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로마 제국은 동서로 분열되고 서로마제국 몰락 후 동로마제국까지 멸망했지만
그들이 사용하던 라틴어는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언어에 그 흔적을 남겼다.
라틴어와 권력
토르 얀손(Tore Janson, 2015)은에 의하면
5세기 로마가 망한 후 유럽은 게르만의 대이동을 시작으로 여러 왕국으로 분리 재편되었다.
로마는 망했지만 라틴어는 계속 사용되었다. 로마의 통치를 받으면서
피지배자들은 그들의 언어를 버렸기 때문이다.
로마의 식민지 지배는 효율적이었으며 광활했다.
로마 점령지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라틴어가 필수였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후에도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나라들은 라틴어를 계속 사용했다.
심지어는 게르만족의 언어가 라틴어에 의해 소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로마와 같은 정치, 행정, 법률, 조세 등 다양한 통치 수단을
게르만족의 언어는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라틴어가 확장되는 또 하나의 계기는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기독교가 서유럽에서 국가를 초월하는 권위를 획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후 서유럽에는 교회를 빼곤
유력한 권력이 없는 황무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통치 세력이 사라지자 군대와 무력 상인들도 사라지고 학교도 폐쇄되었다.
각 지역은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봉건제로의 이행이 착실히 진전되었다.
교류가 단절된 세계에서 라틴어도 지역어로 분화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기록에서는 여전히 라틴어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라틴어의 강한 생명력을 통해
언어가 단지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지배와 관리라는
문명적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교회 권력과 언어
송병건(2012)에 의하면
토르 얀손(2015)의 기술을 근거로 중세 유럽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봉건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유럽의 교회는 유일한 권력이 되었다.
12세기에는 라틴어가 유럽의 공통어가 되었다.
이후 종교개혁, 국가권력의 강화가 가시화되는 16세기를 거쳐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라틴어는 학문과 과학을 지배하는 자리를 유지했다. 그 중심에 교회라는 권력이 있었다.
교회는 교육의 중심이었으며 수
도원은 학문의 전당이 되었다.
여러 국가들이 서서히 세력을 키워 갔지만
이미 절대 권력이 된 교황은 교리를 근거로 유럽 지배구조의 정점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13세기에 접어들면서
봉건제가 성립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던 치안이 해결되면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무역이 재개되었고
도시가 부활했으며 대학이 설립되었다고 한다.
대학은 대부분 교황이나 영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하면서
교양으로 문법 · 수사학 · 논리학 · 수학 · 천문학이,
전공으로는 법학 · 의학 · 신학이 교육되었다.
15세기에는 유럽 전역에 100개가 넘는 대학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들 대학은 라틴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지식의 공유가 가능했다.
이를 배경으로 라틴어 사용은 봉건제 성립 이후
각 지역 언어의 분화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었다.
이런 상황은 라틴어를 사용하는 교회, 대학 사회와 지역어(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를
사용하는 일반 사회의 분리를 가져왔으며
학문용어로서 라틴어의 지위를 더욱 굳건히 하는 역할을 했다.
중세 대학의 학문,
심지어는 18세기 아이작 뉴턴, 르네 데카르트도 자신의 저작을 라틴어로 썼다.
16세기 종교 개혁으로,
독일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들이 지역어를 채택하기에 이르러
라틴어는 힘을 잃게 되지만
가톨릭 교회는 1960년대까지 라틴어를 고수했다(얀손, 2015).
이러한 교회의 권위, 대학의 라틴어 사용은
각 지역의 대다수 사람들이 말하는 지역어의 발전을 저해했고
권력, 종교, 학문이 특정 계급에만 집중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라틴어의 영향은 21세기도 15년이 지난 지금도 종식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문자 생활을 하며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열린 언어의 확립을 결정적으로 막는 역할을
라틴어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자로 기록되고 권력이 된 언어의 지배는 언어가 사라져도
그 흔적을 다른 언어에도 깊게 남기고 생명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제국 언어의 힘인 것이다.
- "언어와 권력" (2015. 11. 1.,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