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막대기와 가로 막대기
글쓴이 노영임
영숙은 코가 매워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냥 어서 빨리 꿀꺽 목구멍으로 음식을 삼키고 눈물 쏙 한 뒤 그 순간을 견디는 수 밖에 없었다. 얼른 된장국을 마셨다. 살 것 같았다. “뭐지? 이번에도 나만 당한건가? 아, 이 세남자 증말~”
스시 일을 다니기 전부터도 양념 장어로 큰 접시 두 개 가득 만들어 놓으면 남편과 두 아들이 콩알 주워먹듯 게눈 감췄다.와사비 폭탄을 먹고 난 후 누가 괴로워하는지 보자 하고 따듯한 물로 와사비를 갓 개어 밥 위에 듬뿍 얹었다.
영숙의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한 접시가 다 비워가도 세 남자 중 어느 누구도 고통스럽게 미간을 찌푸리지 않았다. 여러 개 넣었는데 분명히 먹었는데 그 누구의 눈가에 눈물도 어리지않고 잘 들 꿀꺽 삼킨 것 같은데 오히려 영숙이 폭탄 중 하나를 입에 넣은 것이다.
이런 비슷한 일이 전에도 있었다. 인천의 놀이 동산에서 양탄자 놀이 기구를 온 가족이 탔다. 그 당시 첫째 아들은 초등 1,2 학년 정도 였고 둘째 아들은 유치원 다니는 나이였다. 앞으로 올라갈 때 “으악~” 뒤로 갈 때 “으악~” 영숙에게서만 비명이 나왔다. 옆을 보니 애들의 아빠도 큰 아들도 작은 아들도 그 시선이 비명을 지르는 영숙에게 무표정하게 향해 있었다. 그 시선들을 보면서도 그녀의 비명은 멈춰지지가 않았다. 그 때가 떠오르는 것이다.
영숙은 일요일에 일을 해야했다.
스시 매장은 일주일 내내 직원들이 돌아가며 쉴 틈 없이 관리되어져야 하기에 한달에 한 번쯤은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두 한국 여자들이 일하기 시작하면서 매주 일요일 일을 전담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들은 주일 성수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걸 생명처럼 지키려 하면 지키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하도록 된다는 것이다. 영숙도 교회를 일요일에는 더이상 나갈 수 없었고 수요일에 갔고 다른 직원들과 일을 해야했다.
일요일은 손님들이 몰려 다른 요일보다 바빴으나 일 자체보다도 ‘주일 성수’라는 법칙의 힘이 영숙의 마음을 눌렀다. 자신들이 빠져나가며 느끼는 희열이 그들 얼굴에서 보였고 둘이 뭉치는 수의 힘, 동료에 대한 경멸 같은 것도 영숙은 느끼는 듯 하였다.
사실 영숙은 그들이 일하기 시작했을 때 교인이라고 해서 내심 무척 반가웠다. 일하면서 일상을 나누고 서로의 처지를 알아가는 재미와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것을 기대했기에~
영숙도 자신이 처음 어떻게 해서 믿음이 생겼는지와 지금은 기도 가운데 가족의 회복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을 말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그들로부터 바랐다.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그 중 한명이 별러서 말하는 듯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캐나다 국세청에서 자기한테 조사가 나왔다 한다. 벌이에 비해 너무 많이 헌금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숙이 지금 가난한 것은 헌금이나 십일조를 안해서란다.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리면 부유해지고 언젠가는 그 댓가를 받게 되어 있으니 자신을 위해 헌금을 많이 드리라는 것이다. 영숙은 그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황당했다. 지난 이십여년간 나름 한때 십일조를 해왔고 늘 풍성한 헌금과 감사헌금과 심지어는 부흥회에서 반지빼서 드리니까 자식들이 공부도 잘하고 성공하더라는 부흥강사의 말에 반지까지 빼서 드린 적이 있지 않았던가~ 지금은 1500불 한달 임금 중 1200불 아파트 월세내고 출퇴근 기름값빼고 200불 갖고 네식구 먹고 살아야해서 제일 작은 지폐 5불씩밖에 못드리고 있는 처지였다. 그나마 가진 몇 푼 사라지면 굶든지 거리로 나앉아야 할 판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제일 싸고 질긴 고기 한 팩조차 들었다 놨다 하다가 “하나님, 저 이거 사고 싶은데 못사요. 저는 언제나 이렇게 값싼 팩조차 편하게 살 수가 있을까요?” 하면서 한숨 푹 쉬며 내려놓고 두부나 감자를 사다 최대한 맛을 내어 정성껏 요리하곤 했다. 나중에 남편이 정육 매장에 일하게 되면서 트리플 A 최상급 고기를 한팩씩 던져주면서 말하곤 한다. “네 기도 들으시고 하나님이 나를 푸줏간에서 일하게 하셨어”
영숙은 자신을 되돌아본다 “나 역시 하나님께 투자를 하고 거래를 하면서 교회에 가는 불쏘시개 열정으로 삼은 것 아니었을까?”
“하나님, 나의 아버지 ,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나를 도구로 써주세요. 하나님 일 더 잘 하려면 이것 필요해요 저것도 주세요!”
하나님 일은 코딱지만큼 하고선 자랑은 퍼하고 잘난 척 하던 내 모습이 보인다. 교회 참석에 소홀하거나 안믿는 사람을 볼 때도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고 속으로는 우월감을 가지기도 했다. 부모잃은 조카들을 돌봐주면서도 사실은 내 만족으로 값비싼 장식품삼은 건 아니었을까?
그래도 대놓고 저렇게 말을 하다니… 그 천박함에 어이가 없었다.
여러 불운이 겹치면서 가게문을 닫고 파산절차를 밟으면서 캘거리 도시로 나와 스시롤 메이커로 취업할 때의 자신감과 하나님께 의지하는 영숙의 마음이 슬픔으로 무너진다.남편이 몰던 낡은 밴을 몰면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급히 휴지를 찾아 더듬는다. 누군가가 보는 건 아냐? 아니다. 일요일 도로는 비교적 한가하다.
방 두 개 아파트에 방 하나는 영숙 부부가 쓰고 방 하나는 큰 아들이 거실에 침대놓고 작은 아들이 자고 있다. 영숙의 공간은 침대 벽 쪽 작은 공간 뿐.
조용히 창고 방에 들어가 앉으니 기도도 나오지않고 한숨만 나오는데 찬송을 부르다가 울음으로 바뀌며 주방으로 가서 한 냄비 가득 음식을 해놓고 강아지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간다.
남편이 이야기를 하자고 부른다. 두 아들은 외출 중인가 보다.
“내가 보니 두 아들에게서는 바랄 것이 없다. 나도 이렇게 침대에 누워지내고… 너한테 미안하다. 그러니 너는 네 인생을 찾아가라. 한국의 어머니께 가도 좋다. 나는 알래스카로 혼자 떠날까 한다.”
“당신 동료 중 하나가 캐나다 이민왔다가 거기가서 죽었다며 스스로…”
“그래, 나도 그러고 싶다.”
영숙은 더이상 말을 잇지못하고 오열한다. 그러다 어린 아이같이 소리친다.
“싫어요, 난 안가요. 당신도 가지말아요. 난 우리 가족을 너무나 사랑해요. 떠날 수 없어요. 내가 있을 곳은 여기 뿐이에요.”
남편이 다시 일을 다니지 못할 지라도 끝까지 함께 한다고 영숙은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닦는다.
팔꿈치 인대가 나가니 스테로이드 주사를 한 방 맞았고 거짓말같이 덜 아팠다. 오히려 오십견 어깨가 아플 뿐이었다.
스시를 기계처럼 말고 무거운 걸 들고 냉장고 앞에서 일하다보니 냉기가 심해 여름에도 두꺼운 유니폼 안에 내복을 입고 일하다 점심 먹을 시간을 만들려 무리했다. 캐나다는 산업재해 보장이 잘 되는 좋은 나라이다. 영숙은 한국도 어서 그런 제도가 더 발전해야한다고 생각해본다.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목표량을 채우는 버마 난민 직원들 속에서 영숙이 점심을 먹으면 그들은 봐준다는 식이었고 당연한 권리가 특혜처럼 되어 그들의 미워하는 감정까지 느끼게 되었고 무례함까지도 감수해야했다. 그러나 영숙이 더 빨리 많이 스시롤을 만들어 그들이 점심먹을 시간적 여유를 벌어주니 그들이 더 친한 척 했고 입지가 편해졌다. 그러던 중 다른 지점으로 가서 한국인 동료들을 만나 기뻤다가 더 큰 아픔을 당하게 된 것이다.
겸손의 왕 예수님이 좋아서 믿고 교회도 다니는 영숙은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저들이 다니는 교회 의 목사한테 항의 편지를 날려버려?
만일 그들이 “우리만 일요일에 교회가서 좀 미안스럽네. 우리 대신 일요일에 일해주어 고마워요. 하고 한마디만 해도 서럽지는 않을텐데… 나도 십일조 헌금 했으나 남편의 약함과 아픔을 감싸 안다가 파산해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이 온건데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 어쩌 저렇게 정죄판단하는가? 아픈 남편 보살피며 순종하는게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는 일이 아닐까? 왜 저들은 주일성수, 십일조를 가지고 다른 자매를 경멸하며 으시대며 상처를 주는 것일까? 모두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온 지성인이라 할 만한 사람들인데 왜 저렇게 외곬수이고 잘난 척을 할까? 교회 목사들이 어떻게 가르치길래 이토록 천박하단 말일가? 그들은 마치 십자가에서 하나님인 세로 막대기만 붙들고 있을 뿐 이웃이라는 가로 막대기는 떼어서 불쏘시개로 쓴 것 같았다. 그래서 영숙은 가로 막대기를 자신만이라도 찾아다 붙여봐야겠다고 결심을 한다.
어느 주말, 남편이 두 아들을 불러 엄격한 목소리로 선포한다.
“엄마가 혼자 감당하는 거 불쌍하지도 않냐? 팔꿈치 부상으로 치료받으면서 일하는 거 안보이냐? 엄마가 시장봐오면 4층까지 계단으로 나르는 거 도와드려라. 아침 저녁 샤워해서 쌓인 너희들의 옷들도 각자가 지하 공동 세탁장에 가서 세탁해서 입어라. 돌아가며 설겆이하고 쓰레기도 내다 버려라. 강아지도 산책시켜라. 제때 수업들으러 가서 저녁까지 공부하고 좋은 학점을 받아라.”
“내 어깨 위의 무거운 짐들을 하나씩 내려놓아 주셔요. 제가 잔소리하고 화내지않아도 가족들이 스스로 자신의 일들을 하고 귀한 시간들을 부지런히 살게 해주세요!” 하는 영숙의 기도 소리를 드디어 들으셨나보다.
남편은 취직해서 일하고 두 아들도 학교로 갔다. 영숙은 일 잘하고 씩씩한 수미와 일하게 되었다.
어느 날 수미는 연어회를 썰면서 옆에서 나란히 서서 일하느라 손이 바쁜 영숙에게 말한다. “나 같으면 그런데 가서 일하겠다”
“그런데? 어디?”
“온라인 싸이트에 데이케어 선생 구한다던데… 어제 구인광고 떴던데…”
“오, 그래? 그럼 연락해서 알아볼까?”
“그렇게 해봐요”
영숙은 일을 마무리하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어서 일을 끝내고 전화해서 인터뷰 약속을 잡아봐야지, 장소가 너무 멀면 어쩌지?”
영숙은 화통하고 솔직한 데이케어선테 원장을 만나 일하는 경험을 점차 늘려나갔고 다른 더 크고 유명한 센터로 가서 일하면서 수미도 선생으로 일하도록 하여 같이 일하게 된다. 토요일과 일요일 쉬는 직장이라 일요일에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갈 수 있었고 “엄마, 이젠 공부가 재미있어요’ 하는 아들들의 고백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노숙자를 위한 도움센터 앞에서 뜨거운 치킨 수프를 끓여가서 퍼주면서 영숙은 생각한다.
“ 그래, 살면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영하 15도 이하 발을 동동 구르는 추위에 음식을 실컷 나눠주는 이런 기회는 얼마나 나에게 고마운가 ?”
길거리 위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그들을 보며 “ 나도 하마터면 길바닥에 나앉을 뻔 했지. 저들은 나랑 다르지않아. 나도 저들과 다른 게 없어. 사람의 영혼은 한 명 한 명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어떻게 24시간을 거리에서 보내지?”
물론 너무 추울 때는 노숙자 센터 안에서 식사도 제공되고 잠자리도 제공된다고 하지만 누구의 속박도 싫거나 일하는 능력을 잃었거나 마약과 술에 중독된 사람들은 도시 중심가의 빌딩 숲 이곳 저곳에 모여앉아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한 그릇 음식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아한다. 기도해준다고 하면 “나보다 내 형제를 위해 가족을 위해 기도해줘요” 하면서 이름을 알려준다. 영숙은 가로 막대기를 찾은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낀다.
“내가 옳았어. 하나님은 모든 걸 창조하시고 아무 부족함이 없는 분이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 아셔, 내 모든 기본적인 필요도…”
형편이 어려울 때 십일조 헌금 못내도 모든 걸 창조하시는 부유하신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시다. 주일 성수 못해도 다른 요일에 가거나 집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해도 창고 벽에 붙여놓은 기도제목을 다 이루어주신다.
남편과 성경을 소리내어 읽고 누룽밥을 김치랑 먹어도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으면서 먹고 두 아들은 대학을 졸업해서 독립해 나가 살고 있다. 둘째 아들은 착하고 예쁜 며느리와 어여뿐 손녀를 기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영숙은 세상 사람들에게 아니, 믿음을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확성기를 들고 외치고 싶다. “창조주 신은 우리 인간을 사랑으로 만드셨다. 주일 성수, 십일조 같은 개 소리 하지 말고 하나님을 자기 성공 위한 들러리로 이용해처먹지말고 불법을 저지르지 말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라~!
세로 막대기들고 이웃을 때리지말고 가로 막대기를 찾아 붙여라 겸손과 섬김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