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SEVENTY YEARS FOR BABYLON
바빌론을 위한 70년
For thus says the LORD,
“When seventy years have been completed for Babylon,
I will visit you and fulfill my good word to you,
to bring you back to this place.”
— Jeremiah 29:10, NASB.
바벨론을 섬기는 칠십 년이 차면 ,
내가 너희를 돌아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ㅡ 예레미아 29:10,NASB.
THE DATE 607 B.C.E. as given by Watchtower chronologists for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and its temple by the Babylonians is determined by adding the seventy years predicted by Jeremiah to 537 B.C.E., the date when the Jewish remnant are thought to have returned from exile. It is held that these seventy years were a period of complete desolation for Judah and Jerusalem: The Bible prophecy does not allow for the application of the 70-year period to any time other than that between the desolation of Judah, accompanying Jerusalem’s destruction, and the return of the Jewish exiles to their homeland as a result of Cyrus’ decree. It clearly specifies that the 70 years would be years of devastation of the land of Judah.1 If no other understanding of the seventy-year period is allowed for by Bible prophecy, then a choice has to be made between the date determined by this application and the one established by at least seventeen lines of historical evidence. When a certain interpretation of a Biblical prophecy contradicts historical fact, this indicates that either the prophecy failed or the interpretation is wrong. It is true that a certain application sometimes looks very convincing, so much so that no other appears feasible. It seems to the reader to be given by the Bible itself. In such a case it may also seem to be a sound Christian position to discard the historical evidence and “just stick to what the Bible says.” When this position is taken, however, those taking it often overlook the fact that the fulfillment of a prophecy cannot be demonstrated aside from history, because only history can show whether, when, and how it was fulfilled. Actually, prophecy is not generally understood until after it has been fulfilled historically through events in time. Serious mistakes have sometimes been made by sincere Bible students because historical evidence contrary to a certain application or interpretation has been rejected. One example will be given below to illustrate this fact. 워치타워 연대기에서 제시한, 바빌로니아인들이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파괴한 시기가 기원전 607년이라는 발상은, 유대인 남은자가 유배 생활에서 돌아온 것으로 생각되는 기원전 537년에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을 더함으로써 결정된 것이다. 이 70년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완전히 황폐된 시기였다고 한다. 성경의 예언은 유다의 황폐, 예루살렘 멸망에 수반되는 황폐, 고레스의 명령으로 유대인 망명자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일과 관련된 것 외에는 70년의 기간을 어느 때에도 적용할 수 없다. 그것은 유다 땅을 황폐하게 한 70년의 세월이 될 것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1 성경의 예언에 의해 70년의 기간에 대한 다른 이해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적용에 의해 결정된 시기인 기원전 607년 예루살렘 멸망과 적어도 17개의 역사적 증거에 의해 확정된 시기인 기원전 587/86년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성경예언에 대한 어떤 해석이 역사적 사실과 모순될 때 이는 예언이 실패했거나 아니면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뜻한다. 때로는 이 해석이 특정 적용에 대해서 매우 설득력 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는 성경 그 자체가 그렇게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우 역사적 증거를 버리고 '성경이 말하는 대로만 고수하는 것'이 기독교로서의 건전한 입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입장을 취하게 되면, 예언 실현성의 여부, 실현성의 방법과 시기는 역사만이 입증할 수 있기 때문에, 예언의 실현은 역사 이외에 달리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사실 예언은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적 사건을 통해 실현되기 전까지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떤 추측이나 해석에 반대되는 역사적 증거를 거부했기 때문에 성실한 성경 연구생들이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아래에 한 가지 예가 제시될 것이다. |
History and time prophecies—a lesson
역사와 시대에 대한 예언들ㅡ하나의 교훈
Most commentators agree that Daniel’s prophecy of the “seventy weeks” (Daniel 9:24–27) refers to a period of 490 years. But various opinions have been held regarding the starting point of this period. Although it is stated at Daniel 9:25 that “from the going forth of [the] word to restore and to rebuild Jerusalem until Messiah [the] Leader, there will be seven weeks, also sixty-two weeks” (NW), different views are held regarding when and by whom this “word” was sent forth.2 If we “just stick to the Bible,” it seems to point to the Persian king Cyrus. At Isaiah 44:28 Jehovah “saith of Cyrus, He is my shepherd, and shall perform all my pleasure, even saying of Jerusalem, She shall be built; and of the temple, Thy foundation shall be laid” (ASV). And further, in chapter 45, verse 13: “I myself have roused up someone in righteousness [Cyrus], and all his ways I shall straighten out. He is the one that will build my city, and those of mine in exile he will let go, not for a price nor for bribery” (NW). Thus it would seem clear that according to the Bible itself the “word to restore and rebuild Jerusalem” was issued by Cyrus. This application, however, limits the period from Cyrus’ edict (Ezra 1:1– 4) until Messiah to 483 years (”seven weeks, also sixty-two weeks”). If this period ended at the baptism of Christ, usually dated somewhere in the period 26–29 C.E., Cyrus’ first year as king of Babylon would have to be dated in the period 458–455 B.C.E. instead of 538, the historically acknowledged date. Contrary to all historical evidence, several Christian commentators in the past have chosen this application, and it is still adhered to by some expositors. The idea was popularized in the last century by Martin Anstey in his work The Romance of Bible Chronology, London 1913.3 Dr. E. W. Bullinger (1837–1913) accepted the same position, as may be seen in Appendix 91 (pp. 131–32) of his The Companion Bible. The reasoning underlying this unhistorical position is clearly demonstrated by one of its adherents, George Storrs, a Bible student from the 19th century and editor of the periodical Bible Examiner. In an article dealing with the seventy weeks, he states: In examining this point, we have nothing to do with profane chronology, or the chronology of the historians. The Bible must settle the question, and if profane chronology does not tally with it, we have a right to conclude such chronology is false, and not to be trusted.4 Storrs, like some other expositors before and after him, tried to cut off nearly 100 years from the Persian period, holding that a number of the Persian kings mentioned in “Ptolemy’s canon” (the Royal Canon) and other historical sources never existed! George Storrs surely was an honest and sincere Christian Bible student, but his (and others’) rejection of historical sources proved to be a grave mistake.5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다니엘이 예언한 '70주'(다니엘 9:24~27)가 490년을 의미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출발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 왔다. 다니엘 9:25에 "예루살렘을 복구하고 재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때부터 지도자인 메시아가 올 때까지 7주와, 또 62주가 지나리라는 것이오."(NW)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이 "말"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전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2 우리가 단지 "성서에만 고착한다면" 페르시아 왕인 고레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사야 44장 28절 여호와의 말씀에서 "그는 나의 목자요, 예루살렘에 대한 말씀조차도 나의 모든 기쁨을 행하리라, 예루살렘은 건축될 것이며, 성전에 주춧돌이 놓이리라" (ASV) 그리고 45장 13절: "내가 친히 누군가를 의로움으로 일깨웠으며, 그의 모든 길을 바로 잡을 것이다. 그는 내 도시를 건설할 사람이며, 망명 중인 내 사람들은, 대가도 뇌물도 받지 않고 그냥 보내줄 것이다." 따라서 성서에 따르면 "예루살렘을 복원하고 재건하라는 말"은 고레스에 의해 선포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적용은 고레스의 칙령(에스라 1:1–4)부터 메시야까지의 기간을 483년으로 제한하고 있다(7주, 그리고 62주). 만약 이 기간이 대개 서기 26-29년 중 어느 시기에 그리스도의 침례로 끝난다면, 고레스의 바빌로니아 왕으로서의 첫해는 역사적으로 인정된 538년 대신 기원전 458-455년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역사적 증거와 달리 과거 그리스도인 주석가 몇 명이 이런 해석을 적용했으며, 일부 주석가들은 여전히 이 해석을 고수하고 있다. 이 해석은 마틴 앤스티가 지난 세기 <성경 연대기의 로맨스>(The Romance of Bible Chronology, 런던, 1913년 3월 Dr. E. W. Bullinger, 1837-1913)에서 그의 동반자 바이블 부록 91(pp. 131–32)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입장을 받아들였다.3 이러한 비역사적 입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19세기 성경 연구생이자 '성서 검토자'라는 정기 간행물의 편집자인 조지 스토스에 의해 명확하게 입증된다. 70주를 다룬 기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점을 검토하면서 우리는 불경스러운 연대기, 즉 역사학자들의 연대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성경은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며, 만약 불경한 연대기가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러한 연대기를 거짓으로 결론지을 권리가 있고, 믿지 않을 권리가 있다.4 스토어스는 그를 전후한 일부 다른 주석가들과 마찬가지로 페르시아 시대로부터 거의 100년 가까이 건너 뛰려고 시도했고, "프톨레미의 정전(왕실 명부)"과는 다른 역사적 자료들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조지 스토어스는 분명 정직하고 성실한 기독교 성경 연구생이었지만 역사적 자료들을 거부함으로써 그(그리고 다른 사람들)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5 That the Persian kings mentioned in the Royal Canon really did exist has been proved beyond all doubt by archeological discoveries in modern times.6 This is an instructive illustration of the necessity of considering the historical evidence in relation to biblical time prophecies. Although this special application of the seventy weeks seemed very biblical and very convincing, it has been refuted by historical facts and therefore cannot be correct. The same is also true of the application of the seventy-year prophecy made by the Watch Tower Society. Although on the surface it may seem to be supported by some passages in the Bible, it should be abandoned because it is incompatible with historical facts established by a multitude of modern discoveries. Is it possible, then, to find an application of the seventy years that accords with the historical evidence? It is, and a close examination of biblical texts dealing with the seventy years will demonstrate that there is no real conflict between the Bible and secular history in this matter. As will be shown below, it is the application made by the Watch Tower Society that conflicts, not only with secular history, but also with the Bible itself. There are seven scriptural texts referring to a period of seventy years which the Watch Tower Society applies to one and the same period: Jeremiah 25:10–12; 29:10; Daniel 9:1–2; 2 Chronicles 36:20–23; Zechariah 1:7–12; 7:1–7, and Isaiah 23:15–18. These will now be examined one by one in chronological order.7 현대에 와서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페르시아 왕들이 실존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증명된 바 있다.6 이 사실은 성서 시대 예언과 관련하여 역사적 증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적 예증이다. 70주의 이 특별한 적용은 매우 성서적이고 꽤 설득력 있어 보였지만, 역사적 사실에 의해 반박되어 졌기 때문에 바른 해석일 수 없다. 워치타워 협회가 70년 예언을 적용한 것도 마찬가지다. 겉보기에 성경의 일부 구절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현대에 발견된 많은 확립된 역사적 사실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버려야만 한다. 그렇다면, 역사적 증거에 부합하는 70년의 해석을 내리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그렇다, 그리고 70년을 다룬 성서 본문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 문제에서 성경과 세속 역사 사이에 실제적인 충돌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게 될 것이다. 아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속 역사뿐 아니라 성경 자체와도 갈등을 빚는 것은 워치타워 협회가 만든 해석이다. 워치타워 협회가 적용한 시기와 동일한 시기에 적용되는 70년의 기간을 가리키는 7개의 성경 본문이 있다. ① 예레미야 25:10–12; ② 29:10; ③ 다니엘 9:1–2; ④ 역대하 36:20–23; ⑤ 스가랴 1:7–12; ⑥ 7:1–7, ⑦ 이사야 23:15–18 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제 연대 순서대로 하나씩 검토하겠다.7 |
A. JEREMIAH 25:10–12
A. 예레미아 25:10–12
The original prediction is that of Jeremiah 25:10–12, which is dated to “the fourth year of Jehoiakim the son of Josiah, the king of Judah, that is, the first year of Nebuchadrezzar the king of Babylon” (verse 1). Jehoiakim ruled for eleven years and was followed by his son Jehoiachin, who ruled for three months. Jehoiachin in turn was succeeded by his uncle Zedekiah, in whose eleventh year Jerusalem was desolated. Jeremiah’s prophecy, then, was given eighteen years prior to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Jeremiah 25:10–12: ”And I will destroy out of them the sound of exultation and the sound of rejoicing, the voice of the bridegroom and the voice of the bride, the sound of the hand mill and the light of the lamp. And all this land [Judah) must become a devastated place, an object of astonishment, and these nations will have to serve the king of Babylon seventy years. And it must occur that when seventy years have been fulfilled I shall call to account against the king of Babylon and against that nation,” is the utterance of Jehovah, “their error, even against the land of the Chaldeans, and I will make it desolate wastes to time indefinite.” (NW)8 Three things are predicted in this prophecy: (1) The land of Judah would become a “devastated place”. (2) ”These nations” would “serve the king of Babylon seventy years”. (3) When the seventy years had been “fulfilled” God would “call to account against the king of Babylon and against that nation . . . their error, even against” the land of the Chaldeans. What does this passage really tell us about the “seventy years”? 원래 예언은 예레미야 25장 10~12절인데, 예레미야는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4번째 해, 즉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레살 원년"(1절)이다. 여호야김은 11년 동안 통치했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3개월 동안 통치했다. 여호야긴은 그의 삼촌 시드기아에게 왕위를 계승시켰는데, 그의 삼촌 시드기야는 11년 만에 예루살렘이 멸망되었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18년 전에 내려졌다. 예레미야 25장 10절~12절: "내가 그들에게서 환호하는 소리와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목소리와 신부의 목소리,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을 없애 버리겠다. 이 온 땅이 폐허가 되고 경악의 대상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반드시 70년 동안 바빌론 왕을 섬기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70년이 다 차면 내가 바빌론 왕과 그 민족에게 그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고, 칼데아 사람들의 땅을 영원히 황무지로 만들겠다."(NW)8 이 말씀에서 세 가지가 예언되었다. (1) 유다 땅이 '황폐한 곳'이 될 것이다. (2) '이 민족들'은 바빌로니아 왕을 칠십 년 섬길 것이다. (3) 칠십 년이 찼을 때, 하나님은 바빌로니아 왕과 그 민족 . . . 그리고 갈데아 땅에 대해서조차에 책임을 물으실 것을 말씀하셨다. '70년'에 대해 이 구절이 말해주는 사실이 무엇인가? |
A-1: Desolation or servitude—which?
A-1: 황폐와 섬김—어느 쪽인가?
Although it is predicted in the passage that the land of Judah would be a devastated place, it should be noted that this “devastation” is not equated with, or linked with, the period of the seventy years. All that is clearly and unambiguously stated in the text is that “these nations will have to serve the king of Babylon seventy years” The phrase “these nations” is a reference back to verse 9, in which it is predicted that Nebuchadnezzar would come against “this land [that is, Judah] and its inhabitants, and also against all these nations round about.” The seventy years, then, should be understood to mean years of servitude for these nations. This conclusion is so obvious that the Watch Tower Society, at the head of page 826 of its large-print edition of the New World Translation (1971 ed.), automatically describes the seventy years as “70 years’ servitude due.”9 Yet, in their discussions of this text, Watchtower writers never point out that Jeremiah spoke of seventy years of servitude, or that this servitude related to the nations surrounding Judah. They try always to give the impression that the seventy years referred to Judah, and Judah only, and they always describe the seventy years as a period in which Judah suffered complete desolation, “without an inhabitant.”10 This they reckon as having happened from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and its temple. But their application is in direct conflict with the exact wording of Jeremiah’s prediction, and it can be upheld only by ignoring what the text actually says. ”Servitude” here should not be taken to mean the same thing as desolation and exile. For the nations surrounding Judah the servitude first of all meant vassalage.11 Although Judah, too, was subdued by Babylon, it time and again revolted and attempted to throw off the Babylonian yoke, which brought wave after wave of devastating military ravages and deportations until the country was at last desolated and depopulated after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in 587 B.C.E. That such a fate was not the same thing as servitude, but would come as a punishment upon any nation that refused to serve the king of Babylon, had been clearly predicted by Jeremiah, at chapter 27, verses 7, 8, and 11: 유다 땅이 황폐한 곳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이 구절에서 언급되었으나, 이 '황폐'의 기간이 70년이거나 또는 70년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본문에 모호하지 않고 명료하게 기술된 것은 "이 나라들은 바빌로니아의 왕을 칠십 년 동안 섬겨야 할 것이다"라는 것뿐이다. "이 민족들"이라는 구절은 9절을 언급하는 것으로, 느부갓네살은 "이 땅[즉, 유다]과 그 주민들, 그리고 그 주변 모든 민족들에 대항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70년은 이 나라들을 위한 섬김의 세월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결론은 너무나 명백해서, 워치타워 협회의 신세계 역(1971년) 대형판 826면의 머리부분에, 70년의 세월을 "70년의 노역"이라고 자연스럽게 기술하고 있다.9 그러나 워치타워 집필진들은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한 토론에서 예레미아가 70년의 노역을 언급했다고 지적한 적은 결코 없다. 유다를 둘러싼 여러 나라와 관련된 섬김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항상 70년이 유다, 오로지 유다만을 묘사하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며, 70년 동안 유다가 "거민 없이 완전히 황폐함을 겪은 시기"라고 표현한다.10 그들은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해석은 예레미야의 정확한 예측 표현과 정면으로 상충되며, 본문이 실제로 말하는 것을 무시한 해석으로만 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섬김'은 황폐나 유배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노역의 의미는 무엇보다 유다를 둘러싼 여러 나라들에게 충성스러워야 함을 의미했다.11 유다 역시 바빌로니아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바빌로니아 지배를 벗어나려고 몇 번이고 반란을 일으키고는 다시 진압되었다. 바빌로니아 지배는, 파괴적인 군사적 진압과 유배로 이어졌고 마침내 나라가 기원전 587년에 멸망되어 황폐해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한 운명이, 섬김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바빌로니아의 왕을 섬기기를 거부하는 민족에 대해 오는 결과로서의 형벌이라고 예레미야는 27장 7, 8, 11절에서 분명히 예언되어 있다: ”And all the nations must serve even him [Nebuchadnezzar] and his son and his grandson until the time even of his own land comes, and many nations and great kings must exploit him as a servant. ”And it must occur that the nation and the kingdom that will not serve him, even Nebuchadnezzar the king of Babylon; and the one that will not put its neck under the yoke of the king of Babylon, with the sword and with the famine and with the pestilence I shall turn my attention upon that nation,” is the utterance of Jehovah, “until I have finished them off by his hand.” ”And as for the nation that will bring its neck under the yoke of the king of Babylon and actually serve him, I will also let it rest upon its ground,” is the utterance of Jehovah, “and it will certainly cultivate it and dwell in it.” (NW) (예레미야 27:7) 모든 민족이 그와 그의 아들과 손자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의 땅에도 때가 이르리니, 많은 민족과 큰 왕들이 그를 종으로 삼을 것이다.’ (예레미야 27:8) ‘어떤 민족이나 왕국이든지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않고 바빌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지 않으면, 내가 칼과 기근과 역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여, 그의 손으로 그들을 없애 버릴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예레미야 27:11) 그러나 바빌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를 섬기는 민족은 자기 땅에 남아서 그 땅을 경작하고 거기에 살게 해 주겠다.’ 여호와의 말씀이다.”’”(NW) From these verses it is very clear what it meant to a nation to serve the king of Babylon. It meant to accept the yoke of Babylon as a vassal and by that be spared from desolation and deportation. The servitude, therefore, was the very opposite of revolt, desolation, deportation, and exile.12 That is why Jeremiah warned the people against attempting to throw off the Babylonian yoke and admonished them: “Serve the king of Babylon and keep on living. Why should this city become a devastated place?” —Jeremiah 27:17, NW. Thus, the nations that accepted the Babylonian yoke would serve the king of Babylon seventy years. But the nations that refused to serve the Babylonian king would become devastated. This fate at last befell Judah after about eighteen years of servitude, interrupted by repeated rebellions. The seventy years of servitude foretold by Jeremiah, therefore, did not apply to Judah as a nation, but only to the nations who submitted to the king of Babylon. As Judah refused to submit, it had to get the punishment for this―desolation and exile―exactly as had been predicted at Jeremiah 25:11. Of course, the exiled Jews also had to perform various kinds of “service” in Babylonia. This was not the service of a vassal state, however, but the service of captured and deported slaves!13 이 구절을 통해 바빌로니아의 왕을 섬기는 것이 유대 민족에게 어떤 의미였는가는 매우 명백하다. 그것은 신하로서 바빌로니아의 멍에를 짊어져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황폐와 유배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그 종살이는 반란, 황폐, 유배, 그리고 망명과는 정반대의 의미였다.12 이것이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바빌로니아의 속박을 벗으려 하지 말고 그들에게 "바빌로니아 왕을 섬기고 계속 살아라. 왜 이 도시가 황폐한 곳이 되어야 하는가?" 라고 경고한 이유이다.(예레미야 27:17, NW). 그러므로 바빌로니아의 멍에를 받아들인 나라들은 바빌로니아의 왕을 70년 동안 섬기게 된다. 하지만 바빌로니아 왕을 섬기는 것을 거부한 나라들은 망연자실할 것이다. 이 운명은 결국 유다에게 떨어졌고, 18년 동안 계속된 반란은 중단되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의 섬김은 유다 민족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바빌로니아 왕에게 굴복한 민족에게만 적용된다. 유다가 굴복하기를 거부함에 따라, 예레미야 25장 11절에서 예언한 바와 같이, 이 황폐해지고 유배되는 벌을 받아야만 했다. 물론 유배된 유대인들도 바빌로니아에서 다양한 종류의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것은 봉건 국가로서의 섬김이 아니라 붙잡혀 유배된 노예들의 노역인 것이다!13 |
----------------------------------------------------------------------------------------------------------------
1 Insight on the Scriptures, Vol. 1 (Brooklyn. N.Y.: Watch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New York, Inc., 1988), p. 463.
1 <성경 통찰> 1권 뉴욕 (브루클린) : 워치타워 성경 및 책자 협회, 1988년), 463면.
2 The principal interpretations are stated by Edward J. Young in The Prophecy of Daniel (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49), pp. 192–195.
2 에드워드 J. 영이 <다니엘의 예언>(Grand Rapids: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49), 192–195면에 핵심이 되는 해설을 하였다.
3 Republished in 1973 by Kregel Publications under the title Chronology of the Old Testament. See p. 20 on the 490 years. Among more recent Bible commentators, Dr. David L. Cooper, founder of the Biblical Research Society and editor of the Biblical Research Monthly, held this same thesis in his The Seventy Weeks of Daniel (Los Angeles: Biblical Research Society, 1941).
3 1973년 구약 연대기라는 제목으로 크레겔 출판사에 의해 발간됨. 490년에 대하여는 20페이지를 참조하라. 최근 성경 주석가 중에는 데이비드 L 박사도 있다. 성서연구회의 창립자이자 월간 성서연구의 편집자인 쿠퍼는 다니엘의 70주(로스앤젤레스: 성서연구회, 1941년)에서 이 같은 논문을 발표했다.
4 George Storrs (ed.), Bible Examiner (published in Brooklyn, N.Y.), April, 1863, p. 120.
4 죠지 스토어스 (편집인) , <성경 검토자> (뉴욕 브루클린 출판), 1863년 4월, 120면.
5 The early Christian writer Tertullian (c. 160–c. 225 C.E.), in his Against the Jews, reckoned the 490 years from the first year of “Darius the Mede” (Dan. 9:1, 2) to the destruction of the second temple by the Romans in 70 C.E. This would date the first year of “Darius the Mede” to 421 B.C.E. instead of 538. Jewish rabbis in the Talmud (Seder Olam Rabbah) counted the 490 years from the destruction of the first temple by the Babylonians to the destruction of the second temple by the Romans, which would place the destruction of the first temple in 421 B.C.E. instead of 587. (R. T. Beckwith, “Daniel 9 and the Date of Messiah’s Coming in Essene, Hellenistic, Pharisaic, Zealot and Early Christian Computation,” in Revue de Qumran, Vol. 10:40, 1981, pp. 531–32, 539–40.) Although modern discoveries have made such applications wholly untenable, they still find adherents. See, for example, Rabbi Tovia Singer in Outreach Judaism. Study Guide to the “Let’s Get Biblical!” Tape Series, Live! (Mousey, NY: Outreach Judaism, 1995), pp. 40–41.
5 초기의 그리스도인 저술가였던 테르툴리아누스(기원전 160년경~기원전 225년경)는 그의 저서 <유대인에 항거하여>라는 책에서 "메데 다리우스"의 첫 해(단 9:1, 2)부터 서기 70년 로마에 의해 두 번째 신전이 파괴될 때까지를 490년으로 간주했다. 이것은 '메데의 다리우스'의 첫해를 기원전 538년이 아니라 기원전 421년으로 생각한 근거일 것이다. 탈무드(Seder Olam Rabbah)의 유대인 랍비들은 바빌로니아 인들에 의해 첫 번째 성전이 파괴된 때로부터 로마 인들에 의해 두 번째 성전이 파괴된 때까지 490년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기원전 587년이 아니라 기원전 421년에 성전이 파괴된 것으로 간주하였다.(R. T. 벡윗의 저서 <에세네파, 헬레니즘파, 바리새파, 열심당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계산한 다니엘 9장과 메시아의 도래> in Revue de Qumran, Vol. 10:40,1981년 531-32, 539-40면.) 현대적 발견으로 그러한 해석은 거의 방어할 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추종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대교 봉사활동파의 랍비 토비아 싱어를 들 수 있다. "Let's Get Bible!" 학습 가이드 테이프 시리즈, 라이브!(Mousey, NY: Outreach Judiathi, 1995년), 40–41면.
6 During the years 1931–1940, reliefs, tombs, and inscriptions of the kings these expositors thought never existed were excavated in Persia. (Edwin M. Yamauchi, Persia and the Bible.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0, pp. 368–70.) That the Roya1 Canon puts these kings in the right order is also demonstrated by the inscription discovered on the walls of a palace of Artaxerxes III (358–337 B.C.E.), which reads: “Says Artaxerxes the great king, king of kings, king of countries, king of this earth: I (am) the son of Artaxerxes (II) the king: Artaxerxes (was) the son of Darius (II) the king; Darius (was) the son of Artaxerxes (I) the king; Artaxerxes (was) the son of Xerxes the king; Xerxes (was) the son of Darius (I) the king; Darius was the son of Hystaspes by name.” (E. F. Schmidt, Persepolis I.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3, p. 224.) The absolute chronology of the later Persian kings thought not to have existed is today firmly established by numerous astronomical cuneiform texts extant from this period. In passing, the Watch Tower Society’s application of the 490 years is basically as historically unsound as are those of the others mentioned in this section. The dating of the 20th year of Artaxerxes I to 455 B.C.E. instead of 445 is in direct conflict with a number of historical sources, including several astronomical texts. When, therefore, The Watchtower of July 15, 1994, p. 30, claims that, “Accurate secular history establishes 455 B.C.E. as that year,” this is grossly misleading. (Cf. the similar misstatement in Awake!, June 22, 1995, p. 8.) No secular historian today would date the 20th year of Artaxerxes I to 455 B.C.E. (For a refutation of the idea, se the web essay referred to in footnote 14 on page 82 above.)
6 1931~1940년 동안, 이 발굴자들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구호품, 왕의 무덤, 비문이 페르시아에서 발굴되었다.(에드윈 M. 야마우치의 저서 <페르시아 그리고 성경>.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0년, 368–70면) 왕실 명부에서 이 왕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했다는 사실은 아르탁세르크세스 3세(기원전 358년~337년)의 궁전 벽에 새겨진 비문에서도 드러난다:"왕중의 왕, 나라의 왕, 이 땅의 왕인 대왕 아르탁세르크세스가 말한다; 나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II)의 아들(이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다리우스(II) 왕의 아들(이다); 다리우스(II)는 아르탁세르크세스(I) 왕의 아들(이다); 아르탁세르크세스(I)는 크세르크세스의 아들(이다); 크세르크세스(I) 왕은 다리우스(I)의 아들(이다); 다리우스(I) 왕은 이름이 히스타스페스라는 사람의 아들이다(E.F. Schmidt, 페르세폴리스 1. 시카고: 시카고 대학 출판부, 1953년, 224면). 후기 페르시아 왕들의 절대 연대기는 오늘날 이 시기의 수많은 천문관측의 기록이 담긴 설형문자에 의해 확고하게 확립되었다. 490년에 대한 워치타워 협회의 적용은 기본적으로 이 섹션에서 언급한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불건전하다. 아르탁세르크세스 1세 20년에서 기원전 455년까지의 연대는 여러 천문학적 문헌을 포함한 여러 역사적 자료들과 직접적인 충돌을 빚고 있다. 그러므로 1994년 7월 15일자 파수대, 30면에서 "정확한 세속 역사는 기원전 455년이 그 해임을 알려준다"라는 주장은 매우 그릇되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박을 하려면 82면의 각주 14에 언급된 논문을 참조하라)
7 The seventy years for Tyre at Isaiah 23:15–18 will not be discussed here, as it cannot be proved that they refer to the period of Neo-Babylonian supremacy. Some scholars, in fact, apply it to circa 700–630 B.C.E., when Tyre was controlled by Assyria. See, for example, Dr. Seth Erlandsson, The Burden of Babylon (= Coniectanea Biblica. Old Testament Series 4) (Lund, Sweden: CWK Gleerup, 1970), pp. 97–102.
7 이사야 23장 15절~18절에서 두로의 70년은 여기서 논의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이 신 바빌로니아의 패권시대를 언급한다는 것은 증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학자들은 두로가 아시리아의 지배를 받던 기원전 700~630년 경에 이것을 적용했다. 예를 들어, 세스 에를란드손 박사의 <바빌론의 짐>(= 코넥타네아 비블리카 구약 시리즈4)를 참조하라. (스웨덴 룬드: CWK 글리업, 1970년), 97–102면.
8 The quotation is from The New World Translation (NW), which is based on the Hebrew Masoretic text (MT). The Greek Septuagint version (LXX) says: “and they will serve among the nations,” instead of: “and these nations wil1 have to serve the king of Babylon.” In Jeremiah 25:1–12 of the LXX, for some unknown reason, all references to Babylon and king Nebuchadnezzar are omitted. There are many differences between Jer-MT and Jer-LXX. Jer-LXX is about one-seventh shorter than Jer-MT, which contains 3,097 more words than Jer-LXX. A number of modem scholars hold that Jer-LXX was translated from a Hebrew text that was earlier than the text tradition represented by Jer-MT, arguing that Jer-MT represents a later revision and expansion of the original text, either by Jeremiah himself, his scribe Baruch, or some later editor(s). Thus, with respect to Jeremiah’s prediction that the Babylonian king Nebuchadnezzar would attack and destroy the kingdom of Judah, these scholars often find it difficult to believe that Jeremiah was able to give such concrete and specific forecasts. They find it easier to accept the more general and vague wordings of the Jer-LXX as representing the original prediction, with all references to Babylon and king Nebuchadnezzar being left out. However, some of the scholars who have adopted this view admit that it creates problems. If the origina1 prophecy of Jeremiah 25:1–12, which was given in the fourth year of Jehoiakim and was presented to the king a few months later (Jeremiah 36:1–32), did not contain any references to Babylon and king Nebuchadnezzar, how then could Jehoiakim, after having listened to and burned up the roll with the prophecy, ask Jeremiah: “Why is it that you have written on it, saying: The king of Babylon will come without fail and will certainly bring this land to ruin and cause man and beast to cease from it?’ “ (Jeremiah 36:29, NW) As this same question is found both in Jer-MT and Jer-LXX, the original prophecy must have explicitly mentioned the king of Babylon. Professor Norman K. Gottwald cites this verse and says: “If the prophet had not somewhere in his scroll openly identified Babylon as the invader, the sharp retort of the king is difficult to explain.” (N. K. Gottwald,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New York, Evanston, and London: Harper & Row, Publishers, 1964, p. 251.) This strongly indicates that Jer-MT might very well represent the original text here. It should be kept in mind that LXX is a translation made hundreds of years after the time of Jeremiah from a Hebrew text that is now lost, and, as the editors of Bagster’s The Septuagint Version of the Old Testament point out in the “Introduction,” some of the translators of the LXX were not competent to their task and often inserted their own interpretations and traditions. Most scholars agree with this observation. The Watch Tower Society, too, emphasizes that “the Greek translation of this book [Jeremiah] is defective, but that does not lessen the reliability of the Hebrew text.”— Insight an the Scriptures, Vol. 2, 1988, p. 32. For a thorough defense of the superiority of the MT text of Jeremiah, see Dr. Sven Soderlund, The Greek Text of Jeremiah (=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Supplement Series 47), Sheffield, England: JSOT Press, 1985.
8 이 인용문은 히브리어 마소레틱 본문(MT)을 기반으로 하여 신세계역(NW)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스 70인역(LXX)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나라들이 바빌론 왕을 섬기게 될 것이다."라 말하는 대신: "그리고 그들은 민족들 사이에서 섬기게 될 것이다." LXX의 예레미야 25:1–12 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바빌로니아와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언급이 모두 생략되어 있다. Jer-MT와 Jer-LXX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Jer-LXX는 Jer-LXX보다 단어 수가 3,097개 더 많은 Jer-MT보다 약 7분의 1 정도 짧다. 많은 현대 학자들은 Jer-LXX가 Jer-MT로 대표되는 본문 전통보다 이전 히브리어로 번역되었다고 주장하며, Jer-MT는 예레미아 자신, 그의 서기관인 바룩 또는 일부 후기 편집자가 원문을 수정하고 확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은 유다 왕국을 공격하고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해, 이 학자들은 예레미야가 그러한 구체적이고 구체적인 예언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그들은 바빌론과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언급이 모두 생략된 가운데, Jer-LXX의 보다 일반적이고 모호한 말을 원래의 예언을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가 더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를 채택한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인정한다. 여호야김 4년(예레야 36년~1~32년)에 주어진 예레미야 25:1–12의 원래의 예언(렘 36:1-32)이 왕에게 몇달 뒤에 주어져, 바빌론과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면, 여호야김이 예언을 듣고 그 예언이 담긴 두루마리를 불태운 후에 어떻게 예레미아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었겠는가? "어찌하여 네가 바빌론 왕이 반드시 와서 이 땅을 멸망시키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애 버릴 것이라고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냐?" (예레미야 36:29, NW) 이 같은 질문이 Jer-MT와 Jer- LXX에서 모두 발견되었으므로, 최초의 예언은 바빌로니아의 왕을 분명히 언급했을 것이다. 노먼 K. 고트발드 교수는 이 구절을 인용하며 "만약 예언자가 공개적으로 바빌론을 침략자라고 밝히지 않았다면, 왕의 날카로운 반박은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N. K. 고트발드의 저서 <지상의 모든 왕국> 뉴욕, 에반스턴, 런던: 하퍼 앤 로우, 출판사, 1964년, 251면.) 이것은 Jer-MT가 여기서 원래의 본문을 더 잘 나타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LXX는 예레미야 시대 이후 수백 년 만에 만들어진 번역본으로 지금은 없어진 히브리어로 된 번역본이며, 백스터의 구약성경 9부 편집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LXX의 번역자 중 일부는 자신의 번역 작업에 유능하지 못하고 종종 자신의 내면적 해석과 전통을 삽입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의견에 동의한다. 워치타워 협회도 "이 책의 그리스어 번역본[예레미아]에 결함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히브리어 본문의 신뢰성이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통찰> 2권, 1988년, 32면. Jer-MT 본문의 우수성에 대한 철저한 방어는 스벤 소더룬드 박사, 예레미야의 그리스 본문(= 구약성경, 보충 시리즈 47 연구를 위한 저널), 영국 셰필드: JSOT 출판, 1985년을 참조하라.
9 As the attention was drawn to this heading in the original version of the present work (sent to the Watchtower headquarters in 1977), and also in the published edition of 1983, it was no surprise to find that it had been changed in the 1984 large-print edition of NW. The heading (p. 965) now reads: “70 years’ exile due.”
9 이 제목은 본작의 원판(1977년 워치타워 본부로 보내짐)과 1983년 발행본에서도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1984년 NW 대형-인쇄판에서도 바뀐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제 표제(965면)는 다음과 같습니다. "70년간의 유배"
10 The Hebrew word for “desolation,” chorbáh is also used in verse 18, where Jerusalem and the cities of Judah are stated to become “a desolation (chorbáh), . . . as it is today.” As Dr. J. A. Thompson remarks, “The phrase as it is today suggests that at the time of writing some aspects of this judgment, at 1east, were apparent.” (The Book of Jeremiah, Grand Rapids: Eerdmans, 1980, p. 516) The prophecy was uttered and written down in the fourth year of Jehoiakim . . . that is, the first year of Nebuchadnezzar.” (Jer. 25:1; 36:1–4) But as that scroll was burned by Jehoiakim some months later, in the ninth month of his fifth year (36:9–25), another scroll had to be written. (36:32) At that time Nebuchadnezzar’s armies had already invaded and ravaged the land of Judah. At the time of writing, therefore, the phrase “as it is today” was probably added as a result of this desolation. That the word chorbáh does not necessarily imply a state of total desolation “without an inhabitant” can be seen from other texts which use the word, for example Ezekiel 33:24, 27 (”the inhabitants of these devastated places”) and at Nehemiah 2:17. During Nehemiah’s time Jerusalem was inhabited, yet the city is said to be “devastated (chorbáh).” The phrase “desolate waste, without an inhabitant” is found at Jeremiah 9:11 and 34:22. Although it refers to Jerusalem and the cities of Judah it is nowhere equated with the period of seventy years. As pointed out by Professor Arthur Jeffrey in the Interpreter’s Bible (Vol. 6, p. 485), chorbáh is ‘often employed to describe the state of a devastated land after the armies of an enemy have passed (Leviticus 26:31, 33; Isaiah 49:19; Jeremiah 44:22; Ezekiel 36:34; Malachi 1:4; 1 Maccabees 1:39).” It would not be inaccurate, therefore, to talk of Judah as chorbáh eighteen years prior to its depopulation, if the land had been ravaged by the army of an enemy at that time. Inscriptions from Assyria and Babylonia show that, in order to break the power and morale of a rebel quickly, the imperial army would try to ruin the economic potential “by destroying unfortified settlements, cutting down plantations and devastating fields” — Israel Eph’al, “On Warfare and Military Control in the Ancient Near Eastern Empires,” in H. Tadmor & M. Weinfield (eds.), History, Historiography and 1nterpretatian (Jerusalem: The Magnes Press, 1984), p. 97.
10 "황폐"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chorbáh초르바"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도시들이 "오늘날처럼 황폐" 되었다고 언급되는 18절에도 사용된다. J. A. 톰슨 박사의 말처럼 "오늘날과 같은 이 문구는 적어도 이러한 심판이 가져온 양상을 기록했을 때, 분명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예레미아서, Grand Rapids: Eerdmans, 1980, p. 516) 예언은 여호야김 4년, 즉 느부갓네살 원년에 쓰여졌다." (렘 25:1; 36:1–4) 그러나 몇 달 후 여호야김이 그 두루마리를 불태웠기 때문에 여호야김 5년 9월에(36:9–25) 또 다른 두루마리에 기록되었다.(36:32) 그때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이미 유다 땅을 침략하여 황폐화하였다. 그러므로 글이 기록될 때, "지금 이대로"라는 문구가 아마도 이러한 황폐함의 결과로 추가되었을 것이다. 초르바라는 단어가 반드시 "주민 없는" 완전한 황량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에스겔 33:24, 27 (이 황폐한 장소의 거민들")과 느헤미야 2:17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다른 문헌에서 볼 수 있다. 느헤미야 시대에는 예루살렘에 사람이 살았지만, 예루살렘은 "황폐화(초르바)"되었다고 말해진다. "거민 없는 황폐한 폐허"라는 구절은 예레미야 9장 11절과 34장 22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을 가리켜 칠십 년이라는 세월이 어디에도 적용되지 못한다. 해석 성경 (6권, 485면)에서 아서 제프리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초르바는 적의 군대가 지나간 후 황폐한 땅의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종종 사용된다. (레위기 26:31, 33; 이사야 49:22; 예레미야 44:34; 말라기 1:4 마카베 전서 1:39) 그러므로 만약 유다가 그 당시 적의 군대에 의해 황폐화되었다면, 유다가 인구 감소 18년 전에 초르바라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비문에 따르면, 반군의 권력과 사기를 빨리 꺾기 위해, 제국군은 "불운한 정착지를 파괴하고, 농장을 파괴하고, 들판을 황폐화시킴으로써" 경제적 잠재력을 없애려 할 것이라고 한다.ㅡ H. Tadmor & M. Weinfield, 역사, 역사기록학 및 해석학(예루살렘: Magnes 출판, 1984년), 97면.
11 As brought out by any Hebrew dictionary , the Hebrew verb ‘abad, “work, serve,” could also mean to serve as a subject or vassal, e.g. by paying tribute. The corresponding noun ‘ebed, “slave, servant,” is often used of vassal states or tributary nations. In fact, the technical term for “vassal” in Hebrew was precisely ‘ebed. —See Dr. Jonas C. Greenfield, “Some aspects of Treaty Terminology in the Bible,” Fourth World Congress of Jewish Studies: Papers, Vol. I, 1967, pp. 117–119; also Dr. Ziony Zevit, “The Use of ‘ebed as a Diplomatic Term in Jeremiah,”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Vol. 88, 1969, pp. 74–77.
11 히브리어 사전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히브리어 동사 일하다, 섬기다라는 의미의 'abad'는 예를 들어 조공을 바침으로써 식민지나 신하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명사 '노예, 하인'은 종종 속국이나 지류 국가들에 사용된다. 사실, 히브리어로 "바살"을 뜻하는 전문 용어는 정확히 '에베드(ebed)'였다. —조나스 C 그린필드 박사의, "성경에서 조약을 의미하는 일부 용어"를 참조하라, 제4차 세계 유대인학대회: 논문, 제1권, 1967년, 117–119면; 또한 닥터 시오니 제빗, "예레미야의 외교 용어로서 에베드의 사용", 성서관련 문헌, 제88권, 1969년, 74-77면.
12 The difference is noted by Dr. John Hill in his analysis of Jeremiah 25:10, 11: “In vv. 10–11 there is a twofold elaboration of the punishment announced in v. 9. The first part of the elaboration is in vv. 10–11a, which refers to the subjugation and devastation of Judah. The second part is in v. 11b which refers to the subjugation of Judah’s neighbours. Vv. 10–11 then distinguishes the fate of Judah from that of its neighbours, which is that of subjugation. Judah’s fate is to suffer the devastation of its land.”—J. Hill, Friend or Foe? The Figure of Babylon in the Book of Jeremiah MT (Brill:Leiden etc., 1999, p. 110, note 42.
12 존 힐 박사는 예레미아 25:10, 11을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차이를 지적한다. "10-11절에 9절에 발표된 벌에 대한 두 가지 자세한 설명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유다의 정복과 황폐화를 가리키는 10-11a 에 있다. 두 번째 부분은 유다의 이웃들을 정복을 가리키는 11b절이다. 유다의 운명을 이웃 국가의 운명과 구별한다. 유다의 운명은 유다의 땅이 황폐해지는 것이다."—J. 힐의 <친구냐 적이냐?> 예레미야 MT에 나오는 바빌론의 인물(브릴:레이든 등, 1999년, 110 면, 주석 42.
13 Other nations, too, who refused to accept the Babylonian yoke, were desolated, and captives were brought to Babylon. For example, one of the Philistine city-states, probably Ashkelon (the name is only partly legible), was “plundered and sacked” and “turned . . . into a ruin heap,” according to the Babylonian Chronicle (B. M. 21946). This destruction, predicted by Jeremiah at Jeremiah 47:5–7, took place in the month Kislimu (9th month) of the first year of Nebuchadnezzar according to the chronicle, that is, in November, or December, 604 B.C.E. (A. K. Grayson, Assyrian and Babylonian Chronicles, Locust Valley, N.Y.: J.J. Augustin Publisher, 1975, p. 100.) That Ashkelon was mined is now confirmed by excavations. In 1992, Lawrence E. Stager uncovered at Ashkelon the archaeological evidence for this Babylonian destruction.— See L. E. Stager, “The Fury of Babylon: Ashkelon and the Archaeology of Destruction,” Biblical Archaeology Review, Vol. 22:1 (1996), pp. 56–69, 76–77.
13 다른 나라들 역시 바빌로니아의 멍에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고, 포로가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 예를 들어, 바빌로니아 연대기에 따르면, 팔레스틴의 도시국가들 중 하나인 아슈켈론은 아마도 침략과 약탈을 당했고 "...을 폐허 더미로 만들었다"고 한다.(B. M. 21946) 예레미야에서 47:5–7로 예언된 이 파괴는 기원전 604년 11월이나 12월, 느부갓네살 원년 키슬리무 월(9월)에 일어났다. (A. K. 그레이슨의 <아시리아와 바빌론 연대기>, 메뚜기 골짜기, N.Y.: J.J. 오거스틴 출판사, 1975년, 100면.) 아슈켈론이 발견된 것은 발굴 작업으로 확인되었다. 1992년, 로렌스 E. 스테이저는 아슈켈론에서 바빌로니아 멸망의 고고학적 증거를 발견했다.L. E. 스태거의 저서, <바빌론의 분노: 아슈켈론과 파괴의 고고학> 성서 고고학 재고, 제22:1권, 56-69, 76-77면.
|
첫댓글 오늘 본문의 내용의 요점은 섬김과 유배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만일 유다가 바벨론을 섬기기로 했다면 그들은 70년간 봉건국가가 될 것이었으나 대항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황폐되었고 거민들이 유배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요지는 예레미아의 70년이란유배나 예루살렘의 황폐와는 무관하게 봉건국가의 70년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과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참고사항: 워치타워 협회는 예레미아 25:1절의 여호야김 4년을 유다 왕으로서의 재위 4년으로 보지 않고 바벨론에 예속된지 4년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그때, 여호야김은 바빌론이 아니라 이집트 파라오 느고에게 예속된 왕이었기 때문이다. 여호야김의 유다 통치 제4년에 비로소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에서 거둔 승리로 시리아·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집트의 지배권을 분쇄하였다. (렘 46:2) 여호야김이 바빌론에 반역했다가 몰락한 일이 일어난 때는 그가 왕좌에 앉은 지 약 11년이 된 이후였으므로, 그가 바빌론에 예속된 왕이었던 3년 기간은 그의 통치 제8년 말 무렵에 시작되었음에 틀림없다.(성경 통찰, 제2권 251면)
따라서 예레미아 25:1의 재위3년이란 결국 그의 통치 말기이며 이때 바빌론의 공격을 받아 1차 포로(다니엘 등)가 유배되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짧은 통치(3개월)를 하다가 바빌론으로 유배되어 비교적 안락한 생활을 하며 고국을 잊고 살았다. 여호야긴의 삼촌 시드기야가 왕위를 계승하여 바빌론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11년만에 그는 바빌론에 포로가되어 두눈을 뽑혔으며 예루살렘은 멸망되어 황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