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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작은 문학 권두비평
사람으로 눈사람 만든 시
-금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에 대해
전문수 본지주간(창원대학교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조선일보 당선 신인 이수빈의 시 <아름다운 눈사람>에 대한 단편 작품론이 될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어떻게 만든 눈사람이기에 아름다운가 하는 궁금증부터 우선 풀어보고자 한다. 이 시제의 언어(單語) ‘눈사람’은 실상, 세상에 실재할 수 없는 한 사물의 이름이다.
눈이 사람이 될 수 없고, 사람이 눈이 될 수 없는 오직 언어(말)일 뿐이다. 설령 눈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었다고 해도 실제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따라서 이 눈사람이란 어휘는 특수한 인생 삶의 어떤 조건이 연계되어 특수한 의사소통을 필요로 할 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방식의 언어생성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론을 빌리면 언어게임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놀이가 말의(言語) 어떤 조건 즉 연계된 특성에 따라 특수한 규칙에 따라 게임처럼 이해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눈사람은 더욱 특별난 눈사람일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눈사람이란 언어는 반드시 재료가 눈이라야 하고 그것을 머리, 몸통으로 그리고 눈, 귀, 코, 입 등 사람 형상으로 만들기 약속(규칙)을 지킬 때 눈사람 만들기 놀이가 되는 것이다. 일종의 게임방식이 진짜 언어의미가 된다는 이치다. 즉 언어는 실제를 드러내거나 또는 실제를 실현하지 못하기에 끝없는 언어놀이라 하겠다. 인간은 하루에 5만내지 6만 번 마음의 생각을 바꾼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에 말은 16,000에서 46,000번 사용한다는 뇌 과학자들의 논의도 있다.
그리고 특히 이런 말들의 사용은 크게 문학적으로는 두 종류로 표현된다고 보는데, 그게 우리가 그간 잘 아는 묘사적 언어사용과 서사적 언어사용이라고 묶어 볼 수 있다. 일상의 모든 언어표현은 아마 이 두 표현으로 사물들의 현상을 붙잡는 실천 행위의 실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굳이 문학적 표현은 이를 갈라서 논의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묘사적 언어표현의 정념 중심의 정적문학과 서사적 표현 행위가 중심인 이야기 문학으로 갈래를 잡을 수 있었던 거다.
그런데 시는 대개 묘사문학인데 굳이 이 시는 서사적 표현 방식을 택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하기야 문학은 어떤 표현기술을 펼쳐서라도 언제나 사물을 필요로 할 때마다 잘 닦아 새것을 만들어 서로 공감을 누리는 공유물이면 되는 것이니 문제 삼을 것은 못된다고 생각되긴 하다.
한편 이 시의 눈사람이란 한 어휘는, 사람들이 아마 최소한 수천 년 전에 만들어져 다 셀 수 없는 거대한 언어마을 한 구석에 던져져 너무 많이 일상에 사용해서 묵은 때나 잔뜩 덮어쓰고 있었을 수 있다. 그러니 언뜻 보아서는 아마 별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을 것처럼 생각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어휘 한 단어가 새로운 한 분의 시인을 등단시키는 큰일을 이루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말장난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이런 게 시학의 묘미라고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것도 저간의 권위를 자타가 공인하는 주요 신문 중에서 막상막하한 경쟁을 이겨 낸 것 보면.
눈으로는 사람 모양 만들기 놀이를 안 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그런데 사람으로 눈사람을 만들어 보는 사람은 과문이라 그런지 몰라도 이 시인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럴 때 우리는 시적 미학의 위상이 한층 높여진다고 할 수도 있다.
여기에 이 시는 한술 더 떠서 대개 일반적으로는 시가 묘사법 중심으로 작시를 하는 저간의 보편성을 깨고, 설화나 동화 소설식 서사의 매우 짧은 장르인 장문(掌文) 안에서 사람으로 눈사람 만들기를 성공시키는 일종의 새로운 시문 언어게임 규칙을 잘 구현시킨 것을 보며 한 번 더 놀라게 한다.
그간의 눈사람 만들기는 대개 일종의 놀이로서 인간의 형상 특징들을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방식의 풍자적, 희화적, 만화적 등으로 만든 장난 놀이었다. 즉 흔히 그림이나 문장에서 한 순간의 사물 특징을 캐리커처 하는 방식의 기법들이었다. 따라서 눈이 녹으면 원점으로 돌아가 사라지는 한때의 순간 재미놀이다. 왜 흰 눈을 만나면 하필 사람 만들기에 집중했을까는 아마 누구나 짐작을 할 것이다. 그리고 풍자적이고 희화적 언어게임 놀이하기가 매우 쉬웠을까 하는 것도 다 알 것이다. 사람은 캐리커처 하기에 그 속성들 폭이 아마 제일 넓은 존재일 것이다. 눈 강아지나 눈 돼지는 왜 안 만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되면 답은 금방 나올 것이다.
언어는 문맥이나 생활 속 실용적 사용목적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가령 간다는 언어가 실제 사용상황의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언어의 의미 족들은 애초부터 실은 의미가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즉 실제 삶의 상황이 나오면 그때 의미가 거기서 정해지고 그로해서 그 의미들은 마치 가족적 연대나 관계처럼 일종의 의미위계의 집단에 속해 쌓여갔다고 본다.
언어규칙은 현실 사용맥락에서 발견되고 그에 알맞게 의미는 생산된다. 모든 것은 어느 맥락에 들어야 규칙을 얻고 의미를 얻는다. 쉽게 말해서 사물들은 수시변통이나 임시변통에 능숙하게 적응한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이런 세상이치를 이 시는 발견해서 새 길을 알리고 있다. 필자는 이런 글을 천문(天文)이라 해왔다.
이런 측면에서 이 시 해설도 일종의 천문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이 단계에서 문제의 시 원문을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아름다운 눈사람/ 이수빈
1.선생님이 급하게 교무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신다
2. 나는 두 손을 내민다
3.선생님이 장갑을 끼워주신다
4.목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끼우고 실 핀으로 단단히 고정해주신다
5.나는 손을 쥐었다 편다 부스럭 소리가 난다
6.마음 편히 놀아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7.운동장 위로 얕게 쌓인 눈
8.새하얗고 둥글어야 해 아이들이 말한다
9.눈을 아무리 세게 쥐어도 뭉쳐지지 않고 흩어진다
10.작은 바람에 쉽게 날아간다
11.흙덩이 같은 눈덩이를 안고 있는 아이들
12.드러누워 눈을 감고 입을 벌리는 아이들
13.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다룬다
14.개를 쓰다듬듯 품에 안은 채 몇 번이고 어루만진다
15.눈덩이가 매끈하고 단단해진다
16.아주 새하얗고 둥근 모양의 완벽한 눈덩이를 갖는다
17.눈덩이가 내 품속에 있어서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18.그 세상이 아름다운 것도 같고
19.서툴지 않은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한데
20.하고 있던 목도리를 푼다
21.모자를 벗는다
22.장갑은 잘 벗겨지지 않는다
23.내 눈사람은 너무 잘 챙겨 입어서 더 이상 눈사람 같지 않다
24.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가고 없다
25.밟히고 파헤쳐져 더 이상 하얗지 않은 운동장을 본다
26.선생님 제 눈사람이 가장 새하얗고 둥글어요
27.그리고 또 커요 나는 말하고 선생님은 오랫동안 내 눈사람을 바라보신다
28.어찌할 수 없어서 울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선생님이 서 계신다
29.나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같이 울상이 된다
30.이 순간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31.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린다
1. 아름다운 눈사람
우선 앞에서 한 번 통독했으니 이 시의 제목인 시제부터 고찰해보기로 한다. ‘아름다운 눈사람’이란 시제는 아름답다는 형용사에 의해 관형어로 설정돼 있어서 일반적인 시제 설정 면에서 보면 시제만으로는 평가 절하될 소지를 가진 위험을 잘 감수한 셈이다. 정념은 진술이나 부사와 형용사는 물론이고, 너무도 상투적인 관형적 수식인 시의 형상화 방법은 기법 면으로는 금물로 취급하는 관행을 깨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아름답다는 정념이 가진 실제란 너무 추상적이라 어떤 의미도 붙잡을 수 없거니와 눈사람 자체 역시 수만 년 동안의 어느 눈사람도 실체를 가지지 않은 실정에서 이 두 조합은 너무 낡은 상징 표상이다.
아마 이 시인이 응모한 다른 시 전체가 일정 수준 이상이기에 이 보배의 시가 예선에서 살아난 것 같다. 다행히 본문을 다 읽고 나면 이 역시 우리의 금기의 일방적 기존의식을 또 깨버려야 하는 것을 안다. 역시 어떤 경전에도 그 자체에 깊이 빠지면 그것 또한 집착이란 말이 실감되는 현상을 맛보기도 한다.
이 시를 한번 통독하고 나면 왜 ‘아름다운 눈사람’이 단순히 상투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 시가 서사적이라서 이 종말의 해피엔딩을 보면 이내 이 시제가 서사적 기법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독자의 호기심을 끌기에 알맞은 장문(掌文) 서사 작시었다. 오히려 시제가 크게 일조했다고도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아름다운 눈사람이란 말을 어쩌면 처음 듣는 시제일 수도 있기에 시제가 좋다고 판단도 된다.
어쨌든 이 시는 시제부터 흥미로운 언어게임을 시작한 셈이다.
2. 시의 플롯(plot)에 대하여
아마 시에서 플롯이란 용어는 처음 들어 보았을 것이다. 시는 구성이나 구조란 말을 중심으로 해서 기존 익숙한 구성구조가 기승전결이란 의미 진전의 4단계를 기준으로 해서 시의 중심 논리를 형상화로 묘사력을 확보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는 서사기법으로 기존 시 표현의식 구조를 바꾸었기 때문에 당연히 플롯이 서사를 이끄는 기둥이 된 것이다. 플롯은 스토리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토리는 어떤 사실을 그저 순서대로 알리는 이야기 전달이 기본이지만, 플롯은 의미의 굴곡과 진폭과 정념의 효과 등을 다루는 미학구성과 구조를 최선으로 드러내게 하는 연출의 기술 부리기다. 그래서 서사문학은 플롯이 서사진행의 생명이라 할 수 있다. 말놀이 게임 중 최고의 게임규칙일 수도 있다. 사유의 진행을 미학적 의미의 톤으로 한껏 높이는 일을 이 플롯이 좌우한다. 바로 연출가이다. 언어 맥락이란 매우 광범위 하고 그 연출 환경이 복잡해서 실제를 일상 언어보다 더 가깝게 실행시키는 높은 안목이 필요하다. 영화감독이나 연극 연출가로 비유하면 매우 적당하다 할 것이다.
이 시는 첫 연에 이미 선생님이 급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플롯 전략으로 짜고 시작된다. 얼마든지 다음 행 어디에 끼워 넣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앞세운 것은 이 시 속 주인공들 즉 선한 목적의 프로타고니스트에 대립적 위치에서 방해나 저항하는 악행 대상 안타고니스트에 대한 불안을 플롯 구조로 우선 드러내는 수법이라 할 것이다. 왜 급한 선생님 행동인가는 그 다음에 행을 달리해서 다시 거듭 밝혀지게 된다. 눈이 갑자기 오는 기쁨 못지않게 너무 얕게 오고 있어 바로 녹아버리면 그게 바로 프로타고니스트를 방해하는 안타고니스트들의 우려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첫머리부터 복선 미리 깔기 한 것이다.
서사는 이렇게 선한 목표를 지향하는 주인공을 방해하는 악마 주인공과의 대립구조가 어느 서사고 기본이다. 선을 드러내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악을 대립시키는 것이고 이런 투쟁 간의 서사미학의 실감을 생성시킨다.
이 시의 서사가 진행되는 기본 플롯은 선생님의 마음 편히 놀아라는 선한 프로타고니스트를 필두로 한 주인공, 어린 나에 대립한 얕은 눈, 바람에 날리는 눈의 악한 방해와 저항으로 선한 주인공이 최악의 곤경에 빠지는 격정의 정념에서 천운의 하늘 도움으로 악마들을 물리치는 행복 결말의 서사시이다. 흔히 이런 구조를 “행복-불행-갈등 해소-행복”의 해피엔딩 구조 플롯의 서사라고 한다.
3. 전형적인 서사의 행복 구조
이 시의 플롯은 익히 아는 바대로 영웅 서사의 전형적 기본 서사구조이다. 우리의 판소리소설도 다 이런 구조이다. 반드시 행복해야 할 존재가 어느 날 의외의 불행에 부닥쳐서 이에 고뇌를 겪다가 투쟁을 통해 갈등을 벗고 결국엔 다시 행복해야 할 제 자리를 되찾는 방식이 영웅 서사구조 기본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행복해야만 하는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전제가 당위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불행이 오더라도 반드시 다시 행복을 회복하고 만수를 다 누려야 한다는 당위가 천심으로 확보된다는 무의식적 잠재성이 인간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하늘이 점지한 대상이란 믿음이 이런 구조가 전 세계적으로 기본 서사가 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시 본문을 한 번 다음과 같이 플롯의 성격을 구분서 고찰해보기로 한다.
안타고니스트의 입장에서 프로타고니스트에 저항하는 플롯에 기능하는 본문 시 내용들, 즉 눈의 양이 적어서 그게 안타고니스트들의 짓으로 취급된 양상들의 시문부터 그 플롯의 차이를 갈라보면 다음과 같다.
1.선생님이 급하게 교무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신다
9.눈을 아무리 세게 쥐어도 뭉쳐지지 않고 흩어진다
10.작은 바람에 쉽게 날아간다
11.흙덩이 같은 눈덩이를 안고 있는 아이들
12.드러누워 눈을 감고 입을 벌리는 아이들
20.하고 있던 목도리를 푼다
21.모자를 벗는다
22.장갑은 잘 벗겨지지 않는다
23.내 눈사람은 너무 잘 챙겨입어서 더 이상 눈사람 같지 않다
24.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가고 없다
25.밟히고 파헤쳐져 더 이상 하얗지 않은 운동장을 본다
28.어찌할 수 없어서 울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선생님이 서 계신다
29.나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지만 같이 울상이 된다
위의 시문들은 다 눈사람이나 눈 놀이에 방해를 하여 서사의 목표인 즐겁고 아름다운 눈사람을 만들기 놀이를 할 수 없게 만드는 대립적 플롯들이다. 이와는 반대로 긍정이고 이 서사 시 목적에 희망을 주는 행복 구조의 플롯들은 다시 보이면 다음과 같다.
2 나는 두 손을 내민다
3.선생님이 장갑을 끼워주신다
4.목장갑 위에 비닐장갑을 끼우고 실핀으로 단단히 고정해주신다
5.나는 손을 쥐었다 편다 부스럭 소리가 난다
6.마음 편히 놀아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7.운동장 위로 얕게 쌓인 눈
8.새하얗고 둥글어야 해 아이들이 말한다
13.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다룬다
14.개를 쓰다듬듯 품에 안은 채 몇 번이고 어루만진다
15.눈덩이가 매끈하고 단단해진다
16.아주 새하얗고 둥근 모양의 완벽한 눈덩이를 갖는다
17.눈덩이가 내 품속에 있어서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18.그 세상이 아름다운 것도 같고
19.서툴지 않은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한데
26.선생님 제 눈사람이 가장 새하얗고 둥글어요
27.그리고 또 커요 나는 말하고 선생님은 오랫동안 내 눈사람을 바라보신다
30.이 순간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31.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린다
4. 종말의 행복 구조
이제 이 시를 차분히 숙독한 경우는 왜 종국의 서사적 수행이 시적 미학적으로 한껏 고조되는 방식으로 플롯을 성공시키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선한 주인공의 아픈 갈등을 해소함으로써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기상천외의 동화적 환상 방식으로 행복한 시적 목적을 성취하는 극적 반전을 창안해냈다.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라 믿고 싶고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싶은 주인공의 진아를 독자들이 알게 했다.
하늘이 사람을 눈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기발한 착안이다. 인간은 도저히 인간을 눈사람으로 만들 수 없을 인간의 한계를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인간의 위대한 점은 상상을 현실적으로 시각화해서 삶을 누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체의 물질만이 아니라 정신이 오히려 더 삶을 인간답게 한다는 것은 인간만의 시적위상이기도 하다. 이 시는 상상의 시청각화가 서사적 방법으로 가치 있는 시의 문예학을 새롭게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람으로 만든 눈사람은 역시 하늘의 능력뿐이라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작시(作詩)란 잘 연출된 언어의 플롯이고 그로 하여 전달되는 오묘한 진실의 내용 전달은 스토리가 됨을 이 시가 잘 보여준다고 본다. 작시법의 새로운 길을 열어 보인 시라고 평가하고 싶다. 필자는 천문론적 시작(詩作) 이론이 요즈음 인구에 폭넓게 회자되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근거해서 앞으로 한층 문예 미학이 정직하게 기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