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단톡방에 실린 글입니다.)
오늘은 영화 <기적의 시작> 관람을 위해
동수원 CGV에 갔다가
그곳에서 전도했습니다.
갑자기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상영 1시간여 전에
개봉 소식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번 <건국전쟁> 관람 후기도 써서
페이스북과 60여 개의 단톡방
35,000여 명을 대상으로
포스팅(posting)을 했는데요.
이번에도 은근한 사명감으로
급히 달려간 것 같습니다.
영화관 남녀 직원 두 명을 전도했습니다.
영화의 제목이 <기적의 시작>인데
제가 췌장암에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했다고요.
그랬더니 남자 직원이 저를 향해
기적의 주인공이라고 하더군요.
죽음을 앞두었을 때
세상의 모든 것이 필요없었다고 하며
예수 믿어 천국에 가시라고 했습니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 남학생
네명을 전도했습니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걸자
얼굴 표정이 굳어졌지만
제가 치유 간증을 할 때
이내 부드러워져서
창조주 예수님에 관한 내용과
천국 복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연인 관계로 보이는
두 남녀를 전도했습니다.
짪은 시간이라서 짧게 복음을 전했는데
큰 소리를 내며 감동하는 가운데
흡인력 있게 받아서 매우 기뻤습니다.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서
여러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집단 전도를 했습니다.
제가 치유 기적의 주인공이라고요.
영화의 특성상 기독교인들이 많았겠지요.
그러나 모든 분이 제 말에
귀를 기울여주셨습니다.
어느 장로님은 평소에 제 전도 후기를
보신다며 알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언젠가 저와 전도까지 하고 싶으시답니다.
그렇게 하자고 했죠.
모든 분에게 전도 명함까지 나눠드리면서
제가 출연한 방송 영상을 보시라고 했습니다.
관심을 많이 가지시더군요.
그런데 오늘 기독교인들이 모여 있는
우파 정치 단톡방 한 곳에서
왜 전도 글을 자꾸 올리느냐는
항의성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굳이 전도할 것 없다고요.
제 마음이 무너지더군요.
사실 정치보다 중요한 게 복음 전파인데요.
불신자들도 전도를 잘 받는데
신자들이 전도 글을 부담스러워 하거나
싫어하면 되겠습니까?
전도가 낯선 한국 교회의 실상을 보는 것 같아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이 어려운 작업을
사명때문에 감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전도에 관한 글은
무엇보다 반복해서 보며
자극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도 후기를 읽는 분들로부터
좋은 답글도 많이 옵니다.
어제 개봉한 <기적의 시작> 영화를
보러간 이유는 나라를 사랑하는 제 마음이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군인에게는 휴가를 가는 것이
가장 절실하지요.
죄송하지만 저는 군복무를 할 때
첫 휴가를 13개월만에 나왔고
말년 휴가는 아예 국방부에 반납하며
군생활을 했습니다.
아마 휴가마저 안 간 병사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기적의 시작> 관람자 평점은
8.9로 나오더군요.
<건국전쟁>도 잘 되었지만
<기적의 시작>도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들이 영화가 끝났는데도
한참이나 제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실제로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했던 사람들이나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체험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희귀 자료도 많이 볼 수 있었고요.
<건국전쟁>과 지향점은 같으나
새로운 방식으로 전개되는 영화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 나라가
미국이나 영국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기독교에 뿌리를 둬야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한국 전쟁의 격랑속에서
구국 일념으로 미국의 힘을 끌어냈던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30년을 거주하면서도
결코 우리 나라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이 되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당시 다른 사람들은
미국 국적을 많이 취득했다고 하더군요.
집권을 한 후에는 원자력 발전소와
제철소를 세워 경제 부흥을 꾀했습니다.
토지 개혁과 교육 개혁도 과감히 단행했고요.
많은 이가 3.15 부정 선거를 문제 삼는데
이승만은 이미 상대 후보의 사망으로
단독 후보가 되어
자동적으로 대통령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아랫 사람들이
자유당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려고
부정 선거를 저지르게 된 거죠.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2일이나 되어서야
이 사실을 알고 서울대 병원에 입원한
부상 학생들을 찾아가 통탄하며
자기가 죽었어야 하는데 학생들이 죽었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는 즉시 라디오 방송으로 국민이 원한다면
자신은 하야를 하겠고
재 선거를 치르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와이에 망명을 해서는
곧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발비조차도 아껴 저축을 하고
값싼 바나나를 질리도록 많이 먹으며
검소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분이 김치찌개와 동태국을
잡수시고 싶어했는데
드릴 수가 없어서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대신 노래로 불러주었다는군요.
그는 조국에서 죽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고
하와이에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자기는 우리 민족을 위해 할 일이 없으니
하나님께서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답니다.
자기 발로 걸어서 백두산까지 가는 게
꿈이었다면서요.
양아들이었던 이인수 씨의 증언입니다.
제 긴 문장의 전도 보고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총 가운데 평안하십시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