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식구들께
인천작가회의 지회장인 소설가 유채림입니다.
아내가 운영해온 식당 두리반이 지난해 12월 24일 오후, 강제철거당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철거현장인 두리반에서 지금껏 농성중이거든요.
그동안 인천작가회의 회원들과 모교 민주동문회 식구들의 전폭적 지원 속에서 농성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거대한 세력과 싸우고 있자니 힘에 부칩니다. 특히 언제 들어낼지 모를 위기감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이 심합니다. 소설가 유채림이라는 개인을 넘어, 영세세입자 모두에게 절실한 세입자보호법안 상정을 목표로 한국작가회의가 싸워준다면 더없이 고맙겠습니다.
다음은 두리반 사태 일지와 현재 상황입니다.
두리반 사태
2005년 3월, 동교동167번지(홍대입구역 4번 출구로 나와 전방 70미터 지점)에 있는 두리반 식당 인수.
2007년 여름부터 동교동 167번지 일대에 인천공항행 철도역사가 들어선다는 얘기가 돌더니, 그해 12월 명도소송장 날아옴. 영업을 시작한 지 2년 10개월만임. 시행사 한국토지신탁이 평당 800만원 하던 땅을 평당 8,000만원에 매입한 사실을 뒤늦게 세입자들 알게 됨.
2008년 3월부터 11세대 상가세입자가 변호사를 선임하여 시행사인 한국토지신탁의 명도소송에 맞서 법정싸움 시작. 세입자 측 변호사는 임대차보호법을 들어 상가세입자들의 법적 보호 역설. 한국토지신탁 측 변호사 역시 예외조항을 들어 임대차보호법으로 맞섬. 즉 재개발, 재건축, 지구단위계획의 경우 상가세입자를 보호할 의무사항이 없다는 예외조항으로 보상 의무 없음을 역설.
2008년 6월, 1심에서 11세대 상가세입자 패소. 라틴덴스학원을 제외한 10세대 항소. 라틴덴스학원은 이때부터 한국토지신탁의 용역들에게 시달리기 시작하여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음. 시설투자비, 보증금, 이사비용조차 못 받고 맨손으로 나감.
2009년 5월, 10세대 상가세입자들 항소심에서 패소. 이때부터 시행사 한국토지신탁과 시공사 GS건설의 용역들이 상가마다 돌며, 이사비용 300만원, 100만원, 70만원을 얘기하면서 상가세입자들을 몰아세우기 시작함.
2009년 6월부터 세입자들 현수막 내걸고 공동대처하기 시작함. 3개월가량 잠잠하던 용역들이 다시 나타나 재협상을 원하면 개별적으로 전화하라고 통보함. 두리반을 제외한 모든 상가 전화협상 시작.
2009년 9월, 도장 찍지 않으면 들어낼 것이라는 협박에 시달려 세입자들 줄줄이 도장을 찍기 시작함. 이발소 900만원, 신발가게 700만원, 단란주점 1,000만원, 세입자대책회장인 후닥식당은 2,000만원 등.
2009년 11월, 마지막 남은 두리반으로 용역 대표 찾아옴. 두리반은 현재의 반 만한 가게라도 얻어주면 나가겠다고 함. 용역 대표는 이사비용 300만원 외에는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나감. 이미 나간 상가에 비해 3배, 혹은 6배 이상 되는 두리반과는 애초 협상할 의지가 없었음을 시인한 셈.
2009년 12월 24일, 한국토지신탁 측 용역 30여 명이 들이닥쳐 유채림의 아내와 주방장, 주방보조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집기를 들어내기 시작. 뒤늦게 유채림 달려왔으나 이미 상황종료. 그때가 오후 6시경. 용역들 가게에 철판까지 둘러친 뒤 철수함.
2009년 12월 26일 새벽2시 유채림, 아내, 모교 민주동문회 식구들이 철판 뜯고 두리반 안으로 들어와 농성을 시작함. 당일 오후 2시경 인천작가회의 이사들이 찾아와 지지농성을 벌이기 시작. 이때부터 인천작가회의 식구들과 모교 동문들이 돌아가며 번을 서주기 시작.
2009년 12월 28일, 인천작가회의 ‘소설가 유채림의 삶터, 두리반 식당을 빼앗지 말라’는 성명서 발표.
2009년 1월 19일 현재 25일째 농성 중.
두리반의 현재 상황
언제 들어낼지 모를 긴장 속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음.
그동안 한겨레신문 1월 4일, 1월 8일, 1월 14일 두리반 관련기사 나옴
시사IN에 두리반 관련기사 나옴(1월 11일)
KBS1 취재파일 두리반 사태 보도(1월 17일)
CBS 밤 9시 40분 뉴스에서 두리반 사태 보도(1월 18일)
도와주시는 분들: 인천작가회의, 유채림의 모교 민주동문회, 용산참사 현장에서 매주 목요일 예배를 드려온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 민노당 마포지구당, 진보신당 마포지구당.
그러나 피로가 쌓이면서 하루하루가 버거움. 한국작가회의 명의의 중앙지원이 절실할 때임. 1차적으로 성명서 지원이 있다면 마포경찰서와 마포구청에 거대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임. 마찬가지로 시행사인 한국토지신탁과 시공사인 GS건설에도 긴장을 불러일으켜 용역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도록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임.
작게는 두리반을 살려내기 위한 싸움이지만, 크게는 영세한 세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취지로 한국작가회의가 충분히 나서줄 만하다고 봄.
한국작가회의의 지원이 빠를수록 좋음.
다음은 한겨레신문 1월 14일 ‘왜냐면’에 발표한 유채림의 글
‘아내의 우물’ 두리반
영상 63도, 대한민국은 사막이다. 그걸 누가 모르나. 다 안다. 말라죽지 않기 위해 쉼 없이 우물을 파거나, 하나의 우물로는 모자라 남이 파놓은 열 곳, 백 곳의 우물까지 빼앗고자 발버둥 치는 곳, 대한민국은 그런 곳이다. 사막이니까.
아내는 네 식구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2005년 3월 서울 동교동 어름에 두리반이라는 식당을 차렸다. 주택청약예금을 해약하고 대출까지 받아 문을 열었지만, 네 식구 해갈에는 좀 모자라는 우물이었다. 나는 출판사 편집일이라는 우물을 하나 더 파야 했다. 사막에 내동댕이쳐진 인생이 다 그런 거지.
우물 빼앗는 ‘사막 대한민국’
영업을 시작한 지 아직 3년도 안 됐을 때인 2007년 12월, 아내의 우물인 두리반을 빼앗으려는 자들이 불시에 나타났다. 인천공항 철도역이 들어서게 되어 졸지에 노다지가 된 동교동 167번지 일대를 조무래기 투기꾼 집단이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평당 800여만 원 하던 땅을 무려 8000여만 원에 매입했다. 두리반이 들어 있는 3층 건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돈에 눈멀면 다 그런 거지.
2008년 봄부터 11세대가 변호사를 앞세워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세입자들의 변호사와 그동안 조무래기 투기꾼들 뒤에 숨어 있던 진정한 시행사인 한국토지신탁 측 변호사는 서로 임대차보호법으로 맞섰다. 저쪽은 임대차보호법의 예외조항을 들어 동교동 167번지 일대는 지구단위계획 지역으로, 3년 만에 쫓아내도 문제없는 곳이고, 영업보상도 필요 없는 곳이라고 역설했다. 젠장,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이 다 그런 거지.
투기꾼 손 들어준 법정
판사는 한국토지신탁 측 손을 들어줬다. 세입자들은 항소했다. 항소심에서도 판사는 한국토지신탁 측 손을 들어줬다. 세입자들은 폭삭 망했다. 한국토지신탁 측은 다시 뒤로 숨었고, 예의 조무래기 투기꾼들이 튀어나와 상가마다 돌기 시작했다. “봤냐? 너희는 끝났다. 이사비용 300만원 주겠다, 이사비용 70만원 주겠다…. 자 이제, 사막을 향해 앞으로갓!” 우물 없이 무슨 수로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에서 견딘단 말인가. 11세대 세입자들은 회장을 뽑고, 전단지를 만들고, 세입자들의 주장을 담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3개월쯤 지난 초가을, 시행사 한국토지신탁과 시공사 GS건설의 마름인 조무래기 투기꾼들이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내용증명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협상할 생각이면 전화를 걸되 반드시 개별적으로 전화하라!”
뭉쳐서 대응하는 게 옳지만 사람 일이란 게 어디 그런가. 이발소가 제일 먼저 전화를 걸었다. 세입자 대책회장인 후닥식당도 후다닥 전화를 걸었다. 다 걸었다, 두리반만 빼놓고.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파놓은 우물을 빼앗기면 안 되는데, 사막으로 내동댕이쳐지면 어찌 살려고!’ 그런데도 세입자들은 하나하나 도장을 찍고 빠져나갔다. 어떤 세입자는 달랑 물 한 바가지만 들고 빠져나갔다. 물론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진즉부터 조무래기 투기꾼들에게 시달려온 라틴덴스학원은 단 한 모금의 물도 못 들고 나갔다. 보증금은커녕 이사비용도 못 받고 나갔다는 말이다. 아니 이사비용은 주겠다고 했는데, 그거 받고 받았다는 소리 듣느니 그냥 나가겠다, 똥 같은 자식들아, 했던 것이다.
조무래기 투기꾼들은 이제 두리반만 들어내면 되었다. 그들은 두리반으로 왔다. “몇 바가지 줄까?” “몇 바가지는 필요 없다. 두리반의 반 만한 우물이라도 좋으니 우물을 파달라.” “그건 안 된다.” “그렇다면 너희가 가져온 협상안은 도대체 뭐냐?” “이사비용 300만 원!”
사막에 물 한바가지만 들고 나가라
그리고 2009년 12월 24일 오후 4시, 시행사 한국토지신탁과 시공사 GS건설의 마름인 조무래기 투기꾼들은 용역 30여 명을 뒤세워 두리반을 덮쳤다. 모든 걸 들어내고 두리반 현관 앞에는 철판까지 덧대어놓았다. 이런 젠장, 이사비용 300만 원, 그거라도 받을 걸 그랬나? 한 바가지 물이라도 받을 걸 그랬나? 그러나 대한민국은 사막이고, 사막의 낮 기온은 영상 63도. 한 바가지 물로는 말라죽는 거지. 우물이 없다면 끝내 말라죽는 거지.
2009년 12월 26일 02시, 살갗을 에어내는 칼바람 부는 새벽에 아내는 절단기로 철판을 뜯어내고 두리반에 진입했다. 모교 민주동문회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번을 서겠다는 동지애를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우물쭈물하던 내게 민주동문회 식구들은 말했다. “왜 이렇게 나약한가? 두리반이 두리반 문제로만 그치는 게 아니잖은가? 오늘도 불안에 떨고 있는 모든 영세한 세입자들의 문제가 아닌가? 용산참사로도 해결되지 못한 세입자보호법안 마련의 실 가닥 같은 역할이라도 해야 할 게 아닌가?”
그리하여 모든 집기를 들어낸 텅 빈 두리반에서 나와 아내는 농성중이다. 빼앗은 우물을 돌려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