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만나는 어머니 / 김현준
버스 앞자리에 앉은 아주머니의 뒷머리가 어머니와 닮았다. 동네 미장원에서 파마한 머리숱이 눈에 익었다. 얼핏 보이는 옆얼굴도 햇볕에 그을려 어머니와 닮았다. 아마 50대 후반이었을 때의 모습 같다.
재래시장에서 콩을 볶아 가는지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손자 손녀에게 나누어 줄 군것질거리지 싶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머니는 장날이면 시장에 나가 옥수수 뻥튀기를 파란 비닐에 가득 담아오셨다. 며칠 동안 우리 형제들은 뻥튀기를 물리도록 먹곤 했다.
모래내 재래시장 좌판 앞에 앉은 할머니가 어머니를 닮았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것도 그렇고, 무명 치마저고리도 본 적이 있다. 갈치 두어 마리 흥정하고 토막 내어 달라고 한다.
어머니는 장날이면 식구들에게 비린 냄새라도 맛보게 하려고 시장에 가셨다. 중간 정도의 갈치를 꼭 두 마리 지푸라기에 묶어 사오셨다. 조그맣게 토막 내고 갓 캐온 햇감자를 넣어 찌개를 끓이셨다. 지금 어디서 그 맛을 볼 수 있을까? 아내는 수입 갈치라서 옛 맛이 안 난다고 푸념을 한다.
도시 개발지역 공터에 일군 밭에서 어느 할머니가 호미질을 하고 있다. 초여름 햇볕이 따가운 한낮이다. 콩밭을 매고 있는지, 머리에 두른 수건을 벗어 이마의 땀을 닦는다. 밭주인 눈치를 보며 일군 텃밭이다. 언제 건물을 짓겠다고 경작을 그만두라는 팻말이 붙을지 모른다. 작년에는 들깨를 심어 들기름 몇 병을 짰다고 했다. 목사님과 딸네 집에 한 병씩 돌렸는데, 올해는 힘이 부쳐 그중 수월하다는 콩을 심었다고 했다. 제대로 수확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수건을 두르고 콩밭을 매는 그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는 땀을 많이 흘리셨다. 여름철에는 더했다. 음식이 부실하고 7남매 낳아 기르시느라 몸이 쇠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식들 손에 뭔가 들려 보내려고 쉼 없이 일하셨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땐 이모님을 찾으면 될 것을, 젊으신 이모가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하직하여 그렇게도 못한다. 어머니와 함께 이모 장례식 때 평택에 갔다. 상심하신 어머니를 위로하는 게 더 급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이모님이 시집을 갔다. 연지 곤지 찍고 곱게 단장한 이모님은 천사처럼 예뻤다. 몇 년 뒤 운암 댐 공사로 논밭이 수몰되면서 보상금을 받아 계화도 간척지에 이사했다. 소금에 찌든 간척지를 민물로 적셔 농경지를 만드는 고된 세월이었다. 버텨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이모부님은 타고난 농사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다른 호구지책을 찾아 동분서주했고, 우여곡절 끝에 평택 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유료 낚시터를 만들고 서울의 낚시꾼들을 끌어들였다. 사업이 자리를 잡는 듯싶었으나 자본 회전이 더디고 무한경쟁에 시달렸다. 주변에 낚시터가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이모님은 몸과 마음이 황폐해졌다. 남편은 밖으로만 나돌며 아내 속을 썩였다. 이모님은 위암 선고를 받고 6개월 만에 한 많은 생을 마감하였다. 어머니는 몹시도 슬퍼하셨다. 두 분 자매는 정이 깊었다.
누이동생에게도 어머니의 이미지가 남아있을 테지만, 수도권 지역으로 이사를 한 뒤 못 만난 지도 몇 해째다. 잘 나가던 매제의 사업이 시들해졌는지 걱정되는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잘 살기만을 빈다.
가끔 나는 아내와 딸이 오순도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대화를 듣는 듯하다. 아내가 어머니 같기도 하고, 외할머니로 보이기도 한다.
아파트의 경로당 여자 회원들은 노래 공부를 마친 뒤, 끼리끼리 모여 화투장을 돌렸다. 십 원짜리 고스톱을 친다고 했다. 소일거리가 되고 치매 예방에 그만이라고 좋아하는데, 노시는 모습이 어머니와 너무 닮았다.
예전에 막냇동생이 사는 아파트에서 손자 손녀를 돌보시던 어머니는 틈이 나면 경로당에 가셨다. 무얼 하면서 소일하시냐고 여쭈웠더니 동전 내기 민화투를 친다고 하였다. 고스톱은 배우지 못하여 민화투만 고집하셨다.
세 살배기 손녀 얼굴이 처음엔 외탁을 했는지 조금 서먹했는데, 자라면서 친가 쪽을 닮아가는 듯하다. 제 증조모 모습이 얼핏 비칠 때도 있어 더 정이 간다. 살면서 이것저것 깨닫게 되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죄스러움을 조금은 덜게 된다.
그러고 보면 세상 곳곳에 어머니가 있다. 처처불상處處佛像이라더니, 내겐 처처 모친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여러 모습으로 환생하셨다. 할렐루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쩌다 대형 할인점에 가면 점원들이 우리 부부에게 ‘어머님, 아버님’ 하며 정겹게 다가서는 데, 처음엔 어색하고 껄끄러웠다. 다시 생각하면 어디 한구석 자신들의 부모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겠다 싶어, 이젠 그냥 웃어주고 지나간다.
어머니를 일깨워준 아주머니, 할머니에게 감사드린다. 마땅히 그분들을 공경해야 하리라. 만시지탄이지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이제야 깨닫는다.
[김현준] 수필가. 소설가
《대한문학》으로 2012 수필, 2019 소설 등단
* 수필집 『아내와 아들의 틈바구니에서』외 6권, 소설 『사랑과 이별』
* 대한작가상, 행촌수필문학상, 은빛수필문학상
소설가로의 등단이 신선했다. 편히 머무르기보다 절차탁마하는 모습에서 성실함이 묻어난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묵히, 흔들림 없이 진력하는 자세가 숭고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이 여실하다. 분야를 망라한 도전하는 열정이 젊은이들의 귀감이 되리라. 마냥 부럽다.
처처불상處處佛像이요, 주변의 노인분들은 모두의 어른이다. 재래시장 장날 풍경이라든가, 공터에 일군 콩밭이며, 튀긴 콩, 옥수수 뻥튀기, 햇감자 넣은 갈치찌게. 모두 어머니와 연관된 그림이다. 잔잔한 감동이 인다.
첫댓글 처처에서 어머니를 만나시는 작가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저도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몇 년간은 어머니닮은 분을 곳곳에서 마주치곤 했습니다.
처처불상, 만시지탄 오늘도 많이 배웁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 세상의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경험을 했지요...
사진도 예쁘게 보이지 않으면 촬영을 할 맘이 없겠지요
파인더의 핀트를 맞추면 굉장히 많은 엔돌핀이 나옵니다
그 때의 모습이 나중의 사진 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다 여름에 있다'는 여름입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