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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산 북릉에 핀 눈꽃. 꽃잎이 바람에 흩날린다.
천 첩 운문산에는 물도 바위도 기이하니 千疊雲門水石奇
소요하던 삼족당 그곳에서 노닐었지 逍遙三足此棲遲
어찌하면 집을 짓고 그 속에 누워 何當結屋中間臥
산색과 샘물 소리로 내 배고픔을 즐길까 山色泉聲樂我飢
―― 간송 조임도(澗松 趙任道, 1585~1664), 「운문산의 산수를 회상하다(懷想雲門泉石)」
주) 삼족당(三足堂)은 김대유(金大有, 1479~1551)의 호다. 정여창의 문인인 그는 1519년
현량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었으나 기묘사화로 인해 관작과 과거합격이 몰수되자 청도에서
은거하였다.
▶ 산행일시 : 2017년 2월 11일(토), 맑음, 맹추위
▶ 산행인원 : 16명
▶ 산행거리 : GPS 거리 21.4km(1부 13.0km, 2부 8.4km)
▶ 산행시간 : 11시간 58분
▶ 교 통 편 : 대형버스(45인승) 대절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3 : 10 - 경부고속도로 칠곡휴게소
04 : 30 ~ 04 : 50 - 석골사 입구, 산행준비, 산행시작
05 : 02 - 석골사, ┫자 갈림길, 직진은 상운암, 운문산 가는 길, 왼쪽이 억산 가는 길
05 : 41 - 능선마루
06 : 10 - 슬랩, 암봉
06 : 34 - 억산(億山, 953.6m), 깨진바위
07 : 14 - ╋자 갈림길 안부, 팔풍재, 왼쪽은 대비사 2.6km
08 : 00 - 삼지봉(三枝峰, 904m)
08 : 11 - 범봉(962.0m)
08 : 28 - ╋자 갈림길 안부, 딱발재
09 : 10 - ┣자 갈림길, 직진은 운문산 0.3km, 오른쪽은 상운암 0.4km
09 : 20 - 운문산(雲門山, 1,195.1m)
10 : 18 - ╋자 갈림길 안부, 아랫재
11 : 12 - 상양마을, 하양교 앞, 1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2 : 44 - 호박소 계곡 입구, 삼양교 앞, 2부 산행시작
13 : 24 - 숯가마터, 왼쪽 지능선 오름
14 : 20 - 1,092m봉, 가지산 주릉 진입
15 : 08 - 가지산(迦智山, △1,240.9m)
15 : 36 - 중봉(1,167.4m)
16 : 48 - 석남사주차장, 산행종료
17 : 16 ~ 18 : 45 - 언양, 목욕, 저녁식사
22 : 38 - 동서울터미널, 해산
1. 운문산 정상에서
2. 운문산, 오른쪽 뒤가 범봉이고 그 뒤가 깨진바위와 억산이다
▶ 억산(億山, 953.6m), 깨진바위
(본의 아니게) 황제산행이다. 당초 예정했던 산행인원이 대폭 줄어 16명이 되었다. 45인승
대형버스로 간다. 저마다 널찍한 좌석 2, 3개씩 차지하여 가로로 누어보고 세로로 누어보고
무박 자세 잡기에 골몰한다. 버스는 미동도 없이 스르르 미끄러지듯이 고속도로를 달린다.
금방 잠에 취한다. 히터를 너무 세게 틀었다. 더워서 잠을 깬다. 어느새 경부고속도로 칠곡휴
게소다.
부산 방향 이 칠곡휴게소 화장실이 2016년 하반기 고속도로휴게소 최우수 화장실로 선정됐
다고 한다. 졸린 눈이 번쩍 뜨인다. 화려한 벽화를 보고 룸살롱에 들어온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었으나 자세히 살피니 영화나 뮤지컬의 스틸을 그렸고 눈 닿는 데는 명대사를 써놓았다.
진짜 미친 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거야
―― Musical <See What I Wanna See>
사람을 가장 많이 성장시키는 존재들에게 끌리는 법,
그리고 같이 성장하는 거래
―― Musical <Wicked>
One day, I'll fly away, leave all this to yesterday
- film<Moulin Rouge> by Baz Luhrmann
“언젠가는 날아가리, 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바즈 루어만(Baz Luhrmann) 감독의 영화 <물랭 루주(Moulin Rouge, 2001)>에 나오는
대사다.
You can like the life you're living, you can live the life you like.
―― Musical <Chicago>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
화장실을 나갈 때 보이는 글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2016년 10월 15일 막을 내린 제
2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기념해 기획된 헌정 필름의 주제였다. 세상의 모든 신스틸러를 위한
이 헌정 프로젝트는 총 4편으로 제작되었는데 배우 최우식과 조재윤, 장영남, 이엘이 각각의
주인공으로 나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고 한다.
억산의 들머리를 석골사(石骨寺)로 잡았다. 버스가 석골사 입구의 주차장을 지나치기에 기
사님이 뭔가 알고 가는 줄로만 알았다. 동네 좁은 길로 들어서고 어쩌면 블라인드 코너와 맞
닥뜨려 오도 가도 못하는 지경이 되지 않을까 불안하여, 계속 갈 수 있나 보지요 하고 묻자
우리가 아무 말을 안 하기에 계속 간다고 한다. 다행히 조금만 후진하면 다리 옆이라 버스를
돌릴 공간이 있다.
기사님은 ‘버스는 알아서 뺄 테니 어서 산이나 가시라’고 재촉한다. 마음 한 구석이 약간 찜
찜하지만 그냥 간다. 가로등 불빛이 환한 대로를 10분 남짓 가니 돌담 위 보안등 밝힌 석골
사다. 새벽 염불소리가 들릴 법한 시각인데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염불은 원서천(院西川)
계류에 맡겨놓았는지 계류 물소리만 낭랑하게 들린다.
석골사 지나자마자 ┫자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은 원서천 계곡 길로 상운암과 운문산 가는
길이다. 왼쪽 산등성이로 난 길이 억산으로 간다. 이정표 거리가 들쭉날쭉하다. 석림사 오기
전에는 2.97km이라던 억산이 3.3km로 오히려 늘었다. 울퉁불퉁한 돌길이 이어진다. 정월
대보름달이 등로를 비춘다. 대기는 차디차다. 달빛도 차다. 가파른 오르막길 거친 입김이 안
개처럼 일어 눈앞을 가린다.
선두로 가다 괜히 이 맹추위에 덜덜 떨라 후미 속도를 예의 살피며 갈 일이다. 휴식. 배낭 매
고 선 채로 능선에 기대어 바람 피한다. 능선에는 살에는 바람이 분다. 고수의 칼은 무디다고
한다. 능선에 부는 바람이 그다지 세지 않지만 살갗에 닿기만 해도 아프다. 챔프 님의 달변이
어눌해진 건 말조차 곧바로 얼어붙어서다. 암봉이 나온다. 가파른 슬랩을 밧줄 잡고 오른다.
바위에 올라 구름 속 숨바꼭질하는 보름달을 얼른 구경하고 다시 숲속을 간다. 저 앞의 우뚝
한 봉우리가 억산이 아닐까? 몇 번이나 오독한다. 꼬박 봉봉을 직등하여 넘는다. 왼쪽에서 구
만산을 넘어오는 등로와 만나고 억산이다. 동트려면 아직 멀었다. 잠시 서성이다 내린다.
3. 가지산 왼쪽 어깨 위로 동이 틀 무렵. 억산에서
4. 깨진바위, 뒤쪽 직벽을 내리느라 식겁했다
5. 깨진바위
5-1. 우리가 오른 억산 남릉
6. 범봉 지나며 북쪽 조망
▶ 삼지봉(三枝峰, 904m), 범봉(962.0m), 운문산(雲門山, 1,195.1m)
억산 내리는 길이 헷갈린다. 등로는 오른쪽 사면을 내리는데 골로 갈 듯이 쏟아진다. 억산 정
상에 다른 길이 있는지 뒤에서 빼~액 하는 외침이 들리고 뒤돌아 오른다. 챔프 님과 대포 님,
나는 오르다 말고 오른쪽 능선을 향하는 소로가 보여 이 길이 맞나 보다 하고 냉큼 따른다.
깨진바위로 가는 길이다. 억산 암벽 위에서 헤드램프 밝히며 두리번거리는 일행들에게 여기
가 맞노라 소리쳐주고 깨진바위를 둘러본다.
깨진바위 내리는 길은 남쪽으로 나 있다. 잡목 숲 너덜을 지나고 절벽을 만난다. 밧줄이 달려
있다. 수직절벽 깊은 바닥에 그만 아찔하여 뒤돌아가려 하자 챔프 님이 주저 없이 하강하고,
그 뒤로 대포 님이 낙폭을 줄여 2, 3m쯤 되겠다며 나를 안심시킨다. 내 차례다. 먼저 스틱을
아래로 던져 퇴로를 차단한다. 장갑을 벗는다. 맨손이면 곱아 손놀림이 도리어 둔해지지나
않을까 망설였으나 밧줄 혹은 암벽 홀더에 미끄러지지 않고 힘주려면 맨손이 낫겠다는 생각
이 든다.
약간 오버행인 직벽이 5m는 넘겠다. 밧줄이 고드름처럼 차갑고 딱딱하다. 레펠 흉내하여 내
린다. 이 다음은 완만한 바위 슬랩이다. 앉은 자세로 뭉개 내린다. 잘 난 주등로와 만나고 긴
깨진바위 자락 돌아내리는 데크계단이 나온다. 바닥 친 안부는 팔풍재 ╋자 갈림길이다 왼쪽
은 대비사(2.6km)로 내리고 오른쪽은 대비골이다. 바람 이는 능선 비킨 사면에 기대여 아침
요기한다. 대포 님이 버너 불 피워 끓인 어묵으로 한속을 녹인다.
억산을 다시 올랐던 다수 일행은 어떻게 되었을까? 깨진바위를 올랐다가 내리려면 절벽구간
에서만 1명이 2분은 소요할 테니 30분 가까이 걸릴 것이라는 챔프 님의 계산은 정확했다. 그
러나 그들은 절벽을 돌아내렸다. 햇볕이 들어도 추위는 좀체 가시지 않는다. 영화 ‘투모로
우’에 버금가는 한파다. 아무튼 걷는 것이 상책이리라. 줄달음한다.
가파른 오르막을 숨차게 올라 전망바위다. 억산 북릉 끄트머리에 첨봉으로 솟은 578.0m봉과
건너편 깨진바위의 흘립한 대슬랩이 오랫동안 눈길을 붙든다. 한 피치 오르면 904m봉이다.
예전에 못 보던 ‘三枝峰’이라는 정상 표지석이 있다. 약간 내렸다가 오른쪽 사면을 길게 질러
오르면 너른 공터로 범봉 정상이다. 휴식한다.
억산에서 운문산이 왜 이렇게 멀까 했더니 지도에 억산이 잘못 표시되어 있다. 국토지리정보
원과 영진지도에는 이 범봉을 억산으로 표시하였다. 우리는 실제 지명을 쫓았으니 억산과 깨
진바위, 삼지봉을 덤으로 올랐다. 비로소 운문산이 눈앞을 거대한 장벽으로 가린다. 923.8m
봉 넘고 키 큰 산죽 숲 사면을 오른다. 등로 벗어난 능선마루 옆 전망바위에 들른다.
환상적인 경치가 펼쳐진다. 운문산 정상 주변에 상고대 눈꽃이 만발하였다. 오른쪽 상운암에
서 오는 ┣자 갈림길을 지나고부터 운문산에 이르는 0.3km가 눈부신 산상화원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무수한 편편이 꽃보라가 되어 반짝반짝 빛난다. 북쪽 사면의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발아래는 내 일찍이 보지 못한 별유천지다.
운문산 정상. 모처럼 날이 맑다. 커다란 자연석에 새긴 여초 김응현 선생의 ‘雲門山’ 글씨가
힘차다. 정상 주변은 온통 새하얀 눈꽃이 핀 기화이초의 화원이다. 슬쩍이라도 건들면 금방
여린 소리가 날 듯한 빙화(氷花)가 되기 직전이다. 이러하니 정상에서 오래 머문다. 신가이
버 님이 봄동 배추전을 무겁게 지고 왔다. 탁주 안주로 안성맞춤이다.
7. 범봉 지나며 북쪽 조망
8. 운문산 북서사면, 상고대 눈꽃이 만발하였다
9. 운문산 서릉, 앞 왼쪽 빙폭은 선녀폭포다
10. 운문산 북릉
11. 운문산 북쪽 골짜기
12. 운문산 북릉, 눈꽃이 바람에 흩날린다
13. 운문산 북쪽 조망
14. 운문산 정상 주변
15. 운문산 정상 주변
▶ 가지산(迦智山, 1,240.9m), 중봉(1,167.4m)
가지산 넘어 석남고개까지 가려던 1부 산행계획이 틀어졌다. 지도의 억산 오기와 깨진바위
에서 헤맨 것이 크게 작용했다. 운문산 동릉 내린 아랫재에서 상양 마을로 내리기로 한다. 점
심 도시락을 버스에 두고 왔다. 운문산에서 바라보는 가지산도 정상 주변은 만발한 눈꽃으로
환하다. 저 화원에 다가가지 못하고 그만 점심 먹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 아쉽다.
운문산 내리는 길. 가파른 돌길이다. 데크계단으로 사면을 길게 돌아 가지산 전망바위 두 곳
을 차례로 들르고 암릉 왼쪽 사면으로 난 돌길을 내리면 ╋자 갈림길 안부인 아랫재다. 오른
쪽 상양 마을로 간다. 울창한 낙엽송 숲길이다. 이때는 사뭇 봄날이다. 쭉쭉 내달린다. 산자
락 벗어나면 사과밭 너른 농로가 나온다. 가을날 이 길은 지나가기만 해도 달콤한 사과향기
가 코끝을 간질인다.
아랫재 이정표의 ‘상양마을’이 ‘삼양마을’의 오기인 줄 알았더니 삼양리의 하양, 중양, 상양
중 상양이었다. 동천 건너는 하양교 앞에서 버스기사님 부른다. 우리 버스는 석남사주차장에
있다. 이곳에 버스를 오게 하는 데 대간거사 님이 기사님과 수차례 전화하여 50분이 넘어 성
공한다. 도로 갓길에서 버스로 바람 막고 점심밥 먹는다. 손이 곱아 젓가락질 하는 것이 기예
다. 아예 입을 들이댄다.
2부 산행. 구 도로 타고 호박소 계곡 입구로 간다. 운동장만한 크기의 주차장으로 미루어 보
건데 여름에는 차량과 인파로 퍽이나 북적이었을 곳이다. 오늘은 우리뿐이다. 일단은 계류
건너 밀양고개 쪽 용수골 주등로를 따라간다. 가지산을 오른 옛 기록은 어떠한지 찾아보았
다. 일제강점기 학자였던 암서 조긍섭(巖棲 趙兢燮, 1873∼1933)이 18세 때 이곳을 유람하
고,「구연 유람기(遊臼淵記」(1891, 고종28)를 남겼다. 그중 일부다.
구연(臼淵)은 밀양의 동쪽 가지산 성남동에 있는데, 그 상하로 수 십리에 높직이 솟은 봉우
리와 휑하게 열린 골짜기와 포개어진 돌과 옥소리가 나는 물이 수 없이 많다. 그 산에는 수목
이 무성하여 빽빽하고 어둑하니 원숭이가 아니면 다닐 수 없다. 그 위로는 마치 구름이 일어
나고 안개가 자욱한 듯하여, 비록 역산에 정통한 사람이라도 그 형세를 살필 수 없고, 음지쪽
으로 향한 깊은 골짜기에는 비록 한여름이라도 얼음이 녹지 않으니, 바라보고 있으면 아득히
천태와 삼협에 대한 생각이 일어난다. (臼淵在密州之東伽智之山星南之洞。其上下數十里。
聳然而巒。呀然而谷。纍然而石。琤然而水者。不知其數。其山則樹木叢薄。蒙密環翳。非猿
則不可行。其上若雲興霧蔚。雖巧曆不能審其形勢。其深壑之向陰者。雖盛夏氷不解。望之杳
然。有天台三峽之想。)
맑은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 너럭바위를 밟고 구불구불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그윽한 샘과
괴이한 바위가 은은하게 보이고 가만히 드러난 것을 점차 보게 된다. 그리고 만약 소나무 사
이에서 나오는 듯한 소리를 듣게 되면, 또 정신이 송연하고 기운이 맑아서 발걸음이 가볍고
빨라져 발이 절룩거리는 노고를 잊는다.
(及其溯淸流履盤石。逶迤而進。漸見幽泉恠巖隱見潛露。若聞有聲髣髴出乎松樹之間。則又
神竦氣淸。步武輕捷。不知其蹩躃之爲勞苦也。,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 김홍영 (역)
┃ 2015)
주) 구연(臼淵)은 화강암이 오랜 세월 동안 물에 씻겨 절구(臼)의 파인 부분이 호박처럼 생
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인데, 이곳에서는 ‘호박소’라고 부른다.
17. 가운데 멀리는 간월산과 신불산(오른쪽)
18. 가지산
19. 왼쪽 멀리가 가지산 정상
20. 운문산
21. 백운산, 버스가 점심 때 일찍 도착하였더라면 백운산을 오르려고 했다
22. 호박소 계곡(용수골)
23. 멀리가 간월산과 신불산(오른쪽)
24. 가운데가 백운산, 그 뒤는 천황산, 그 왼쪽 뒤는 재약산
26. 앞이 가지산 오른쪽 뒤는 중봉
27. 가지산 중봉
암서 선생의 묘사는 아주 적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지금은 중소대폭와폭과 계류가 동
면에 들어 빙폭과 빙하로 멈추었다. 왼쪽으로 전망대 가는 ┫자 갈림길을 한참 지나고, 이정
표에 ‘가지산 2.2km’라는 지계곡을 건너 숯가마터 나오고 왼쪽의 엷은 능선을 잡는다. 길 없
는 우리의 길이다. 낙엽이 수북하게 깔려 있어 발걸음에 힘이 부쩍 들어간다.
오후 들어 추위가 많이 누그러졌다. 윈드 스토퍼 벗는다. 칼바람이 비지땀 식혀주는 시원한
미풍이다. 지루하고 긴 오르막 끝은 깨진 바위들이 수두룩한 암봉인 1,092m봉이다. 크게 숨
한 번 들여 마시고 암벽에 달라붙는다. 암봉 위는 영남알프스를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일망
무제의 경점이다. 가지산 주등로에 내려서고 발걸음이 한결 여유롭다. 능선 암릉에는 칼바람
이 불어 전망을 보려고만 잠깐씩 들른다.
헬기장 지나기 전 왼쪽 지능선 전망바위는 단체로 들른다. 운문산이 듬직하게 보이는 경점이
다. 헬기장 지나고 매점 지나 바윗길 돌아 오르면 영남알프스의 맹주인 가지산 정상이다. 한
국지명유래집에 의하면 “가지산은 본래 ‘까치산’이라는 순수한 우리말 이름으로 가(迦)는
‘까’의 음을 빌린 것이며, 지(智)도 ‘치’의 음을 빌린 것이다. 까치의 옛말은 ‘가치’이고, 가지
산은 옛 ‘가치메’의 이두로 된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이 산의 다양한 이름(석남산, 석안산,
實惠山, 詩禮山, 穿火山) 중에 가지산이 통용되는 이유는 불교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지산 삼각점은 1등 삼각점이다. ‘언양 11, 1998 복구’. 아침에 멀리서나마 그 화려하던 눈
꽃은 다 졌다. 그래도 눈이 시도록 사방 둘러보고 내린다. 석남사주차장이 종점이다. 서두른
다. 돌길 긴 한 피치 내리면 ╋자 갈림길 안부인 밀양고개다. 왼쪽에 인적이 보여 따랐으나
이내 가파른 경사의 눈길이 조용하여 뒤돌아 오른다. 역시 돌길 한 피치 오르면 가지산 중봉
( 1,167.4m)이다. 이제 석남사주차장에서 만나자고 하고 막 가기로 한다. 아무쪼록 내 걸음
으로 가자 하니 혼자 가는 산행이 되고 만다.
중봉 내림 길은 악명이 높다. 가파른 내리막에 돌길이 지겹도록 이어지기 때문이다. 진땀께
나 뺀다. 무릎이 화끈하다가 시큰거린다. 예전에 길 잘못 들기 십상이었던 능선 마루금은 이
정표 세우고 왼쪽 데크계단으로 안내한다. 데크계단은 대역사라고 할 만큼 길다. 완만한 길
이 나오면 왼쪽 건너편 산릉의 쌀바위 기웃거리며 간다.
석남사주차장 가는 길도 잘 났다. 이정표가 안내한다. 여기서도 가파른 내리막인 돌길을 엄
청나게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나서야 고즈넉한 소나무 숲길이다. 갈림길이 나오면 인적의
다과를 계량하여 선택한다. 일로 직진이다. 드디어 중봉이 맥을 놓을 무렵 왼쪽의 목재계단
을 내리면 첫 번째 석남사주차장이다. 우리 버스는 세 번째 주차장에 있다.
모두 내렸을까? 훈훈한 버스 안에 올라 오늘도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프 나누는데
신가이버 님을 포함한 몇몇이 보이지 않는다. 내 뒤로 잘 오던 무불 님, 모닥불 님 등을 데리
고 엉뚱한 길로 갔다가 바삐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28. 왼쪽 멀리가 간월산, 신불산, 오른쪽 가운데는 백운산, 그 뒤는 천황산
29. 오른쪽이 운문산
30. 멀리 뾰쪽한 산이 재약산, 그 오른쪽 앞이 천황산
31. 가지산 북서쪽
32. 가지산 북서릉
33. 운문산
35. 가지산 정상에서
36. 가지산 정상에서 북쪽 조망
37. 가지산
38. 가지산 쌀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