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애호가였던 할아버지를 따라서 15세 때 처음으로 작은 극장에서 베르디의 《리골레토》를 보았어요. 오페라는 도무지 치유할 수 없는 전염병 같았죠. 아무 생각 없이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이미 감염돼 있는…."
그의 '오페라 감염'을 부채질한 건 20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Callas·1923~1977)였다. 어느 날 그의 집에서 금속성 깃든 음성으로 마치 절규하는 듯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칼라스였다. 바이오코는 "할아버지께서 사주신 《라 트라비아타》 음반을 들으며 점차 칼라스는 매력적인 여신으로 다가왔다. 음반을 하나씩 모으면서 '언젠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다"고 했다.
- ▲ 10대 시절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를 듣고 오페라 연출을 꿈꾸기 시작한 파올로 바이오코는 칼라스의 자필 서한까지 갖고 있다. 그는“보통 카리스마 넘치고 강한 성악가로만 칼라스를 기억하지만, 편지에는 순수하면서도 여린 모습과 인간적인 고뇌가 모두 담겨 있다”고 말했다./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1977년 칼라스가 타계하면서 그의 바람은 물거품이 됐다. 대신 그는 무대 디자인과 의상, 조연출과 연기까지 오페라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프랑코 제피렐리가 영화로 촬영한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계단 옆에 3분가량 서 있는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는 "관중으로 출발했지만, 오페라를 모든 방면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물론 가장 좋아하는 건 성악이지만, 지금껏 한 번도 못해본, 유일한 분야이기도 하다"며 웃었다.
바이오코는 지금은 이탈리아 밀라노·로마·피렌체와 헝가리·일본 등을 오가며 오페라 40여편을 무대에 올린 중견 연출가가 됐다. "칼라스 타계 10주기 때는 극장 곳곳에 스피커를 설치해서 칼라스의 목소리가 극장 복도를 걸어가는 듯한 효과를 내보았어요. 그녀의 음성이 마치 극장에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지요." 1997년에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그녀가 출연했던 무대 디자인과 의상·영상·녹음 등을 모아서 추모 공연으로 제작했다.
"빼어난 성악가일 뿐 아니라 잉그리드 버그먼(Bergman)이나 사라 베르나르(Bernhardt) 같은 위대한 배우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칼라스 예찬론'이다. 이번 한국에서 연출하는 《노르마》 역시 칼라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칼라스를 몰랐다면 당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라고 물어보았다. "만약 칼라스가 성악을 안 했다면 무엇을 했을까요. 역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첫댓글 '《라 트라비아타》 음반을 들으며 점차 칼라스는 매력적인 여신으로 다가왔다.' 이 부분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저역시 같은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이 생생히 기억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