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이다.
어디든 떠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또한 기차를 타고 떠난다는 것은 옛날 비둘기호나 통일호를 타고 친구들과 떠날 때처럼 풋풋한 설렘을 주기도 한다.
그 느낌 그 추억을 되짚어 보기 위해 계획한 기차여행이기에 우리 부부도 집을 나설 때부터 마음은 벌써 강촌을 향했다.
분당선을 탔더니 전화가 왔다. 요미다. 새벽세시까지 업무처리를 하느라 잠을 못 자서 이제 출발하는데 늦지 않겠느냐는 불안감이다.
기차를 타고 가는 우리와는 달리 차량을 이용해 강촌을 향하는 정규 쪽에도 연락을 취했다. 일찍 출발해서 가기 때문에 벌써 청평이란다. 참 부지런한 친구들이다.
왕십리에서 요미네 가족이랑 합류하고 서둘러 청량리역으로 향했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은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뛰란다. 못 뛰면 철로를 건너서 뛰어오란다. 표를 끊어놓을테니 도착하자마자 바로 오란다. 우리보다 마음이 더 급한 은주였다. 9시45분발 강촌행 열차를 타지 못하면 한시간은 또 기다려야했기 때문에 우리는 필사적으로 뛰었다. 간발의 차이로 우리는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김일 친구는 객차와 객차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피곤해하는 일이를 두고 우리는 객차 안에서 삶은 계란을 까먹었다. 소금에 찍어먹는 삶은 계란, 내가 아주 어릴 때 어머니 손잡고 부산 누나한테 놀러갈 때 정읍에서 바로 부산가는 열차가 없어 대전회덕까지 올라왔다가 경부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회덕에서 먹는 가락국수는 잊지 못할 추억이다. 또한 그 당시 까먹던 삶은 계란은 꿀맛이었다.
강촌역 강가에 모인 친구들과 우리는 조우했다.
다섯시간의 산행을 완주할 것인가 몇몇 친구들의 불안한 컨디션에 보폭을 맞출 것인가를 의논한 끝에 우리는 구곡폭포까지 걸어가서 그곳에서 문배마을로 올라가 점심을 먹고 내려오는 계획을 세웠다.
강촌의 거리는 온통 스포츠바이크의 체험 장이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강촌으로 다 몰려온 듯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누비는 대학생들, 사륜 바이크로 강바닥을 누비는 사람들, 스쿠터를 타고 나온 도시민들, 누구 말대로 베트남 호치민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거리는 온통 탈 것 투성이다. 호젓한 산책을 기대한 우리들에게는 그 풍성한 젊음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소음이 나지 않는 길을 찾아 걷고 싶은 게 모두의 마음이었다.
차도를 버리고 우리는 개울건너 작은 자전거 도로로 길을 걸었다. 더없이 호젓한 길이 우리를 폭포로 안내했다. 간간이 울리는 음악도 싫지 않았다.
매표소를 지나자 햇살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햇살은 딱 그만큼만 나뭇가지 잎사귀를 붙잡고 이파리 흔들릴 때마다 미끄러져 내려와 마음은 이십대인 우리의 얼굴을 간질였다. 실없이 웃어도 그 간지러운 햇살에 웃는 미소였기에 기분은 더없이 상쾌하다.
또한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과의 산행이기에 더 없이 편하다. 별반 대화가 없어도 이미 눈으로 그 의중을 다 알만큼 오랜 시간동안 산행을 해 온 친구이기에 더 편안할 수 있었다.
물이 줄어든 구곡폭포는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실가닥같은 물줄기만 고공낙하를 쉬임없이 하고있었다. 이십여년 전 겨울 어느 날 폭포가 온통 얼음벽이 되어 사람들이 빙벽등반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기만 하다. 언제 우리가 그 20년을 훌쩍 뛰어넘어 버렸는지 세상은 참 빨리도 흘러가고 있다. 그러니 추억을 더듬는 여행길은 늘 가슴 한켠이 시렸다. 되돌릴 수 없는 어제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제는 늘 추억일 뿐이다.
문배바을을 오르는데 아차 하던 순간에 영용이가 길을 잃어 하산을 하는 통에 일행은 지체되었다. 후미에서 내가 친구들을 모두 이끌어 올라와야 하는데 그것이 실수였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오지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참 곤란한 일이다. 중간에서 기다리던 김일 에게도 그들의 모습이 포착되지 않아서 내가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나는 다시 산을 내려갔다.
저만큼 아래에서 영용 이와 요미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다행이다. 급하게 오르다보니 땀이 비 오듯한다. 30여분을 다시 올랐을까 드디어 문배마을 정상이다.
우리는 자리를 펴고 양푼비빔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커다란 양푼에 각자 맡은 비빔밥 재료를 꺼냈다. 우리는 밥을, 종석인 참기름과 깨소금 그리고 과일을, 성미는 막걸리를, 은주는 각종 야채 쌈을, 요미는 먹음직 스런 김치와 산나물을, 비닐장갑을 끼고 열심히 비빔밥을 만드는 친구들과 아내의 모습이 참으로 싱그럽다.
너무 맛있게 비빈 탓인지 모두들 잘 먹는다. 덩치가 두 배인 영용 이와 김일 은 부족하단다.
문배마을을 거쳐 강촌 역으로 산행을 한다는 것이 길을 잘못 들어 우리는 매표소로 내려왔다. 내려가면 매표소일거라는 점수와 칡국수집일거라는 은주, 철탑쪽일거라는 내가 내기를 했는데 점수가 이겼다. 우리는 내기에서 진 벌금으로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돌렸다.
다시 개울을 내려와 몇몇 친구들은 개울에 발을 담그며 물고기를 잡기에 여념이 없고 멀리서 인욱이가 우리를 만나러 밀리는 도로를 뚫고 오고있다는 말에 반가워서 강촌에 먼저 내려갔다. 모처럼 닭갈비집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맛있는 닭갈비에 술까지 곁들여 하루의 지친 피곤을 달랬다. 인욱이도 시간을 맞춰 와준 덕분에 식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시종일관 사진을 찍는 인욱이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식사를 마치고 사륜바이크를 탈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몇몇 친구들이 경주용 범프카를 타기로 하고 줄을 섰다. 말로만 듣던 자동차 레이스경주를 흉내낸 질주인데 나름대로 스피드도 있었고 즐거웠다. 요즘은 직접 체험하는 것이 더 즐겁다. 눈으로만 보기에는 2%부족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직접 체험하는걸 원하곤 한다. 고단한 산행의 여정 또한 체험에서 오는 그 느낌들이 쌓이고 쌓여 글의 소재로 재 탄생할거라 믿기에 게을리 할 수 없다.
정신 없이 놀다보니 해가 서산을 기웃거렸다. 휴대폰에 찍어온 서울발 열차시각을 보니 5분 남았다.
"야, 기차시간 5분 남았어 뛰자!"
나의 말에 기차를 타고 가야할 친구들의 근육이 일제히 꿈틀거렸다. 뛰어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500여미터의 길을 우리는 뛰었다. 아쉬운 작별을 그렇게 마치고 우린 서둘러 기차역에서 표를 끊었다. 아슬아슬하게 우린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인생은 또한 그 아슬아슬함의 연속이 아니던가?
우리의 발길이 어디를 밟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지는 것이다.
오늘 그 많은 길을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마치 자로 잰 듯이 착착 밟아나갔다.
맛있는 과일의 풍성함을 준 종석이, 누룽지 막걸리를 수소문해 가져온 성미, 바쁜 여정 속에서도 잊지 않고 만들어온 반찬 주인공 요미, 나름 즐거웠다는 요미 아들, 산나물과 고추장을 담아온 은주, 수원친구들을 태우고 일부러 새벽부터 길을 나서준 정규, 산행에 짐이 되기 싫다며 등산화까지 준비한 멋진 친구 영용이, 만능 스포츠맨 점수와 그의 친구, 다리 아픈 관절에도 불구하고 친구들 보고싶어 단숨에 달려왔다는 경희, 일부러 바쁜 와중에도 5섯시간에걸쳐 달려와준 인욱이, 언제나 듬직한 친구 김일, 그리고 이 모든 친구들의 웃음까지도 기꺼이 사랑해 주는 내 귀여운 아내 숙이, 모두 정말 고맙고 무사히 산행 마칠 수 있음에 감사 드린다. 남은 회비 2만원은(은주 보관) 6월 초나 중순에 산행할 때 같이 쓸 것이다.
6월초순은 서울 근교 종주산행을 빡세게 한번 하자는 친구들의 제안이 있어서 연구중이다. 7월에는 텐트를 가지고 친구들과 1박2일의 여름캠프도 갈 생각이다.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