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수성못 산책길을 걷다보면 서로 부둥켜 안은 모습이 다정한 부부를 연상케 하는 단풍연리지가 있다. 연리지(연리목)는 처음 날 때에 뿌리가 다른 두줄기였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상처가 난 줄기가 아물며 하나가 되어 자라게 된 나무를 말한다. 수성못 연리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부부사랑을 다짐하기도 한다. 우리 부부도 크고작은 상처가 아물면서 내부조직이 단단해지는 한그루의 연리지처럼 살아간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신발을 챙겨주는 다정한 모습이 좋았다. 집안일을 도우는 손길이 마음에 들었다. 식탁에 마주앉아 ‘여지껏 30여년을 어머니 손맛에 길들여져 있었으니 지금 내가 한 음식이 맛이 없더라도 30여년 후면 당신 입맛에 딱 맞을테니 그 때까지 참고 지내요.’ 그러기로 했다. 식성이 좋아 뭐든 잘 먹었다. 설겆이 하기 쉬우라고 남기는 음식도 없었다. 함께 밤새워 이야기할 때도 잘 들어주었다. 매사에 무던한 남편이 질그릇처럼 천천히 데워져 서서히 식을 줄 아는 단단함이 좋았다. 바쁘게 살다보니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하고 불평이 없었다. 어느 순간 부터 할 말만 하고 다정한 말 한 번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둘이서 지내는 시간이 어색할 정도였다. 감정표현에 서툰 탓에 예민해진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지도 못했다. 마당에 잔디를 심고 꽃과 나무를 기르며 잔손이 많이 가던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하자 남편은 생활 태도가 바뀌었다. 장거리 통근 탓이기도 했지만 집안 일은 내 몰라라였다. 도움을 바라는 일에도 남편은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별일 없다는 듯 일상을 이어가곤 했다. 남편과 아내는 아버지와 어머니와는 엄연히 다른데도 나는 남편에게서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고, 남편은 내게 어머니를 바라고 있는 듯 했다. 한동안 그런 남편을 마마보이라고 생각하고 서운해 한 적이 많았다.
오래 전에 덕유산을 찾은 적이 있었다. 입구에서 만난 노부부가 두 손을 잡고 서로 의지하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다정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정답게 산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내게도 기회가 되어 남편과 함께 갔지만 동상이몽이었다. 남편은 저만치 혼자서 성큼 성큼가고 나는 뒤따라 가기 바빴다. 말없이 산을 오르내리던 남편은 단련된 산행으로 속도가 빨랐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인 양 앞만 보고 걷는 것이다. 헉헉거리며 따라갔지만 부부간에 그렇게도 할 말이 없을 줄은 몰랐다. 결국 남편은 근육파열로 한동안 고생을 한 후 산행을 꺼렸다. 가까운 산길을 오가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는 산길이지만 언제나 나를 반겨준다. 남편과 다투고 토라진 마음에 혼자 산행을 하다 보면 저절로 묵언수행을 하게 된다. 흐르는 계곡물이 산속이야기를 들려주며 길동무가 되기도 한다. 건강한 노후를 꿈꾸며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탁구라켓을 사주며 함께 탁구를 하자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따라나섰다. 탁구장은 꽃샘추위로 옷깃을 여미는 삼월에도 추위는 아랑곳없이 탁구를 즐기며 땀흘리는 활기찬 모습이었다. 대부분 육‧ 칠십 대 은퇴하신 분들이지만 팔십 대 회원들도 있었다. 서먹함도 잠시 탁구회원들은 반갑다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남편 덕분이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부딪히는 일도 많아졌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정리 정돈이 안 되거나 빨래나 설거지를 미루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퇴직 첫날부터 자유의 갈망은 무산되고 전업주부의 새로운 일이 전개되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아 불편했다. 남편은 네비게이션이 있어도 본인의 경험치를 우선으로 하는 반면 나는 아는 길도 물어 가는 것이 좋다면서 네비게이션 안내를 따르는 편이다. 서로 다른 생각으로 투닥거리다 보면 목적지가 눈앞에 와 있다. 오랫동안 서로에게 고마움을 잊고 살았다. 그동안 서로 다름에도 나를 탓하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묵묵히 내 옆을 지키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길 도우미는 없다. 미로 같은 인생길이 생각대로 되지 않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종착역을 찾아가는 것이다. 살아갈수록 깊어지는 사랑을 믿으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리라 다짐한다.
저녁 미사를 다녀온 남편이 ‘오늘이 빼빼로데이’라고 빼빼로 과자를 내민다. 저절로 웃음이 난다. 달력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둔 덕분에 사소한 고마움과 즐거움을 느낀다.
연리지 단풍나무가 물들었듯이 희끗해진 머리에 처진 어깨를 다독이며 등 긁어 주는 당신이 있어 참 좋다.
첫댓글 부부는 때로는 같다가 때로는 다르기도 합니다. 서로서로 이해하면서 사는 것이 부부같습니다. 글을 조금만 다듬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