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도 오히려 비신자보다 못한
모습으로 우리 교회에 먹칠을 하는 사람을 보면 속이 상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답답합니다.
모든 단어들은 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컨대 사과라는
단어에는 사과만의 모양과 색깔, 맛을 그 안에 담고 있습니다.
사랑이니 정의니 하는 어려운 단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과와 같은 단어는 그 내용이 비교적 단순하여 혼란이
없지만, 사랑이나 정의 같은 말들은 복잡한 까닭에 여러 가지
내용을 집어넣습니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쉽게 답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이런 단어 가운데 으뜸이‘하느님’일
겁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넣고 싶은 내용을 집어넣어 그것을‘하느님’이라고
부르고 싶어 합니다. 이건 이름만 하느님입니다.‘우상을 섬기지
마라’는 계명이 왜 십계명의 첫 자리에 있는지 여기서 그 이유가
밝혀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모든 우상들이‘우상’이 아닌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용은 우상이지만 이름만은‘하느님’으로 치장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야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속상하게 하는 그 교우분 역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우상에‘하느님’이란 이름으로 치장하여 살고
있을 겁니다. 그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진짜’하느님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진짜일 때 빛이 나지만, 가짜일 때는
무서운 독이 됩니다.
- 홍경완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