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의 추억
2025. 7. 21.
한여름이다. 올해 우리지역은 유월에 장마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7월 초에 이미 장마가 끝났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주에는 비구름이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을 오르내리면서 집중적으로 폭우를 쏟아붓고 있다. 끝날 것 같았던 장마가 되돌아와서 장맛비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인 장마는 7월 말에 끝난다. 그리고 칠월 말 팔월 초는 무더운 날씨이고, 대부분의 피서는 이 시기에 집중해서 이루어진다. 이 시기가 되면, 젊음의 피가 끓던 시골 친구들과 함께했던 이기적이고 쓴웃음이 나오는 피서가 생각난다.
시골 마을의 친구 다섯 명이 모였다. 도회지의 아이들은 더운 여름이 오면 피서하러 가는데 우리는 “시골에서 부모님 일이나 도우면서 인생을 살 수가 없지 않냐?” “우리도 한번 떠나자.”라는 말이 오갔다.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당시에 송창식 가수가 불렀던 ‘고래 사냥’ 노랫말처럼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를 외치며 피서를 떠났다.
해수욕장에서는 형형색색의 파라솔이 펼쳐져 있었다. 고향의 산골짜기와는 달리 시원하게 펼쳐지는 해변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경쟁하듯이 바다 수영을 하며 놀았다. 해수욕장에서 10m 즈음 헤엄쳐 나가면 수면 50~60센티 아래에 발을 디딜 수 있는 수중 암초가 있었다. 나는 선발대로 들어가 봤다. 거기에는 수많은 조개류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나는 텐트로 와서 쇠꼬챙이와 커다란 비닐봉지를 가지고 친구 한 명과 같이 다시 들어갔다. 우리는 열심히 작업하여 홍합 조개를 한 봉지 가득 채취하여 개선장군처럼 들고 텐트로 왔다. 우리는 승리감에 도취하여 조개를 씻어서 바로 삶았다. 그런데 그 홍합에는 모래가 들어있어서 조개 알을 전혀 먹을 수가 없었다. 홍합은 모래밭이 아니라 바위에서 채취했으니 모래가 들어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충분히 해감한 뒤에 삶아야 하는 것을 몰라서 생긴 일이었다.
그렇게 마음껏 싸돌아다니고 있을 때 갑자기 공습경보가 울렸다. “훈련 공습경보가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 “인천 지역에 미그기의 공습이 진행 중입니다.” “지금은 훈련 공습경보가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라는 방송이 해수욕장 전체에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그날은 8월 7일이어서 매월 15일에 하던 ‘민방공 훈련’을 하는 날이 아니었다. 훈련을 갑자기 하는가 하고 생각하다가도 뭔가 이상했다. 대부분 사람은 “무슨 소리 하느냐?” 하며 무시하고 있었다. “이 해변 모래사장에서 대피하라고 하면 어디로 가야 하나?”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아니면 모래 속으로 들어가냐?” 하면서 웃기도 했다. 일단은 모여서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곧 실제 공급경보는 해제되었다. 뒷날 중국 미그21 훈련기 조종사였던 손천근 씨가 미그21기를 몰고 귀순한 것임을 알았다. 실제 공습을 하고 있다고 대피 방송을 알리던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공습하지 않았는데도 공습 중이라고 했으니 ‘늑대소년의 공식적인 외침’이었다.
다음날은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으로 갔다. 그 해수욕장은 수도권 피서객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날씬한 아가씨들이 비키니수영복 차림으로 주변 상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정상적인 길거리 모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 ‘수영복 워킹’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아가씨들이 많이 다니는 지역만 골라서 다녔다.
그 지역 모퉁이에는 ‘펀치볼’이 보였다. 누군가 제안을 해서 다섯 명의 펀치 파워 대결을 하기로 했다. 나는 파워를 보여주고 싶었다. 내 차례가 되어서 젖먹은 힘까지 쏟아부어 최대 속도로 펀치를 때렸다. 숫자가 계기판에 나타났다. 나는 다섯 명 중에 일등을 했다. 경쟁에서 이겼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오른쪽 새끼손가락 관절이 움씬 걸렸다. 자세히 보니 부어있었다. 펀치볼을 정면으로 때려야 하는데 욕심이 지나쳐 열한 시 방향으로 휘둘러서 새끼 손가락뼈가 부러진 것이었다. 아프다는 소리조차 할 수 없었다.
그날 밤에는 비가 왔다. 우리는 사팔뜨기 눈을 뜨고 우리 나이 또래의 여학생을 찾는 수색대원이 되었다. 곧 우리의 의도를 충족하는 다섯 명의 여학생 무리를 발견하고 가까이에 텐트를 쳤다. 비가 와서 여학생들 텐트 치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나는 순진하게도 텐트치기가 끝나면 그룹미팅 방식처럼 소지품을 꺼내서 파트너를 정하면 될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친구 중 눈치가 빠른 두 명이 재빨리 나서서 제일 예쁜 여학생 두 명을 전광석화처럼 지명하면서 “나는 00으로 정했다. 그러니 각자가 알아서 파트너를 정해라”라며 선수를 쳤다. 나는 "반칙이다." 하고 이의를 제기하려고 했으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머지 세 명은 예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을 정도의 여학생이라서 주저하고 있었다. 그사이 우리 선수 두 명은 우리 텐트 두개를 하나씩 차지하면서 일대 일 데이트를 했다. 그러자 나머지 세 명은 갈 곳이 없었다. 여학생 세명이 두개의 텐트를 차지하고 있어서 “비를 피하게 좀 들어가도록 하자”라며 간청했다. 하지만 처음보는 남자아이들을 경계해서 그런지 “절대로 안 된다.”라는 차가운 대답만 돌아왔다. 우리 대표 두 명은 텐트 속에서 달콤한 설렘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세 명은 나무 밑에서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이게 무슨 꼴이냐?” 하며 서로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아쉬움과 부러움이 교차하는 순간임에는 분명했다
내 주변만 보아왔던 그 무렵, 그 피서 여행은 세상을 보는 눈을 한 단계 더 넓힌 것 같았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숙하고, 절제된 삶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시내를 활보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들뜬 마음에 그 장면을 즐겼다. 넘쳐나던 남성 호르몬을 주체하지 못하고 쏘다니던 고향 친구들과의 피서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들뜬 여행이었고, 영화처럼 예쁜 여학생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가득했던 피서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한여름 밤의 꿈’이었을 뿐이다.
인연은 의도적으로 만든다고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내와의 우연한 만남이 진정한 인연이었을 뿐이다. 아름다운 인생은 우연과 인연이 적당하게 조화되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하루이다.
첫댓글 해수욕장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휴가에는 반복된 일상에서 일탈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는것 같아요. 그래서 얻은 에너지는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구요^^
피서는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고통도 따릅니다. 젊은 날 한때의 그리움으로 남지요.
한여름밤의 아름다운 꿈은
어디로 갔지만 지금은 진정한 인연의 아름다움과 영원히 함께 하니 더 아름다와요
젊음만이 할 수 있는 멋진 여름피서지의 재밌는 추억이네요. 스쳐가는 인연도 만들어 보고, 영원한 반쪽 인연도 우연은 아닌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