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5회까지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재미있게 사극을 보는것 같습니다.
작가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고증에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람이 본래 만족하기 힘든 법이니, 열려있는 마음으로 보신다면 기존 사극보다 훨씬 괜찮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1. 고증
무엇보다도 갑옷은 거의 완벽에 가깝게 제작했습니다. 마치 고분벽화에서 그대로 튀어나온것 같습니다. 부담스러운 뿔도, 비닐같은 목가리개도 아닌 정상적인 모습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굳이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다만 대조영과 천추태후에서 사용했던 갑옷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 재활용 비중이 굉장히 큽니다. 하급장교들은 천추태후의 고려장수 갑옷을 입고 나오고, 그와 동급 내지 좀 더 상위 장교들은 대조영에서의 장수갑옷을 입고 나오고, 소서노사당의 갑옷은 천추태후가 직접 입던 갑옷입니다. 워낙에 갑옷제작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조금은 거슬리더군요.
반면 무엇보다도 주연급 장수들이 열심히 투구를 쓰고 전쟁에 임하더군요. 이전에 만날 투구없이 전투하는 모습이 안쓰러웠고 불만도 많았는데 정말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한편 수레가 다수 등장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선생님께서 책도 내시고 강의도 하신바 있는데, 그 당시 수레의 의미는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의 것입니다. 조선시대극과 비교했을 때 생활사적 측면에서도 크게 부각시킬 만한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기존 고대 사극에서는 수레라는 것이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는데, 몇회를 보니 대략 4종의 수레가 등장했습니다. 상단이 사용하는 우차, 군영에서 부상당한 병사를 옮기던 수레, 어라하가 타고 다니던 마차 등 굳이 의도하지 않았다면 이런 다양한 수레를 등장시킬 이유가 있을까 싶을 만큼 수레가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다만 태왕이나 어라하가 타는 수레는 좀 더 크고 화려했으면 좋겠습니다.
목간도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현재 백제시대의 목간이 여러번 출토된 바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목간을 자주 활용하는 장면이 등장하더군요.
그리고 태왕의 백라관도 지금까지의 사극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라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백제의 경우 예외적으로 무령왕릉이 벽돌무덤이지만, 고구려나 백제는 원래 돌무덤을 사용했습니다. 중국이 벽돌을, 일본이 나무를 많이 활용한 반면, 우리는 문화적 소재로 돌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극중에 사당을 돌무덤과 같이 표현하고 있고, 내가 먼저 돌무덤에 들어가니 너가 먼저 돌무덤에 들어가니 하며 말다툼하는 장면도 나오고 있습니다.
2. 스토리 전개
현재 대방을 놓고 한창 전쟁중입니다. 사실 대방에 대한 고구려와 백제의 갈등은 이보다 100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서천왕이 대방을 공략하자 백제가 장인의 나라라 하여 구원하는 바람에 고구려가 대방지역 장악에 실패하여 백제를 원망하였고 백제는 고구려의 침공을 두려워하여 방어진을 설치하였습니다.
그 후 미천왕에 이르러 낙랑을 밀어내고 대방마저 장악하였는데, 기록에는 없지만 백제도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대방마저 사라지면 고구려와 직접적으로 국경을 접하게 되는 것이고, 한편 그동안 백제로서도 대방이 걸림돌이 되는 존재였을테니 말이죠. 기록상 백제가 대방을 도와 미천왕을 막은 사건이 없다면 반대로 미천왕과 대방을 분할하려 했을 것이라는 추정은 개연성이 있습니다.
그러한 연유로 대방에서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한편 너무 고구려와의 대방에서의 전쟁만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만도 있는것 같지만, 아직 5~6회의 극초반에 불과하고 고구려와의 갈등을 표현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더라도 전개상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위해 첫회에 A급 사극배우인 이덕화씨와 정애리씨를 등장시켜 그 전제를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우들을 단역으로 소모시킨 것은 그만한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겠죠.
한편 갈등관계도 매우 재미있습니다. 기존에 주몽과 대소, 요동파와 평양파, 계루부와 비류부 등의 단촐한 갈등관계에서 벗어나 다각적인 갈등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일단 고구려와 백제의 갈등이라는 큰 틀 속에서, 백제는 비류왕과 계왕이 갈등관계를 갖고 있고, 비류왕계는 태자와 근초고왕이 대립구도에 있습니다. 둘째왕자는 중립이며(아직까지는) 셋째왕자는 기회주의자입니다. 그 아래로 진씨와 해씨가문이 갈등관계에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현재 부여구를 비호하는 입장이지만 갈등이 본격화되면 가장 강력한 적이 될 것이고, 셋째는 태자의 아군이지만 결국 어부지리를 노리게 됩니다. 한편 부여구의 동복동생인 부여몽은 오히려 친형에게 큰 위협을 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3. 다양한 정치세력과 말갈
앞서 언급했듯이 다양한 정치세력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백제의 군사이지만 모두가 왕의 군사가 아닌, 각 세력이 군사를 내어 전쟁을 수행하는 형태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갈이라는 존재가 등장하는데, 이 당시(4세기 초반) 지역에 따라서는 고구려에 완전히 복속하여 고구려인으로서 살아가는 말갈도 있겠지만, 극에 등장하는 쇠둘레부의 말갈과 같이, 백제도 고구려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지역에 살고 있는 말갈은 여전히 독립하여 살아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말갈이라는 명칭이 단일한 부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없으면 합니다.
그리고 인종대왕님께서 사휼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셨는데, 전 꼭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비류왕이 구수왕의 둘째아들이며 사반왕의 동생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70년의 기간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그 비류왕 자리에 사휼을 넣어 간극을 좁힌 것입니다. 비류왕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도 아닐텐데, 그래도 혈연관계가 어찌 되는지는 연결고리를 제시해 주어야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당시 100세 가까이 사는 경우도 다수 존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 대신에 아들이 왕이 되는 경우도, 특별한 사유로 인하여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잇는 흥선대원군의 사례도 있는데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지을 이유도 없습니다.
한 가지 의문이 가는 것은, 중간 설명에서 전연과의 관계가 나오는데 지금 시점이 마치 고구려가 이미 전연과의 일전이 있은 후로 설명하는것 같았습니다. 제가 잘못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군요.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어쩼든 지금까지는 극에서 정치,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다양하고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고, 극의 전개도 실제와 전혀 동떨어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지을 만큼 부적절한 장면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정도의 수준에서 마무리까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혹시 그밖에 괜찮다고 생각하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싸울 때 투구를 쓰고 있는 모습도 괜찮았고 기존 사극에서처럼 개념없게 타고 있던 말에서 내리고 무술(..)하는 장면도 없어서 좋았습니다. 승마에 한계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번 근초고왕에서는 장군을 포함한 기병들이 스스로 말에서 내리지 않고 적에 의해 말에서 떨어지는 장면으로 표현해서 개연성있더군요. 뭐, 세부적인 면에서 여전히 행글라이더에 가까운 연이라든가 생각 보다 젊은 고노자라든가 등등 문제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5회 다운받아 봐야 되는데, 다 돈을 요구하네요.^^;;;;;;;
그래도 백제 공습부대의 장치는 연이라고 언급해주어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참고로 몇년뒤 강제로 설치하게 될 디지털TV를 설치하면 엥간한 공중파 방송은 전부 무료로 VOD시청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사극 찍는 사람들 삼국지 써먹는거 좋아하니 열기구가 등장했으면 항변이라도 할 수 있었을것 같네요;;; 마침 근초고왕에서도 어김없이 어느 장군이 제갈량 운운하는 대사가 나오던데(...)
'말갈이 험준한 지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라는 친절한 설명과 일단은 '연'이라고 했으니 넘어가죠.^^
근초고왕에서 아쉬운 점이 고구려 고국원왕의 동생 무의 존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무는 모용황이 북도와 남도로 침공했을 때 북도로 침공한 모용황의 군대를 대파하죠. 모용황이 미천태왕 시신과 고국원왕의 모후, 왕비를 볼모로 잡아간 것도 북도에서 모용황군을 격파한 무가 이끄는 고구려군을 의식해서 일겁니다. 보다 안전하게 퇴각하기 위해서 부왕의 시신과 모후를 볼모로 잡아갔다고 볼 수 있죠. 여튼 기록을 보면 당시 고국원왕의 동생 무가 그리 가벼운 존재는 아니었을 겁니다. 고국원왕의 동생인 무를 등장시켰으면 하는 바램이 일더군요
사족을 달자면 아버지 대신 아들이 왕위에 오른 경우가 고구려에 있었죠. 고구려 6대 태조대왕이 즉위할 때 국인들이 원래 태조대왕의 아버지 재사를 왕위에 앉히려 했지만, 재사는 자신이 늙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들 궁을 왕으로 즉위시키죠. 흑강공 사훌의 존재의 등장에 대해 저 역시 긍정적으로 봅니다. 사훌의 존재없이 비류왕이 사반왕의 동생이었다고 설정하면 그야 말로 말도 안되는 것이었겠죠
고무에 대한 아쉬움은 방영 전부터 나왔지만, 개인적으로 고치수 볼 때마다 저 자리는 고무자린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들더군요.^^:;
저 역시 명치호태왕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고치수를 보면서 고무에 대한 아쉬움이 드는건 어쩔 수 없더군요. 아니면 고노자 대신 고무를 등장시켰어도 괜찮았을 싶구요. 고노자가 사료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 봉상왕 2년인 293년이죠. 근초고왕 시점은 서기 341년... 무려 50여년의 시간이 흘렀죠. 고노자가 활약한 시기인 293년을 20대로 잡으면 서기 341년은 70대에 가까운 나이겠죠. 과연 이 시기까지 고노자가 살아있을지 의문이고, 굳이 고노자를 사극에 등장시켰어야 했는지 의문이 들더군요. 오히려 고무가 등장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고요. 여튼 근초고왕에 대해 큰 불만은 없습니다. 일단 그 이전 사극보다는 퀄러티가 높아졌죠.
맞네요. 재사와 태조왕...가까이에 사례가 있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멀리서 찾았군요. 감사합니다.^^
인물 설정에 있어 아쉬운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기록으로 전해지는 당대의 인물이 워낙 부족하다보니 제작자들이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을 하는 것도 납득이 갑니다. 목간 활용은 학계도 적극적이지 않으니 방송사에서 그러한 것도 어느정도 이해가 가구요.
사실 70대 정도의 노장이 전장에 나올 수 있죠. 이미 명림답부의 예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너무 젊게 나온다는거...흰 수염좀 왕창 붙이셔야 할것 같습니다. ^^; 그럼 어느정도 이해가 가겠네요.
돌부처님 말씀이 맞네요. 고노자가 흑강공 사훌처럼 늙은 모습으로 등장했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겠네요 ㅋ
돌부처님이 말씀하신대로 사극 근초고왕은 고구려가 이미 전연과의 일전이 있은 후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웃긴건 전연의 고구려 침공은 서기 342년입니다. 그런데 사극 근초고왕의 시점은 서기 341년..... 뭔가 앞뒤가 안맞더군요. 저도 나래이션의 이런 설명을 들으면서 고증이 잘못되었구나 란 생각을 했죠.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써주었으면 하는 바램이건만... 제가 너무 높은 걸 요구한건가요?
그렇다면 이건 큰 오점이군요...아쉽네...은근히 다음해에 있을 전연과의 전쟁을 기대했는데...
고무가 안 나오는데, 전연과의 전쟁이 나올리가..ㅠㅠ
전연과 전쟁이 시작되면서 자연스레 등장하리라 기대했거든요. 지금 사유가 있는곳이 남평양(한성)이니까 수도인 국내성엔 있겠지 싶었죠. ㅠㅠ
저는 기존 삼국시대 사극보단 '훨씬' 만족합니다. 스토리는 좀 지루하고 산만한것 같지만 점점 대방쟁탈전과 백제 왕실 내부의 알력을 중심으로 윤곽이 잡혀가는듯 하고 고증도 예전에 써먹었던 것들을 재활용하느라 지저분해 보이는듯 합니다만 적어도 철저한 고증을 거친 새것들이 중심적으로 활용되어서 크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닙니다.
더구나 스토리,대사,고증 등에서 제작자들이 꽤나 성의를 들였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다만 그로인해서인지 어느정도 배경지식이 없으면 보는데 좀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예컨대, 어라하나 태왕이라던지...
결론적으로, 삼국시대 사극이 점점 발전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기쁩니다. 근초고왕은 그 첫 시도라 다소 인기에 있어 부진하지만 광개토대왕에 이르러선 폭발적인 인기과 발전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전 스토리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다만 워낙 비중있게 알고 있어야 할 인물이 많이 나와서 미리 인지하지 않고 본다면 따라가지 못하겠더군요.
구태가 부구태로 나와있는 것은 홈페이지 제작자의 실수 정도로 넘어가줘도 될것 같습니다. 근초고왕의 고증수준으로 보아 그정도 역사적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 왕성이 부여씨인것 하나 인지하지 못했다고 보기는 어려울것 같습니다.
비류왕이 몇살에 즉위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재위가 40년이라면 그의 치세 말기에 그의 아버지가 살아있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고구려의 태조왕,차대왕,신대왕이 100세 정도를 살아 정말 100세 산 것으로 보시는 모양인데 그대로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그리고 우선 항렬을 따지는 시대도 아닌데 아버지가 아들을 세우는 경우는 아닌 듯합니다..
타 방송사에서 제작한 삼국시대 사극과 비교하면 단연 KBS가 최고라고 봅니다. 그리고 기존에 KBS에서 제작한 삼국시대 사극 중에서도 이번에 방영하는 '근초고왕'이 저 같이 삼국시대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 봐도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니 모든 면에서 많은 발전을 했다는데 의미를 두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더 흐르고 노하우가 쌓이고 고증에 지속적으로 신경을 쓴 다면 근초고왕 이후로 고품격 삼국시대 사극이 나오지 않을까요 ^^
근초고왕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1990년대에 KBS에서 야심차게 방영한 '삼국기'라는 사극이 생각나네요. 당시 기억하기로는 서인석님이 김유신역으로 조경환님이 연개소문으로 의자왕으로 길용우님이 나왔죠 ^^ 재밌는 에피소드로는 조경환님이 타고 다니는 말이 조경환님의 몸이 워낙 거구이다 보니 촬영만 하면 도망갔다고 하네요 ^^
어릴 때 본 삼국기의 기억은 아직 잊을 수가 없네요..^^
근초고왕에서 고구려 소수림왕인 태자 구부의 존재를 보고 싶은 열망이 들더군요. 광개토태왕이 외정을 할 수 있도록 피폐된 국력을 추스리고, 고구려의 내적 기반을 다진 군주였죠. 나중에라도 근초고왕의 아들 수(근구수)와 고구려 태자 구부의 신경전을 그려낸다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ㅋ
삼국사기 보고 처음 안 사실인데 소수림왕이 장남이 아니랍니다..소수림왕이 태자가 되기 전에 이미 태자의 기록이 있습니다..그리고 장남이면 장남이라고 기록하는 삼국사기에 그냥 아들이라고 나온다죠..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사극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