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 취임사에서 지난 10년 ‘이념의 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실용의 시대’로 나가겠다고 선언하였다. 건국 60년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기반으로 선진화를 이루어야 하며, 이제는 ‘투쟁의 시대’를 끝내고 ‘동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말하는 이념의 시대=투쟁의 시대 10년이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집권기를 가리킨다.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수립한 공로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파악하는 대통령의 역사인식은 수구세력의 역사관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이 대통령은 건국 60년의 정신적 자산을 계승하여 선진화를 이룩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는 건국(이승만 대통령)→산업화(박정희 대통령)→민주화(노태우 대통령)→선진화(이명박 대통령)의 역사정식을 세우겠다는 선언이다.
지난 4년간의 흐름을 되짚어 보면, 이 대통령이 말하는 선진화 시대의 동반자란 친일·독재세력이었음이 드러난다. 2008년 5월 29일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당시 국회부의장)이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to the core) 친미-친일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는 미 외교전문으로 미루어 볼 때, 친일·독재세력과의 동반과 상생이야말로 어쩌면 이명박 정부의 ‘맨얼굴’인지도 모르겠다.
2.
‘뼛속까지 친일·친미’인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친일·독재를 찬양하는 각종 기념사업이 특수(特需)를 누리고 있다. 친일파후예들과 독재부역세력들에 의한 친일군인과 독재자를 기리는 기념물 건립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먼저 친일군인 기념물건립 움직임을 보면, 올 6월 25일 백선엽(1920∼)을 기리는 '6.25전쟁 참전기념비'가 민주당 출신인 이인재 시장에 의해 파주에 세워졌다. 백선엽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에, 한나라당도 아닌 민주당 출신 시장이, 사비도 아닌 공금으로 친일군인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
백선엽은 일제강점기 항일독립군을 토벌하고 무고한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하여 살인귀(殺人鬼)부대로 악명을 떨친 간도특설대 출신 장교이다. “조선독립군은 조선인이 토벌해야 한다” 일제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에 따라 결성된 간도특설대가 주 공격목표로 삼았던 세력은 중국 동북지역 항일연합부대인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이었다. 동북항일연군은 한국광복군, 조선의용군과 더불어 조선인 3대 무장 세력이었다. 동북항일연군은 만주국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 전투 및 선전활동에 주력하였으며, 국내 진공작전을 펼쳐 평안북도 일대에서 크고 작은 전투를 전개하였다. 1939년 창설된 간도특설대가 7년여 동안 관동군 최전선에서 잔혹한 토벌진압을 하면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연변 작가 류연산이 쓴 책 『일송정에는 선구자가 없다』라는 책에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
○야간토벌 작전 중 산나물을 뜯는 이들을 잡아다가 불태워 죽임 ○간도특설대의 충혼비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전사한 항일부대원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냄 ○포로로 잡힌 항일부대원을 일본도로 머리를 자르고 잘린 머리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음 ○항일부대원을 숨겨준 마을 원로를 살해해 그의 머리를 삶은 후 두개골을 장식품으로 만듦
지난 5월 17일 거제포로수용소 유적지에는 간도특설대의 핵심 장교요원이었던 김백일(1917∼1951)을 ‘6.25흥남철수작전의 영웅’으로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2009년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가 “김백일은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군복을 입고 독립군 토벌과 민간인 탄압에 종사하는 등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여 훈장까지 받은 악질적인 반민족행위자”라고 결정내린 바 있다. 위원회의 결정을 근거로 거제 시민단체와 시의회가 동상철거를 요청하자, ‘김백일기념사업회(사업회)’ 측은 언론인과 학계 인사를 고소·고발하는 것으로 맞대응하였다. 이른바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노린 것이다. 사업회 측 변론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정원은 한때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렸던 이건개 변호사가 대표로 있고, 고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의 부인(서향희)이 변호사로 참여하고 있는 법률회사이다. 바야흐로 ‘뼛속까지 친일·친미’인 이 대통령의 ‘동반의 시대’ 주창에 화답이라도 하듯 전국 방방곡곡에서 친일군인이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3.
|
|
|
▲ 지난 8월 25일 서울 남산 기슭(장충동)에 있는 한국자유총연맹 광장에 세워진 이승만 초대 대통령 동상. [통일뉴스 자료사진] | 뒤질세라 독재자를 기리는 동상도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지난 8월 25일 서울 남산 기슭(장충동)에 있는 한국자유총연맹 광장에 이승만 초대 대통령 동상이 세워졌다. 남산에 있던 초대형 동상이 4.19혁명 후 철거된 지 꼭 51년만의 일로, 이화장, 배재고 교정, 국회 본관 중앙홀, 청남대 광장 등에 이어 전국에서 다섯 번째 세워지는 동상이다. 이에 앞서 경기도지사 김문수와 수구언론인 조갑제는 공공연하게 광화문 대로에 이승만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떠들어대고 전 서울시장 오세훈도 서울 중심에 건립해야 한다고 맞장구쳤다. 경찰은 동상을 보호하기 위해 자유총연맹에 전·의경 1개 소대를 배치해 순찰을 돌고 있다. 4·19민주혁명회와 4·19혁명희생자유족회 등 4·19 관련 단체와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등이 자유총연맹 정문 앞에서 동상제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당장 철거하지 않으면 4·19혁명 때처럼 동상을 끌어 내리겠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지난 6월초에는 부산 서구 부민동 ‘임시수도기념거리’의 임시수도기념관 앞에 세워진 이승만동상이 붉은 페인트 세례를 받아 서구청에 의해 자진 철거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이승만은 독재의 과오가 많지만 건국·호국의 공적이 더 많은 역사적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 피기를 바라는 것보다 어렵다”고까지 하였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라고 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반민주·반민족적인 범죄를 저지른 독재자임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저질렀던 무수한 오류와 실정 가운데 대표적인 것만을 들면, (1)일제강점기에 국제연맹하의 위임통치를 청원하면서 무력투쟁을 배격하였으며 (2)해방 후에 단독정부를 수립하여 민족분단에 책임이 있으며 (3)국민보도연맹, 국민방위군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등 수 많은 민간인학살을 자행하였으며 (4)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등으로 헌정을 문란한 점 등이 있다. 이승만 독재정권은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4.19 혁명운동에 맞서 총칼을 앞세운 무력으로 탄압하고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하였으나, 결국 4월 26일 결국 하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사퇴 성명서를 발표하고 경무대를 나와 혜화동의 이화장으로 가는 날 아침에 시인 김수영은 혁명의 감동을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우선 그 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그 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 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웅장한 기념탑을 세우자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
11월 1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생일을 맞아 대구 구미 생가에 동상이 세워졌으며, 그를 기념하는 도서관도 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박정희는 일제 강점기에는 괴뢰국 만주국 장교로 복무한 친일파였으며, 시민들의 4·19혁명을 군사쿠데타로 짓밟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유신독재로 인권을 유린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한 독재자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헌법을 중단시키고 국회를 해산한 가운데에 계엄령 상태에서 1972년에 제정한 유신헌법은 건국 이래 최악의 헌법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통해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장악한 사실상의 초헌법적인 통합적 국가원수의 지위를 확보하였다. 게다가 유신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의 제정이나 긴급조치를 헌법적으로 인정하여 합법적으로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었다. 권력분립의 파괴를 통해 유신체제는 법치(法治)가 전혀 아닌 인치(人治)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헌법과 법률은 존재하나 입헌주의, 헌정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던 것이다.
4.
이명박정부 들어 친일·독재미화 사업이 활성화 된 까닭은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과 성원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한국방송(KBS)은 친일군인 백선엽을 ‘6·25전쟁영웅’으로 추앙하는 특집다큐멘터리를 지난 6월 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2부작으로 방영했다. 또한 KBS는 친일파 청산을 극력 저지하였으며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등으로 헌정을 유린한 독재자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미화하는 다큐멘터리를 9월 28일부터 30일까지 3부작으로 방영했다. 이승만 동상이 남산에 건립되자 수구언론은 하나같이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조선일보는 기사 제목을 ‘미 대사는 물병 세례에도 왔는데 한국정부에선 한명도 오지 않았다’라고 뽑으며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질책했으며,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동상건립을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을 역사적으로 재평가하는 노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추켜세웠고, 동아일보도 <51년 만에 남산 돌아온 ‘이승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이승만 동상 건립이 더 일찍이 이루어졌어야 하는 양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KBS와 수구언론의 이승만 찬양은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 뉴라이트 등 수구진영이 진행해온 ‘역사 흔들기’의 연장선에 있다. 이들이 구조적이고 조직적으로 자행하고 있는 역사왜곡의 대표적인 사례가 교과서 개악이다. 지난 11월 8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발표하여, 2013년부터 교과서에서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중심 5·16 군사정변’, ‘5·18 민주화운동’, ‘전두환 신군부 정권’ 등 독재와 민주화 관련 주요 내용들을 모두 삭제하도록 하였다. 친일파 청산 문제도 빠진다. 또한 지금까지 사용해온 ‘민주주의’라는 용어 대신, 독재를 정당화하고 반공주의와 같은 의미로 통용되어 온 ‘자유민주주의’를 쓰도록 하였다. 민주주의를 축소·왜곡하고 친일·독재를 찬양함으로써, 기억의 공공화와 역사정의의 정식화를 파괴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공영방송의 노골적인 친일·독재 찬양, 수구언론들의 낡은 이데올로기 공세,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친일군인 동상건립,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주장, 민주적 절차와 상식을 무시한 교과서 개악 등은 군사독재 시절에도 찾아보기 힘든 일들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수구언론을 중심으로 한 거대종편의 등장으로 더욱 악화될 언론환경을 감안할 때, 궁지에 몰린 친일·반민주세력들이 발악에 가까운 역사조작을 감행할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동아일보의 종편이 종편 개국 특집으로 내년 3·1절을 기해 박정희를 다룬 50부작 드라마를 방영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것이 그 단적인 사례이다.
이런 작업들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노림수는 분명하다. 자신들의 뿌리인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주고,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정당화함으로써 지금의 기득권 체제를 지속·강화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태는 우리 사회가 피 흘리며 쟁취해 키워온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행위이자 헌법정신 위배가 아닐 수 없다.
5.
정의와 평화, 평등과 복지를 향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역하는 수구세력의 반동적인 역사왜곡은 ‘범죄의 재구성’이다.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수구세력과 맞서기 위해서는 ‘헌법적 가치’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헌법이란 정치적 공동체의 존재형태와 기본적 가치질서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법규범적인 논리체계로 정립한 국가의 기본법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제시하는 역사적 규범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함으로써 친일 청산의 과제를 제시하였다. 둘째, 이승만 독재의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함으로써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와 독재에 대한 국민적 저항권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군사쿠데타 및 독재를 찬양하는 행위는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헌정문란’ 행위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헌법의 내용을 착실히 채워가는 과정을 통해 더욱 풍부해지고 튼튼해진다.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제헌헌법에서부터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기 위해 사회복지국가적 헌법을 지향하고 있다.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사회적 약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인 것이다. 헌법에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가치가 담겨져 있다. 먼저, 헌법은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국가로 하여금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움으로써 인권 보장이 최우선적 가치임을 천명하고 있다. 다음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지향함으로써 균등주의 또한 최우선적 가치임을 명령하고 있다. 또한, 반제국주의·반독재의 역사적 경험을 계승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아울러,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고자 하는 평화주의를 지향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국민들에게 부여한 자유, 평등, 인권, 민주, 평화 등의 가치가 현실사회에서 실효성을 발휘하고, 헌법이 실질적인 ‘권리장전’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주권자인 국민이 참여와 연대를 통해 권리방어에 적극 나서야 한다. 2012년을 헌법적 가치가 사회규범으로 작동하여 친일·독재 잔재가 청산되고 역사정의가 실현되는 민주사회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전국의 민주화운동단체들과 학술단체, 교육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굳건한 연대조직을 결성하였다. 지난 11월 14일 출범한 역사정의실천연대에는 12월 1일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등 제안 3단체를 비롯하여 462개 단체가 가입하여 활동 중이다. |
|
|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기념관을 만들고 동상을 세우는 것은 현대사에 대한 한국인의 역사의식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2011.8.26.)라며 동상건립을 반겼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불법적인 개헌을 통해 12년간 장기 집권하다가 국민의 저항에 의해 쫓겨난 독재자일 따름이다. 이승만 독재에 의해 헌정질서가 파괴되는 것을 보고, 1950년대 영국의 한 언론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 피기를 바라는 것보다 어렵다”고까지 하였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라고 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반민주·반민족적인 범죄를 저지른 독재자임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저질렀던 무수한 오류와 실정 가운데 대표적인 것만을 들면, (1)일제강점기에 국제연맹하의 위임통치를 청원하면서 무력투쟁을 배격하였으며 (2)해방 후에 단독정부를 수립하여 민족분단에 책임이 있으며 (3)국민보도연맹, 국민방위군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등 수 많은 민간인학살을 자행하였으며 (4)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등으로 헌정을 문란한 점 등이 있다. 이승만 독재정권은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4.19 혁명운동에 맞서 총칼을 앞세운 무력으로 탄압하고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하였으나, 결국 4월 26일 결국 하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사퇴 성명서를 발표하고 경무대를 나와 혜화동의 이화장으로 가는 날 아침에 시인 김수영은 혁명의 감동을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우선 그 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그 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 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웅장한 기념탑을 세우자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
11월 1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생일을 맞아 대구 구미 생가에 동상이 세워졌으며, 그를 기념하는 도서관도 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박정희는 일제 강점기에는 괴뢰국 만주국 장교로 복무한 친일파였으며, 시민들의 4·19혁명을 군사쿠데타로 짓밟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유신독재로 인권을 유린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한 독재자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헌법을 중단시키고 국회를 해산한 가운데에 계엄령 상태에서 1972년에 제정한 유신헌법은 건국 이래 최악의 헌법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통해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장악한 사실상의 초헌법적인 통합적 국가원수의 지위를 확보하였다. 게다가 유신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의 제정이나 긴급조치를 헌법적으로 인정하여 합법적으로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었다. 권력분립의 파괴를 통해 유신체제는 법치(法治)가 전혀 아닌 인치(人治)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헌법과 법률은 존재하나 입헌주의, 헌정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던 것이다.
4.
이명박정부 들어 친일·독재미화 사업이 활성화 된 까닭은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과 성원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한국방송(KBS)은 친일군인 백선엽을 ‘6·25전쟁영웅’으로 추앙하는 특집다큐멘터리를 지난 6월 25일과 26일 이틀에 걸쳐 2부작으로 방영했다. 또한 KBS는 친일파 청산을 극력 저지하였으며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등으로 헌정을 유린한 독재자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미화하는 다큐멘터리를 9월 28일부터 30일까지 3부작으로 방영했다. 이승만 동상이 남산에 건립되자 수구언론은 하나같이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조선일보는 기사 제목을 ‘미 대사는 물병 세례에도 왔는데 한국정부에선 한명도 오지 않았다’라고 뽑으며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질책했으며,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동상건립을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을 역사적으로 재평가하는 노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추켜세웠고, 동아일보도 <51년 만에 남산 돌아온 ‘이승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이승만 동상 건립이 더 일찍이 이루어졌어야 하는 양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KBS와 수구언론의 이승만 찬양은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 뉴라이트 등 수구진영이 진행해온 ‘역사 흔들기’의 연장선에 있다. 이들이 구조적이고 조직적으로 자행하고 있는 역사왜곡의 대표적인 사례가 교과서 개악이다. 지난 11월 8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발표하여, 2013년부터 교과서에서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중심 5·16 군사정변’, ‘5·18 민주화운동’, ‘전두환 신군부 정권’ 등 독재와 민주화 관련 주요 내용들을 모두 삭제하도록 하였다. 친일파 청산 문제도 빠진다. 또한 지금까지 사용해온 ‘민주주의’라는 용어 대신, 독재를 정당화하고 반공주의와 같은 의미로 통용되어 온 ‘자유민주주의’를 쓰도록 하였다. 민주주의를 축소·왜곡하고 친일·독재를 찬양함으로써, 기억의 공공화와 역사정의의 정식화를 파괴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공영방송의 노골적인 친일·독재 찬양, 수구언론들의 낡은 이데올로기 공세,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친일군인 동상건립,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주장, 민주적 절차와 상식을 무시한 교과서 개악 등은 군사독재 시절에도 찾아보기 힘든 일들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수구언론을 중심으로 한 거대종편의 등장으로 더욱 악화될 언론환경을 감안할 때, 궁지에 몰린 친일·반민주세력들이 발악에 가까운 역사조작을 감행할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동아일보의 종편이 종편 개국 특집으로 내년 3·1절을 기해 박정희를 다룬 50부작 드라마를 방영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것이 그 단적인 사례이다.
이런 작업들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노림수는 분명하다. 자신들의 뿌리인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주고,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정당화함으로써 지금의 기득권 체제를 지속·강화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태는 우리 사회가 피 흘리며 쟁취해 키워온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행위이자 헌법정신 위배가 아닐 수 없다.
5.
정의와 평화, 평등과 복지를 향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역하는 수구세력의 반동적인 역사왜곡은 ‘범죄의 재구성’이다.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수구세력과 맞서기 위해서는 ‘헌법적 가치’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헌법이란 정치적 공동체의 존재형태와 기본적 가치질서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법규범적인 논리체계로 정립한 국가의 기본법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제시하는 역사적 규범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함으로써 친일 청산의 과제를 제시하였다. 둘째, 이승만 독재의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함으로써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와 독재에 대한 국민적 저항권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군사쿠데타 및 독재를 찬양하는 행위는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헌정문란’ 행위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헌법의 내용을 착실히 채워가는 과정을 통해 더욱 풍부해지고 튼튼해진다.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제헌헌법에서부터 자본주의의 폐해를 막기 위해 사회복지국가적 헌법을 지향하고 있다. 헌법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사회적 약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인 것이다. 헌법에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가치가 담겨져 있다. 먼저, 헌법은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국가로 하여금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움으로써 인권 보장이 최우선적 가치임을 천명하고 있다. 다음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지향함으로써 균등주의 또한 최우선적 가치임을 명령하고 있다. 또한, 반제국주의·반독재의 역사적 경험을 계승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아울러,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고자 하는 평화주의를 지향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국민들에게 부여한 자유, 평등, 인권, 민주, 평화 등의 가치가 현실사회에서 실효성을 발휘하고, 헌법이 실질적인 ‘권리장전’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주권자인 국민이 참여와 연대를 통해 권리방어에 적극 나서야 한다. 2012년을 헌법적 가치가 사회규범으로 작동하여 친일·독재 잔재가 청산되고 역사정의가 실현되는 민주사회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전국의 민주화운동단체들과 학술단체, 교육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굳건한 연대조직을 결성하였다. 지난 11월 14일 출범한 역사정의실천연대에는 12월 1일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등 제안 3단체를 비롯하여 462개 단체가 가입하여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