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不動)에서 거동(擧動)으로
인생으로 사노라면 많은 짐을 지게 됩니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이야 마냥 즐겁습니다. 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서서히 짐을 무게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똥, 오줌 가리지 못할 때는 얘교로 넘어가지만 계속 봐 줄 수는 없습니다. 제 어린 시절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키(곡물 알곡쭉정이 고르는 것)를 덮어 씌어주시더니 바가지를 주면서 옆 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 오라 심부름을 시키는 겁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옆 집에 갔다가 부짓갱이로 얻어 맞아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 날 그렇게 혼줄이 나고서는 그 때부터 이불에 지도(?) 그리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어른을 보면 인사하는 것, 공부해야 하는 일, 농사하시는 부모님을 도와 일하는 것 등등 인생의 짐을 지면서 성장해 왔습니다. 짐을 내려 놓기를 원하지만, 그 짐이 있기에 땀 흘리는 수고의 가치를 알았고, 그 짐으로 꿈을 꾸며 살아 왔습니다. 연로하시고 병든 부모님이 짐인 줄 알았는데 축복이었습니다. 자식이 짐으로 여겨질 만큼 힘들 때가 있었는데 행복이 되었습니다. 말썽부리고 속 썩이는 교인들이 짐으로 보였는데 그 분들이 나의 스승이요 상급과 면류관이 되었습니다. 짐은 버릴 것이 아니라 벗어 질 때까지 함께 잘 지내야 합니다.
부상 당한 날(4월6일), 수술과 동시에 왼쪽 다리에 차꼬처럼 고정틀을 달았습니다. 가볍지 않은 무게에 바지를 입을 수 없고, 투박함이 보기도 안 좋고 불편하기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짐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여러 조각난 다리 뼈는 붙어갔습니다. 사실 그 짐이 있기에 부동이 아닌 미동의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부상 82일 만에(6월28일) 그 무거운 짐을 벗었습니다. 제거하는 의사에게 82일만이라 했더니 날짜를 세고 있었냐며 반문합니다. 속으로 그랬습니다. 당신은 이거 달아봤냐? 당한 자 만이 알 것입니다. 아직 활동에는 제약이 있지만 감히 부동에서 거동으로 나아갑니다. 이제는 운전도 제법합니다. 거처가 된 3층 목양실에서 5층 사택으로 종종 올라갑니다. 강단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예배를 인도하지만, 설교 시간에는 일어서서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틀을 제거한 부분에 소독(치료)을 하러 병원에 갔습니다. 저 같이 고정틀을 달고 목발을 받는 후배(?) 환자를 봤습니다. 어이쿠 그 분은 오른 발이었습니다. 그 짐의 무거움과 불편함을 저는 압니다.
이번에 병원 치료비가 만만치 않게 나왔습니다. 의료보험 자부담으로 내야할 부분이 천만원에서 조금 빠지는 금액입니다. 치료에 관한 적절한 보험을 들지 않아서 이 또한 짐이었습니다. 어쩔까 하다가 부상당한 강화 평화전망대 측에 요청했습니다. 제 과실부분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도로에 문제가 있었다고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강화군시설공단측에서 보험처리를 받아주어서 치료비에 상당한 부분을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목사님들이 원로목사님들 섬기는 일로 인해 다쳤으니, 그 날 예산의 남은 부분을 치료비로 쓰라고 배려해주었습니다. 성도님들과 지인들이 십시일반 사랑으로 보태주심으로 짐을 덜었습니다. 감리사를 하면서 지방교회와 업무협약을 맺은 한림병원측에서도 치료비 감면을 해주셨습니다. 내일(7월1일)은 맥추감사절입니다. 2018년 봄 그리고 여름, 거의 일년은 정상적인 활동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깨달은 은혜가 크고 받은 사랑이 많습니다. 육신의 일은 손해가 되 보여도 영의 일은 큰 차질이 없었음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활동에는 못 미치나 이제는 서서히 거동하면서 더 많은 역할을 해보려 합니다. 하나님과 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목사님 글을 읽지않고 잠들수없어 아주제밌게 읽다 두번이나깔깔 웃었습니다.
목사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은혜받고갑니다 .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갈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