로 하강하는 엘리베이터를 거쳐, 구불구 불 끝날 것 같지 않은 복도를 지나, 우리는 그 렇게 따라 갔다. 철문이 열리고 닫히고, 벽에 설치된 철제 박스 문도 열리고 닫히고 묵묵히 운구 카터만을 믿고 오던 ‘그’가 죄인 의 모습으로 뒤따르며 도열하고 서 있는 우리 를 향해 입을 열었다. “10번입니다. 이 번호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는 ‘그’가 정해준 10번이라는 반호로 당분간은 기억되어야 하는 어머니. 세상은 이제 이승인 듯 아닌 듯, 온통 하얀 불빛일 뿐이었다. ※ 윤석산(尹錫山) 서울 출생 / 한양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문학박사) / 시집 <바다 속의 램프>. <온달의 꿈>, <처용의 노래>, <용담 가는 길>, <적>, <견딤에 대하여>, <밥 나이, 잠 나이> / 현재 한양대 한국언어문학과 교수 <동인시> 내 몸인 지구가 울고 있다 곽상희 갈맷빛 바다, 내 안에서 하얀 무명조각 이불 짠다 나의 몸 베틀 삼아 실고치 하나 실 뽑아낸다. 실한 죽음 위해 날마다 베를 짠다 하얗게 밀려왔다 사라지는 밀물과 썰물의 간격 두고 수많은 나비 팔딱인다 잎이 자리지 않는 4월의 뽕나무 가지 사이 번데기의 꿈 싣고 어렴풋한 사랑 날고 있다 무척 조심스럽게 비틀댄다 나는 그렇게 성숙되지 않는 영혼의 몸짓으로 울음 좋아하여 울음의 노 젖는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돛을 꽉 쥐고 수평선 가고 있다 수많은 나비 깃 하얗게 파닥거리며 흠집 내는 바다, 바다는 자유 위해 상처를 겁내지 않는다 내가 쇠방망이 같기도 꽃분 같기도 한 노를 잡자, 내 안에서 내 몸인 지구가 울고 있다. ※ 곽상희 도미 63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6권 수필집3권 장편소설, 및 국제시인들과 공동시집 발간 등, 창작클리닉경영(1984~), 올림포에트리 시인피선(스페인, 계관시인 UPLI), 제1회박남수시인대상, 제1회미주시인본상, 국제여류시인상 외, UPLI USA Korea AfairsDir.Move't One Board Mem. 재미 시인협회 회원 연필을 깎다가 김모수 갈 끝에 베어져 나가는 생의 시간 유효기간이 줄어든다 빗나간 칼질에 목뼈가 부러져나간 나의 시간들 원치 않아도 꺾이는 목숨이 있다는 것을 왜 진작에 몰랐을까 낙서도 꽃잎으로 열리던 코흘리개 노트 쓰는 일보다 지우는 일에 열을 올렸었지 딸랑딸랑 비좁은 필통 속에서 고락을 같이 한 몽당연필과 지우개의 끈끈한 인연은 새삼 찡하기만 한데 살아 갈수록 초점이 빗나가는 오류誤謬 굳이 잉크 자국으로 새겨두고 싶은 억지 같은 생떼는 어찌 간주해야 옳을가 ※ 김모수 경남 통영 출생. 1976년 미국 이주. 한국창조문학 신인상 재미시인협회 이사 미주 문인협회 회원. <시와 사람들> 동인. 시집 <달리는 차창에 걸린 수채화> <주홍빛 신호등> <투명의 무늬> 개의 보시 김병현 일간지 하단 구석에 지나치기 쉬운 크기의 게재사진 부촌의 화려찬란 범람하는 성탄절 장식을 배경으로 집 없는 사람이 개를 껴안고 쓰레기에 섞여 잠들어 있다 엄동의 지붕 없는 얼음 방에서도 온돌방에서처럼 자ㅓ렇게 잠들 수 잇다니 개가 나누어주는 체온 덕분일까 동물의 체온으로도 인간이 저렇게 깊은 잠 들 수 잇구나 구걸통엔 동전 몇 닢이 얼고 있는데 저 사람이 해종일 구걸했던 것은 동전 몇 닢이 아니고 사람의 채온이었는지도 몰라 인간들이 주지 않는 체온을 개가 주고 있구나 아무 것도 주지 않는 표정으로 밤새도록 퍼주고 있구나 ※ 김병현 경북 예천 춠9od. 동국대 국문과 졸업. 미주문협회장역임. 재미시인협회 회원. 재미시협 제1회 시문학상 수상. 현재 베이커스필드 거주 언제나 멀다, 너는 문금숙
사슴 한 마리, 멀찍이 서서 나무 사이로 수풀 너머로 말갛게 눈 뜨고 길게 바라본다 언제나 없이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라치면 뒷걸음치다 숲 속에 몸을 숨긴가 이때껏 가슴에 품어둔 한마디 말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는, 또 가슴이 텅텅 빈다 우린 둘 다 멀다가 그만 둔다 그렇게 길들여져야 덜 아플 듯 하얀새, 한 마리도 저녘답 하늘 멀리 난다 ※ 문금숙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한국시 등단. L.A.C,C,Child Development Curriculum 수료. 재미시인협회 화장 역임. 공저<하오의 사중주 1.2> 시집 <추억이 서성이는 마을> <나의 바퀴도 흔들렸다> <황홀한 관계속에서> 유칼립투스 나무 송연호 오뉴월이면 허물을 벗는 유칼립투스 나무 살아온 날들 걸러 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가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 이고서 안으로 익혀 가는 그 밀어는 또 무엇일까 투욱툭 살이 터지며 껍질을 벗는 그 몸부림 하늘은 저리 푸르른데 아픔 없이 깊어지는 것 없듯 너도 그렇게 신음하며 깊어 가는 것이냐. ※ 송연호 충북 영동 출생, 캘리포니아주 로마린다 치과대학 치위생학과 졸업, 문예운동 등단. 재미시인협회 회원 이우.1 심수연 내가 꼭 잡고 있던 너의 손을 가만 내려 놓은 건 어느 날 햇빛 스러지는 저녁노을 향해 네가 등을 돌리곤 멀리 하늘 바라보던 어깨 위의 그리움을 보아서였지 조금씩 울먹거리듯 작게 흔들린던 몸짓 내내 마음에 걸려 멀리 떠나온 길 아침 햇살 쏟아지는 어머니의 대지로 네 발길 옮겨주고 싶었지 조여 오는 내 외로움 그건 그런대로 견디어 낼 수 있으니까 ※ 심수연 강원도 출생, 예술세계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재미시인협회 회원. 청시동인 ================= 재미시인동인지(KOREAN POETS OF AMERICA) [서성이는 섬들] [작품 해설] 삶을 바라보는 여섯의 시각 --- 尹錫山 <시인. 한양대 국문과 교수> 1. 시란 삶의 새로운 발견에서부터 비롯된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다가 늘 겪는 일상과는 다른 삶을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하게 될 때, 그 삶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돋아난다. 이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언어라는 양식을 통해 구현될 때, 흔히 우리는 이것을 ‘시’라고 말한다. 재미 시인 여석 분이 동인을 결성했다. 오랜 동안 미국이라는, 말도 강산도 낯이 선 땅 이국에서 살면서 시를 써온 분들이다. 살아오면서 그 삶 속에서 발견되는 새로움을 모국어의 언어로 직조한 시들이다. 곽상희 시인은 오랜 시적 연륜(年輪)과 함께 섬세한 언어로 새로운 삶의 경지를 열어가고 있다. 사막의 잔설 같이 피어난 네가 건넨 말 한 마디, 내 핏줄을 일으켜 세운다 인간의 일들이 거치른 전파를 타고 괴롭게 돌아가는 오늘, 네가 보낸 말 한 마디에 향나무 가지 끝 매달린 잘 익고 빛나는 우주 하나, 고요는 천지를 가득 차 흐르고 ]하루의 고봉밥, 참 신기롭고 따뜻하구나 -- 곽상희 <고운 말> 전문 우리의 옛 속담에 “한 마디 말이 천량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가 하면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도 있다. 말이라는 것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회생활의 하나이다. 자신이 무심히 한 말이 듣는 사람에게 더없이 상처를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말은 하는 사람은 미처 모르고 있는 데도 그렇다. 마치 자신이 무심코 던진 돌이 개구리에게는 치명적인 죽음을 불러올 수 있겠다는 비유적인 말이 바로 이러한 경우를 뜻한다고 하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교유를 매개하여 ‘말’에 관하여 곽상희 시인은 세심한 관심과 함께, 이를 시로 표출하고 있다. ‘말’에 관하여 곽상희 시인은 세심한 관심과 함게, 이를 시로 표출하고 있다. ‘너’라는 발화자가 던져준 한 마디 말을 시인은 “사막의 잔설 같이/피어난/말”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막의 잔설’, 아쉬움과 연연함을 불러일으키는 이 비유적인 언어는 ‘너’라는 발화자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떠올리게 하는 시적 표현이 된다. 또한 이 말 한 마디를 “향나무 가지 끝 매달린/잘 익고 빛나는/우주 하나”로 그 이비지를 무한 확대하고 있음도 또한 볼 수 있다. 나아가 이 말 한 마디를 따뜻한 “하루의 고봉밥”으로 전환시켜 표현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상대에게 던져주는 말 한 마디의 힘은 이렇듯 위대하다. ‘잘 익고 빛나는 우주’로, 또는‘따뜻한 하루의 고봉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비유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있다. 그로므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과 생명력과 우주’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는 힘을 지니게 된다. 시의 매력이란 바로 이와 같이 언어를 통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또 제시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김모수 시인 역시 이러한 삶에의 터득을 매우 담담한 시어로 노래하고 있다. 마치 관조의 세계, 또는 자신에게서부터 두어 발자국 물러나 자신의 삶을 바라다보는 듯한 포즈를 이 시인에게서는 발견하게 된다. 사랑하는 이여 내가 불러도 그대는 내 곁으로 오지마라 마지막 햇살이 몸을 숨기고 꽃들이 내 곁에서 피다가 피다가 다 질지라도 저만치 보일 듯 말 듯 흩날리는 그대의 옷자락 그대의 야윈 체취가 모자라듯 내 살갗을 스쳐가는 이 황홀함으로 족하도다 사랑하는 이여 그리움에 지쳐 한줌의 흙으로 내가 무너져 내릴지라도 그대여 사람 곁에는 오지마라 사람의 냄새가 아닌 사람의 향기만이 그대의 몫이려니 -- 김모수의 <그만치에 있 좋은 사람> 전문 위 시는 내용상 두 연으로 나눌 수 있다. 그 두 연 모두 “사랑하는 이여”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 시는 나름대로 정형의 모습을 지닌다고 하겠다. 그러나 의미상으로 나눈 두 연에서 ‘사랑하는 이’를 그려내고 있는 시적 모습은 동일하지 않다. 첫 연에서의 ‘사랑하는 이’와 시적 화자와의 관계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저만치/보일 듯 말 듯/흩날리는 그대의 옷자락”이라든가, “그대의 야윈 체취가 모자라듯/내 살갗을 스쳐가는/이 황홀함으로 족하도다”라는 고백적인 진술은 ‘그대’로 지칭되는 ‘사랑하는 이’와 화자와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짐작하게 해준다. 다시 말해 화자에 있어 ‘사랑하는 이’는 가히 절대적인 무엇임을 알 수가 있다. 이와 같은 ‘사랑하는 이’가 둘째 연에 이르러서는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시적 화자인 자신이 한 줌 흙으로 무너져 내려도 결코 “사람 곁에는 오지마라”라고 당부하는 시적 태도가 이를 증명한다. 나아가 “사람의 냄새가 아닌/사람의 향기만이 그대의 몫”이라고 사랑하는 이를 규정하는 시적 태도 또한 이와 같은 면을 더욱 강조한다. 이러한 규정은 바로 영원히 그 사랑하는 사람을 저ㅏ신 하나만의 사람으로 간직하고 싶다는 열망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진정 사랑하고 또 진정 훌륭한 사람은 멀리 잇을 수록 그 향기가 더욱 은은하게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가까이 있을 때보다 오히려 멀리 있을 때 그 향기가 느껴지는 사람, 그 향기가 느껴지는 사랑, 이가 진정한 사람이며,l 또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중국 송나라때의 학자 주렴계라는 분은 연꽃蓮花이 지니고 있는 기품을 ‘향원익청香遠益淸’, 곧 ‘그 향기가 멀면 멀수록 더욱 은은하게 느껴진다’라고 노래한 바 있다. 즉 김모수 시인은 두 개의 의미상 나눠지는 연을 통하여 ‘사랑하는 이와 화자와의 관계’를 단계적으로 심화시키고 잇는 것이다. 문금숙 시인의 시에서 만나게 되는 삶은 매우 객관화된 삶이다. 이와 같은 객관화된 삶을 문금숙 시인은 여행지에서 발견을 한다. 여행이란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흥을 준다. 새로운 감흥과 함께 새로운 세계에의 경험을 하게 되고, 이러한 경험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한다. 이렇듯 되돌아봄을 통해 도달하는 모습은 주체화된 것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객관화된 것 또한 자리하고 있다. 이러함은 다만 대상을 바라보고 내면화하는 차이일 뿐 다른 무엇은 아니라고 본다. 뱃머리에 서서 스쳐지나가는 섬들을 본다 고운 빛깔로 지붕 입힌 고풍스러운 집들 다가오고 밀려간다 잔디 위에 단단히 터를 내린 주위엔 햇살을 움켜쥔 푸른 나무들이 평화로 빼곡하고 갈매기도 흰 파도를 차며 섬을 들락거리는 곳, 눈 주며 수없이 찾아대던 섬 생각해 본다 한 번 밀려왔다 가버린 거친 파도 뒤로 물속 어디엔가에 잦아든 너 다시 떠오르지 않았는데 저 수많은, 이제는 모두 안착해서 바다에 떠있는 안식을 내 또다시 그리워함은 부질없는 것 너와 나 사이의 푸르던 날들이 그러할 진대 그리움만 떠있는 저녁으로 다시 돌아가 젖은 목마름 바람에 떠 보내야 하는 우리는 그냥 떠도는 섬으로나 남아 출렁거리는 물경 힘겹게 타야하는 것 밀려왔다 밀려가는, 스쳐지나간 길 위의 그 긴 그림자 배 뒷머리에 닿아, 솟구치는 포말에 하얗게 부서지며 칼칼한 바람에 울음 쳐대도 뒤섞여 피는 꽃그늘로 갈매기 벗 삼아 흘러가는 먼 섬이다 -- 문금숙의 <지나가는 섬들 보다> 전문 배를 타고 알 수 없는 타국을 여행을 한다. 크루즈 여행이다. 망망한 바다와 바다 건너 보이는 육지나 섬으로의 풍경들.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배가 지가감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세월 곁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나와 만났던 사람들이 나를 떠나 지나쳐가는 것이 아니라, 실은 내가 그 사람들 곁을 지나쳐가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내가 아닌 타자에게서 모든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모든 이유와 원인은 실로 나에게 있고,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인데도 말이다. 이와 같은 견해에서 본다면, 나의 삶이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너’라는 타자他者와의 연계된 속에 이룩된 것이다. ‘너’라는 타자로 인하여 기쁨도 슬픔도 또 괴로ㅓ움도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함은 궁극적으로 나의 몫이지 타자의 몫이 아니다. 따라서 타자는 늘 묵묵하고 나와는 별개인 양 보이기 쉽다.배에서 보는 풍경과도 같이, 배 곁을 그저 무심하게 스쳐지나가는 풍경들, 크고 작은 섬들과도 같이 묵묵할 뿐이다. 낯이 선 여행지에서 만나는 풍광은 더욱 그렇다. 이러한 모습을 문금숙 시인은 ‘나와 너와의 관계’로 읽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물속 어디엔가에 잦아든 너 다시 떠오르지 않았는데/저 수많은, 이제는 모두 안착해서 바다에 떠있는 안식을/내 또다시 그리워함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리움만 떠있는 저녁으로 다시 돌아가/젖은 목마름 바람에 떠 보내야 하는 우리는/그냥 떠도는 섬으로나 남아 출렁거리는 물경 힘겹게 타야하는 것”이라고 토로하듯이 노래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 특히 뱃전으로 스쳐지나가는 섬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타자와의 관계 위에서 매우 담담하게 객관화시켜 노래하므로, 삶이 지닌 또 다른 한 진실을 문금숙 시인은 시를 통해 드러내주고 있다.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 특히 뱃전으로 스쳐 지나가는 섬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타자와의 관계 위에서 매우 담담하게 객관화시켜 노래하므로, 삶이 지닌 또 다른 한 진실을 문금숙 시인은 시를 통해 드러내주고 있다. 2. 세월이 지나고 또 시간이 흘러가면, 그 지나간 시간이 때로는 어떠한 무엇으로 다가온다. 특히 미국이라는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고, 낯선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지난 시간이란 남다른 무엇이 아닐 수 없다. 이 지난 시간은 때때로 아픔으로 때로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회한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김병현 시인은 자신의 시적 방향타를 과거로 돌려놓고, 이러한 지난날들을 자신의 시적 제재로 삼고 있다. 다음의 시를 보기로 하자. 고향 떠날 때 잠시 다녀오마고 대폿집에 앉혀두고 온 친구들 그 약속 늘어나 고무줄처럼 늘어나 어느덧 내 머리 만년설 백모 썼구나 젊은 날의 낭만과 사랑의 고뇌로 덧칠한 그 대폿집의 벽화며 내가 반쯤 마시다가 두고 온 대폿잔이며 곱창 굽는 냄새 무시로 내 목젖을 깨우는데 소문에 그 대폿집 오래전에 헐리고 그 자리에 낯선 마천루가 들어섰다는데 앉을 자리를 잃어버린 친구들 엄동을 밖서 떨며 아직도 그 약속 기다리고 있겠지 몇몇은 그 약속 기다리다가 그 자리에서 무덤으로 변하기도 했겠지 친구여! 너희들과의 약속 고무줄처럼 늘어났을 뿐 끊어진 것 아니니 내가 반쯤 마시다가 두고 온 술잔 버리지 말아다오 -- 김병현의 <친구> 전문 한국에서 친구들과 곱창을 구어 놓고 대폿잔을 기울이던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시이다. 기억 속의 지난 시간은 마치 “잠시 다녀오마고”했던 약속과도 같이 짧은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벌써 “어느덧 내 머리 만년설 백모 썼”고, “대폿집 오래전에 헐리고/그 자리에 낯선 마천루가 들어섰”고, “몇몇은 그 약속 기다리다가/그 자리에서 무덤으로 변하기도”한 기나긴 세월인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대폿집이 헐려 빌딩이 들어섰어도, 머리가 허옇게 백발이 되었어도, “내가 반쯤 마시다가 두고 온 술잔/버리지 말아다오”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이 노래 속에는 지난 시간으로 달려가고 싶은 화자의 강렬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대폿잔’과 ‘늘어난 고무줄’, ‘낭만과 고뇌로 덧칠한 대폿집 벽화’, 삶의 애환이 진솔하게 담긴 시어들이 아닐 수 없다. 송연호 시인 역시 타자를 통한 발견을 시로 노래하고 있다. 치과에 치아보철을 맞춰두고 간 사람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변을 당하게 되고, 그 치아보철만이 치과에 남아 있는 상황 속에서, 시인은 인간의 삶이 무엇인가를 근원적인 면에서 묻고 있다. 지난 번 치과에 왔었던 그녀는 잇몸치료를 하고 나면 3유닛브리지를 해서 끼우고 참아왔던 스테이크를 실컷 먹을 거라며 입이 함박만큼 벌어졌다. 방금 기공소에서 보내 온 보철 진료 약속 시간을 정해 달라는 전화에 ‘오늘이 케롤의 장례식입니다. 지난 주말 교통사고가 났었거든요. 그녀는 떠 나버렸습니다.’ 허허로운 음성이 그녀를 대신한다. 그녀의 보철 상자를 만지작거리는 사무원의 흐린 눈빛이 허공에 걸린다. 그녀는 주문한 보철을 잊고 떠났을까? -- 송연호의 <그녀는 보철을 잊고 갔을까?> 전문 삶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허허로운 것일 수 있다. 단 한 시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간을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가 부실해서 마음 놓고 스테이크도 먹지 못하던 사람이 치과에 와서 보철을 하기 위하여 부리지를 만들어 놓고, “참아왔던 스테이크를 실컷 먹을 거라며/입이 함박만큼 벌어졌다.”는 구절은 참으로 읽는 이를 슬프게 한다. ‘스테이트’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또 다른 상징이 된다. 이 기본적인 욕구를 위하여 사람은 ‘브리지’라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장치와 포장을 한다. 그러나 그 욕구나 그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장치나 포장이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만 현실은, 우리들로 하여금 삶이 무엇인가를 물어보게 한다. ‘이루고 싶은 욕구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삶과 죽음’이 사로 어긋나는 자리에 우리는 있다. 시인은 어느 뜻하지 않은 죽음을 통해 이와 같은 우리의 현재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상 이와 같은 삶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살아간다. ‘나의 하는 일은 정당하다.’라든가, 또는 ‘나는 불행하지 않다.’든가 하며 자신의 삶에 최면을 걸며 살아간다. 이러한 자신에의 최면, 이 역시 허허로운 삶의 또 다른 몸짓이 아닐 수 없다. 심수연 시인은 ‘그리움’을 주제로 한 시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움’은 가장 원초적인 시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시를, 예술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도 있다. 어느 주말쯤 싱그러운 햇살과 바람까지 가득 채워 연한 웃음 담도 한껏 부풀어 가던 곳 잎 가득한 나무 그늘 밑 문 밖 담장에 기댄 채 한가로운 오후처럼 나를 기다리던 아버지 내 눈길 닿기 전 이내 소년 같은 환한 웃음 입가에 담아 사방 꽃잎으로 흩날리곤 했지 세상에 지쳐 왠지 가엾던 나를 간지럽히듯 금세 웃게 하도 물안개 피는 강가의 아침처럼 아늑하게 젖어 목이 메이곤 했던 날들 어쩌면 지금도 자주 문 밖으로 발길 돌리곤 하실 거야 클 딸의 웃음소리 들리는 듯해서 오늘도 난 아버지의 무게로 그 그리움을 가만 누른다. -- 심수연의 <아버지의 무게가 그리운 날> 전문 이 시작품은 먼 이국에 와서 살면서 그리운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시로 그리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평소 아버지가 딸에게 보여주었던 행동 하나하나로 묘사되고 있다. 이 시작품에 중요한 매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떨어지는 꽃잎’이 된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하며, “잎 가득한 나무 그늘 밑/문 밖 담장에 기댄 채/한가로운 오후처럼/나를 기다리던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늘 ‘나를 기다려주신 분’이다. 잎 가득한 나무 밑 문밖 담장에 기댄 채 딸의 귀가를 기다리던 아버지, ‘잎 가득한 나무’ 가 배경이 되는 아버지는 그래서 시적 화자의 기억 속에 늘 넉넉하고 푸근한 아버지이다. 이러한 아버지가 사랑스러운 딸의 모습이 저 멀리 보이면 “내 눈길 닿기 전/이내/소년 같은 환한 웃음/입가에 담아/사방 꽃잎으로 흩날리곤”하던 아버지, 아버지의 딸을 맞이하는 미소는 ‘사방 흩날리는 꽃잎’이다. 그렇게 환하고 밝은 것이다. 이는 바로 아버지가 딸에 대한 사랑이며, 동시에 아버지를 기억하는 딸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자신을 늘 견지시켜주는 무게가 되고 있다. 오늘 딸이 이 아버지의 무게로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그리움마저도 누르고 있는 것이다ㅓ. 아버지는 그 만큼이나 딸에게 절재적인 존재라는 것은 이렇듯 암시하고 있다. 3. 미국에 거주하는 시인들이 모여 동인지를 만든다. 미국이라는 이국에서의 삶을 노래한다. 미국이라는 이국에서 우리말과 글로 시를 씀으로 해서, 이러한 모든 것을 끌어안고자 한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삶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분들의 모임은 참으로 가치가 있다. 시를 쓰는 삶, 시를 아끼는 삶이 바로 자신을 아끼는 삶이며, 동시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동인지 창간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시를 읽고 또 해설이라는 글을 썼다. 마음과 마음으로 태평양 드넓은 바다를 건너기를 바란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 축하하는 마음을 보낸다. ▩
◆ 표사의 글 ◆ 미국에 거주하는 시인들이 모여 동인지를 만든다. 미국이라는 이국에서의 삶을 노래한다. 미국이라는 이국에서 우리말과 글로 시를 씀으로 해서, 이러한 모든 것을 끌어안고자 한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삶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분들의 모임은 참으로 가치가 있다. 시를 쓰는 삶, 시를 아끼는 삶이 바로 자신을 아끼는 삶이며, 동시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 윤석산교수의 해설 중에서 |
첫댓글 김모수 시인의 연필을 깍다가라는 시가 많은 공감을 일으킵니다.
연필와 삶을 비유한 하루 하루 깍여 나가는 우리의 생...
빗나간 칼질에 목뼈가 부러져 나간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 비유
원치 않아도 꺽이는 목숨이 있다는걸 왜 몰랐을까라는 문구에서 고개가 끄덕여 지는.
아 나도 이렇게 시를 쓰고 싶다는 욕심이 솟구칩니다.
전 곽상희 시인님의 고운 말이 가슴에 확 다가오는 군요.
말이란 한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지요.
<네가 건넨 한마디 말이 향나무 가지 끝 매달린
잘 익고 빛나는
우주 하나,
고요는 천지를 가득 차 흐르고
하루의 고봉밥>
그 따뜻한 고봉밥! 정이 철철 넘치고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그 고봉밥 같은 말이 그립군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