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치료 핵심은 자기사랑~~
마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모를때는 그저 신비한 마법처럼 보일뿐이다.
우리는 자신을 안다고 말하지만 의외로 잘 모른다.
부모가 자식의 속 마음을 안다고 자부하지만 실제 대화를 하다보면
엉뚱한 식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수가 있다.
이처럼 끝없는 관심과 사랑이 중요하지만,
우린 너무나도 쉽게 겉모습, 말 한마디, 행동을 보고 쉽사리 판단해 버린다.
마음이란 것도 그렇게 단순하게 알수가 없다.
굳이 두가지로 구분을 한다면 의식과 무의식이 존재한다.
無意識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학자에 따라서 개념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를 해본다.
- 해결되지 않는 정서의 저장 창고
-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능력을 발현할수 있는 심리상태
- 하인처럼 주인이라는 내가 명령을 하면 그대로 따라주는 소중한 친구
- 인간의 언행을 일으키는 컨트롤타워
- 모든 문제의 원인이 담겨져 있고, 그것을 해결할수 있는 지혜의 공간
쉽게 말해서 한 사람이 자기에 대해서 잘 알기 위해서는 무의식을 이해해야 한다.
최면치료의 정의를 말하자면
무.의.식과의 소통을 통해서 건강한 마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할수가 있다.
물건을 사면 그에 따른 비용(가격)을 치루게 된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 또한 그렇게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는 모든 말과 행동 하나하나는 고스란히 저장되고 기억이 된다.
좋은 경험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나쁜 경험은 고스란히 마음속에 남아서 나를 괴롭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부정적인 것들이 많을수록 컨트롤타워는 혼란상태를 느끼기 마련이다.
집이라는 공간이 항상 편안하고 안정되어야 하는데,
불이 났을때 과연 어떠할까?
정신이 없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채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애가 탈 것이다.
최면을 통해서 인간의 깊은 마음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올바르게 풀수 있도록 도와줌을 의미한다.
티비에서는 마술처럼 ' 레드썬' 하면 마치 조종되는 것처럼 과장되기도 한다.
그것이 꼭 거짓은 아니지만 실제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최면술사가 신비하게 인간을 조종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인간을 조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을 한다.
물론 상대방이 그것을 온전히 믿고 따를때 그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반응을 하는 것이지,
한순간의 퍼포먼스를 통해서 그것을 바꾼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깊은 내면의 마음속으로 들어갈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모를 경우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잃어 버린다.
대부분의 문제는 心에서 시작된다.
그러면 그것을 알아야만이 멈출수 있는 치료법을 찾게 되는데,
우린 그것을 찾기 보다는 당장 쉬운 방법을 찾기도 한다.
마치 약을 먹으면 한순간에 우울한 심리가 좋아지고 불안증이 사라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두통이 심한 사람이 약을 먹으면 당장은 머리가 편할지 몰라도,
두통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경우에는
수시로 머리의 통증을 느끼면서 약물을 먹을수밖에 없다.
자칫 하면 내면 심리는 더욱더 약해지면서 중독이 될수 있는 부작용또한 존재한다.
냄새나는 항아리 위에 종이를 덮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진다고 믿는가?
귀신이 무섭다고 해서 눈을 감아버리면 정말로 귀신이 사라질까?
근본적인 문제를 접근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내면의 방황은 심해지면서
우리의 무의식은 점점더 병들어 갈 뿐이다.
그러면 고스란히 의식적인 '나' 는 무엇인지도 모른채 매일 힘겨운 사투를 할수밖에 없다.
요즘 명상이 뜨고 있는 이유는 그런 과정을 스스로 탐구하고 놓아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이젠 알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명상학을 전공하였지만, 한 개인의 깊은 내면의 심리치유가 되지 않으면 그 또한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최면치료는 가장 기본인 뿌리를 튼튼하게 강화시켜주는 좋은 방법이 된다.
이것을 다른 말로 '자기사랑' 이라 말하고 싶다.
사랑이라는 것은 관심과 이해, 수용등의 개념을 포함한다.
마치 겉으로 비싼 옷을 입혀주고, 좋은 차를 태워주고, 명품가방을 사주는등의 행위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질적인 것은 결국 사라지게 된다.
온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외부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그것을 아낌없이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비싼 과외를 보내주는 것보다,
아이와 함께 웃어주고 놀아주고 안아주는 것이 수백배 수천배 이상의 좋은 선물이 된다.
생각보다 우린 자신을 깉이 love 하지 않기도 한다.
미워하고 잔소리하고 질책하고 작은 실수에도 비난을 일삼기도 한다. .
그러면 고스란이 우린 상처와 아픔을 받게 된다. .
남들에게 나쁜 소리를 들어도 기분이 나쁠지언데,
내 스스로 그렇게 해버리면 평생 씻을수 없는 아픔을 간직하게 된다.
무의식이란 친구는 강한것 같지만 어린 아기처럼 순수하고 약하다.
이렇게 말을 할수도 있다. " 엄마, 그만 욕해, 나 무섭단 말이야 ㅠㅠ "
그렇게 하루이틀 1년 십년 시간이 쌓이면서 서서히 병들어가게 된다.
내가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사랑보다 자기미움에 가깝기 때문이다.
왜 머리로는 아는것 같지만 가슴으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오랜 시간 물질적인 욕망, 쾌락, 성공에 대한 욕구에 사로잡힌 나머지
내면의 마음에 대해서 소홀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심신이 병들어 버리게 되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때 부랴부랴 치료를 하기 위해서 애를 쓰지만 그 또한 단지 고통에서 벗어나는
이기적인 행위라면 오히려 증세만 악화되기도 한다.
내면으로 들어가서 진짜의 마음을 느끼고 반성하고 대화를 해 봐야 한다.
최면치료를 하다보면 대부분 무의식에 들어가서 생각지도 않는 과거속의 자기 모습을 보게 된다. .
그동안은 기억을 지우고 싶어하고, 숨기고 싶어하고, 못난 자기를 없애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실제로 들어가서 그것을 느끼다보면 반대의 생각이 들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비로소 자기성찰과 반성이 시작된다.
미워할때는 수용이나 공감자체가 되지 않기에 어떠한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무의식의 心) 마주함으로써 그 대상이 더이상 미워하고 억압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끝없이 아껴주고 사랑해줘야 하는 존재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러면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불이 난 집을 진화할수 있는 열쇠를 찾는 것과 같다.
그것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저 방황과 근심 걱정의 시간만 흘러갈 뿐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이런 부분은 온전히 알수가 없다.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여전히 남의 지식을 갖고 내 것처럼 착각한 것이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다 머리속으로는 안다고 말을 한다.
경험이나 실질적인 체험이 없기 때문에 말로는 할수 있을지 몰라도,
가슴으론 어떤것도 느끼지 못한채 합리화를 해버리는 경우가 참 많다.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항상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는등 증상을 겪으면서도 말이다.
나와 멀러지려 하지 말라
그럴수록 고무줄이 팽팽하게 늘려지는 것처럼 긴장이 된다.
최면치료의 핵심은 긴장된 나를 편안하게 이완시킴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나와 마주할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말한다.
마술이나 쇼가 아니라 한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나' 를 알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것은 겉으로 대단하지 않아 보일지 몰라도,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 된다.
현대인은 자꾸 머리가 발달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가슴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유로운 감성을 지닌채 살아갈수가 있다.
윤활유가 없으면 모든 기계는 고장이 난다.
자기를 모르고서는 삶을 살아가는 의미와 목적이 사라져 버린다.
그냥 목적지 없이 끝없이 달려만 가는 배와 같다.
아니면 그저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배일 것이다.
무의식을 이해하고 경험한다는 것은 참 소중한 경험일수밖에 없다.
프로이트 학파에서는 이것을 부정적이고 억압되고 충동적이고.....
좋지 않는 개념으로 표현을 하지만 최면을 10여년 연구해본 바로
그것은 참 선의적이고 착하고 고맙고 알아가야 할 좋은 친구와 같은 느낌이 든다.
내 안의 모든 것은 갖다 버리거나 없애야 할 것들이 없다.
오히려 올바르게 소통하지 않고 자기사랑을 실천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그런 악감정을 치유하고 정리해야 하는 것이지
본래 자체는 그런 나쁜 친구가 아니다.
내가 그렇게 나쁘게 바라보고 길들였기 때문일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