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鳶 날리기
오 성 찬
음력 섣달에 접어들면서 우리 고장에는 수평선 아득한 멀리로부터 건듯건 듯 하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수평선 쪽은 회색으로 뭉개놓은 듯 뽀얀 바탕인데 건듯건듯 불어오는 하늬바람은 바다 가운에 해명(海鳴)의 파도를 일으켜 놓곤 했다.
이 무렵이 되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떼까마귀 무리가 몰려와선 꺄욱꺄욱 불길한 소리로 울며 온 하늘을 뒤덮었다. 그것들은 바람 거센 하늘에서 마냥 선희하는 그 자체가 목적인 듯 짧은 겨울날 종일을 회색빛 하늘에서 맴돌다가 심술이라도 부리듯 곤두박질을 쳐대곤 했다.
마을에 무슨 일이 있을 떼면 사람들을 모으는 〈은하(銀河)동산〉은 동구밖 바닷가에 악아 있었다. 마을을 반나마 에운 묵은 성급이 구불구불 이 언덕까지 연결돼 있었는데 이 언덕에 서면 은하를 잡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망대 같은 이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해풍에 바랜 초가지붕들이 바람에 날아갈까봐 납작 엎드려 있는 모습이 듬성듬성 보이곤 했다.
〈은하동산〉은 그러니까 이 마을을 해풍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었으며 묵은 성굽은 이 마을과 온 섬을 외적(外敵)들로부터 지켜온 의지의 혼적이었다.
이 언덕에 오르면 아무리 바람 잔 날이라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짭짤한 해풍이 건듯건듯 불어와서 적삼 소매의 땀을 말리기도 했다.
섣달 초가 되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연을 만들어 가지고는 이 언덕으로 올라가서 바다 멀리로 날렸다. 아이들이 연을 날릴 때면 연의 그림자는 파도 위에 떠서 마치 가마우지가 파도를 타듯 춤을 추곤 했다.
그 무렵 나는 연날릴 철만 되면 괜시리 신이 나고 어깨가 으쓱 치켜올랐다.
성내(城內)로 가서 큰 학교를 하다가 제 스스로 중도 퇴학하고 고향에 내려와 있는 작은아버지는 연 만드는 솜씨가 특출했으며 그가 만든 연은 언제나 모든 연 중에 가장 곧고 높게 올라갔다.
짙은 눈썹에 불붙듯하는 시선, 곧은 콧날, 훤한 얼굴로 하여 삼촌은 동네 처녀들 간에 대단한 인기였다. 그러나 그는 성내에서 돌아온 후 가끔 두툼한 성경책을 가지고 할머니와 아버지의 눈을 피하는 듯 성내를 다녀올 뿐 한나절을 방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두툼한 책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끼니도 제때 안 먹고 방안에서 뒹굴다가는 나와서 햇살이 눈부신 듯 시선을 가늘게 뜨고 해바라기를 하는 것이었다.
“놈이 뭘 해도 한몫 할 놈인디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가지구선…….”
면사무소에 다니며 집에 돌아와서는 꼭 필요한 말 이외엔 입을 다물고 계시는 무뚝뜩한 아버지는 삼촌이 멀리 보일 때마다 혼잣말처럼 뇌이곤 했는데 그때마다 해풍에 미어 잔가지만 남은 팽나무처럼 애잔한 할머니는 꺼질 듯 한숨을 내쉬곤 했다.
“게메(글쎄), 저것이 장차 어떻게 살려는 놈인지…….”
“쯧쯧, 나도 모르쿠다.”
아버지는 짜증부터 내며 성이 나 있는 듯 콧구멍을 불룩거렸다.
나는 이들 모자(毋子)의 말 뜻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이들이 삼촌에 대해서 적잖은 기대를 갖고 있으나 요즘 그의 태도에 태해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삼촌은 할머니와 아버지의 이런 기대를 완전히 백안시하고 저 할 대로 했다.
그래도 좀 이야기 상대가 되는 것은 시집갔다가 남편이 죽어버리자 돌아와 방구석을 지키고 있는 고모와 어머니였다. 삼촌은 이들과는 가끔 웃으며 이야기도 하고 타박을 해도 웃으며 받아들였다.
“네 그 꼴이 뭐꼬? 그래두 우린 널 우리집의 동량으르 보고 있는데…….”
할머니와 아버지가 밖으로 나간 새 삼촌이 해바라기를 하러 양지에 나오면 고모는 창문을 발기고 수를 놓으며 힐책을 했다.
“누님두 참, 동량이 동냥바치(거지)가 됐수다. 시대를 잘 타구 나서 말이우다…….”
삼촌은 고모에게만은 속의 말을 하는 듯했다.
“삼촌, 제발 생각을 좀 돌려봐요. 삼촌 생각이 글타는 게 아니라…….”
어쩌다 어머니도 끼어들면 삼촌은 오래 깎지 않은 머리에 다섯 손가락을 찔러 북적거리며 멋적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저 아주머니께는 미안합니다. 저까지 고된 시집살이를 시켜 드려서……."
“그러니까 네가 마음을 고쳐먹고 시집살이를 좀 덜 시키라 이말 아니냐.”
“에이, 누님도 참…….” ,
삼촌이 정색을 하면 고모도 어머니도 더는 무슨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삼촌은 또 어둑한 자기의 작은 구들로 들어가 문을 걸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안 식구들이 모두 어렵게 여기는 삼촌이 내게만은 싹싹했다. 그는
나를 가장 아꼈으며 나도 그련 삼촌이 좋았다.
“어디, 이제 벌써 연을 날릴 때가 됐나?”
삼촌은 멍석들이 쌓여 있는 양지쪽에서 지난해 쓰다 뒀던 얼레를 찾아 손질하는 내게로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쳐들어 하늘 가득 꺄욱거리며 날아다니는 떼까마귀 무리를 우러러봤다. 손을 이마에 얹고 하늘을 쳐다보는 삼촌의 얼굴은 창백했으며 모가 진 턱에는 성게 가시처럼 뻣뻣한 수염이 꽤 길게 자라 있었다.
내가 선뜻 연을 만들어 달라는 청을 못 꺼내고 머뭇거리고 있으면 그는 털썩 엉덩이를 내려 내 옆에다 끼어 앉으며 내가 쥐고 있던 얼레를 얼른 뺏아들었다. 그리곤 실타래를 풀어가며 징끗징끗 잡아당겨 보다가는,
“이건 삭아서 안 되겠다. 어머니께 무명실을 좀 얻어오너라…….”
내 엉덩이를 떠받쳐 일으켜세웠다. 무명 명주 잘 짜고 솜씨 좋기로 유명한 어머니는 무명을 날 때 자투리 실들을 침 발라가며 이어 연실을 준비해선 간수해 뒀다가 못이기는 척 내어주곤 했다.
“연 올리는데 너무 열중해서 글 읽는 것 소홀히하면 안된다이…….”
어머니 말씀은 언제나 은근하고 지극했다.
“예!”
나는 그때마다 큰 소리로 대답을 하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대답뿐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룻바닥에 책보를 팽개쳐놓고 연날리기와 팽이치기, 딱지치기에 정신이 없었다.
“삼촌이 또 널 추슬렀구나.”
어머니는 무명틀에 앉아 있으면서도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환하게 알았다. 어머니의 예감은 전신에 눈이 돋은 듯 들어맞았기 때문에 나는 가끔 어머니가 그 옛날 이야기에서 들은 귀신여자 같은 생각이 들곤 했다.
“아니우다! 삼촌이 아니라…….”
나는 어머니가 내 거짓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변명을 헤대곤 밖으로 달려나왔다.
삼촌은 이미 선반 위에서 톱을 내려들고 있다가 내가 나오니까 데리고 대밭이 있는 뒤뜰로 가서는 여문 왕대 한 그루를 골랐다. 몇번 톱질에 왕대가 부스스 넘어지자 톱 등으로 익숙하게 가지를 쳐내고는 중동 부분만 가지고 다시 멍석이 세워져 있는 양지쪽으로 갔다. 그리고 왕대를 더 짧게 토막을 낸 다음 잘게 빠개어 무릎 위에 허드레 천을 놓고는 날선 칼로 얇게 잘 다듬어 내었다. 삭삭, 날선 칼이 젖은 왕대를 먹는 소리는 귀청에 야릇한 쾌감을 주곤 했다. 창호지를 오려내어 풀을 먹이고 다듬어 낸 대쪽들을 가로세로 엇맞추어서는 붙여서 방패연을 만들었다. 또 부스스한 무명실은 우뭇가사리 풀을 쑤어서 문대어 햇볕에 바래어 놓으면 질기고 쌩쌩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 실로 연의 네 귀퉁이 갈개발에 벌잇줄을 매어놓으면 대충 연이 되는 것이었는데 삼촌은 꼭지에 붉은색으로 둥근 달을 그려서 귀머리장군을 만들고 연의 반쪽 아래엔 푸른 칠을 해서 청치마를 입혀놓는 것이었다. 이같이 화려한 귀머리장군 현은 삼촌이 즐겨 만드는 것이었다.
“자, 여긴 붉은 칠을 칠하고오, 여긴 파란 칠을 해서 치마를 입혀놓는 거야.”
삼촌은 연을 만들면서 아이들처럼 노상 중얼거리고 있곤 했다.
이럴 때쯤 고모는 수를 놓던 일감을 놓고 모처럼의 바깥나들이를 한다. 사람
을 보면 피시시 왼쪽 입꼬리가 약간 치켜올라가는 미소를 물고 있곤 하지만 언제나 눈가에 우수가 주름처럼 껴 있는 여자, 그러나 그녀도 삼촌과 나에게만은 마음을 트는 듯했다.
“야이는 똑 어린아이모냥…….”
그녀는 부신 햇볕 아래 현기증을 일으키듯 창백한 얼굴로 서서 삼촌이 하는 양을 내려다보다가는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한마디한다. 그 피시시 웃는 웃음을 입꼬리에 문 채.
“누나, 그래두 연은 말이야, 가슴속에 가득 찬 한을 하늘 높이 훨훨 날리는 것 같아 신이 나거든.”
삼촌은 창백한 고모의 얼굴이 눈이 신 듯 올려다보면서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내뱉았다.
“플라톤의 친구 알터스가 맨 처음 연을 만들었다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이야.
그 친구들이 속이 콱 막힌 인생사를 이런 방법으로 해소시키려 했던 모양이거든. 누나, 안 그래?“
“글쎄 난 그 철학인가 뭔가 하는 얘기 못 알아듣겠다. 네가 좀 철이 들어서 네 앞길을 해쳐나갔으면 하는 바램 밖에…….”
“그런데 안 녹산(安祿山)이 궁중의 양귀비 (楊貴妃)에게 사랑의 사연을 보내기 위해 연을 사용했다는 것은 낭만이 있는 듯하지만 지나치게 현실적이거든.”
삼촌은 또 고개를 쳐들어 눈이 신 듯 구모의 얼굴을 쳐다봤으며 고모는 또 피시시 웃음으로 거기 응대했다. 그러나 이들 오뉘의 대화는 내게는 좀체 생소한 것이었다.
“삼촌은, 다 됐잖아……·어서 날리러 가아.”
“그래, 이제 됐어. 〈은하동산〉으로 올라가자…….”
삼촌은 얼레의 실과 벌잇줄을 연결시켜가며 나의 등을 밀어 바닷가의 높직한 언덕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런 우리들을 이번에는 고모가 눈이 신 듯 처다보는 것이었는데 그럴 때 나는 고모의 콧날이 너무 성긋하다고 느끼는 것 이었다. 허긴 여자로선 눈썹도 너무 짙고.
〈은하동산〉에는 이미 성급한 아이들이 서너 패 나와서 연을 올리고 있었다. 어떤 패는 얼레의 실을 짧게 풀어서 달리며 연을 올리려 바둥거리고 있었고, 어떤 때는 이미 얼마쯤 공중에 연을 올려놓고 있었는데 그 연은 한참 솟구쳤다가는 바람결 따라 곤두박질치고 한참 내려오다가는 솟구치고 하면서 해면 위에 가마우지 같은 그림자를 드리워 있었다. ˙
아이들이 연날리는 것을 눈이 신 듯 한참 올려다보던 삼촌은 우리가 새로 만들어 온 연의 귀퉁이를 나더러 잡게 해서 하늘로 날리게 했다. 그리고 자기는 성큼성큼 뒤로 물러나며 얼추얼추 얼레를 얼렀다. 추스르는 데 따라 어깻바람을 일으키며 하늘로 솟기 시작한 연은 바람을 타기 시작하자 신나게 하늘로 솟아올랐으며 거기 따라 삼촌은 마구 얼레를 풀어대었다. 연은 얼레를 풀어가는 데 따라 실이 끊겨 마구 날아갈 떼처럼 훌훌훌 뒷걸음치며 갈앉아 가다가는 실 풀기를 뚝 멈추면 연줄 자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뻣뻣하게 올라가곤 했다. 이렇게 늦췄다 당겼다 조정하며 하늘 높이 연을 띄운 삼촌은 그제서야 열레를 내게 넘겨주는 것이었는데 그가 만든 연은 언제나 너무 대형이었기 때문에 어린 내 힘에는 벅찼다. 바람이 거센 날쯤은 끌려가지 않게 두 다리를 딱 버티고 얼레를 쥔 손에 맘이 날 정도로 힘을 주고 있어야 했다.
해가 서녘으로 반쯤 기울면서부터 〈은하동산〉은 연날리러 나온 아이들로 범 벅이 된다. 언덕 위 하늘에는 이 무렵 잘 찾아드는 떼까마귀 무리처럼 각종 연이 떠올라서 바람결 따라 몸짓하며 춤을 췄다.
먹꼭지, 청꼭지, 홍꼭지의 꼭지연, 몸통 전체를 색칠한 초연, 연의 몸에 이것저것 그림을 오려박은 박이연, 연의 아래쪽에 꼬리나 발처럼 종이를 오려 붙인
발연, 보라머리동이, 눈깔허리동이, 귀머리장군, 이밖에도 솜씨 없는 아이들이 만들어 띄우는 가오리연 등이 하늘을 시커멓게 덮는 것이었다. 더구나 각종 색깔로 여러 개의 발을 만들어 매단 큼직한 발연이 의연하게 떠 있는 모습은 믿음직스러웠는데 그중에는 초라니 같은 가오리연들이 있어 사방으로 오락가락하며 실을 얽어 놓기도 했다.
연실들이 마구 얽혀 혼잡을 이룰 메 삼촌은 내게서 얼레를 뺏아들고는 언덕 위에 내 키의 세 배쯤은 되게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연대(煙臺)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 연은 얽히는 연줄들로부터 훨씬 떨어져서 가장 높이 올라가있곤 했다. 삼촌은 한쪽 손에는 얼레를 잡은 채 한쪽 손으로는 내 손을 잡아끌어 연덕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는데 올라가 놓은 다음에는 돌무더기 위에 나란히 엉덩이를 대고 앉아서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맞으며 하늘 높이 올라간 연들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던 하루 삼촌은 내게 말했다.
“찬수야, 저길 보아라. 저쪽에도 이와 비슷한 돌무더기가 있지?”
삼촌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까 아니나다를까, 한참 떨어진 곳에 마치 우리가 깔고 앉은 것과 같은 그만한 돌무더기가 앉아 있었다.
"이것들이 바로 연대라는 거야. 옛날 이 섬의 우리 조상들은 외적들로부터 숱한 침략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이 대 위에 올라 연기를 피워서 신호를 했지. 그러면 섬사람들이 온통 달려나와서 죽기를 기하고 싸웠던 거야. 조막만한 이 섬을 지키려고 말이야.”
삼촌의 이야기 끝은 깊은 한숨으로 마무리되었다. 삼촌은 내게 뭔가 절실한 것을 들려주고 싶은 표정이었으므로 나는 잘 이해가 안되면서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으, 한많은 우리 조상들, 불쌍한 하르방들…….”
삼촌은 혼잣소리를 하며 가슴에 안고 있던 얼레를 얼추얼추 추슬렀다. 그러고나서 한참 우리들은 도도하게 꼬리를 흔들며 휘날리는 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너 저기, 저 섬이 보이니 ? 저 바다 위에 모자를 엎어 놓은 듯한 저 섬.”
이번에도 말을 먼저 걸어온 것은 삼촌이었다. 삼촌의 쳐든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보니까 이내 같은 것이 뽀얗게 깔린 해면(海面) 위에 검푸른 섬 하나가 투구같이 엎드려 있었다.
“응, 보여.”
내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니까 삼촌은 자기도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를 말을 내게 해줬다.
“저것이 바로 관탈섬(冠脫島)이란다.”
“……”
나는 그 말의 뜻을 몰라서 삼촌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봤다.
“관탈이라는 말은 모자를 벗는다는 뜻이야. 옛날 이 섬은 대단한 귀양지였는데 귀양 오던 선비들이 저길 오면 이 섬을 바라보며 관을 벗었지. 그러면 큰 울음이 한번 터지고…….”
나는 그제야 삼촌이 열심히 설명하는 말 뜻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귀양객들 중에는 바른 말을 하다가 애꿎게 쫓겨온 사람들이 많았거든. 어느 시대나 바로 살려던 사람들이 곤경을 겪을 때가 많았어.”
삼촌은 또 말끝에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실이 얽혀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던 언덕 위의 아이들은 어느새 본격적인 연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부러 연실들이 얼크러지게 하고는 서로 얼레를 잡아당겨서 상대방의 연실을 끊는 내기였다. 실이 끊기기만 하면 연과 연실을 놓치는 판이었으므로 아이들은 벌겋게 얼굴들이 상기돼서 필사적이었다.
아이들의 조정에 따라 연들은 한쪽 귀로 땅에 처박힐 듯 내려왔다가는 가까스로 몸응 유지해서 다시 떠오르고 이번에는 상대방 연이 그렇게 요동을 치며 내려오곤 맸다. 그러나 빳빳하게 풀을 먹여논 연실들은 그리 쉬 끊기지는 않았다.
싸움에 어울리지 않은 아이들은 언덕 비탈 양옆으로 물러나서 얼레를 고정시킨 채 연싸움하는 아이들의 연만을 조바심을 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싸움을 벌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범식이 연이 실 중동이 잘려서 너풀거리며 바다 멀리로 무너앉아갔다. 범식이의 연은 청꼭지의 깨끗한 연이었는데 한참 후에는 흰 물새가 날아 사라져가듯 바다 가운데로 가라앉아버렸다.
돈점박이 연을 가지고 범식이의 연줄을 끊어 날려보낸 창용이는 의기양양해서 언덕 가운데쯤에 버티고 섰다.
“자, 자신있는 사람 누구든지 덤벼봐라.”
창용이는 쌈닭처럼 목을 곧게 세우고 얼굴이 벌개서 소리쳤다.
“좋다! 내가 상대해주지.”
이번에는 진수가 연을 가지고 창용이가 있는 언덕 가운데로 올라갔다.
“네까짓게 덤벼봤자다. 그까짓 가오리연을 가지고 어딜 감히…….”
아니나다를까 진수의 가오리연은 실을 얼크려 놓고 창용이가 연줄을 놀릴 때마다 가엾게 곤두박질을 치곤했다. 그리고 열마 후에 진수의 가오리연도 범식이의 청꼭지연처럼 실이 잘려 천방지축 멀어져 가더니 마침 희끗희끗 물결이 일기 시작한 바닷 속으로 삼켜지고 말았다.
“내가 뭐랬어. 상대가 안된다고 하니까…….”
창용이는 더욱 열이 나서 몸을 주체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리고 막 바람을
탄 창용이의 돈점박이연은 곧추서서 도도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뭐야, 그렇게 허망하게 질 수가 있나.·”
천방지축 파도에 휘말려 가는 진수의 가오리연을 지켜보던 삼촌의 시선에 문득 불길 같은 게 일었다.
“그래 이번엔 내가 상대를 해주지.”
연대에서 내려온 삼촌은 뒤물러 서 있는 아이들을 제치고 창용이가 오만하게 버티고 서 있는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다.
“에이! 찬수 삼촌이 싸움을 붙으려구요? 안하는 게 좋은데…….”
창용이는 삼촌의 기세에 다소 기가 죽었으나 싸움에만은 이길 자신이 있는 듯 비죽거리는 웃음을 입가에 물고 있었다.
삼촌과 창용이는 실을 엇걸고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삼촌이 한번 얼레를 잡아당기면 다음 번에는 창용이가 실을 낚아채고, 막상막하의 싸움이었다. 나는 연대 위에서 내려와 삼촌 곁에 붙어서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들의 싸움을 지켜봤다. 삼촌은 어른이어서 연을 놀리는 솜씨가 월등했지만 연을 두 개나 날려보내고 패권을 잡고 있는 창용이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싸움은 길지 않았다.
얼마 못 가 어이없게도 우리 연이 실 중동이 끊겨서 어머니가 이어준 실을 동동 매단 채 바다 가운데로 날아가고 있었다. 허망한 마음, 안타까운 정성이 그 실끝에 매달려 동동 떠갔다.
삼촌은 얼레를 잡은 채 멍하니 바다 가운데로 떠가는 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그의 표정은 오히려 허탈했다.
“창용이가 연실에 사기가루를 먹였다!”
누군가 주위에서 귓속말로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속삭이고 있었지만 엄격
한 그 귓속말은 삽시간에 눈덩이처럼 커갔다.
비실비실 뒷걸음치던 창용이가 어느새 얼레의 한 끝을 잡은 채 언덕 아래로 마구 달아나고 있었다. 하늘에 뜬 돈점박이연이 곧추서며 출렁출렁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언덕 아래로 내리닫던 창용이가 돌부리에 발이 채였는가 픽 고꾸라지더니 한번 더 굴렀다. 그 서슬에 그가 쥐고 있던 얼레에서 실이 풀려 도도하던 돈점박이연이 뒤물러앉기 시작했다.
창용이는 얼른 일어나서 피가 솟는 무릎을 지켜보다가 연실을 따라 도로 언덕을 달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릎을 다친 창용이의 달음은 바람을 타기 시작한 연줄을 따라잡기에는 벅찼다. 창용이가 언덕을 달려올라가다가 다시한번 넘어지자 언덕 위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 그것으로써 복수가 됐다는 듯 이내 언덕 위에는 화기가 돌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삼촌의 얼굴에는 분노가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는 그렇듯 성난 얼굴로 연이 날아가버린 바다 가운데를 지켜보다가 돌아서 내게 말했다.
“이제 그만 가자. 어디를 봐도 콱콱 수평선이란 말이야. 가슴을 콱콱 막아서
는 수평선! 거기다 이 섬 안에서 술수까지 판을 치고 있거든……·왜 이 작은 섬까지 이 모양이 되는 것일까.”
삼촌은 푹 고개를 꺾고 털턱털턱 앞서 언덕을 내려갔다. 어느새 짧은 겨울해가 서녘 하늘에 몰려 있는 구름 속으로 기어들어가 있고 수면은 희끗희끗 더 거칠어져 있었다.
연을 날리던 아이들도 얼레를 감으며 돌아갈 채비들을 하고 있었다. 종 대신
사람들을 모을 때 치려고 매달아논 산소통이 더욱 쓸쓸하게 보이는 저녁이었다.
삼촌에게는 가끔 성내(城內) 성당의 외국인 신부가 찾아왔다.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의 키가 큰 이 신부는 로만칼라의 검은 옷을 늘 입고 있었는데 어두운 옷색깔에 비해 얼굴은 언제나 환히 웃는 표정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김 선생, 오늘은 어디 안 나가셨군요.”
그는 더듬거렸지만 거의 정확한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 우리말을 익히고 있었다. 그래도 의사소통이 잘 안될 때에는 그 큰 몸과 긴 팔다리를 좌우상하로 움직여 몸짓을 해대며 의사를 전달하려고 무척 애를 썼는데 그것이 우리들을 웃겼다. 그는 길가 같은 데서 우리 어린이들을 만나도 어른들에게 하듯 〈안녕하십니까. 〉 하고 인사를 했는데 그 인사가 어찌 우스운지 한때 우리 조무래기들 사이에 유행이 되었다. 아이들은 〈안녕〉이란 단어에 특별히 액센트를 둔 이 인사를 반복해 떠벌리며 서로들 웃었다.
삼촌은 이 신부가 오면 금세 얼굴에 화기가 돌아와서 가끔 영어를 섞어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대화를 하곤 했다.
“김 선생, 조선 나라 하나님의 축복받은 나라입니다……·하나님, 사랑하는 아들에게 채찍 내리시는 것, 성경에 있읍니다……·그러나 하나님, 사랑하는 아들버리지 않습니다.”
신부는 절실한 표정으로 안타까운 몸짓을 어가며 삼촌에게 설명했다.
“이 섬, 마찬가지입니다. 이 섬사람, 어려운 일 많이 당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 섬, 버리지 않았읍니다.”
그의 열성어린 설교에 삼촌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나 잘 납득이 가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이 나라, 지금 당하는 고통 하나님의 채찍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채찍입니다. 조선사람 하나님의 채찍 견딜 줄 아는 지혜 얻어야 합니다.”
삼촌은 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님, 김 선생 같은 일꾼, 부르고 계십니다. 김 선생, 조선사람 의해, 나라 위해, 큰일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삼촌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꺾었다.
“조선사람, 해방돼야 합니다. 조선사람, 자유찾고, 떳떳한 나라 세워야 합니다·…….”
신부는 파란 눈알을 굴리며 거침없이 말했다.
이런 신부가 오는 것을 아버지는 몹시 꺼리고 싫어했다. 멀리 보이기만 해도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고, 가버리면 얼굴에 벌겋게 핏독을 올리고 신부를 욕해 대었다. 싸가지없는 신부가 동생을 버려놓는다는 주장이었다. 해풍에 미인 팽나무 같은 할머니도 아버지 쪽이었다. 거기다 할머니는 신부가 자주 집에 드나들면 집안을 보호해주는 부엌귀신이 노해서 집에 망쪼가 든다고 꺼려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신부가 멀리 보이기만 해도 비린 것을 볼 떼처럼 고개를 돌리고 부엌이나 뒤꼍으로 들어가서 나타나지 않곤 했다.
다만 신부가 오는 것에 반대도 환영도 안하는 것은 고모였다. 고모는 할머니
나 아버지의 이런 태도가 우습다는 듯이 내게 곁눈질을 하며 웃어 보이곤 했다.
신부가 한번 집에 들렀다 가면 삼촌은 양손으로 머리를 싸고 좁은 자기 구들로 들이가서 한나절씩이나 틀어박혀 있곤 했다. 그는 방안에 틀어박혀서 뭔가 골똘한 자기 구상을 하며 고민하는 듯했다.
어떤 때 신부는 그런 말도 했다. 큰일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멀리 육지나 외국으로 나가야 한다, 이 섬은 너무 갇혀 있고 좁다, 대개 이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한번은 삼촌이 그 뜻을 할머니와 아버지께 여쭈었는데 그날 집안에서는 대판 말다툼이 벌어졌다.
“노랑머리 신부가 자주 찾아댕기더니 이 아이가 천주 귀신이 들려버렸구나.
뭣이라구?”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지른데 이어 할머니도 집안 망할 일이 생겼다고 꺼이꺼이 울어 대었다.
“잔소리말고 너는 대가 시키는 대로 해라. 면에 내가 자리를 하나 만들어 놓을 테니까 당장이라도 여기 나와서 일을 해.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나대다가는 굶어 죽는 벱이여.”
아버지는 결론적으로 자기가 다니는 면사무소에 취직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
나 삼촌은 단연 반대였다.
“형님은 좀 앞을 내다보고 사세요. 일본이 지금 제 세상 만난 듯 거들먹거리지만 망할 날이 멀지 않았읍니다. 형님도 어서 미련없이 그 자리를 버리세요.”
삼촌은 어디서 얻은 확신인지 아버지에게까지 노골적으로 대들었다.
“너희들 정말 매일 밤 모여서 단파무전기를 듣는다더니…….”
순간 아버지는 험악하게 안색이 변하고 음성도 안으로 움츠러들었다.
“너 지금 그게 제정신으로 한 소리냐? 지금이 어떤 세상인 줄 알고 멋대로 주둥일 나불대?”
아버지는 머리끝까지 올라 있는 성을 삭이지 못해 푸들푸들 떨리는 손으로 가까이 있는 목침을 쥐었다 놨다 했다.
“강하면 부러지게 되어 있수다. 총칼로 눌렀다고 다 되는 줄 아십니까? 군국주의는 필연코 자기가 쓴 칼에 의해 망하게 되어 있수다.”
그러나 삼촌의 기세도 결코 수그러들지 않았다.
“야네덜아, 형제끼리 이게 무슨 짓들이냐? 이러다 참말 큰 싸움 나겠다.”
할머니가 해풍에 미인 팽나무 가지 같은 양손을 가로저으며 두 아들 사이에 끼어 들었다.
“뭣 때문에들 그럽니까. 어머니도 계신 앞에서…….”
드디어 옆방에 죽은 듯이 계시던 고모가 옷매무새를 고치며 나왔다. 그림자 같은 어머니도 어느새 나온 것인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계셨다.
이래서 그날의 싸움은 그럭저럭 마무리되었다.
삼촌의 만류가 있었는데도 아버지는 더욱 면사무소의 일에 열심이었다. 면사무소에서는 쌀과 보리의 공출은 물론 부역을 위한 인원 차출과 놋사발 제기, 심지어 숟가락까지 모두 거둬 가는 판이었다. 놋사발과 숟가락은 거둬다가 총알을 만들어 전쟁을 할 거라는 얘기였다.
“젠장 씨팔, 제기를 거둬다가 총쁘렝이 총알을 만들면 그것이 잘 맞을랑가?”
“겔쎄. 살다살다 벨놈의 세상을 다 만났어…….”
마을사람들은 들키면 혼이 날 줄 알면서도 뒤꼍에 땅을 파고 제기들을 묻으면서 저들끼리 투덜거렸다.
“시태만 바꿔져봐라. 늬 아방도 온전치는 못할 것이여!”
내가 들으라는 듯 노골적으로 말하며 하얀 시선을 보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지까다비에 당꼬 바지를 입고 다니는 아버지는 대동아전쟁에서 일본은 꼭 이겨야 하며 그래야만 우리에게 살길이 열린다고 열변을 토하였다.
이 무렵, 어른들은 얼굴에 완연히 불안한 빛이 서려 있었으며 서로 눈치를 봐가며 수군거렸으나 우리 조무래기들은 알 바 아니었다. 겨울방학이 되어 학교를 쉬는 우리들은 조반을 먹기만 하면 〈은하통산〉으로 올라가서 연날리기, 말타기, 윷을 가지고 수수범벅 먹기, 수건돌리기 놀이 등을 하며 놀기에 바빴다. 하루종일 놀다 와도 어른들은 심한 꾸중을 하지는 않았다.
이날 내가 삼촌과 함께 〈은하동산〉으로 연을 날리러 가다 보니까 아이들이 언덕 아래 마을길에서 팽이치기를 하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누가 먼저 목표 지점을 돌아오나 경주를 하고 있었고, 어면 아이들은 팽이채를 주지 않고 누구 팽이가 오래 도나 내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아이는 팽이채를 감아 돌리는 게 아니라 죽어 있는 팽이를 마구 팽이채로 쳐서 일우켜세우려고 심한 채질을 하고 있었다.
“허 고놈……그럴 듯한 놈이군.”
그 곁을 지나치던 삼촌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서 팽이채를 휘두르는 꼬마를 한참이나 멈춰 서서 내러다보고 있더니 마침내 들고 있던 연과 얼레를 내게 건네고는 그 아이로부터 팽이채를 뺏아들었다.
“죽어 있는 놈을 채질을 해서 살린다, 고거 멋있는 착상이란 말이야.”
삼촌은 허리를 펴고 심호흡을 하듯 얼굴을 쳐들더니 팽이채를 잠은 촌에 침을 퉤퉤 뱉았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세게 채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둔탁한 동맥나무 팽이는 치는 대로 구르기는 했으나 좀체 일어서서 돌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삼촌의 팽이채는 더 세게 후려쳐졌다.
“그럼, 누가 이기나 해보는 거지. 죽은 아기에 침주기, 마른 나무에 물주기
여…….”
삼촌은 혼자 열심히 중얼거리며 더 세게 팽이채를 후려쳤다. 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한참 안간힘을 쓰자 그의 콧등에는 송송 땀방울이 돋아났다.
“에이, 아저씨 안되겠다. 나만큼도 못하네. 그 팽이채 이리 줍서."
치켜보던 코홀리개 꼬마가 안타까왔던지 이의를 제기했다.
“뭐 안된다구? 그럴 리 없어. 꼭 일으키고 말거야. 죽은 아기에 침주기구, 마른 나무에 물주기라니까.”
삼촌은 끝내 우겨서 팽이채를 감지 않은 채 죽은 팽이를 일으켜세웠다.
“자, 봐라! 이제 제법 돌아가지? 이게 바로 죽은 자의 회생이란 거다.”
삼촌은 이제 꼿꼿이 서서 잘 돝아가는 팽이를 보며 환성을 질렀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환하게 화기가 돌아와 있었다.
삼촌은 한참 잘 돌아가는 팽이에 가끔 채질을 하다가 아이에게 팽이채를 건네주고 신나는 걸음으로 성큼성큼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에는 이미 아이들이 여럿 나와서 연을 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은 바람이 너무 거센 데다 돌개바람 현상까지 있어서 몇 아이가 연줄을 끊겨 연을 날려보내는 바람에 연날리기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래서 바람막이를 찾아 연대 옆에 모인 우리들은 말타기 놀이를 하게 되었다. 이 놀이는 삼촌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었는데 사내아이들끼리 가위 바
위 보를 해서 편을 나눈 다음 이번에는 대표끼리 다시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편은 맨 앞쪽 아이가 기둥이 되고 그 다음 번 아이부터는 줄줄이 앞엣아이의 허리통을 붙안고 엎드려 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긴 쪽 아이들은 달려가며 열차처럼 긴 이 아이들 말 잔등에 되도록 앞쪽으로 올라타는 것이었는데 그 뒤를 다른 아이들 역시 같은 자세로 달려가며 줄줄이 올라탔다.
그런 때 엎드린 말들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옆으로 뒤로 발길질을 해대며 어떤 때는 올라타려고 달려오는 아이들을 피하여 엉덩이를 돌려 대기도 했다. 왜냐면 올라탔거나 올라타려던 아이가 떨어지면 이번에는 그편이 말이 되는 때문이었다.
이 말타기놀이는 번갈아가며 한참 노는 사이에 아이들을 늑신하게 지치게 만들어버렸다. 겨울인데도 아이들은 얼굴이 싯뻘겋게 상기되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럴 즈음에 마을로부터 삼촌 또래의 청년 서넛이 으썩으썩 언덕 쪽으로 올라왔다. 문수네 형과 덕수 삼촌과 괄괄이 창민이었다. 그들은 마을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청년들이었으며 삼촌을 가끔 찾아오는 외국인 신부와도 잘 어울리는 한 패였다. 그들은 곧바로 싱글거리며 우리가 있는 데로 다가왔다.
“조무래들을 데리고 여간 재미가 좋지 않구나.”
창민이가 먼저 삼촌에게 말했다. 그는 괄괄하고 언제나 빈정거리는 말을 잘하는 성미였기 때문에 별명조차 괄괄이였다.
“그래 내가 할 게 뭐가 있니 ? 이따위 짓이나 밖에…….”
삼촌은 자조적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이들이 놀고 있는 쪽에서 벗어나 해녀들이 모자뱐 더미를 쌓아둔 가리 옆에 가서 털썩털썩들 앉더니 담배부터 한 대씩 붙여물었다.
“우리 장환이 형님이 오늘 서울서 왔는디 서울에서는 만세를 부르고 일이 났다더라.”
자리를 잡자 덕수 삼촌이 성급하게 말의 서두를 꺼냈다.
“민족자결주의가 불씨를 지른 셈이군.”
“그런 셈이지……·우리라구 맨날 공출이나, 끌려다닐 수야 있니 ? 그 미친개들이 이번에는 우리 여자들을 정신대로 끌어갔다잖아, 전쟁의 노리개감으루 말야.”
“막판의 망발이지. 우리도 그냥 있을 수는 없어.”
“허긴 그런데 독 안에 든 쥐 신세인 섬놈인 우리가 뭘 어쩌지 ? 후우, 한숨밖에 안 나온다니까.”
“……”
그들은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지껄이며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입을 봉하고 씨근거리고 있었으며 해풍이 몰아온 파도가 바닷가의 바위를 치는 소리만이 세차게 부서쳤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람까마귀 (떼까마귀)나 잡아먹는 일이야. 오늘같이 바람부는 날 저녁때가 좋다. 대 혼드는 소리를 잘 못 분간하거든…….”
심각한 분위기를 장난기 쪽으로 골을 튼 건 역시 창민이었다.
“그래 놈들은 저녁때만 되면 창수네 왕대밭에 무더기로 내려앉으니까 미리 가서 잠복하고 있자.”
“날이 어두워지면 이놈들은 아주 척척 손바닥 위에 와서 앉는다니까.”
“그 음흉한 것들이 사람을 가려볼 줄 모르는'”
“그러게 어둠이 좋다는 것 아닌가?”
“창수네 할아버지가 장독 깬다고 야단치지 않을까? ”
“들키면 내빼는 거지 별수 있어. 좌우간 그 음흉한 까마귀떼들을 몰살을 시켜야 속이 시원하겠어.”
“말아, 말아. 그놈들이 무슨 일본놈 종자라도 되냐?”
“그 시커멓고 음흉한 꼬락서니가 일본놈과 맞먹지 뭐냐? ”
“좌우간 우리 어둡기 전에 서둘러 내려가자.”
삼촌은 나를 아이들과 함께 〈은하동산〉에 남겨두고 청년들을 따라 창수네 대밭으로 떼까마귀 사냥을 갔다. 나는 그만 풀이 죽어서 얼레를 감아들고 그들의 뒤를 따라 마을로 내려오고 말았으며 이날 밤 사냥의 성과에 대해서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튿날도 바람은 자지 않고 거세게 불었다. 그것은 마치 심술궂은 할멈이 바다 가운데 섬에 앉아서 쉬지 않고 심술을 피우듯이 불어와서 온 섬을 몰아쳤다.
그런데 삼촌은 이런 날씨에 나더러 연을 꺼내라고 하고는 내 손을 끌고 〈은하동산〉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아이들은 바람이 너무 거세어서 연을 날릴 수 없었기 때문에 연대 옆 바람막이에 줄줄이 쭈그리고 앉아서 가위 바위 보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의 재빠른 적응력을 시험하는 놀이였는데 우리가 올라갔을 떼 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위와 보를 내놓고 맞겨루고 있었다.
“가위!”
보를 내놓고 겨루던 아이가 소리지르며 재빨리 가위로 바꾸었다. 그러자 가위를 내놓고 있던 상대방 아이는 얼른 주먹을 부르쥐고 바위를 내대었다.
“바위!”
이번에는 가위를 쥐고 있던 아이가 얼른 주먹으로 바꿔 쥐며 소리질렀다. 이번에도 상대방 아이는 보로 슬며시 바꿔 쥐어서 위기를 모면했다.
“보!”
이번에는 아이가 여유를 두지 않고 소리질렀다.
“하하하!”
주위에 둘러섰던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상대방 아이가 멍청하게 그냥 보를 내는 채 있었기 까닭이다.
모자반 더미 쪽에서는 아이들이 수건뺏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손수건을 손아귀를 벌린 채 쥐고 앉아 있고 서 있는 술래는 이쪽저쪽으로 뺏을 듯이 거짓 손놀림을 하다가 엉뚱한 쪽으로 수건을 뺏는 놀이였다. 속임수를 쓰는 아이와 거기 넘어가지 않으려는 아이의 싸움이 볼 만했다.
삼촌은 이련 아이들의 놀이를 대충대충 구경하다가는 혼자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서 얼추얼추 연을 올리기 시작했다.
창용이가 연싸움을 해서 연을 날려보낸 후 삼촌이 다시 만든 청꼭지의 국수발 연이었다. 연은 몇번 곤두박질을 친 끝에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이내 훨씬훨씬 공중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줄을 스무 발쯤 풀었을 떼는 바람이 너무 거세었기 때문에 위태로울 정도로 요동치는 모습이 가슴을 조이게 했다.
“삼촌, 그만해. 실 끊기겠어.”
나는 걱정이 되어서 삼촌을 말렸다.
“아니야, 괜찮다. 이만한 바람에 뭐.”
삼촌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얼레의 실을 마구 풀어나갔다. 놀이에 싫증을 느낀 아이들이 하나 둘 우리 곁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또 문수네 형과 창민이와 덕수 삼촌이 그 전날처럼 으썩으썩 언덕으로 올라왔다.
이들이 왜 요즘 자주 이 언덕으로 모일까? 나는 그들의 일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다 큰 청년들이 다니는 것은 우리들이 노는 데는 방해가 되고 성가신 일이었다.
실이 다 풀려서 한참 공중에 올라간 연은 거센 바람에 놓여나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매달아 놨던 국수발 중의 몇개가 바람에 찢겨 날아갈 정도였다. 연은 바람을 타고 위태롭게 바다 가운데로 곤두박질치다가는 다시 솟구쳐올라서 팽팽하게 실을 잡아당겼다.
“까마귀 고기 먹은 기운이 여태 남았구나. 얼레를 안 놓치는 걸 보니까, 하하.”
창민이가 삼촌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 그만 힘은 저축해 뒤야 할 게 아닌가.”
삼촌은 의미있는 웃음을 씽긋 웃어 보이며 대거리했는데 그때 보니까 삼촌의 턱수염은 꺼칠꺼칠하게 자라 있었다. 삼촌의 얼굴이 초조하고 창백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저 놓여나고파 몸부림치는 모습이 꼭 제 꼬라지를 닮았네.”
눈이 부리부리한 문수네 형이 느긋하게 혼잣소리를 했다. 문수네 형은 나이에 비해 표정도 그렇고 행동도 점잖았다. 그는 누구보다 말수도 적었는데 그의 눈에 삼촌의 모습이 퍽 안타깝게 보였나보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이었다. 연줄이 팽팽하게 곤두서서 국수발을 퍼덕거리며 요동치던 내 연이 천방지축 뒤물러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느 사이에 비비 틀리며 거세게 파도가 이는 바다 가운데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여아여, 난 몰라!”
나는 울음부터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까 삼촌은 빈 얼레만 잡은 채 이미 연이 사라져버린 바다 가운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삼촌의 표정이 낭패한 것이 아니라 열기조차 올라 있는 환한 표정이었다. 입술에는 비죽이 미소까지 미어져 나와 있었다.
“거 뭐하는 짓이야? 자네 부러 했구나.”
청년들 중의 누군가가 맥풀린 소리를 했다. 조무래기들 가운데도 적잖은 소요가 일었다.
그러나 삼촌은 멍한 표정으로 넋나간 사람처럼 바다 가운데만 바라보고 있었다.
“거참, 날아가는 게 신나는데…….”
삼촌의 입에서는 실로 기상천외의 한마디가 뱉어졌다.
“몰라, 몰라, 내 연 내놔 ! 내 연…….”
나는 언덕 위 마른 잔디 위에 앉아 두 발을 비비며 울어대었다. 나는 제일로 잘 올라가는 내 청꼭지연을 영영 놓쳐버린 것이 억울해서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울지 마. 삼촌이 그보다 디 잘 오르는 연을 만들어 줄 테니까.”
삼촌은 여전히 연이 날아가버린 바다 가운데 시선을 둔 채 내게로 다가와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얘, 봐줘라. 네 삼촌의 심정을. 오죽 답답해야 연줄을 끊어 자기 속을 달래겠니?“
창민이가 내 곁으로 와서 시푸둥하게 내뱉았다.
“정말이야. 저 수평선, 어디를 둘러봐도 저 가즉한 수평선, 저것들이 콱콱 가슴을 막아선단 말이야.”
삼촌은 금세 심각해져서 전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는데 그때 젊은 삼촌의 친구들은 공감이 가는 듯 이제까지의 장난기를 죽이고 숙연한 표정들이 되었다. 그리고 함께 삼촌의 시선이 가 머물러 있는 바다 가운데를 지켜보고 서 있었다. 마치 성난 사람들처럼. 바다는 이미 연의 형해조차도 삼켜버린 채 표표히 출렁거리고 있었다.
이튿날 삼촌은 내게 다시 연을 만들어주기는 했지만 그 후부터 나와 함께 연날리기를 할 만큼 한가하지가 못한 듯했다. 노상 삼촌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뭔가 심상치 않은 표정들이었고 전에 없이 밤늦게 들어오기가 일쑤였다.
성내 성당 그 노랑머리 신부의 나들이도 더 잦아진 듯했는데 그들은 뭔가 함께 일을 꾸미는 듯 머리를 맞대고 오랜 시간 이야기할 때가 많았다.
이 무렵 엔 덩달아 아버지도 면사무소에서 늦게 돌아왔으므로 우리집에는 나를 빼놓고 남자가 비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어떤가 하면 그림자처럼 늘 가만히 있는 어머니나 할머니 쪽보다는 고모를 더 좋아하는 편이었다. 남자들이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집 안에서 어머니는 노상 일에 붙들려 있었고 나를 만나면 걱정의 소리부터 하는 게 나는 싫었다. 할머니 역시 잔소리는 매한가지였는데 할머니는 지나치게 작고 늙은 것이 또 싫었다.
그러나 고모는 트인 데가 있었다. 시집간 지 얼마 안되어 남편이 객혈을 하고 세상을 떠나자 보따리를 싸안고 집으로 들어온 고모는 자기의 설움도 적잖을 텐데 그걸 안으로 삭이고 아버지와 삼촌,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의 중재를 위해 헤픈 웃음을 지어내곤 했다.
고모는 횐 적삼, 까만 치마 차림에 동맥기름을 발라 반듯하게 머리를 단장하고 대개는 자기 방에 들어앉아서 수를 놓거나 뜨개질을 하고 있곤 했는데 내가 그 방으로 들어가면 슬며시 두꺼운 방석을 밀어내었다.
“어서 오셔요. 우리집 동량감.”
그녀는 언제나 나를 보면 우리집 동량감, 동량감하고 놀렸다. 그리고 그녀는
가끔 조심스럽게 우리 집의 장래에 대한 걱정을 하곤 했다.
“아버지는 너무 완고하신 데다 살기에 바쁘구, 대신 삼촌은 머리가 너무 트인데다 뜻이 허튼 데 있구나. 할아버지만 너무 일찍 돌아가시지 않었어두·….”
고모는 언제나 이런 걱정을 하실 땐 말 끝에 한숨을 섞었다.
내 생각도 그랬다. 안방 가운데에 퉁부처처럼 앉아서 하루종일 있어도 필요한 이야기 외엔 말이 없으시고 가끔 가다 장죽 터는 소리나 내시던 할아버지는 그러나 집안의 모든 사람을 한곬으로 몰아 이끄는 묘한 힘이 있었다. 아버지도 삼촌도 그 앞에서는 아무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으며 또 할아버지가 몇번 허연 수염을 쓸어내리며 생각한 끝에 뱉아놓는 한마디는 틀림이 없는 말이곤 했다.
장자인 아버지의 반대가 있었는데도 밭을 팔아 삼촌을 성내의 학교에 보낸 것도 할아버지였고 또 일년을 좀 넘겼을 메 삼촌이 책 보따리를 챙겨 가지고 들어와 꿇어 앉았을 떼 한마디 꾸중도 없이 받아들인 것도 할아버지였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살아가기는 힘들겠지만 도리에는 그게 옳
다.”
삼촌이 무슨 말을 사뢰었는지 할아버지는 즉석에서 시원하게 그를 놓아 보냈다. 그리고 딱딱딱 나무 재떨이에 재를 터는 소리가 거칠었다.
그후부터 할아버지는 담뱃재 터는 소리가 좀더 거칠어지시고 사람을 물리는 것도 더했다. 그러면서 다 해진 책을 더 심히 들여다보고 먹을 갈아 골똘히 봇글씨를 쓰셨다.
그런 할아버지는 아버지께서 면사무소에 나가시는 걸 별로 탐탁케 생각지 않는 눈치였는데 그래서 아버지는 집에만 돌아오면 할아버지의 방을 겉돌았다.
그런 할아버지께서 어느 날 감자기 썩은 밧줄을 놓아버리듯 세상을 버렸다. 참으로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야내덜아, 이리덜 와봐라. 할아버지가 이상하다.”
통새벽 할머니의 놀란 소리를 듣고 식구들이 할아버지의 침소로 달려갔을 때 할아버지의 거대한 상체는 이미 할머니의 팔에 안긴 채 굳어져가고 있었다. 가족들이 소란을 피우자 할아버지는 예기하고 있었던 듯 한 손을 가로젓곤 파르르 떨리는 눈을 힘겹게 감으셨다. 그리곤 다시는 눈을 뜨시지 못했다. 돌아가실 때 나이 예순여덟.
이때 가장 서럽게 운 것도 삼촌과 고모였고 아버지는 그저 멍한 표정이었다.
그 후 집안일을 도맡아야 할아버지는 그러나 할머니와 자기, 삼촌과 자기의 사
이를 끝내 채우지 못했다. 그리고 식구들은 저마다 그 간격들을 견디며 살아가
는 것이었다.
고모가 내게 다가앉을 때는 크림 냄새 섞인 체취가 싫지 않게 맡아졌다.
“이제 우리집은 너밖에 되살려 놓을 사람이 없어.”
이런 말을 할 때 고모는 이미 눈가가 붉어 있곤 했으며 그것 때문에 박복하다는 성긋한 콧잔등도 실룩거리고 있곤 했다.
“요새 나는 아무래도 네 삼촌이 걱정되는구나. 무슨 일을 저지르는 것 같아……거기다 네 아버지까지 저러니 형제끼리 무슨 웬수가 되려는 건지.”
고모는 수를 놓던 손등으로 가만가만 눈가를 찍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가슴이 콱 메어왔지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아서 고모의 고운 손만 끌어다 만지작거렸다.
이 무렵, 떼까마귀 무리는 더욱 극성스럽게 마을의 하늘을 뒤덮었다. 그것들은 새벽부터 하늘이 뽀얗게 날아다니는가 하면 가끔은 슈욱 바람소리를 내며 떼로 곤두박질쳐서는 보리밭 위에 시커멓게 내려앉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곤 그 불길한 대가리를 쳐들어 사방을 살피며 보리밑둥을 마구 파헤쳐 놓는 것이었다.
놈들은 가끔 겁없이 마을의 지봉 위나 잎이 다 져버린 멀구슬 나뭇가지 위에도 떼로 내려앉아서 불어오는 바람을 거슬러 앉아 목의 털을 곤두세우고 있곤 했다. 이럴 때 놈들의 모습은 대단히 저항적이고 표독스러워 보였다.
“바람까마귀떼가 극성을 부리는 걸 보면 무슨 변괴가 나려는 모양인디.”
보리밭이나 지붕 위에 시커멓게 내려앉은 떼까마귀 무리들을 보며 마을 할아버지들은 걱정의 소리를 했다. 우리 고장에서는 까마귀가 울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는 속담이 전해오고 있었는데 그걸 걱정하는 것이었다.
삼촌은 이제 연날리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으므로 나도 시들해져서 새 연을 만들었으나 연날리러는 잘 가지 않았다. 이제는 방안에서 수를 놓는 고모와 말벗을 하며 가끔은 윷가락을 가지고 수수범벅 먹기 내기도 했다. 수수범벅 먹기는 얼굴을 하늘로 쳐들고 작은 윷가락을 이마에 놓은 다음 안면근육을 실룩여 그것을 입이 있는 데까지 이동해오는 내기였다. 처음에는 이마의 주름을 실룩이고 그 다음은 두 눈을 깜짝거리고, 그 다음은 인중 근육을 실룩여 차츰 입 가까이로 윷가락을 이동해오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은 그 과정에 벼랑으로 굴러떨어지기가 일쑤였다.
나는 내기도 내기였지만 이 수수범벅 먹기 내기를 하면서 표정에 변화가 별로 없는 고모에게서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고 보니까 고모에게는 꽤 여러가지 웃기는 표정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고모의 방에 붙박혀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마침 우리 마을의 장날이었는데 장날이면 장이 서는 〈은하동산〉 쪽에서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마구 들려왔다. 나는 그때도 고모의 방에 있었는데 귀기울여 들어보니까 그것은 만세를 부르는 소리였다.
조선독립 만세!
조선독립 만세!
그 고함소리들은 우리가 숨죽여 앉아 있는 고모방의 새로 바른 띠살창 창호지를 울려놓았다.
“야네덜이 기어코 일을 저질렀구나…….”
고모는 손을 가슴에 그러모으고 얼굴이 홧홧 탈하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내 가슴도 쉬지 않고 쿵쿵 뛰기 시작했다.
“순관이 어디 갔냐, 순관이?”
그때 당꼬바지 차림의 아버지가 황급히 집으로 들어와서 눈을 까뒤집고 삼촌을 찾았다.
“오라버니도 참, 순관일 밖에서 찾아와얍지요.”
고모는 오히려 느긋하게 아버지 쪽에다 책임을 지웠다.
“그자식이 기어코 내 발등을 찍는구나.”
아버지는 울상이 되어서 오던 길을 황급히 되돌아서 올래 밖으로 나갔다.
“예측했던 일이 기어코 일어나고야 마는구나. 오, 하나님!”
그녀는 도로 방안으로 들어가서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법 없이 경대 위에 내버렸다가 가끔 먼지나 털던 성경책을 집어들었다. 마치 그 책이 무슨 구원이라도 되는 듯이.
나는 그런 고모를 내버리고 장터로 내달았다.
“찬수야! 찬수야!”
고모가 부르는 소리가 내 발목을 잡았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길가에서 나는 늘 연날리기를 같이 하던 친구들과 만나 아우성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몰려갔다.
오일시장 바닥은 장사할 생각은 않고 온통 수라장이었다. 〈은하동산〉에서 시장에 이르는 도로가 언제 마련한 것인지 온통 태극기를 든 사람들의 물결로 메워져 있었으며 그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오다 말을 탄 일본경찰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주재소의 순사들은 말을 타고 호루루기를 불어대며 칼을 휘두르고 있었고 시위군중의 맨 앞에는 위태롭게도 삼촌이 장대에 큰 태극기를 높이 메달아 들고 얼˙굴이 시뻘겋게 독이 올라서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문수네 형과 삼촌, 창민이도 삼촌과 함께 행렬의 맨 선두에 버티고 서서 목청껏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노란머리 키가 껑충 큰 신부도 가슴 윗부분이 시위군중들 머리 위로 올라와서 떠 홀러가는 것처럼 유유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자 나는 이들이 그동안 함께 몰려다니며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던 모든 내막이 단박에 알아지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서 나를 봤는지 아버지가 나타나서 아이들을 쫓고 내 팔목을 잡아끌더니 군중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너 어쩔려고 이련 델 나왔니 ? 지체말고 집으로 가서 문을 잡아걸고 꼼짝말고 있거라!”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오면서 허긴 이런 위급한 상황을 안 보게 되어서 잘됐다고 속으로 은근히 좋아했다.
집에서 들으니까 나중엔 총소리도 나고 아우성소리도 높아졌다. 만세소리 중간중간에 비명소리도 들렸다.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릴 떼마다 나를 꼭 껴안은 고모의 몸이 부들부들 떨었다. 가슴이 쿵쿵 뛰는 소리도 내게 전달되어 왔다.
결국 이 일로 해서 사람들이 여럿 다치기도 했지만 삼촌과 이번 시위에 앞장섰던 삼촌의 친구들이 모두 어딘가로 잡혀갔다.
“뭐 할 짓이 없어가지고, 빌어먹을 놈들.”
이튿날 새벽 이슬을 맞고 돌아온 아버지는 지까다비의 끈을 풀면서 누구에겐지 모를 욕설부터 퍼부어 댔다.
이튿날도, 또 이튿날도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 거리를 싸돌아다녀 봤지만 늘 쉬 만날 수 있던 삼촌의 친구들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야네덜아, 작은놈이 어떻게 된 것이냐? 며칠째 집 엘 안 들어오니…….”
할머니와 어머니는 일이 손에 안 잡히는 듯 집 안팎을 서성거렸다. 고모도 서성거리면서도 이미 체념한 듯 성경을 읽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특히 할머니는 애가 타는 듯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으며 삼촌 소식을 물었다.
“난 압니까만, 그따위 자식 죽든 살든…….”
그때마다 아버지는 시큰둥한 대답을 하고 돌아앉아버렸는데 그러면서 유난히 큰 콧망울을 불룩거리는 걸 보면 아버지는 아직도 끓어오르는 성을 삭이지 못하는 눈치였다.
“집안 망해울 놈의 자식, 차라리 일찍 뒈져버리기나 하든지…….”
사건 이후 밤 늦게까지 일에 쫓기는 아버지는 삼촌에 대한 증오를 버릴 수 없는 듯 투덜거리기 예사였다. 그것은 지나치는 투덜거림이 아니라 진심인 듯
했다.
그리고 밤에 어머니와 잠자리에서 수군거리는 걸 엿듣고 나는 삼촌이 그의 친구들과 함께 순사들에게 잡혀 성내의 경찰서로 끌려간 것을 알았다.
“아 독 안에 든 쥐지, 저들이 어딜 도망갈 것이여, 이 섬 안에서. 죽을려고 환장을 한 자식들이지…….”
아버지의 분노는 겨울밤의 냉기로도 좀체 꺼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람 망신을 주는 그 따윗 자식 팽개쳐 두고 얼씬 말라고 어머니께 엄포를 놓았지만 어머니는 이튿날 낮에 아버지가 출근해버리자 고모와 쉬쉬 해서 할머니에게까지 비밀로 성내에를 다녀오는 눈치였다. 성내에를 다녀온 날 어머니와 고모의 얼굴은 핼쑥하고 가히 탈진해 있었다.
나는 삼촌이 당해도 되게 당한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도 삼촌이 나타나지 않자 요리조리 핑게를 대며 삼촌의 일을 숨겨오던 어머니는 기회를 보아 이 일을 가만히 할머니께 아뢰었다.
“그래, 내 미리부터 그런 줄 알았다. 아무래도 그 자식이 온전할 놈이 아니여.”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할머니는 오히려 침착했다. 해풍에 미어 잔가지만 남은 팽나무 같은 늙은 몸이 자세를 곧추세우는 듯했다.
“가자, 내 아무래도 그놈 면회를 해야키여.”
할머니는 그 굽은 허리에 지팡이를 찾아들며 먼길을 나설 채비를 했다.
“나토 가키여! 나도…….”
나도 떼를 써서 따라나섰다. 어머니는 되게 나무라는 시선을 내게 보내왔지만 할머니께서 그것도 사람 구실할 놈인데 놔두라는 바람에 심하게 따돌리지는 않았다.
우리는 툴툴거리는 자갈길을 버스를 타고 성내까지 가서 어렵게 경찰서를 찾았다. 우리가 낯선 경찰서 입구에서 한나절을 서성거리고 있자 어떤 신사가 지나다가 문득 발을 멈추고 할머니께 아는 체를 했다.
“아니, 김 주사 자당님 아니십니까?”
평복에 나까오리 차림의 그 신사는 아버지와 잘 아는 사이인 듯 할머니께 인사를 했다.
“오, 참, 자네가 여기 있다 했지? 우리 작은놈을 좀 면회시켜도라.”
할머니가 목마른 사람처럼 급하게 그의 소매를 붙들었다.
“이리 오십서. 내가 해봅주.”
그는 우리를 경찰서 안의 어떤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 방에는 벽 쪽으로 책상이 하나 놓여 있고 책상 앞 의자에는 좀 계급이 높아 보이는 일본인 순사 한 사람이 앉아서 책상 위에 가득 쌓인 문서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벽 쪽으로는 긴 나무의자가 하나 댕그마니 놓여 있었다.
나까오리 사내는 시선으로 우리에게 그 나무의자를 가리키더니 무슨 영문이냐는 듯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일인 순사에게로 가 일본말로 무어라곤가 지껄였다. 순사가 그냥 글을 쓰는 채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우리들을 남겨둔 채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우리가 한참동안 을씨년스런 방 분위기와 우리가 있든말든 문서 정리에 여념이 없는 순사에게 가뜩이나 시달린 다음에야 그가 며칠 동안에 생판 달라져버린 삼촌을 데리고 들어왔다.
삼촌은 모래판에 넘어졌을 때처럼, 평소에도 약간 불거져 나온 광대뼈 한쪽이 새카맣게 벗겨져 있었으며 새벽참에 이슬을 맞고 돌아온 듯 축 처져 있었다. 거기다 삼촌은 옷소매르 숨기고 있었으나 포승줄로 묶은 것이 곧 드러났으며 삼촌의 뒤에는 키 작은 순사 하나가 그림자처럼 딱 붙어 서 있었다.
“아니 이자식아, 어떵허다가…….”
할머니는 삼촌의 그 꼴을 보자 가슴에 모아쥔 두 손으로 적삼 앞섶을 걸레를 쥐어짜듯했고, 어머니도 돌아서서 저고리 고름으로 눈물부터 찍어냈다. 나는 한 발짝 삼촌에게로 다가갔으나 막상 이전처럼 아랫도리에 매달리지는 못하고 우뚝 멈추어 섰다. 조그만 가숙이 돌멩이로 꽉 채워진 듯 무겁고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삼촌은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듯 히쭉 웃었는데 그 웃음은 뺨의 상처가 당기는 듯 증간에 멎어버렸다. 그리고 그의 표정은 이내 일그러진 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어머니, 걱정 맙저. 죄가 없으니까 곧 나가게 됩니다…….”
삼촌의 음성은 약간 떨렸으나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삼촌은 결박지워진 손으로 거미 같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아니, 죄가 없는데 왜 이 꼴이냐? 이자식아! 이게 무슨 꼴이냐!”
할머니는 이번에는 삼촌의 가슴에 달려들어 그의 후줄근한 옷을 걸레 주무르듯했다. 삼촌은 지그시 눈을 감고 할머니가 밀고 당기고 하는 대로 한참 내맡기고 있었다.
“선상님덜, 이 우리 아덜 죄지은 거 용서해줍서! 아무 분수 몰라 지은 죄, 용서해줍서!”
이번엔 할머니는 방 가운에 앉은 일인 순사와 나까오리 사내에게까지 굽신거리며 빌었다.
“아주머니, 어머님 모시고 다신 오지 마셔요.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샴촌은 괴로운 듯 이번에는 어머니께 말했다.
“오냐오냐, 안 오.마, 안 오구말구…….”
가믐에 갈라진 땅 같은 할머니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리다 흡수되었다. 그리고 우리들 사이는 침묵으로 굳어져 있었다.
마침내 삼촌은 내게로 한 발짝 내디뎌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이 전에 없이 냉기를 전해 왔다.
“요즘도 연들을 날리냐? 친구들도 다 잘 있구?”
삼촌의 차분한 음성은 이젠 떨리지 않았다. 돌아서면 콱콱 가슴에 수평선이 막아선다고 격렬하게 들떠 있던 삼촌의 음성은 갇힌 이제 오히려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금년에는 연날리기 끝내는 행사를 못 보겠구나. 바다 멀리로 가물가물 사라
져 가던 불빛이 좋았었는데…….”
삼촌은 또 시야에 영상이 잡히는 듯 지그시 눅을 감았다.
러자 그그림자처럼 삼촌의 뒤에 지켜 서서 뭔가를 부지런히 쓰던 키 작은 순사가 시간이 다 되었다고 일깨웠다. 그러자 방 가운데 책상에 앉아서 문서 정리를 하고 있던 일인 순사도 꽤 흥미있는 건이라는 듯 고개를 쳐들어 우리를 보았다.
삼촌은 꿈속에서처럼 허우적거리며 사라져가고 우리들은 까뿍 햇볕이 쏟아지는 경찰서 뜰로 쫓겨났다. 어떻게 시가지를 걸어서 버스 정류장까지 왔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툴툴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비로소 경찰서는 나쁜 사람들을 잡아다 가두는 데라는데 삼촌은 무슨 나쁜 죄를 지었을까를 생각했다. 무슨 나쁜 죄를 지었길래 손까지 결박 지워져서 갇혀 있을까.
그러나 곰곰 생각해도 삼촌의 죄가 얼른 짚이지 않았다. 다만 막연히 짚이는 것은 삼촌이 그렇게 이 구속된 섬에서 헤어나고 싶어했다는 점이다. 어른이 돼
서까지 〈은하동산〉에 올라가 연을 날리고, 심지어는 바람부는 날 부러 연줄을 끊어 연을 날려보낼 정도로 이 섬을 벗어나고 싶어한 삼촌, 그리고 나는 꼭 삼촌의 죄가 이런데 연관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그것을 죄라고치면 엄청난 죄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내 작은 가슴은 콩콩 뛰기 시작했다.
해마다 우리들은 음력 정 월 보름날 저녁 에 연날리기를 마감하는 놀이를 가쳐왔지만 이 해에는 〈은하동산〉의 만세사건으로 늦춰져서 2월도 중순이 돼서야 그 행사를 치르게 되었다. 약속이 된 날 저녁, 아이들은 연과 종이에 싼 숯검정들을 가지고 〈은하동산〉으로 모였다. 그러나 이날 모인 아이들은 예년보다 훨씬 수가 적었다.
하늘엔 새털같이 찢긴 낮은 구름이 약간 깔렸고 바람은 마침 고르게 묵은 성터에서 바다 쪽으로 불고 있었다.
아이들은 연날리기를 시작하기 전 종이에 싼 숯검정을 연의 양쪽 귀에 매달았다. 그리고 〈厄〉, 〈除厄〉, 〈除厄迎而昌〉 같은 어른들이 써준 한문글자의 종이들을 연의 꼬리에 매달기도 했다. 가뜩이나 짐을 지워 무거워진 연들을 아이들은 하나 둘 하늘로 띄우기 시작했다. 마침 수평선 너머에서 보름 지난 달이 구름 새로 벌겋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마침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솟은 연은 나중에는 검은 그림자로 남아서 빨간 불빛들만이 가물가물거렸다. 그 불빛들은 뭔가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헤집어 놓고 함께 태워 날려 보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도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겨우 연을 띄워 놓고는 또 삼촌을 생각했다.
불붙는 듯 이글거리는 눈, 상처난 볼의 삼촌 얼굴이 어두운 하늘로르 떠올라가는 연에 부착되어서 멀어져 갔다.
“금년엔 연날리기 끝내는 행사를 못 보겠구나……”
못내 서운한 듯 뇌이던 차분한 목소리가 환청으로 되살아나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 왔다. 그래서 나는 울음이 터질까봐 아랫입술을 꼭 깨문 채 연줄을 풀어나갔다.
“찬수야, 연이 잘 올라가네.”
어스름 속에 여자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봤더니 창백한 고모 얼굴이 내 뒤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고모는 집에서 입는 허드레 옷바람에 삼촌이 신던 흰고무신을 꿴 채였는데 연줄을 풀어가는 내 작은 어깨를 바닷바람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듯 꼭 껴안았다. 이날은 비록 밤이긴 했지만 고모가 연날리는 이 언덕까지 올라온 것은 좀체 없던 일이었다.
그녀의 내게 대한 마음씀 같은 것이 가슴에 전달되자 나는 그만 어둠속에서 뚜룩 뜨거운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바람을 타기 시작한 연은 얼레를 푸는 대로 차츰차츰 어두운 밤하늘로 솟아올라 연의 실체는 감추어지고 연의 두 귀퉁이에 매단 두 개의 불빛만 허공에서 오락가락했다. 어두운 하늘에는 이제 여러 개의 빨간 불빛들이 유령같이 흐물거리는 연들을 배경으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한 체 휘살짓고 있었다.
“얘덜아, 이제 그만 연줄을 끊자!”
한 아이가 제의하자 아이들은 그걸 신호로 서둘러 연줄을 끊었다. 세 개, 네 개, 일곱 개, 줄 끊긴 연들은 불빛을 달고 어두운 하늘로 가물가물 사라져갔다. 그것들은 우리가 멍청히 바라보는 사이에 무거운 한이 담긴 희원 같은 감정을 띄우고 멀리멀리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마침내는 북쪽 바다 멀리로 아주 보이지 않게 갈앉아 가버렸다.
묵은 성터가 있는 을씨년스런 언덕에 서서 잦아드는 파도소리를 듣던 아이들은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발길을 돌려 마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어둔 언덕 위에 내버려졌던 고모와 나도 얼레를 챙겨 발길을 돌렸다.
“제발 연과 함께 모든 재앙이 가고 즐거운 일들이 돌아왔으면·…….”
고모는 내 어깨를 안고 걸으며 한숨처럼 가볍게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문득 언젠가 삼촌이 뇌까리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한 많은 섬, 어디를 둘러봐도 콱콱 수평선이 막아선단 말이야.
그 열면 음성, 타는 시선, 그리고 경찰서에서 만났을 때 볼이 벗겨진 채 안온하게 웃던 삼촌의 웃음, 그것은 체념이었을까, 길든 짐승의 것이었을까, 아니면 미래를 바라보는 배포 같은 것이었을까.
나는 어둠 속 돌부리에 발이 채여 넘어지면서 나의 공간에 무수히 죽어 멀어지는 떼까마귀 무리들을 보았다.
― 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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