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대전역에서 서울로 출발할때
저도 1호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주은언니와 아침 먹으며 그린 플랜카드 들고
언니 뒤에 숨어 언제 오나 초조히 기다렸습니다.
그 시간이 괜히 떨리고 설렜습니다.
아이들이랑 막상 만나니 참 반가웠어요.
와락 안기며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자마자 기분이 한껏 들떴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어딘가 가려 할 때
한손에 네이버 지도를 켜고
지도를 보는 동시에 발걸음을 옮기며
어디로 가야 가장 빨리 갈까, 늘 궁리했는데
그날은 아이들의 발걸음을 뒤따랐습니다.
토요일 아침, 그렇게 여유로이 서울을 거니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역에서 나와 버스를 타려는데 눈 앞에서 버스를 놓쳤습니다.
하윤이가 버스 기사님을 애절하게 불렀지만 매정한 버스 기사님은 그냥 가셨어요.
그때부터 호숫가 아이들과 서울에 함께 있다는 게 아주 실감났습니다.
경복궁에 들어가기 전, 세종대왕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돌 아닐까? 연습생 아닐까? 이거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면 대박 나는 거 아닐까? 싸인 받아야 되지 않나? 한번 가서 말 걸어볼까?” 했습니다.
”얘들아 아이돌은 저렇게 서울 길 한복판에서 춤추지 않아...“라고 말 하려다가 말았습니다.
아이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경복궁 구경 재밌었습니다.
메롱하는 천록도 보고, 그늘에서 한참 쉬기도 하고
향원정 앞에서 은우랑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눴어요.
처음엔 경복궁을 야무지게 구경하면 좋겠다 싶었다가,
아이들이 나름대로 둘러보고 즐거워 하는 걸 보고
저도 자연스레 느긋하게 둘러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여유롭고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이 맛있는 떡볶이집에 간다고 들떴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떡볶이집엔 홀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길거리에 간단히 설치할 수 있는 식탁과 의자가 있어서 아이들이 계획한 떡볶이 집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어요.
북촌 한복판 길에서 아이들과 먹은 떡볶이
지나가며 우릴 부러워하는 (신기해하는) 사람들의 눈빛
시원하고 청량한 포도 환타를 기대했지만 그에 미치지 못했던 포도 물
순대를 korean sausage 라고 표현한 메뉴판
오래오래 기억날 것 같아요.
정말 재밌었어요.
떡볶이집에서 정독도서관까지 가는 길에 귀여운 소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는데요
아이들이 방앗간에 들리는 참새들처럼 쪼르르 구경하는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마치 어릴 적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정독도서관에 도착해서는
들어가자마자 자리를 잡고 무섭도록 집중해서 책을 읽는 아이들 모습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초집중 모드가 된다고?
아이들 옆에서 저도 책을 읽었습니다.
졸릴락 말락 했는데 선생님께서 유우명한 커피를 사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서울사람 정세진 선생님께서 안국역으로 길을 안내해주셨어요.
아이들과 함께 전철 타는 거, 저는 참 좋았어요.
학교 다닐 때 혼자 무표정으로 터벅터벅 걷던 곳을
아이들이랑 함께 가니 괜히 웃음이 막 났어요.
은우야 너는 1분만에 초등학교 갈 수 있잖아,
근데 난 이러고 한시간 반동안 학교에 가야해- 했더니
은우가 ’헉 서울 사는 사람들 힘들겠어요’ 했습니다..
앞으로 지옥철을 탈 때면 종종 이때를 떠올리며
괜히 웃음이 날 것만 같아요.
한강에 도착했더니 비가 꽤 내렸습니다.
규리가 아니 이럴거면 대청호 앞에서 라면 먹겠다
이게 어떻게 한강라면이야! 했지만
한강 라면 끓이며 몹시 신나했고
헛구역질 나올 정도로 웃었던 아이들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점점 추워지는데 아이들 기차 시간은 꽤 남았길래,
저도 잘 안가는 더현대백화점을 추천하고는 헤어졌습니다.
여의나루역 입구 앞에서 우산에 묻은 물기를 온몸으로 흡수하며 아이들과 인사했어요.
여의나루역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들 중 아마 제가 제일 행복했을거예요.
지하철 타고 가면서 하루를 곱씹어보니 참 행복했어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지난 토요일이 무척 그리워요.
감사했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