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
손우현
김승웅 선배님,
아침에 선배님의 SOS 전화를 받고 간단한 글 하나 급조하여 보냅니다.
얼마전 글방에 실린 예전 글 중에 구대열 교수님이 Bertrand Russell의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에 시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Byron을 소개하고 있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대학 시절 범문사에서 구입 Spinoza, Kant, Bergson 등 제가
관심있는 부분을 읽은 다음 아직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외로 여러 차례 이사를 하면서 아내의 성화로 '필요 없는' 책은 많이 정리했으나
이 책은 언젠가는 다시 정독하겠다며 소중하게 간직했습니다.
마침 이달 관훈클럽 영시 모임에서 발표를 하게되어 Byron을 대상 작가로 선정하고
이 책의 Byron 관련 chapter를 읽어 보았습니다. 글방에 혹시 관심이 있으실 회원도 계실 것 같아
그 내용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늘 감사드리며,
손우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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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과 나폴레옹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
(“I awoke one morning to find myself famous.”)
영국의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Lord Byron, 1788~1824년)이 남긴 말이다.
그의 ‘차일드헤럴드의 편력’1·2부(“Childe Harold's Pilgrimage,”Cantos I & II)가
출간된1812년 3월 3일 아침바이런은그의 친구 토마스 모어에게 이렇게 말했다..
바이런은 1809년부터 1811년에 걸쳐 포르투갈, 에스파냐, 그리스 등을 여행하고
돌아와서 이 장시의 1부와 2부를 내어 일약 유명해졌다.
그것은 환락의 생활을 혐오하여 이국땅에서 위안을 찾아 헤매는
한 순례자의 견문 수상(隨想)을 엮은 것이다.
Byron은 영국보다는 유럽에서 더 큰 평가를 받았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 받지 못한다’는 루가(누가)복음 말씀이 떠오른다.
Bertrand Russell은 그의 저서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에서
시인으로서는 유일하게 Byron을 다루고 있는데 Byron이 보기보다 중요한 인물이었다며
영국보다는 유럽에서 더 큰 영향력을 끼쳤으며 그의 정신적 후예도
대륙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Among those whose importance
is greater than it seemed, Byron deserves a high place...It was on the
Continent that Byron was influential, and it is not in England
that his spiritual projeny is to be sought.)
바이런은 나폴레옹을 숭배했다. Russell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During the Hundred Days, Byron proclaimed his wish for Napoleon's
victory, and when he heard of Waterloo, he said, 'I'm damned sorry for it.')
러셀은1824년 Byron이 서거했을 때 프랑스 신문들은
‘금세기 최고의 두 위인인 나폴레옹과 바이런’이 거의 동시에 세상을 떠났다고
논평했다고 소개했다. (‘In France, when Byron died, 'It was remarked
in many newspapers that the two greatest men of the century,
Napoleon and Byron, had disappeared almost at the same time.’)
러셀은 바이런의‘귀족적인 반항의 철학’이 이탈리아 카르보나리부터 히틀러까지
일련의 혁명적인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한다.
("The aristrocratic philosophy of rebellion, growing, developing,
and changing as it approached maturity, has inspired
a long series of revolutionary movements from the Carbonari
after the fall of Napoleon to Hitler's coup in 1933.)
러셀은 바이런이 자신이 사탄의 맞수라고는 생각했지만 니이체와는 달리
신의 위치를 차지하려고는 하지 않았다고 두 사람을 비교했다.
<한불협회 회장, 숙명여대 객원교수, 데일리 임팩트 논설위원/전 대통령 해외공보비서관,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코리아 헤럴드 파리지사장, 역임/프랑스 정부 예술문화훈장 <기사장> 수훈, 저서: "프랑스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