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년 8 월 7 일 금요일 흐리고 비
해마다 기승을 부리던 태풍이
용케도 작년엔 오지도 않았는데
올해도 간접적인 영향만으로 지나가려는지
어제 웬종일 차분히 내리던 비에 이어
오늘은 가만가만 잔비만 오락가락이다.
한바탕 비가 쏟아질것 같은 날이면
멀리 가기 싫은 법이다.
집 바로앞 콩밭은 재현이가 매고
집 바로앞 들깨밭은 풀향기 아내가 매고 있다.
이곳을 말끔하게 매 놓아야지 풀천지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부지런한 농부의 체면이 서기 때문이다...^^
너무 꼼꼼해서 탈인 재홍이가 오늘은 아침부터
단단한 각오로 도시락까지 싸들고 산밭 들깨밭에
역시 혼자서 예취기질을 하고 있다.
가운데 풀을 대충 쳐놓으면
나중 우리가 뒤따라가며 사이의 풀을
한번 이어뜯어주는걸로 풀매기가 끝이나고
들깨가 힘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게 될것이다.
마음은 급한데 또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재홍이가 어린 나이에 농부의 길을 시작하자마자
재홍이가 쓰기 좋게 가벼운 예취기를 사준다는게
전에 쓰던 단단한 미쓰비시 제품 대신
예취기 가게에서 권하는 제노아 제품을 구입했는데
조금 가벼운 장점이 있는 반면에
힘이 약하고 고장이 잦은 것이다.
툭하면 문제가 발생되어 수리를 하곤 했었는데
얼마전에도 전기장치가 통째로 고장나는 바람에
5 만원이나 생돈을 들여 수리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또 나무 등걸에 걸렸는지 예취기 아랫대가 부러지고 말았다.
예취기를 구입한 춘양수리점에 가지고 갔더니
수리비가 무려 15 만원이나 또 든다 한다.
벌써 새 예취기 구입 비용이 들어가게 생긴 것이다.
혼자서 수리하러갔던 재홍이가 핸드폰으로 연락이 오는데
너무 비싸니 수리하지 말고 그냥 오라 이르자
풀이 죽은 모습으로 돌아온다.
호미와 낫만으로 충분한 일을
편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예취기질을 강행하였더니 그만한 댓가를 치르는 모양이다.
재홍이가 제 딴에는 괜히 미안하였던지
밀을 고르는 풀천지 옆에서
아빠의 젊은 시절 호기로웠던 얘기들을 자꾸 물어온다.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이
오직 자식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하여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애쓰는 것을
언제쯤 알수 있을까 ?
열심히 일하다가 고장난 예취기 때문에
괜히 마음아파하는 자식을 보며
부모 또한 속이 상한다.
아무리 불편했어도
필요한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어서
그지없이 소박하기만 했던
모두가 가난했지만 마음편했던 옛날이 그리워진다.
건너편 밭에서 또다른 농부가 예취기질을 하는데
그도 역시 무엇이 마땅치 않은지 조금하고 쉴때마다
예취기만 살펴보고 있다.
오래된 농부들은 자신의 농기계는 어지간하면 자신이 수리할줄 안다.
툭하면 고장나는 농기계를 수리점에만 의존하다가는
우습게 소리없이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주있는 재홍이에게
오래된 농부 흉내좀 내어보게 하렸더니
마음 고생이 많은 것이다.
우리가 편리의 유혹을 저버리지 않는 한
그에 따른 댓가 또한 영원히 벗어날수 없을 것이다.
아랫밭 사과나무 밭에 멧돼지 손님이 찾아온 모양이다.
멧돼지 넘들이 사과를 따서 먹고 뱉어 놓은 흔적이다.
자신이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온 정성을 다한 농부에게 이보다 더 큰 형벌이 어딨으랴 ?
야생의 강자 멧돼지 앞에 속수무책일수밖에 없는 현실에
농부의 주름살은 더욱 깊어만 간다. 1
지렁이를 좋아하는 멧돼지가 사과밭 주변을 여기저기 파헤쳐 놓았다.
친환경을 하기 전에는 독한 제초제를 뿌릴수 있어 덜했다는데
친환경 때문에 약을 못쳐서 이리 되었다며 발을 동동 구른다.
사과밭 주인은 누구를 무엇을 원망하는 것일까 ?
풀천지 산밭에 야생처럼 자라고 있는 감나무이다.
몇년만 지나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 아래
이쁜 손주를 데리고 흐뭇하게 웃고 싶은 꿈을 꾸어본다.
뜨거운 건조장에 밀을 넣어놓으니
바게미가 전부 죽거나 도망가버렸다.
다시 한번 꼼꼼하게 밀 찌꺼기를 전부 손질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 깨끗이 물에 씻고 이루고 바짝 말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물에 뜨는 것들은 벌레먹은 밀이니
아낌없이 동물들 먹이로 주어버리고
가장 좋은 밀을 티끌하나 없이 깨끗이 골라 내어야지
가장 건강하고 깨끗한 밀가루를 얻을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풀천지의 밀가루는 귀하고 비쌀수 밖에 없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가장 깨끗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온 정성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스스로 당당한 풀천지의 삶이
무엇보다 행복한 이유들이다...^^
첫댓글 요즘 '똥살리기 땅살리기'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인분을 퇴비화하는 사람은 밤하늘의 별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가장 깨끗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자부하는 풀천지님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신념은 내안에 있다 생각합니다.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천하의 소중함을 안을수 있을 겁니다..따뜻하게 감싸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스스로 당당한 삶 풀천지 그래서 큰소릴 마니마니 쳐도 괜찮은 풀천지님 사랑과 존경을 풀천지가족들에게 아낌없이 보내는 이유입니다.더욱 더 화이팅입니다.^^*
몇번을 고백하지만 풀천지의 자부심은 한결같은 잎새님의 고운애정 덕분이니 ~ 잎새님도 화이팅입니다... ^^
잘 거둬들인 먹거리에 큰소리치셔도 빈정상하지 않고 마냥 부러울 뿐입니다..
빈정 상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죄송합니다... ^^ 날마다의 소회를 일기로 풀어내다 보니 가끔은 이렇게 큰소리도 치게 되는군요... ^^
스스로 당당하지 못해 요즘의 삶이 고통스럽고, 혼자만의 의지로 당당하게 살 수가 없어 힘듭니다...
제주의 낭만이면 레몬타임님의 모든것을 감싸줄수 있을텐데요 ~ 겸손한 말씀이신줄 알면서도 풀천지의 따뜻한 위로를 보내봅니다. 우리들은 닥쳐오는 시련앞에 소박한 가벼움의 지혜를 떠올려 봅니다.
나쁜 멧돼지 ㅋㅋ
죄는 미워해도 멧돼지는 미워하지 말아야 되지 않을 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