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참치김밥 한줄을 사서 놀이터에 갔다. 내일까지 제출해야할 그림과제가 하나 있는데 집으로 가면 침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할 듯 하고, 카페로 가기는 괜히 돈이 아까울 때 나는 종종 놀이터를 향했다.
종종 그림작업을 하러 놀이터에 간다. 아무튼 놀이터는 어린이들의 전유물이기에, 나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을 구석자리로 향한다. 이 좋은 공간을 당당히 점유하며 입장할 수 있는 어린이들을 아주 약간 질투하며.
그 때 마침 서너명의 어린이들이 입장한다. 노랗고 둥그런 꽃 모양이 귀엽게 와다다 박힌 원피스, 파랑과 하양이 섞인 들풀 무늬 양말, 다홍빛의 작은 장화, 영국의 우유 배달부가 입을 법한 체크무늬 반바지. 다들 탐나는 아이템을 하나씩 장착하고 있다. 어째서 저런 옷들을 더 커다란 버전으로는 팔아주지 않는 거지? 몸체가 너무 커져버린 몸을 원망하거나 그들의 명랑하고 경쾌한 옷차림을 질투하며 그림 그릴 준비를 한다.
이번 그림의 주제에 참고가 될 비평문의 서문을 거의 다 읽을 때 즈음 까르륵 소리가 난다.오후 3시의 낮잠같은 웃음 소리다. 비평문의 문장과 문장 사이를 옭아매는 복잡함을 사뿐히 이겨버리는 단순함. '의미'와 '무의미'를 고민하지 않으며 의미있거나 무의미 한 일들의 사이를 마구 횡단하는 그들의 걸음에 세번째 질투를 느낀다. 물론 미간이 찌푸려지는 질투가 아닌 웃음이 실실 나오는 기분좋은 질투이다.
그렇게 부지런히 그 작은 존재들을 구경하느라 , 작은 존재들이 하는 커다란 몸짓들을 부지런히 질투하느라, 작업을 하는 손은 게을러진다. 그렇게 눈과 귀의 반절은 어린이들의 세계에 내어주며 게으른 손으로 작업을 하고 있으니, 저쪽 세계에서 갑자기 내전이 일어난다. 어린이들의 전투다.
그들의 전투에 기승전결은 없다. 서사도 맥락도 없다. 쿵푸팬더의 전투 준비동작을 따라하는 짧은 팔다리가 빳빳하게 앞으로가고, "싸우자~!" 외마디 함성이 놀이터에 퍼진다. 그 한마디로 까르륵 웃음소리에서 싸움의 현장으로 놀이터의 분위기가 전환된다. 씩씩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휴전을 하고 작전을 짜는 소리도 들린다. 커다란 귓속말로 작전을 짠 뒤 다시 놀이터 미끄럼틀 쪽에서 2차전이 시작된다. 팽팽하다. 계속해서 맞서 싸우기만 하는가 싶더니 다홍빛 장화를 신은 아이가 도망친다. 짧고 빠른 보폭이 내쪽을 향한다 .
작은 손가락 검지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의 표시를 보내는 아이.
"숨겨줄까?"
어린이와 조우하는 순간이다.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작은 몸을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내 몸 뒤에 납작 엎드린다. 어째서 그들은 까르륵 웃는 놀이를 이어가지 않고 이렇게 도망치고 싶은 전투를 자처하는지 궁금해진다.
"근데 있지.. 왜 싸우는거야?"
"응?이기려고"
고민 없는 대답이 그답게 명쾌하다.
아, 이기려고. 이기려고 싸우는거구나.
다홍빛 장화를 고쳐신고 다시 이기기 위해 뛰쳐나가는 뒷태를 보며, 나는 그가 던져두고간 단순함에 또 순식간에 복잡해져버린다.
처음에는 '그렇지, 어린이의 세계가 아닌 또다른 무수히 많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싸움들도 대개 이기기 위해서 시작되기는 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 그 단순함이 관통해버린 싸움의 본질에 감탄한다. 그러다가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함이 첨가된 예외사항들이 생각나버린다.
이를테면 5월의 놀이터보다 더 강한 빛이 내리쬐는 8월의 시청광장 앞. 그날 시청광장에 모인 어른들의 차림은 어린이들 못지 않게 재미나고 탐스럽다. 색을 누군가에게 다 빼앗긴듯 마냥 무채색을 즐겨입던 이들도 이날만큼은 무지개 빛깔의 차림으로 등장한다. 페이스페인팅을 크고 작게 그려넣은 얼굴들에는 평소보다 맑은 웃음이 보인다. 그또한 어린이들을 질투할 필요 없는 마냥 맑은 웃음이다. 코로나로 2년간 잠시 비대면으로 대체했지만, 이전까지는 매해 여름 시청광장 앞에서 열리던 퀴어퍼레이드의 장면이다. 광장에서 북적이는 축제가 한 차례 진행된 뒤, 사람들은 음악이 빵빵하게 울리는 트럭을 따라 서울시내를 한바퀴 따라돈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다가 눈을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끼리도 그냥 웃는다.
이 모든 장면이 너무 빛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단연 최고로 꼽는 장면이 있다. 무더위속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한바퀴 행진을 끝내고 다시 시청광장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에는 북을 치고 콘돔을 나눠주며 행진 끝물의 흥을 돋구는 조계사 스님들도 있지만, 스피커를 틀어놓고 동성애는 죄악이라며 야유를 보내거나 눈물을 흘리며 고칠수 있는 병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상대편에 똑같이 야유를 보내며 맞설만한 상황이기도 하거니와 우리쪽의 행진에서는 야유소리를 찾아볼 수 없다. 도리어 한사람도 빠짐없이 웃음을 얼굴에서 거두지 않고 그쪽을 향해 박수를 보낸다. 축제의 축복 어린 함성도 보낸다.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싸우지 않고도 훌쩍 이겨버리는 기분. 있는 힘을 다해 맞설줄 알지만, 때로는 싸움 없이 이기는 법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는 그 기분을 잊지 못한다. 놀이터와는 또다른 맑음이다. 한 시절 이전에 놀이터에서 수도없이 전투놀이를 펼쳤을 이들이 청소년이되고 성년이 되었다. 그들이 이제는 놀이가 아닌 전투를 펼치는 와중에 그 긴 팔다리로 보내는 박수소리와 함성소리가 너무도 우아하다.
이렇게 싸우지 않고 이기는 싸움도 있는 한편, 이기지 않고 싸우는 싸움도 있다. 나의 가까운 동료 아름의 싸움이 그렇다. 그녀는 내게 싸우는 법을 가르친 사람이기도 하다. 열일곱살 무렵 아름은 내게 서운한 일이 있다고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덜컥 나의 행동들이 부끄러워져 나는 눈물을 훔치며 장문의 사과 문자를 보냈다. 그러곤 얼마후 조금은 어색해진 채로 친구들 사이에 끼어서 만난 우리는 안녕, 인사를 했다. 아름은 조금 쭈뼛거리더니 투정 섞인 호통으로 치며 나를 혼냈다.
"하므! 너는 왜 사과만 해! 나도 잘못했잖아. 내가 아무리 화났다고 해도 그런 말들로 너한테 화를 내면 안되는거잖아. 그럼 너도 그것에는 화를 내야지"
아름은 미안하다고 했다. 날 따끔거리게 만든 언어로 화를 내서. 그리고 자신이 분노하는 바람에 실수로 쏟아낸 그런 언어들에 나 또한 화를 냈어야 했다고 되짚어주었다. 화를 참는 법이나 사과하는 법은 어른들에게 많이 배웠지만,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화내는 법을 배웠다. 고이지 않고 꺼내는 법을 배웠다.
그 일 이후로 이 우정에 "싸우지 말고 오래보자"라는 말은 통용되지 않았다.
우리는 대신 "잘 싸우고 오래보자"라고 말하기로 했다. 그렇게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속을 위해서 기꺼이 힘을 쓰는 싸움으로 우정을 직조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다치지 않기 위해 하는 싸움도 있다. 지키기 위해 이어지기 위해 하는 싸움이기도 하다. N번 방에 대한 분노와 싸움이 그랬다. n번방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지던 날은 아름이와 그녀의 쌍둥이 다운이의 열여덟 생일날이었다. 몸을 어찌할바를 모를 만큼 분노가 차오르는 한편에 그날 하루 만큼은 다른 종류의 마음을 한방울도 섞지 않고 순도 높은 축복의 마음으로 쌍둥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건 쌍둥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밴드를 보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노래를 부르고 생일초를 부는 와중에, 틈틈이 상기되는 분노에 열을 냈다. 마음의 온도가 이편에서 저편으로 기울어지느라 진이 빠졌던 이상한 날에 열여덟의 나는 쌍둥이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그 서투른 언어를 일부 공개한다.
"어제는 정말이지 이상한 날이었어. 그리고 아마 오늘도 내일도 그럴 것 같아. 사랑이 넘쳐 넘실넘실 춤을 추는데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그러다가도 다시 사랑이, 그러다가도 다시 분노가. 끝도없이 교차하는 그런 이상한 날. 하필 이 좋은 생일날에 분노의 마음이 사랑의 마음을 방해하는 것 같아 괘씸하고 짜증이 났지만 한편에는 절대 뒤로 미룰 수 없는 분노이잖아. 혼란스러운 가운데 문득 아, 너무 사랑해서 그렇구나 싶었어.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도 사랑하기 때문이니까.
내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너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냥 우리를 좀 사랑하게 내버려두라고 분노하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억울하고 괘씸하게 느껴졌던 분노의 마음들이 소중해졌어. 결국 사랑과 다를게 없어. 온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가도 다시 일어서게하고, 목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고, 그 목소리들이 연결되게 하는 분노니까. 분노라는 이름의 사랑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마터면 분노에 가득차서 무기력하게 두 손발을 다 들 뻔했는데 다시 마음을 다 잡았지 . ..."
다시 읽어보니 온도가 높아 '아뜨뜨' 하며 데일 것 같은 편지이다. 그때는 그랬으니까.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의 온도는 높을 수 밖에 없는 법이니까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어린이의 세계를 벗어난 뒤에 더욱 복잡하지만 여전히 명랑하고 또 다정하기까지 한 마음으로 싸우는 우리들이다. 그런 우리는 어린이들만큼이나 멋지다는 생각을 하며, 어린이들에 대한 질투에서 약간 빠져나와 다시 놀이터로 시선을 돌렸다.
놀이터에서는 한참 싸움이 끝난뒤 터프한 동시에 상냥한 포옹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망할 다시보니 그들의 싸움도 정말 끝장나게 멋지다. 이기기 위해 싸운다는 단순한 생각 아래, 서로를 '진짜로' 미워하지는 않으며 다만 모두가 진심이 되어 싸우고, 그렇게 한참을 재밌다가 집에 갈 시간이 되면 다정히 포옹 인사를 한다. 겁도 없이 처음보는 친구에게 '사랑해!'라며 사랑인사도 한다. '아직 안 끝났어! 내일은 다 무찔러줄거야! ' 라는 지속의 인사도. 싸움을 가지고 놀고, 휴전을 하며 사랑하고, 내일을 약속하며 지속을 하는 그들만의 놀이터 법칙이 너무 멋있어서 들어갔던 질투가 슬금슬금 다시 기어나온다.
그래 내일 다 무찌르다말고 또 모레에 만나서 무찔러. 누가 이기나 몰라도, 화이팅. 어쩌면 놀이터에서는 모두가 모두를 무찌르고 모두가 모두를 이길지도. 아무튼 그런 사람들이 커서 아주 멋지고 복잡한 싸움들을 지속할지도.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