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머리)
김범우는 홍교를 건너다가 중간쯤에서 멈추어섰다.그리고 북쪽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드넓은 낙안벌은 어둠 속에 그자취를 숨기고 있었다.징광산도 금산도 그리고 조계산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산줄기들도 농밀한 어둠의 장막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무수하게 뻗은 산줄기들은 모두 북으로 북으로 치달아가고 있었다.
조계산 줄기는 무등산 줄기와 손을 맞잡으며 섬진강에 이르고,그 지맥은 섬진강을
뛰어넘어 지리산으로 이어졌다.산속에 산을 품은 지리산의 준령들은 북으로 치달으다가
덕유산을 만나고,덕유산은 가쁜 숨을 몰아 추풍령에 다달아선 속리산으로 건너뛰는 것이다.
(중략)
대하소설 '태백산맥' 제1권 중에서/조정래
서양에서는 깊은 산이라는 표현이 없고 높은 산이라는 표현만 있다고 한다.
깊은 산은 한국에서만 주로 쓰는 표현이다.
우리는 산이 높은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산이 겹쳐 있는 것을 깊은 산이라고 한다.
이념과 이념이 충돌하는 격동기에 남부군이 제일 먼저 숨어 들어 거점을 마련한
깊은 산은 조계산과 덕유산이었다.
1차 6.25전쟁이 끝나고 2차로 민족상잔의 깊은 상처를 남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반면,조계산의 끝과 끝에는 한때 불교를 대표하는 큰 사찰,송광사와 선암사가 자리잡고 있다.
보성강과 드넓은 평야지대 그리고 조계산을 잇는 풍수지리상의 지세가 그만큼 좋다는 의미다.
산행 경로.
선암사 주차장-->비석삼거리-->천년 불심길,큰 굴목재-->원조보리밥집-->장군봉 삼거리
-->작은 굴목재-->장군봉-->대각암-->선암사-->선암사 주차장
9.2k/4시간30분+보리밥집 식사 1시간10분=총5시간40분
당초의 산행계획은 선암사-->큰굴목재-->송광큰굴목재-->천자암-->송광사로 잡았으나
겨울산행에 따른 일조시간이 짧고, 당일 수원에서 출발하여 일몰전에 산행을
마쳐야 하는 제약으로 선암사를 출발,장군봉을 거쳐 원점회귀 코스로 수정하였다.
깊은 산 깊은 절,꽃절로 이름이 나있는 선암사의 역사는 그이름 만큼은 평탄하지않다.
고려말,태고 보우스님을 증조로 5산9교의 선종으로 통합을 추진하였다.
이후 조선시대에 선교 양종체제로 되었고, 다시 1911년에 잠시 통합되는듯 하엿으나~
1945년 해방후 불교는 조계종과 태고종의 분규가 두 사찰간에 일어났고
이후 비구승의 조계종 송광사와 대처승의 태고종 선암사간 분규가
지금은 소강상태로 남아 있다.
원래의 장승은 경내의 설선당에 모셔져 잇고 이 모조품은 1987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비바람에 내구성이 좋다는 밤나무로 만든 것이다.
지하여장군과 천하대장군의 양강구도가 아닌 둘 다 수염이 있는 남자장승이다.
한분은 주먹코에 눈섭이 치켜 올라가고 수염은 꼬불꼬불하며,
또 한분은 가지런한 눈섭에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양반형이다.
선암사의 장승은 무섭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해학적이며 미소를 머금게 한다.
주위에 돌장승을 최근에 새로 설치해 놓았다.
선암사에는 4분의 仙녀가 있다.
선암사,승선교,강선루,임선교
선녀가 오르는 선암사의 제1경인 승선교.
승선교는 아래쪽의 작은 다리와 위쪽의 큰다리,두개로 구성된다.
우리나라 산사 진입로 중에서 가장 환상적이 분위기를 연출하는 아름다운 다리다.
계곡 아래에서 승선교의 무지개 다리를 통해서 강선루를 바라보는 구도로 찍는
사진이 이절을 대표하는 풍경이지만 오늘도 시간상의 제약으로 사진찍기를 포기한다.
선녀가 내려오는 강선루.
"염불보다 잿밥에 정신이 팔려있다"고 부모님이 항상 꾸짓던 말씀.
아름다운 꽃절 선암사는 겨울로 접어드는 12월에 왔어도 아름다움의 품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보리밥집에서 파전에 막걸리 한잔의 유혹 때문에 정신이 붕떠서
발걸음도 갈피를 못잡고 휘둘린다.
단풍나무와 편백나무의 군락지는 '천년불심길'로 통한다.
선녀가 나타나는 임선교.
천년 불심길의 하일라이트인 편백나무 숲,봅여름가을에 오면 힐링을 위한 휴식공간이
잘 갖추어져 있다.
수원 망포역에서 7시 출발하여 선암사 10시 도착,
선암사 주차장에서 10시30분에 산행출발,술시간에 딱 맞추어 12시30분에 도착했다.
이집의 대표 브랜드,보리밥.
1950년생인 이집 사장님은 안 보이고 이곳 산골짜기에서 공부도 못 시킨 불쌍한 딸,
시집 보낼 걱정에 한숨만 푹푹 쉬던 그딸이 어느덧 다커서 아줌마가 되어 서빙을 하고있다.
10여년전 이곳 동동주에 취해서 양지바른 곳에서 잠시 잠이 드는 바람에 해 저문 하산 길에
후래쉬도 없이 엄청 고생햇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문희님이 비법주를 챙겨왔다.
동동주,비법주에 파전과 비빔밥이 환상적이다.
비빔밥만으로도 훌륭한 안주가 되는데 산중 안주가 황송할 정도다.
동동주2 주전자에 비법주1병을 마시니 아달딸하다.
그래도 양심상 장군봉을 가지 않을 수 없어서 못내 아쉬운 발걸음을 재촉한다.
밥과 술에 취해서 핵핵 거리며 1km를 30여분을 오르니 작은 굴목재에 이른다.
이곳 스님들과 주민들이 넘나들던 골짜기 길이었다는데 나름 된비알이라고 할 수있다.
장군봉까지는 1km를 더 올라야 되는데 봉우리가 빼꼼히 보여서 지척인 듯 하지만
경사가 더욱 심해지면서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장군봉의 표지석 설치에 정성이 깃들어 있다.
호남지역 사람들은 모두 문필가이다.
아이구 숨차다. 떡 실신 지경이다.아직도 술이 안 깬다.
장군봉에 얽힌 이야기는 안내팻말로 대신한다.
마애석불.
제작연대 미상.
1987년 전라문화재로 지정.
뒤깐,깐뒤.
영월 보덕사의 해우소와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뒷간으로 우리나라 사찰의 뒤깐중 압권이라고 한다.
들어가서 엉덩이를 까고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에 사로 잡힌다.
때로는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해심소가 되기도 한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는 이곳 화장실의 분위기를 가장 절절하게
표현하였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에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구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 다닌다."
(중략)
2011년에 어느 젊은 여승이 화장실에 들어 갔다가 나오는 것을 목격했는데
상의를 횟대에 걸치고 들어갔다가 나오는 일련의 행위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건한 모습을 느꼈다.
'ㄸㅆ러 들어 갔다 나오는 것일 뿐인데 왜 그랬을까' 지금도 의문이다.
이번에도 변의가 전혀 없었지만 그냥 깐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려고
까 보았지만 종무형,윤고문과 문희님이 밖에서 기다리는 가운데 까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해우소 명상은 미수에 그친다.
다음에는 시간여유를 두고 천천히 오랬동안 까고 앉아 보기로 기약을 남긴다.
고요한,그윽한,아늑한 절집입구.
조계산과 메마른 나목들이 절을 감싸고있다.
벌거벗은 배롱나무의 자태는 오히려 겨울에 더 화려하고 관능적이다.
겨울을 아늑하고 포근하게 만드는 선암사는 우리의 마음도 따듯하게 해주는 힐링의 산사다.
태백산맥의 작가,조정래도 선암사 스님의 아들이고 선암사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臥松
예부터 소나무는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영물이자 신목으로 여겨졌다.
수령 500년 이상된 누운 소나무로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 7그루중 하나다.
속리산 법주사 입구의 정2품송,청도 운문사의 쳐진 소나무 등과 함께.
옆으로 옆으로만 눕는 이소나무를 위해 강풍에도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스프링을 장치한 철봉으로도 받쳐주고,대나무로도 보강해 놓았다.
산문 입구의 넓직한 공간이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고향에 온 것처럼 나를 편하고 넉넉하게 맞이해 준다.
뒤에 보이는 겨울의 조계산 능선 표면도 부드러운 양탄자처럼 느껴진다.
선암사는 웅장하지도,엄숙하지도,소박하지도,화려하지도 않은 절이다.
그저 오랬동안 이어져온 마을의 친근하고 포근함이 뭍어나는 절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유흥준교수는 이절을 양반들이 사는 묵은 동네
같은 절이라고 표현했다.
점심 때 경내를 서성이면 친절한 미소와 함께 시주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식사하고 가라면서 권유하는 곳도 이절이다.
꽃절로 정평이 나 있을만큼 아름답고 볼것도 많은데 입장료는 송광사보다 싸다.
천년사찰,선암사는 여러번에 걸쳐서 대형화재가 발생하여 전소와 중창을 반복하였다.
산은 강하고 물은 약한 山强水弱의 지형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연유로 조계산을 청량산으로,선암사는 해천사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지금도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의 현판 안쪽에는 古 청량산 해천사라는 현판이 별도로 걸려 있다고 한다.
대웅전 앞에 석등이 없는 것도 화재에 약한 이절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자기자신에 대한 물음,나는 누구인가,
온전한 마음은 어떤 것일까를 거듭 묻다 보면 어느 날,그렁저렁 하면서
삶의 질도 개선되지 않을까?
얼음장 밑을 흐르는 개울물 소리도 그곳이 아니면 들을 수 없듯이
선암사 법당에서 귀 기울이고 가만히 업드려 있으면 어떤 소리가 들릴 지도 모른다.
가만히 소리내어 물어본다."아~소크라테스 형,세상이 왜 이래?!"
산이 좋아서 산에서 산다.
그래서 산에 한번 들어와 살게 되면 산에서 떠나 오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잠시 동안 머물렀던 세번째의 선암사 답사도 역시 떠나는 발걸음은 아쉬움이 남는다.
"어린왕자"를 20번도 더 읽었다는 법정스님도 관계는 서로를 길 들이는 것이라는
문구에 한동안 꽃혀 지냈다고 한다.
조계산과 선암사와 나는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서서히 길들여 지는 것 같다.
술도 다 깨고, 맑고 향기로운 마음만 담고 산문을 나선다.
순천,고흥,강진,장흥,여수,목포의 바닷가 도시는 전남의 미각을 이어주는 맛의 벨트다.
몇시간의 산행이 내 앞에 무었을 가져다 놓은들 맛이 없으랴.
순흥식당.
사실 이식당은 이지역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백반 맛집으로 20여년이상 운영해온 노포다.
많은 식당들이 그러하듯이 노포들의 상차림에는 계절별로 신선한 재료준비에서 부터 시작하여
밤 새워 육수를 준비하고 며칠에서 몇시간 동안 양념을 숙성시키는 고단한 과정이 숨어있다.
그래서 식당주인들이 10여년이 지나면 노령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식당을 포기하거나
음식맛이 변 할 정도로 간편하게 내 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식당은 후자에 속하여 음식맛이 변한 경우다.
불타는 순천의 토요일 밤에 얼굴들이 불콰하다.
나는 뉘기? 여기는 워디? 혹시 우리 좀비?
밤 9시,순천역 앞 광장은 연말의 화려한 네온사인 밑에 괴기스러울 정도로 적막감이 감돈다.
우리는 아직도 목이 마르다. 세번째 술상차림이 이어진다.
아담한 이호텔에 있을 것은 다 갖추어져 있다.
간단한 조리기구와 음향시설과 함께 책도 있는 휴식및 파티공간이다.
어제 하룻밤 신세를 거하게 진 '아이엠 호텔'.
아름다운 밤이 었어요.
아침 해장국으로 동태탕.
재료가 지닌 원래의 맛보다 훨씬 자극적인 양념으로,재료와 양념이 각각 서로를
자극하여 제3의 맛을 창출해 내는 이지역의 요리는 맛의 고향이고 맛의 보고다.
우연히 기웃거리다가 찾은 이집에서 아침부터 입안 가득히 행복을 맛 보았다.
이식당의 음식에는 마지막 국물 한방울까지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배려가 담겨있다.
순천역 건너편,아이엠 호텔 바로 옆에 있다. 우리 해장국(061.745.1610)
(날머리)
'아버지는 시주라고 해야 고작 쌀 한 됫박 정도밖에 못하는 신세이면서도 굳이
먼 길을 걸어 선암사를 찾아다녓던 것이다.조계산 자락에서 화전을 일구어 먹은
것도,벌교땅에서 그나마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된 것도 모두 선암사 부처님의 가피
덕이라는 것을 하대치에게 일깨웠다.
짙은 안개가 계곡을 가득 채우고,(조계산)자락을 휘감고 있었다.그 안개위로 먼동이 터오는
여린 빛이 내리며 단풍든 숲 속에 도사린 어둠을 서서히 표백시키고 있었다.
몸집 작은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안개 속 그 어디에선가 방울을 굴리듯 경쾌한 음향을 뿌렸다.
그건 개울가의 잔돌들을 저벅저벅 밟는 사람들의 기척소리에 놀란 새들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새들은 먼동이 터오는 빛으로 잠이 깨어 날개 퍼덕이며 첫울음을
우는 것이엇고,그 울음소리를 듣고 (조계)산도 깨어나고 있었다.'
태백산맥 중에서/조정래
겨울에 따뜻한 실내공간에 머물다 보면 침울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코로나로 엄중한 시기에 잠시동안 도피처로 순천을 택하엿다.
4인방이 한셋트를 이루어 차 한대로 떠나면서 생활방역과 거리두기를 실천하기로 한다.
도보의 속도로 겨울여행을 떠나보면 자꾸만 가라앉는 기분을 끌어 올릴 수 있다.
동면의 계절에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살아 있다는 존재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행복보다 더한 기분좋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겨울에 음울환 기분을 여행이라는 공간에서 네사람의 따뜻한 체온으로 채워본다.
다시 여수로 떠나면서~
(끝)
피에수:사진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신 박종무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차량제공과 운전으로 좋은 시간을 만들어 주신 윤상현님의 수고로움에 찐 감사드립니다.
좋은 술을 마련하여 흥을 돋구워 주신 손문희님에게 각별한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