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해 달력에 남은 날은 이틀뿐이다. 주중 수요일 내가 몸담은 학교는 방학식을 가졌다. 한동안 고등학생을 가르치다 중학생을 만났더니 아이들의 마음을 따라잡기가 벅찼다. 내가 마음 비우고 수양하듯 지낸 5년이었다. 다가오는 봄이면 나는 어딘지 모를 근무지로 옮겨야 한다. 함께 왔던 동료가 몇 남아있다만 한 학교에서 있을 만큼 있었다. 그사이 교장은 네 번이나 바뀌었다.
그동안 내 자리는 한 번도 본 교무실이 아니었다. 행성의 위성처럼 5년 동안 학년실만 맴돌았다. 사춘기 청소년들의 천태만상을 가까이 접하면서 지도하느라 고민하고 고생했다. 나는 부장이나 편한 업무를 골라 맡으려하질 않았다. 남들만큼 승진에 필요한 몇몇 칸들은 채워놓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도 않았다. 동료들이 꺼려하는 학급이나 업무도 쓰다달다 군말 없이 묵묵히 맡았다.
나는 며칠 전 학기말 성적표의 가정통신문을 작성해두었다. 정해진 의식 따라 끝난 방학식이었다. 방송화면으로 내보낸 방학식을 마치고 아이들을 보냈다. 전체 교직원들은 그간 적립한 친목회비로 바깥바람을 쐬러 나섰다. 친목회장단은 사전답사와 행사기획에 신경을 많이 썼을 테다.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모두 충족시키는 어려워도 최대공약수를 모은다고 신경 쓰였지 싶다.
학생들이야 집으로 갔다만 교사들은 마무리해야 일들이 아직 쌓였다. 그럼에도 떠밀리다시피 버스에 올라야했다. 친목회원은 50여 명인데 급식조리사와 원어민보조교사 등 다양한 학교구성원들을 모두 합쳐 전세버스 두 대로 출발했다. 짧아진 겨울 해에 다녀오기는 좀 먼 길인 순천만과 녹차밭까지 둘러오기로 했다. 부산 광안리나 통영 미륵도정도 다녀오길 바라는 회원도 있었다.
근무하는 학교에 본 교무실 말고도 여러 별실이 있다. 3개 학년마다 작은 교무실이 있고 전산정보실이 있다. 행정직원이 근무하는 공간도 있다. 이렇게 별실이 여럿이다보니 학교에 출근해 다른 실의 교직원들은 얼굴 한 번 스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일 년이 다 가도 그 분 자리가 어느 실인지 모르는 동료도 있다. 내가 먼저 동료들에게 관심 갖고 다가가지 못한 탓이기도 하렷다.
아침나절인 열 시 반 우리가 탄 전세버스는 남해고속도로 진입했다. 경남해안은 다르다만 엊그제부터 서울을 비롯한 중부와 서해안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지역과 다녀올 목적지는 다행히 눈이 내리지 않았다. 버스는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진주 근처 문산휴게소에 잠시 들렸다. 그리고 계속 서쪽으로 달려가 섬진강을 건너니 광양이고 순천에서 국도로 내려섰다.
예약이 된 순천시청 인근 유명한 남도한정식으로 점심밥상을 받았다. 내 건너 마주앉은 분은 급식조리사들이었다. 평소 천삼백여 명에 이르는 학생과 교직원들의 점심을 마련하느라 고생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반주를 한 잔 채워드리면서 오늘 같은 날은 참 행복하시겠다고 했다. 그분들은 남을 위한 밥상을 차려내기만하다 맛깔스럽게 잘 차려진 밥상을 받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우리는 점심 식후 순천만으로 갈대밭으로 이동했다. 그간 나는 몇 차례 다녀간 갈대밭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갈대밭 사이 탐방로 따라 걸었다. 일부 동료는 용산전망대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지난가을 피어난 갈대꽃 수술은 바람에 날려가도 갈대줄기는 꼿꼿했다. 지금 비록 색이 바래도 시퍼런 새순으로 돋아날 봄날이 올 것이다. 바이칼호수에서 남하한 흑두루미는 외출 중이었다.
순천만에서 보성 녹차밭으로 갔더니 해는 저물었다. 들머리 미끈한 삼나무 숲길을 지나니 비탈에 이랑 지은 계단식 녹차밭이었다. 바다전망대에서 녹차밭을 굽어보고 바다까지 바라보았다. 녹차밭을 빠져나와 벌교에서 꼬막정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꼬막으로 전을 부치고, 된장국을 끓이고, 회를 무쳐 내었다. 잎새 소주 안주로도 훌륭했다. 왔던 길을 바삐 되돌아오니 밤이 꽤 이슥했다. 10.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