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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택규(火澤暌) - 육삼 효사부터
------ 상구 효
- - 화 육오 효
----- 구사 효
- - 육삼 효
----- 택 구이 효
----- 규
주역 6 효 를 관찰 할때에
초효 삼효 오효는 홀이고
이효 사효 상효는 음의 자리이므로
홀의 효는 陽(양) 효가 와야 하는데 양효에 양이오면 정위(正位)라 바른자리에 왔다고 하는 것이고
짝의 효는 陰(음) 효로서 음효가 와야 하는데 陰이 오면 정위(正位)라 바른자리에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상반되는 爻 가 자리잡으면 부정위(不正位) 라 하여 자리가 바르지 않다라고 합니다.
이로서 육효의 음양의 자리가 바르고 안 바른 것에 대하여 정위(正位), 부정위(不正位) 로 가립니다.
그리고 음양의 道 는 짝이 주어져야 합니다.
고로 서로응비하는 관계에서 짝을 이룸에 음양이 비록 달라졌다 하여도 서로 음양의 구조를 갖추면
좋읍니다, 뜻은 뭉치는 경향으로 가기 때문이지요.
세상살이는 밥을 먹는데 찬밥밖에 없다 하더라도 찬밥이 있어 먹으면 됩니다.
입과 밥이 만나지 못하고 서로 따로 주어졌다면 곤란한 지경이 되는 것이고 이러한 형편은 다분하게 존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공간은 짝이 없지요, 음양이 없읍니다, 공간안에 주어진 하나의 水 인천일생수( 天一生水) 가 사상으로 지 수 화 풍 으로 벌려졌을 경우 하늘은 짝이 있읍니다
하지만 지수화풍이 생겨나기전의 원초적인 공간자체는 짝이 없다 一水 만 공간의 전부로 형성되어 있었다
이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 와 하늘은 다릅니다. 여기서 많이 착오를 지니게 될 수 있읍니다.
하나에서 하늘과 땅이 나옵니다.
용어의 간극차이는 천차만별을 만들기 때문에 유의하셔야 하겠읍니다
하지만 물질을 구성하는 세계는 음양의 짝이 있어야 합니다 (陰陽爲之道)
육효에서 하괘의 초효 는 상괘의 사효와 應(응) 하고 比(비) 합니다.
예를들어 초효는 양의 자리인데 양효가 왔다 하고, 사효는 음의 자리인데 음효가 와 있다면
서로 응한다 하고, 짝궁이 맞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양의 자리에 양이 안오고 음의 자리에 음이 안올때,,
즉 초효가 음효로 되어지고 사효가 양효로 거꾸러 되어진다면 부정위하면서도
서로 음양의 짝이 반대로 이루어져서 그렇지, 집안의 가장은 남자인데 여성이 주관하고
집안 가정일은 남자가 도 맡아 하는 그러함이나 결국은 역활분담의 의미에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한 양태는 세상사에 많이 존재 합니다.
하지만 초효가 음효이거나 양효일때 사효역시 같은 음효이거나 양효일때 이를 比(비) 한다 이렇게 논 한다
이러함인데. 이를 배척관계라 이름합니다 (背斥:배척) 서로 밀어내려고 한다 이말이고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 이것이 짝임에도 남자와 남자끼리 여자와 여자끼리 같이 살아내는 형국이므로
이를 比(비) 한다 경쟁관계로 운동하는 象을 지닌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본적으로 살피시는 기본단계를 이해하시고
그 이후 팔괘의 모습 명칭 성질 그리고 음양의 관계 를 잘 이해하시고 살펴보는 습관을 가지시면
이 세상의 물리적 공간계와 물리적 시간대의 주어진 한 때의 당위성, 전체의 윤곽등을 비교 추리 해 가면서
자연의 현상을 대입하여 이리 굴려보고 저리굴려보거나 뒤집어 보기도 하고 분리해서 육효의 부분적 소해를
응용하면서 전체적인 대의를 찾아 발견하게 되고 변화하는 도 를 짐작하는 것을 象(상) 을 본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팔괘의 이름과 작대기 세개의 부호 를 다 기억해야 하고 속성을 이해해야 象(상)을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됩니다.
화투 놀이에 다섯장 잡고 도리짓고 땡 하는 묘수 하나도 무궁무진하지요.
하지만 아무리 그림잡고 씨름해도 인위적이니 조합적 구성에서 요령만 부리지 원칙적 기준성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역처럼 여섯효를 잡고 象(상) 을 짐작하는 궁리를 계속하서 만물계의 실제적인 원형이정, 성주괴공, 희비애락,
굴기흥패, 인의예지,.... 인생무상의 사수조를 벌리는 연유와 까닭을 이해하면서 삶의 진정성을 그때 그때 잡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멋있지 않읍니까.
공간과 시간의 물리적 현상의 한 때를 점유하는 어떤 지점을 딱 세워 易 을 논하면 만물의 흐름을 정비하여
정돈하여 명쾌하게 그 어떤 목적이나 추구하는 면면의 유무, 여부가 象 으로 직관된다 하는 것이 주역입니다.
날씨가 흐리고 구름이 꽉 끼어있음은 비가 내릴 조짐입니다, 이를 점이라 합니다. 이것을 미신이라 하지는 않읍니다.
그와 같읍니다.
곧 비가 오는 조짐이 있는데 이를 모르고 화장하고 바깥에 외출 소풍가고자 하는 행동을 할때는 이것은 미신이 되는 것이지요.
그와 같읍니다.
벌써 수십번 반복해서 소개하였으므로 이번에는 약 하기로 하고 팔괘의 이름과 작대기 세계 부호의 명칭가 속성등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소개한 이와 같은 내용은 해당 풍우회란 524,525,란을 찾아보면 이야기 형식으로 횡설수설한 내용에 다 들어있으며
거의 다 부분적으로 이를 인식하기 위한 반복적인 소개가 있었을 것입니다.
시시콜콜 시대와 뒤 떨어지는 양태로만 인식하는 도포 문화와 양복문화의 서구화에 젖는 인습으로
두가지를 벌려 생각하는 습관은 버리는 게 좋읍니다.
네꼬다이 문화 이것은 좋은 것 만은 아닙니다,
어차피 문화적 도리는 거동문화 입니다.
의복도 조금 불편함을 동반하면서 조신하고 짐작하는 마음으로 인의예지신을 갖춘다면 삶의 기품도 있고
호들갑 떠는 문화는 어느정도 지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쉽고 좋고 간편하고 지마음대로고 엿가락질 하듯이 늘렸다 줄였다 지 마음대로 하는 편린에 젖어
일상의 거동이 방임과 자기 꼬라지만 드러내는 양태의 간편성은 편하기는 하지만 흐뜨러져서
너무 선호하여 아니됩니다.
세월을 걸어감에 있어 균형과 중심을 잘 잡는 습관을 지닐때 치우치지 않으므로
상황유지를 잘 해나가게 하며 세상사를 잘 도독이며 가는 문화양태를 창출 할 수 있는
주역의 象 을 공부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포문화는 자신의 내면을 궁리하고 분석하면서 자신을 다듬고 정형화 시키지만
양복문화는 상대방을 궁리하고 분석하고 남을 다듬어서 주물떡 거림으로 간만 보고 알려고 하며
자기화에 응용하고자 하는 잘못된 편견의 정형화 시키는 것과 같지요.
남을 알고자 하는 것은 남이라는 관점에서도 서로 이해가 되는 방향을 숙고하는 태도로서 자세를
짐작하고 접근할 일이지요, 무조건 자기 자신의 내면에만 충실하고 그 도리만 지키면 됩니다.
주변을 알려고 한다면 세상을 다 읽어내야 하는데 가능한 일입니까. 불가한 것입니다.
왜 상대방을 알아야 하나요? 쓸 데가 없읍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이해하고 자신을 관찰하여 도리만 지키면 상대세계는 자연하게 열리고 소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을 알려고 하면 이미 오히려 시대에 뒤 떨어지는 고물문화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는 습관으로 외부외 미팅하며 적시적소와 당위성을 배양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역을 공부해야 합니다. 이 말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본인은 딱딱하지 않게 역(易)의 부분 인 사자팔자구조식이나.서양 철학의 맹점 그리고 이해가 가는
주변이야기를 쏠쏠 하게 하면서 정도의 유무에 적응을 하게 하려는 의도가 상당한 시간을 할해할 정도로 현실과 친하게 노력한 사실이 있읍니다.
주역이라 함은 한마디로 말하여 성인의 가르침이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성인의 온존한 지혜를 받아서 도리를 지키면 된다면 하찮는 나무하고도 대화가 가능하다 이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각자가 견해하는 것은 타방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의지를 가져야 사회적 활동이 가능하지요
나와는 견해가 다르다 모습이 다르다고 , 틀리다라고 하는것으로 짐작한다면 이거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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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대문명은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무조건 틀리다 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읍니다.
이러한 습관의 마지막 종점은 어떻게 되는가? 충돌이며 갈등이며 혼란입니다.
힘에 부칠때가 항상 오는 이 에너지 문화에서 언젠가는 자빠지는 형태로 스스로 허덕이게 됩니다.
서로간에 천차만별도 다른것 같지만 틀리다라는 어떤 명제도 없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주역은 항상 이러한 컨셉을 까닭있게 제시합니다.
자연은 질서가 이렇게 주어지고 그렇게 흘러가는데 인위적 생각의 차별성을 틀림과 옮음으로 재단하는
인류의 향방은 사실 너무 어둡기만 하게한다 이 말입니다.
서로 다르다라는 것은 누구나 다 서로 인정하고 그것이 틀린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인정할때 인류의 문명은
바로 서고 질서를 향유하고 행복의 길로 걸어가게 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이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 주역이기도 합니다.
이에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인본의 의미로서 자연을 함축하여 말씀하신
동양권의 성인 공자님의 말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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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택규 괘상을 보기로 합니다.
위에는 (상효) 離 괘로 火 를 상징합니다.
아래는(하괘) 澤 괘로 澤 으로 연못을 상징하지요.
상효는 신분으로 본다면 중녀(中女) 입니다, 우주집안으로 둘째 딸이고
하효는 신분으로 본다면 소녀(小女) 입니다 우주집안으로 보면 세째 딸이지요.
위도 여성이고 아래도 여성이지요.
응비 현상에서 응 이 아니되고 비(比) 가 됩니다.
또한 상효의 離(리) 는 火 인데 불의 성품은 자꾸 위로 상승하지요.
그리고 하효의 태(兌)괘의 澤(연못)의 성품은 자꾸 위로 내려갑니다.
물이 내려가지 상승하는 것을 보앗읍니까, 아래로 흘러가면 흘러가지
공중위로 올라가는 성질은 없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읍니다.
음양은 서로 섞이고 짝을 이루는 데 있어서
위는 우리로 올라가려 하고
아래는 아래로 내려가려고 한다 이 말입니다.
무엇이 이루어지겠읍니까, 그리고 여성이 여성과 살림하는 형국인데 이게 이루어지겠읍니까?
이러하므로 이 象 을 짐작하건데 서로 어긋나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 밀어내려고 하는 성질만 강하게 작동하고 서로 생각하고 서로를 맞추려는
그런 의지는 전혀 없고 지팔 지 흔들자 이렇게 되는 象(상) 이 된다 이 말입니다.
세상사 이러한 형평의 사정은 많고도 많읍니다.
지금 현실정치가 그러하지요.
서로 지팔 지 흔듭니다, 니가 옳게 네가 틀리네 이 지점만 어떻게 하면 찾아 내 볼까 하는
부정관으로 서로 경쟁관계를 하더라도 균형적 보편성을 찾기 위한 공존의 의지가 아니고
상대가 죽어야만 내가 산다는 팽배한 경쟁이상의 도를 넘은 갈등과 대립의 혼선만 계속
드러나는 그런 정치현실을 한번 보면 한심하지 않읍니까?,
서로 어긋나있다, 그러므로 개혁의 필요성이 있는 괘상을 화택규라 합니다.
화택규 六三 爻辭 (육삼효사)
見輿曳 이고 其牛/ 掣/며 其人이 天且劓니 无初有終이니라
견여예 기우 체 기인 천차의 무초유종
수례를 당기고 끄는 소를 막으며 그 사람이 머리를 깍이고 또 코를 베얻 시작은 없어도 끝은 있느니라
참고) 曳(예) : 끌, 당김 의 뜻을 지닌 예 字
掣(체): 막을 체 字
天(천): 하늘 天 이지만 여기서는 중머리 천 字 로 씁니다.
하늘을 보자고 머리를 같은 수행자들을 의미하고 권속과 재산 등을 다 버린 입장을 의미함.
서로 어긋나고 일이 안되기 시작하면 사람이나 중요한 것을 싣은 수레를 소에게 달아놓고 길을 가는데
경쟁자나 갈등을 조장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수례는 가지 못하게 당기고, 그 소가 가는 길 앞을 막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형국인데 그 사람은 머리를 깍이고 코를 베는 것과 같지만
결국은 올바른 마음을 가지면 시작은 없어도 끝은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6삼효사와 이에 응비하는 상구 효사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 상구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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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삼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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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삼효 음효는 원래 양효가 와야 하는데 음효가 와 있고
상구효 양효는 원래 음효가 와야 하는데 양효가 와 있읍니다
(짝효는 음 홀효는 양이 와야 함, 그런데 반대로 되어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부정위인데 부정위이기는 하지만 음양간으로 서로 응하여 합하려 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육삼효 입장에서 상구효로 가고자 하는데 구사효의 양효가 떡 막고 있읍니다.
상구 효 의 짝의 효로 가려고 하는데 같은 양효가 혀를 낼름거리고 있는 형국이지요
육삼효는 여성이고 (음) 상구효는 남성이고 (양) 하여 서로그렇게 합쳐야 함인데
구사효가 양효로서 같은 남자로서 육삼효가 님을 향하여 가는 길목을 막아선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구이효 는 육삼효를 앞으로 가지 못하게 당기는 형국이지요 같은 양으로 육삼효를
껄떡 지게 흠심을 품었다 이 말입니다.
육삼효는 - - 으로 음이니 坤 인데 坤 은 육수로 소를 의미합니다, 소는 순종하고 참을성이 많으며
일만 하지않읍니까?
그러므로 육삼효를 소로 비유하고 소는 스레를 끌고 많은 이를 태우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데
방행을 많이 받는다 이 말입니다.
요즈음 민주당과 국힘당 국회에서 하는 정치현실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 옳다 틀리다만 유행가도 아닌 것임에도 국민들 아랑곳없이 자기세력줄만 방어하고
공격하기가 바쁩니다. 그러므로 갈등과 대립의 화택규 현상이니 개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서로 명예를 깎는 것 처럼 코를 베고 코를 걸어도 하늘 같이 행하겠다고 머리를 갂을 정도로
대의를 위하며 바른 마음을 유지하면 벨에벨 장애가 다 주어져서 처음에는 혼미하지만 끝은 언제나
있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서로 잘 되자고 같은 버스를 타고 산등성 오르막을 가고 있다면 엔진 소리는 시끄럽고 요란하지만
올락가고자 하는 의지를 바르면 끝내 올라간다 이말과 같읍니다.
"精神一道何事不成"(정신일도하사불성)이라 정신만 하나의 길을 유지하고
꾸준하면 안 이루어지는 이링 없다 이와 같읍니다.
하늘이 흐리다고 하늘보고 짜증내서무엇하고 밥하는데 밥은 먹으면 되는데 밥하는 년 꼬라지 보기
싫다고 괜히 밥속에 해악지기는 그러함이 있어도 밥묵자 하고 가는 것이고 하늘흐려 비오면
비오라 하면 된다 이말입니다, 하늘같자고 머리까지 깍고 수행하는 바른 정신이 주어진다면
비는 그칠 껏이고 밥하는데 뜨악질 하여도 밥솥의 밥은 일거지고 완성되니 퍼 먹으면 된다 이 말입니다.
세상사는 지뢰밭을 깔아놓은 장치를 해놓은 험지가 놓여졌다 하여도 이를 통과하여야 한다면
엎드려 기어서라도 지뢰 하나 하나 피해가고 정숙하며 참고 가다보면 통과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象曰(상왈:공자께서 이르시대)
見輿曳는 位不當也일새요 无初有終은 遇剛也이니라
견여예 위부당야 무초유종 우강야
수례를 끌고 가는 것은 사리에 마땅하지 않음이고 처음은 없고 끝은 있다 함은 상구의 양효인 굳셈을
향하는 것이므로 마침이 있다
참고)
무엇을 행 한다는 것 ! 즉 일을 도모함에 삼위일체가 맞아야 합니다.
정치를 하려면 상대방과도 소통해야 하고, 국민의 지지도 많이 받아야하고 안살림도 서로 함치하여 서로가
단결애햐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하고 정치를 끌고 나가야 함인데, 그러하지 못하다 이 말입니다.
정치를 이끌고 가는 정부의 여당보다 오히려 견제하고자하는 야당의 힘은 더욱더 세고 사사껀껀 장애를
받으므로 일관성이 없고, 내부로서는 흐뜨러지고 국민들의 방관과 방임적인 그러한 정치에 환멸을 느껴
별로 관심이 없는 이 정황에 무엇을 하겠다고 수례를 끌고 나아가는 것은
마땅한 시의성이 없음에도 길을 나서는 것과 같은 형국을 " 위부당야"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는 곳은 양효가 자기 짝이되는 굳셈의 그 곳을 향하는 것이니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릴때 읽었던 " 엄마찾아삼만리" "저하늘에도 슬픔이""거지왕자"
등의 동화이야기를 들어보고읽어본 사실이 있을 것입니다.
험하여도 가야하는 것이며 유약한 어린 생명이지만 어머니를 찾아 가야 하는 그 희망을 지니고
가는 과정처럼 거기에서 부대하여 성숙함이 오고 끝내는 마지막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삶이 과정이 아니겠읍니까?
아무리 갈등과 대립이 있어 혼란한 정국이다 하더라로 지향점을 향할때 힘이 들더라도
정신 바르게 먹고 있으면 함정이 있고 늪이있다 하더라도 수례를 끌고 가야 하는 것이 개혁인 것입니다.
인생을 개혁하는 길은 바로 이처럼 성인지도의 가르침에 정심하고 어려워도 가는 의지를
지닌다면 갈등과 대립을 무사하게 통과하는 개혁을 할 수 있음과 같은 이야기를 말 합니다.
다음에 구사 효사와 구오 효사를 계속하여 소개하겠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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