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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윤리성과 도시의 서사
-오성인 시인의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 걷는 사람 시인선 88, 2023
김완
기억한다는 것은 일종의 윤리적 행위이며, 그 안에 자체만의 윤리적 가치를 안고 있다.
기억은 이미 죽은 이들과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가슴 시리고도 유일한 관계이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오성인 시인은 광주전남작가회의에서 가장 젊은 시인입니다. 그만큼 기대의 수위가 높습니다,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합니다, 오랜만에 신덕룡 시인과 황학주 시인을 만나는 자리였는데, 한국예술위원회 정부장과 함께 그가 나왔습니다. 내 명함을 주고, 그의 명함을 받았는데, 명함에 다른 것은 없고 시인 오성인이라고 크게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시에 모든 것을 걸고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시집 『푸른 눈의 목격자』 이후 5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내놓았습니다. 시집은 4부로 구성되어 있고 총 59편의 시를 실었습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시집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 서사입니다. 둘째는 시인 자신이 사는 곳에 외국인들이 유입되고 서로의 간격이 멀어지는 안타까운 감정과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의 사회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도시의 서사입니다.
시인의 말에 시집이 잘 함축되어 있습니다. 시인의 페북에 들어가서 보니 이 시집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습니다. 시인의 아버지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에 있는 1군단 본부대 수송부에서 운전병으로 군복무 중이었습니다. 지휘부로부터 ‘부대 근처 야산에 있는 나무를 모조리 벌목해 오라’는 지침이 떨어지고, 대량의 나무(박달나무)를 베어 부대로 옮깁니다. 그런 뒤에 그것들을 다시 깎고 다듬고 옻칠하여 군용트럭 짐칸에 적재합니다. 며칠 뒤, ‘충정봉’으로 명명된 이 진압봉은 민주화운동 진압을 위해 광주에 내려와 있던 3, 7, 11 공수부대에게 지급되어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무기로 사용되었다 합니다. 그 글을 읽고 나니 비로소 이 시집이 내게 와 닿았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아버지의 알 수 없는 불안과 죄책감을 통해 가족과 이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담겨 있는 시들이 많습니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은 고해성사와 같아 시들이 일반적으로 깁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버지의 삶을 시로 담아내는 동안 아버지는 증(憎)에서 애(愛)로, 다시 애(愛)에서 증(憎)으로 옮기기를 거듭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1.
먼저 여는 시로 실린 「담」을 살펴보겠습니다.
내 안에 담을 쌓아 둔 적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또래 아이들과
이웃집과 우리 집을 가로지르고 있는
담을 넘었다 그러면 골목길 서너 곳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므로
키보다 높은 그것을 넘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곤두박질쳤다
순식간에 얼굴 반쪽이 피로 물들고
집에 일찍 들어가려던 나는 동네 주변을
맴돌다 날이 저물고 나서야 들어갔다
분명 노을은 졌는데 보이는 장면마다 붉고
피투성이 된 얼굴에 수시로 밀려드는
통증보다 너 얼굴이 그게 뭐니 어쩌다
그렇게 됐니, 라는 물음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담 하나를 쌓고 거리를 두었다
담은 다만 집으로 일찍 돌아가기 위한
지름길이었을 뿐인데
담을 넘는 일을 부끄럽게만 여겼던
나는 매달려 본 적 없는 운동기구와
만난 적 없는 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사이 점점 높고 견고해진 담장
가을이 되어서야 낙엽처럼
얼굴 반쪽이 떨어져 나갔지만
담은 허물어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담」 전문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또래 아이들과 늦게까지 동네에서 놀다가 일찍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담을 넘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5,6학년 정도 아니었을까요? 키보다 높은 담을 넘다가 곤두박질쳐졌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합니다. 왜 담을 넘는 일을 부끄럽게 여겼을까요? 짧은 한 편의 상장 소설을 읽는 기분입니다. “내 안에 담을 쌓아 둔 적 있었다”라는 첫 행에서 담은 단순한 물리적인 담과 정신적인 담, 즉 넘어서는 안 되는 윤리의식의 결정체 같은 담으로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담은 이쪽과 저쪽을 확연히 나누는 물리적인 경계입니다. 담은 경계이면서 드물게 문을 내면 통로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매달려 본 적 없는 운동기구와/만난 적 없는 새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소년은 성장했지만 마음 속 “담은 허물어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라는 마지막 행은 시인의 한 특성으로 자리 잡아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2.
창문을 통해 누군가 자꾸만
나를 엿보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한시도 마음을 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꼬리도 없는데 꼬리뼈가 욱신거려
불안한 아버지는 창문을 없애고
공기만 겨우 드나들 정도의
틈새만 남겨 두고 방문을 열고 닫았다
한낮에도 볕이 들지 않아서 아버지 방은
언제나 어둡고 서늘 했는데
아버지는 숨는 데 자주 실패했다
애야, 저기 문에 귀가 붙어 있으니
얼른 떼라 시간이 뒤죽박죽되어
없는 죄가 씌워지기 전에 올가미에
발이 걸려 거꾸로 매달린 산짐승처럼
옴짝달싹 못 하기 전에
유서 깊은 잔혹극이 막을 내려야 할 텐데
그늘진 표정의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려줄 것이 겨울밖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나를 밀어내려 애썼지만 나는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고 오랜 겨울을 살고 있는
아버지에게 뿌리보다 깊고 질긴
심장을 밀어 넣었다
-「겨울 유산」 전문
본의 아니게 역사의 가해자가 된 아버지의 삶을 조명하고, 아버지의 죄책감을 이해하려는 가슴 아픈 시입니다. 어떤 재난이나 비극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삶은 순탄할 수 없습니다. 유럽 각국과 소련, 미국에서 망명 작가로 떠돌던 브레히트는 동독에서 국민작가 대접을 받지만 56세의 이른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와 유대인 학살을 피한 파울 첼란도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시나 소설과 연극은 그들의 죄책감을 덜어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죄책감은 기억으로 남아 밤마다 아버지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1980년 5월 광주시민을 죽이거나 상해를 준 무기로 사용된 충정봉이 아버지의 부대에서 만들어져 나간 것이라서, 아버지는 그때 시민들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오랜 겨울을 살고 있는 아버지’, ‘숨는데 자주 실패하는 아버지’, ‘물려줄 것이 겨울밖에 없어서 미안하다’라는 “아버지에게 뿌리보다 깊고 질진//심장을 밀어 넣었다”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물렁하고 빈틈 많은 내 뼈 안에서 날마다/아버지 안의 죽음이 울고 있다//죽은 아버지가 울 때마다 뼈가 욱신거린다”-「뼈에 사무친 말」 부분, “행방을 알 수 없는 난파선과/한밤중 사라진 방망이들에 대해//고백하고 나면//------//유실된 소리들을 담은 밤이 시리다”-「고백」 부분. ‘어른이 되려면 슬픔을 먼저 이해해야 했다’는 시인의 말이 온전히 와 닿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나이를 먹는 일은 진화의 일종일까요? 자연스러운 인식의 확장일까요? 이번 시집에서 ‘아버지’라는 말은 구십여 차례 등장합니다. 그만큼 이 시집에서 노래하는 ‘나’의 기억에 ‘아버지’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천적에게 들키지 않으려 아르마딜로처럼//몸을 웅크린 아버지”-「열쇠」 부분. “아버지 안에서 오랜 비밀이 파닥거렸다”-「낚시」 부분. “나를 기다리다 빈 병처럼 누워/쓸쓸히 잠든 아버지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심부름」 부분. 그 아버지를 열고자 하는 눈물겹고 처절한 분투입니다. “그늘 안에만 웅크려 있던/아버지가 밖으로 나오는 때”//⸳⸳⸳//다시 아버지가 그늘로 들어가 버릴까 봐/나와 동생은 노래가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노래방」 부분, 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기억들도 많습니다. 낚시와 노래방을 자주 데리고 다녔고, “짜장면 비비는 법을 알려주었다//⸳⸳⸳//삶과 죽음 어느 한쪽으로도/치우치지 않아야 맛있다”-「왕자관」 부분.
3.
남평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추자
서둘러 한 사람이 다가와
묻는다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
상행입니까 하행입니까
다른 승객의 승하차를 살피는 기사 대신
내가 고작 알고 있는 단어 몇으로 알려주자
그는 조심스럽게 차에 올랐다
버스가 진월동으로 향하는 동안 그는
흔들리는 눈으로 자주 고개를 돌려
노선도를 살피고 이따금 내 쪽을 바라본다
그의 눈 안에 있는 도시도 따라서 흔들린다
버스는 대강의 짧막한 외국어로 길과 위치를
안내하고 있지만 나는 그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옆 집에 이사 온 지 삼 년이 된
네팔 부부도
저렇게 꼭 마음을 두지 못하고
흔들려서 매번 아침과 저녁을 태우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음식 냄새가 좋다고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어쩐지 오래 알고 지낸 것만 같은 사람들이
생각난다고 말해 줬는데
어느 사이에 간격이 넓어진 도시는
몇 마디 말로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서성이는 마음들이 모여 함께 밥을 먹고
흔들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한때 나를 살았던 도시가 흔들리면서
멀어지고 있다
-「도시6」-이주민 전문
표제시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가 시구 속에 나오는 시입니다. 이 시집에 나오는 지명은 굉장히 많습니다. 「이사」라는 시에서 보면, 광주, 벌교, 순천, 정읍, 인천, 의정부, 창원을 거쳐 다시 광주로 이사했다고 합니다. 시기동(전라북도 정읍시의 행정동), 의정부, 구월동(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있는 행정동), 가음정동(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의 행정동 및 법정동) 등, 여러 지명들의 기억을 소환하여 시를 씁니다. 아버지의 직업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국가의 명령에 따라 이동해야 하는 행정 공무원이 아니었을까요? 그도 아니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주였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아버지의 광주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광주로 돌아오지 않고 배회한 것일까요? 추정할 뿐입니다. 화자인 시인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는 우리 인간들은 모두 이주민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의 삶에 대하여 많은 의문과 생각을 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집을 자주 옮겨 다니게 된 이유를/알게 될수록 광주와의 거리가 좁혀졌다”-「이사」 부분. 2022년 기준으로 현재, 광주시 거주 외국인 주민은 4만여 명으로, 광주시 총 인구 144만여 명의 3%이며, 특히 고려인 동포가 광산구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우리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외국인들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나주에 자리한 남평 정류장에서 광주 진월동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한 외국인을 바라보며 “그가 마음을/놓지 못하고”있음을 짐작합니다. 자연스레 “이사 온 지 삼 년”되었으나 아직 “마음을 주지 못하고 흔들려서 매번” 밥을 태우곤 하는 옆 집 ‘네팔 부부’를 떠올리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흔들리는 마음으로 여러 도시에서 살아왔을 시인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서성이고’, ‘흔들리는‘, ’흔들리면서’, ‘멀어지는’ 도시를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의 한 속성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성이는 마음들이 모여 함께 밥을 먹고/흔들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한때 나를 살았던 도시가 흔들리면서/멀어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 시인의 낙관적이고 따뜻한 심성이 보입니다.
4.
이슥한 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민달팽이 하나와 마주쳤다 달팽이는 거울에 비친 내 표정을 읽고 그 뒤에 가려진 하루의 무게를 온 몸으로 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나를 다 읽지 못했다 십오 층을 출발한 엘리베이터가 일 층에 다다르고 나는 그 앞에서 더는 얼굴을 펼쳐 놓을 수 없었다 ······ ······ 얼굴의 무게에도 힘겨워 곧잘 주저앉기 일쑤인 내가 도리어 그에게 머물렀었나 문득 등이 무거워 거울을 보니 누군가 두고 간 표정 하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민달팽이」 부분 |
어느날 저녁 엘리베이터를 탄 시인은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에 붙어 있는 민달팽이를 만났습니다. 민달팽이는 흔히 소망의 집 한 채 짊어지고 세상 밑바닥을 기어가는 소시민의 삶을 은유하기도 합니다. ‘거울에 비친 내 표정을 읽고’, ‘하루의 무게를 온 몸으로 재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얼굴의 무게에도 힘겨워/곧잘 주저앉기 일쑤인” 시인 자신이 달팽이에게서 위안을 얻었을까요? 자신의 삶을 시적 대상인 민달팽이를 통해서 관조화하고 자기화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좋은 시란 무엇인가요? 그냥 가버리는 줄 알았는데 살짝 뒤돌아보는 느낌이 있다면 좋은 시입니다. “누군가 두고 간/표정 하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는 마지막 행이 그런 느낌의 뛰어난 시입니다. 시인은 길을 걷다가 만난 죽은 매미와 전복된 화물차를 보고 시적 대상으로 삼아 자신과 인간 전체의 삶을 투영하여 노래하기도 합니다. “모든 그늘은 누군가 울다 간 흔적/내 안에도 그늘이 자라고 있었다”-「매미」 부분. “화물차는 넘어져 있고/만취한 도로가 맥주 거품 속으로/비틀거리며 걸어간다//운전자가 전복처럼 엎드려 있다”-「전복」 부분. 「녹지 않는 눈사람」, 「주전부리」,「아버지는 뭐 하시니」 등의 시를 읽으면 시인 가족의 슬픔에 동화되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늑막염」, 「빵 만드는 시간」, 「주머니에 씨앗을」, 「평화이발관 앞을 지나며」 등의 시에서는 잘못된 사회의 부정과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현실 참여 의식이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젊은 시인도 나이를 먹습니다. 이 시집을 통해 오성인 시인이 아버지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고 더 큰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소멸 위기에 놓인 도시를 “서성이는 마음들이 모여 함께 밥을 먹고/흔들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각자도생’의 삶이 아닌 서로 기대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는 시인을 응원합니다.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고 치열하게 노래하는 그의 새로운 시(詩) 정신을 기대합니다.
시인 김완(金完) 약력
광주출생
2009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지상의 말들』,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 『너덜겅 편지』 등이 있다.
2018년 제4회 송수권 시문학상 남도시인상 수상
(사)광주평화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