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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6월 27일 토요일
[(녹)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주교 학자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말씀의 초대
애가의 저자는 예루살렘의 파멸을 보고 탄식하며, 주님께 소리를 지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시고 감탄하시며 그의 종을 고쳐 주시고, 베드로의 장모를 비롯해 많은 이들을 고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 소리 질러라, 딸 시온의 성벽아.>
▥ 애가의 말씀입니다. 2,2.10-14.18-19
2 야곱의 모든 거처를 주님께서 사정없이 쳐부수시고
딸 유다의 성채들을 당신 격노로 허무시고
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땅에 쓰러뜨려 욕되게 하셨다.
10 딸 시온의 원로들은 땅바닥에 말없이 앉아
머리 위에 먼지를 끼얹고 자루옷을 둘렀으며
예루살렘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까지 내려뜨렸다.
11 나의 딸 백성이 파멸하고 도시의 광장에서
아이들과 젖먹이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눈은 눈물로 멀어져 가고 내 속은 들끓으며
내 애간장은 땅바닥에 쏟아지는구나.
12 “먹을 게 어디 있어요?” 하고 그들이 제 어미들에게 말한다,
도성의 광장에서 부상병처럼 죽어 가면서, 어미 품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13 딸 예루살렘아, 나 네게 무엇을 말하며 너를 무엇에 비기리오?
처녀 딸 시온아, 너를 무엇에다 견주며 위로하리오?
네 파멸이 바다처럼 큰데 누가 너를 낫게 하리오?
14 너의 예언자들이 네게 환시를 전하였지만 그것은 거짓과 사기였을 뿐.
저들이 네 운명을 돌리려고 너의 죄악을 드러내지는 않으면서
네게 예언한 신탁은 거짓과 오도였을 뿐.
18 주님께 소리 질러라, 딸 시온의 성벽아.
낮에도 밤에도 눈물을 시내처럼 흘려라.
너는 휴식을 하지 말고 네 눈동자도 쉬지 마라.
19 밤에도 야경이 시작될 때마다 일어나 통곡하여라.
주님 면전에 네 마음을 물처럼 쏟아 놓아라.
길목마다 굶주려 죽어 가는 네 어린것들의 목숨을 위하여
그분께 네 손을 들어 올려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5-17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14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15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
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카파르나움은 호숫가의 작은 도시였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었습니다. 유다인과 이방인, 정결한 이와 부정한 이, 자유인과 노예로 나뉜 경계입니다. 그 한가운데 한 백인대장이 있습니다. 그는 제국의 질서를 따라 명령과 복종에 익숙한 사람이지요. 그러나 그가 예수님께 건네는 말은 명령이 아니라 부탁입니다.
“주님, 제 종이 ……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마태 8,6). ‘종’이라고 옮긴 그리스 말 ‘파이스’는 노예 또는 아이를 가리킵니다. 이름 없이 불리는 존재, 그러나 누군가를 간절하게 만드는 인물. 백인대장은 그를 위하여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낮춥니다. 백인대장의 고백은 체면을 버리는 대신 한 사람의 고통을 멈추게 하려는 애원처럼 들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에 놀라워하십니다. 동쪽과 서쪽에서 많은 이가 와서 아브라함과 함께 잔칫상에 앉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세상의 신분과 권력과 명예가 갈라놓는 경계가 영원하지 않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바깥 어둠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경계에서 안타깝게도 서로를 잊어버리는 이들, 그들의 어둠을 경고하십니다. 복음은 누구를 배제하기보다 우리가 ‘우리’로 서 있는지 조용히 묻습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부인의 손에 당신 손을 대셨고 그 부인은 일어났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이 모든 장면을 이사야 예언자가 한 말로 감쌉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8,17).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멀리 밀어내시기보다 사랑으로 당신께서 기꺼이 짊어지십니다. 병의 무게가 누군가에게 홀로 남겨지는 상처가 되지 않도록 상처 곁에 머무는 법을 배우는 일,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뜨거운 하느님 사랑의 불꽃에 순식간에 소멸되어 버린 상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젊은 사제 시절, 아이들 생활 시설에서 생활했습니다. 당시 소년원에서, 분류 심사원에서, 법원에서 수시로 저희에게 아이들을 보내주셔서, 기숙사는 아이들로 넘쳐났습니다.
단체생활이다 보니 별의별 전염 질환들이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옴이었습니다. 한방에 옴 걸린 아이가 들어오면 순식간에 전염됩니다. 어쩌다 보니 저도 옴에 걸렸는데, 정말이지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얼마나 가려운지 밤새 피가 나도록 긁고 또 긁었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손가락 하나 하나에 붕대를 감고 잠자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기에 나중에는 옴 방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격리 수용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그렇게 밤새 안절부절 못 하면서 나병 환자들이 겪었을 고통에 잠시나마 동참했습니다. 예수님 시대 가장 가난했으며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갔던 사람들이 바로 나병 환자들이었습니다. 번번한 치료제도 없던 당시 매일 썩어 문드러져 가는 자신의 환부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는 것은 참으로 큰 괴로움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고통이 있었으니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당시 나병을 하느님의 벌로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더 이상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 밖으로 나가 동굴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사람들과 세상으로부터 격리가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병 환자는 보아하니 꽤 중증 환자였습니다. 그는 이미 오랜 세월 나병에 시달려왔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치유자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나병 환자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로구나. 목숨을 한번 걸어보자.’ 하면서 율법규정까지 어겨가면서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치유되고 싶은 심정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얼굴을 땅에 대고 완전 납작하게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정말이지 온몸과 마음을 다 담아서 절박하게 청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온몸이 종기로 뒤덮인 한 가련한 인간과 측은지심으로 가득 찬 하느님이 만나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 나병 환자가 지니고 있었던 수많은 죄와 상처, 종기, 고름은 뜨거운 하느님 사랑의 불꽃에 모두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그 대신 태초의 보송보송한 애기 피부로 아름답게 재생되었습니다.
결국 죄인인 우리, 결핍과 상처투성이뿐인 우리 인간이 살길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접촉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사제 모임이 잘 끝났습니다. 비행기가 두 번이나 취소되면서 시작부터 쉽지 않았지만, 결국 무사히 도착했고, 좋은 만남과 은총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그렇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산 넘어 산’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그 시간도 하느님의 손길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욥은 시련 가운데서도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좋은 것을 주셨을 때 감사하였다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나쁜 것을 주셨을지라도 감사드립니다. 인생은 빈 몸으로 왔으니, 빈 몸으로 돌아갈지라도 감사드립니다.” 제가 예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영어 문장이 있습니다. “Life is not about for the storm to pass, it is learning to dance in the rain.(인생은 시련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시련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나무에는 ‘옹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옹이는 상처일 수도 있지만, 옹이는 어쩌면 훈장일 수도 있습니다. 제게도 크고 작은 ‘옹이’가 있습니다. 어떤 것은 저의 실수와 잘못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어떤 것은 욥이 겪었던 것처럼 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긴 것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성경 말씀처럼 지나간 날의 옹이에 감사드립니다.
‘산 넘어 산’을 겪어야 했던 분이 있습니다. 감당하기에 버거운 직책을 맡았지만 지혜롭게 직책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은행 일을 보고 나오던 중 강도를 만났습니다. 가방을 빼앗겼지만, 다행히 몸은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불안해서 새로이 집을 옮겼습니다. 전에 있던 집은 성당에서 5분 거리여서 좋았는데 새로 옮긴 집은 15분 거리였습니다. 그래도 새집을 축성 받으며 마음을 주고 지냈습니다. 동생 부부와 함께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성지순례 중 뜻하지 않게 남편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건강을 회복하였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작년 1년은 큰 어려움 없이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또 ‘산 넘어 산’을 넘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아들이 응급실을 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동생이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2년 전에 제게 기도를 부탁했듯이, 올해도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산을 잘 넘을 수 있는 용기를 청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시련 속에서도 희망의 길을 찾기를 청합니다.
세월의 무게를 견딘 나무에는 ‘옹이’가 있습니다. 옹이는 상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옹이는 그 나무가 강한 바람과 추운 겨울을 견디어 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의 상처도 그렇습니다. 실패와 아픔, 억울함과 눈물은 우리의 약점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여기까지 살아왔다는 믿음의 훈장인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돌아보면 크고 작은 옹이들이 있었습니다. 저의 부족함 때문에 생긴 것도 있고, 욥처럼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시간도 저를 더 깊게 만들었고, 사람들의 아픔을 조금 더 이해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지나간 날의 상처에도 감사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에는 이렇게 반복되는 시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련이 없느냐가 아닙니다.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나의 딸 백성이 파멸하고 도시의 광장에서 아이들과 젖먹이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눈은 눈물로 멀어져 가고 내 속은 들끓으며 내 애간장은 땅바닥에 쏟아지는구나.” 예언자는 백성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억눌린 이가 수치를 느끼며 돌아가게 하지 마시고, 가련한 이와 불쌍한 이가 당신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 신앙은 아픈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의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것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을 믿는 것입니다. 1997년 제기동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성당 마당에는 감나무가 한그루 있었습니다. 파란 감들이 주렁주렁 가지에 매달려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감나무에서 감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감나무는 왜 감을 떨구어 냈을까요? 본당 신부님께서는 제게 “감나무는 더 크고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해서 스스로 작고 볼품없는 감들을 떨구어 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의 백인대장은 참 아름다운 믿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종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십시오. 제 종은 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사랑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자신만을 위한 믿음이 아니라, 아픈 이를 위한 믿음이었습니다. 지금 힘든 시간을 지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지나간 뒤에 돌아보면, 그 시간 속에도 주님의 은총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눈물이 내일의 믿음이 되고, 오늘의 상처가 내일의 옹이가 되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입니다. 좋을 때 감사드리고, 힘들 때도 감사드리면 좋겠습니다. 건강할 때 감사드리고, 병중에도 감사드리면 좋겠습니다. 성공했을 때만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도 감사드리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그 믿음 안에서 오늘도 희망의 길을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사이에 나 있으니>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마태 8,6ㄴ)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 8,8)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마태 8,13ㄴ)
벗
당신
사이에
나 있으니
벗이
되어
당신께
당신
벗
사이에
나 있으니
당신이
되어
벗에게
오늘의 성인
성 라디슬라오 (Ladislaus)
활동년도 : 1040-1095년
신분 : 왕
지역 : 헝가리(Hungary)
같은 이름 : 라디슬라우스
헝가리의 국왕 벨라(Bela)의 아들로 태어난 성 라디슬라우스(또는 라디슬라오)는 1077년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는 한차례 친척들의 퇴위 요구를 받은 적이 있으나 이를 무사히 진정시켰다. 그는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를 적극 지원하면서, 헝가리의 성왕인 스테파누스(Stephanus, 8월 16일)를 거울삼아 그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그는 바이에른(Bayern)의 공작 웰프(Welf)의 딸인 아델라이드(Adelaide)와 결혼하였고, 쿠만족(Cumans)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물리쳤으며, 자신의 나라에 그리스도교를 적극 장려하였다. 뿐만 아니라 많은 성당들을 세웠고, 유대인들과 마호메트인들에게도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관대함을 보였다. 1092년의 자볼릭 교회 회의에서 그는 종교적, 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일련의 법을 선포하였고, 제1차 십자군의 지도자로 선정되었으나 출전하기에 앞서 보헤미아(Bohemia)의 니트라(Nitra)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헝가리의 국가 영웅 중의 한사람이며 헝가리의 영토를 최대한으로 확장했던 위대한 왕임과 동시에 통치자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정의를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덕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는 사후 바로 공경을 받기 시작하여 1192년 교황 코일레스티누스 3세(Coelestin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의 유해는 자신이 세운 나기바라드(Nagyvarad)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성 치릴로(Cyril)
신분 : 총대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지역 :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활동연도 : 380-444년
같은이름 : 시릴, 시릴로, 시릴루스, 치릴루스, 키릴로, 키릴로스, 키릴루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태생인 성 키릴루스(Cyrillus, 또는 치릴로)는 그 도시 총대주교인 테오필루스(Theophilus)의 조카였다. 성 키릴루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고전과 신학 교육을 받았고, 그의 아저씨에 의하여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403년 총대주교를 수행하여 콘스탄티노플로 갔으며, 그곳에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9월 13일)를 단죄한 퀘르키아(Quercia) 주교회의에 참석하였으며, 417년까지는 테오필루스의 노선에 따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를 반대하였다. 412년 10월 15일 테오필루스가 사망하자 성 키릴루스는 사흘 후에 그의 아저씨를 계승하여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성 키릴루스의 지지자와 그의 라이벌인 티모테우스(Timotheus)의 지지자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 그는 큰 상처를 입고 출발하였다. 그런데 성 키릴루스는 자신이 축출하였던 노바티아누스(Novatianus) 이단을 상대로 일련의 공격을 다시금 재개하였다. 그 결과 그가 그 도시에서 몰아냈던 유대인들과 총독 오레스테스는 그의 이같은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다.
430년 성 키릴루스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Nestorius)와의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지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천주의 모친일 수 없다고 가르쳤으며, 따라서 마리아에게 '천주의 모친'(테오토코스, Theotokos)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성 키릴루스는 교황 성 코일레스티누스 1세(Coelestinus I, 4월 6일)를 설득하여 430년 8월에 로마(Roma)에서 주교회의를 개최하여 네스토리우스를 단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같은 해 11월에 알렉산드리아에서도 주교회의를 열어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을 단죄하여 교회 일치를 도모하였다.
성 코일레스티누스 1세 교황은 성 키릴루스로 하여금 네스토리우스를 축출하도록 지시하였고, 성 키릴루스는 431년 제3차 에페수스(Ephesus) 공의회에서 교황의 특사 자격으로 의장직을 맡아 회의를 주재하였다. 이때 200명 이상의 주교들이 대거 참여하여 큰 성황을 이루었다. 이 공의회는 네스토리우스가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총대주교 요한과 42명의 추종자들이 대거 몰려오기 전에 네스토리우스와 그의 추종자 세력을 단죄하여 분쇄하였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 일파는 그들 나름대로 회의를 소집하여 성 키릴루스를 축출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래서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성 키릴루스와 네스토리우스를 체포하였으나, 교황대사가 와서 네스토리우스에 대한 공의회의 결정이 올바르다고 전하자 성 키릴루스는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2년 후 안티오키아 주교들을 대표하는 요한 총대주교와 성 키릴루스는 위의 단죄를 인정하는 동의안을 결의하는데 도달하였고, 네스토리우스는 강제로 유배되었다.
그 후 성 키릴루스는 삼위일체와 강생에 관한 교리 확립과 신학 논문 저술에 여생을 바쳤고, 그리스도교 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던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와 네스토리우스주의를 배격하는 일을 하여 교회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알렉산드리아가 낳은 가장 유명한 신학자이다. 그의 저서는 정확한 사고와 명확한 전개 및 그 합당한 근거 제시로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성서에 관한 그의 주석서 가운데에는 요한, 루카 그리고 모세오경이 있으며, 수많은 교의신학 논문을 비롯하여 배교자 율리아누스(Julianus) 황제에 대한 반박문, 편지 그리고 강론들이 전해온다.
그리스 교부의 한 명인 성 키릴루스는 1882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언되었다. 동방 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은 6월 9일에 기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