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3 주일설교 (묵상; 사 51:1-17,52:1-2)
본문: 마 5:13-16
제목: 소금, 빛, 착한 행실
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모가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
‘너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산상설교는 제자들에게 가르친 말씀이다.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 왔다’는 말씀으로 시작한다.(5:1)
어떤 사람이 예수의 제자인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1)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27)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33)
교회 다닌다고, 몇 대째 믿는 집안이라고, 목사라고, 장로라고, 권사 집사라고,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되지 못한다.
누가복음 14장에서 주님이 말씀하는 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제자가 되지 못하면, 천국도 없다.
전도 전도하며, 선교 선교하며, 전도 폭발하며, 전도왕들 치켜 세우며,
나팔 불고 요란 떨며, 교인 수와 교회 크기와 교단 세력을 아무리 키워도 소용이 없다.
세상은 알아주겠지만,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 문, 넓은 길일 뿐이다.
하늘에서는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로 밖에 보지 않는다.
그들은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모래 위에 집은 지은’ 어리석은 사람들일 뿐이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할’ 뿐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세상의 소금’이라는 것이다.
소금이 되라가 아니고 소금이라고 단정적으로 말씀하신다.
소금은 짜게 해서 맛을 내고, 소금은 부패하지 않도록 정화 작용을 한다.
‘세상의 소금’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옛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된 사람이다.
‘세상의 소금’은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세상의 소금’은 썩어질 씨가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곧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이다.
부패하고 죄악으로 썩어가는 세상에서 이를 정화하고 살 맛이 나게 하는 것이
‘세상의 소금’이 하는 일이고 의무이고 사명이다.
함께 죄에 물들고 어둠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삶으로 세상을 변화시킨다.
저주 받아 멸망해 가는 세상과는 다르게 복을 받아 새 생명을 사는 전혀 다른 삶이다.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사람답게, 옛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된 사람답게,
세상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전혀 달라야, ‘세상의 소금’이다.
자기 자신도 변화된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맛을 내게 할 수 있겠는가?
자기를 개혁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런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많을지라도 교회와 세상은 결코 변화되거나 개혁되지 않는다.
성품과 삶에 변화가 없는 사람은 교회의 교인은 될 수 있을지언정 참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성령으로 말씀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이 그리스도인인데,
어떻게 성품과 삶에 변화가 없을 수 있겠는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하나님의 사람 곧 그리스도인으로 성품이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을 행할 능력을 갖추어 삶이 변화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이 하시는 일이다.
성경의 말씀들은 저자이신 성령이 조명하고 감화하고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교훈과 책망을 주시고 바르게 하고 하나님의 의로 교육하신다.
성경을 떠나서 성령을 떠나서는 제자도 그리스도인도 될 수 없다.
성경을 읽으며 들으며, 교훈과 책망을 받는가? 999999
성경을 읽으며 들으며, 바르게 되고 하나님의 의로 교육을 받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의 성품은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을 행할 능력으로 삶이 변화될 것이다.
성경을 보며, 교리만 만들고 외우고 가르치고만 있다면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이 되어 천국 맛으로 세상을 살맛나게 할 것이고,
온갖 죄악으로 썩어지고 황폐해진 세상을 정화하며 정결한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러나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 쓸데 없어 밖에 버려져 짓밟힐 뿐이다.
교회 수가 많으면 무엇에 쓰며, 교인 수가 많으면 무엇에 쓰겠는가?
2.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14-15)
세상의 빛이 되라 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단정적으로 말씀하신다.
다른 것일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져서 보지 못할 수가 있나요?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는 것 보았는가?
등경 위에 두어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지요.
그리스도의 제자는 산 위에 있는 동네처럼 숨겨질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추는 등불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빛이 되어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밝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세상의 빛이 됨으로 해서 세상을 변화시켰다.
가는 곳마다 세상과는 다른 공동체가 되어 세상을 밝게 변화시켰다.
묵은 포도주 헌 부대 유대교를 쏟아버리고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었다.
유대교를 장악하고 있던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핍박과 박해를 가하였지만
그들은 굴하지 않고 죽음까지도 불사하며
세상의 빛으로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세상을 이겼다.
콘스탄틴 황제가 공인한 기독교, 곧 로마교회는 그 줄기와 뿌리가 달랐다.
세력 키우기에 급급했고 이방 종교들의 의식을 끌어와 화려하게 만들었고
성경은 멀리하고, 교황의 성직계급제 통치로 천년 동안 세상을 암흑시대로 만들었다.
면면히 이어오는 참 교회 발도인들을 십자군 동원하면서까지 박해하며
화형과 고문으로 이단시하고 박멸할려고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의 빛인 발도인들은 빛의 믿음과 실천으로 세상을 밝히며 변화시켜 갔다.
13세기에는 유럽 전체를 폭발적으로 빛으로 교회를 변화시키는 종교개혁을 이루었고
그 빛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르네상스를 14-15세기에 이루어갔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16세기 종교개혁은 로마교회를 개혁하였을 뿐, 초대교회를 계승하지 않았다.
초대교회를 계승한 발도인들 바울인들 알비인들 카타르인들 위그노들의 흐름과는
뿌리도 영 줄기도 다른 것이었다.
16세기 이전 참 교회의 역사를 발굴한 사람들도 이 초대교회 흐름을 너무 쉽게
16세기 종교개혁과 직결하는 것은 이익과 세력에 굴복하는 안일한 자세이다.(곡학아세)
세상의 빛인 참 교회는 어느 시대나 꺼질 수 없고 없어질 수 없다. 존 라일의 말이다.
“그 어느 것도 이것을 깨드리거나 부술 수 없다.
이 교회에 속한 자들은 핍박과 눌림을 받으며
투옥되거나 매를 맞거나 참수되거나 화형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참 교회는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이 교회는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난다.
불과 얼음을 뚫고 계속 살아 남는다.
이 교회는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망치를 깨부수는 보루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뼈 하나라도 결코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양떼의 단 한 마리도 그의 손에서 결코 빼앗기지 아니할 것이다.
그 회원들은 작은 양 떼 즉 세상의 아들들과 비교해 볼 때에 그 수가 매우 작은 무리이다.
여기에 하나 둘, 저기에 두셋, 또 이 지역에 조금, 저 지역에 조금 있다.
그러나 우주를 뒤흔드는 자 또는 기도로써 자기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자들은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한 나라의 방패이자 방어물 그리고 버팀목의 지주가 된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이름만 요란할 뿐 문서 위주의 교마교회의 교리 개혁이었을 뿐이다.
개신교 5백년 동안 우리는 속아 왔다.
무수한 교리책을 양산하며 인쇄술의 발달로 보급이 확산되었을 뿐
그런 문서 작업이, 교리 작업의 지성주의 산물들이, 면죄부 팔리듯이 많이 팔렸다고,
종교개혁이 성공했다고, 르네상스를 이끌었다고, 믿어온 것은 너무 순진하고 안일하다.
우리는 초대교회, 그 전통의 흐름을 찾아 나서야 한다! 뿌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발도인들의 유일한 피난처였던 피에몽 계곡부터 각 지역에 흩어져 살았던 흔적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틀림없이 그 후손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의 빛으로 산 그들의 전통을 살리고 이어감으로 우리도 비로소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
역사적 전통과 열결 되지 않으면, 일시적 돌출물로 끝날 것이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다.
건축가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해야 한다.
3.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16)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들이 보는 착한 행실이다.
그 착한 행실은 성경을 통하여 교훈과 책망을 받고 바르게 되고 의로 교육을 받아
온전하게 된 하나님의 사람의 성품과 모든 선을 행할 능력을 갖춘 삶에서 나오는 것이다.
착한 행실이 사람 앞에 비추는 빛인 것을 잊지 말자.
그 착한 행실의 빛을 보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들의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과연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들은 다르구나’ 하면서 말이다.
그 빛으로 참 교회는 세상을 밝혀 왔다.
문서 쟁이 책 쟁이들의 문서 그만 보고 우리는 참 빛을 비춘 믿음의 선진들을 찾아 나서자.
그 믿음의 헌신과 행실들을 오늘에 되살리자.
세상의 빛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
마태복음 25장의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착한 행실들이 우리의 일상사가 되어야 한다.
이사야 58장의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의 행실들이 교회의 일상사가 되어야 한다.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
기도.
세상의 소금이 되지 못하고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면 주님의 제자가 아닌 것을 깨닫게 하소서.
성경에서 성령의 역사로 교훈과 책망을 받고 바르게 되고 의로 교육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한 성품과 모든 선을 행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인 것을 기억하고 이루게 하옵소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착한 행실과,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의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그 착한 행실이 교회를 개혁하고 세상을 르네상스로 개혁하는 원동력임을 알고
이를 실천하고 이루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