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하듯 게임하듯 즐겁고 가볍게,
그러나 결코 경솔하거나 허술하지는 않게
임철순
2022년이 저물어가네요.
쓸 건 없는데(아니 이것저것 많긴 한데 생각이 정리가 안 돼서)
차례가 또 다가와 어거지로 이거저거 갖다 붙여서 하나 또 그렸습니다.
눈길 빙판길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글방 글에 너무 과로하지 마십시오.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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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요
‘인생은 아름다워’는 참 좋은 말인가 봅니다.
이 말을 들으면 맨 먼저 로베르토 베니니가 감독, 주연을 맡은 1997년 이탈리아 영화가 생각납니다.
다섯 살 난 아들과 함께 나치 수용소에 갇힌 남자가 그 상황을 아들에게 단체게임이라고 속이며
억지로 적응해가는 모습이 우습지만 슬펐습니다. 올해 9월에 개봉한 우리나라 뮤지컬 영화도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라비에벨(La vie est belle)이라는 골프장 이름도 같은 뜻입니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스탈린이 암살한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1879~1940)가
죽기 6개월 전에 쓴 유언장에서 따온 제목입니다.
“벽 아래로 빛나는 연초록 잔디밭과 벽 위로는 투명하게 푸른 하늘... 그리고 모든 것을 비추는 햇살이 보인다.
인생은 아름답다. 훗날의 세대가 모든 악의 억압과 폭력에서 벗어나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로베르토 베니니는 실제로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한 홀로코스트(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 아버지의 회고를
영화로 살려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때 상황을 어린 아들에게 게임에 비유해 설명했다고 합니다.
세상살이에 어려움이 크고 사람과 사회에 대한 실망이 쌓일수록 우리는 인간이 아름답기를 바라며
인생이 살 만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려 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처럼 분열과 증오, 편 가르기가 고질이 된 상황에서는
배려와 애정, 상호 존중이 소중합니다. 따뜻한 정과 이웃의 의미를 더 생각하게 되는 연말에
나는 ‘인생이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는 글 두 편을 인터넷을 통해 읽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40대 후반 여성이 쓴 ‘천사 같던 윗집 할아버지’입니다.
글을 축약해 소개합니다.
“11년 전쯤에 지금 아파트로 이사를 와 이사떡을 돌렸는데,
돌아와 보니 문에 호박과 호박잎이 든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습니다.
바로 윗집 할아버지가 답례로 놓고 간 것이었어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를 혼자 수발하며 사는 할아버지는
아내를 매일 두 번씩 휠체어로 산책시키고, 옷과 신발도 정성껏 색색깔로 갈아입혔어요.
음식을 하면 가져다드리곤 했는데 그런 날엔 꼭 쌀튀밥, 김부각 등이 담긴 비닐봉지를 문에 걸어 놓고 갔습니다.
어느 날 위에서 쿵 소리가 나 인터폰을 했으나 받지 않고, 뛰어올라가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어
119신고를 했습니다. 구급대원들이 문을 뜯고 들어가보니 할머니가 휠체어에서 떨어져 쓰러져 있었습니다.
급하게 병원으로 이송한 뒤 밖에서 돌아온 할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지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하더군요.
다음 날 할아버지는 사양하는데도 돈 10만 원(대신 내준 자물쇠 수리비)과 박카스 한 박스를 주고 갔습니다.
그 뒤 아침 7시에 출근하는 남편이 누가 자꾸 차를 닦아놓는다고 해서 알아보니
아침 5시 30분에 할아버지가 나와서 차를 닦더군요. 차를 구석에 숨겨 세워도 귀신같이 찾아내 닦아놓았습니다.
'남편이 손 세차가 취미인데 이러면 주말에 할 일이 없어져 곤란하다'고 해서 겨우 말렸어요.
그 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문 앞에 각종 채소와 군것질거리가 걸려 있곤 했습니다.
3년이 지나 할머니가 멀리 떠난 뒤 자식들이 모시고 살기로 합의했는지 다음 주에 이사 간다고
할아버지가 인사를 하러 왔더군요. 친정아버지보다 더 자주 뵙고 따랐는데 아쉽다고 하자
‘나도 아들만 둘인데 막내딸 생긴 기분이어서 좋았다’며 할머니의 유품인 옥가락지와 은거북 가락지를
쥐여주었습니다. 한사코 사양했지만 ‘나 기운 빠져서 쓰러지면 책임질 거냐’며
반 협박성으로 떠넘겨 결국 받았습니다.”
글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떠나시고 윗집에 신혼부부가 이사 와서 그 집 애가 벌써 다섯 살이 되어가네요.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할 때마다 할아버지가 떠올라요. 누군지 몰라도 엘리베이터만 타면
고개 숙여 인사하시고 별일 없냐고 물어봐 주시던 할아버지 덕분에 저희 동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꼭 인사를 나누거든요. 아직 세상에 따뜻한 사람이 많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
오랜만에 추억 속의 사연을 꺼내 보았네요.”
두 번째 이야기는 ‘어릴 때 엄마가 보여준 최고의 사랑’입니다.
“저는 유치원 시절쯤부터 몇 년간 소아암으로 많이 아팠어요. 지금은 완치돼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35살 미혼 여자예요. 그냥 아픈 것도 아니고 암이었는데, 이상하게 병원에서의 기억이 행복하게 남았어요.
열만 나면 무조건 응급실 가고 당연한 듯 입원하고 그랬는데. 입원실이 없어 새벽 내내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조명은 쨍하고 여러 가지 소리로 시끄러운 와중에 엄마가 내 옆에 누워 진짜 재밌다는 표정으로
‘○○야, 우리 캠핑 온 것 같다, 그치? 맨날 집에서 자다가 이 시간에 안 자고 여기 있으니까 재밌다.’ 이러셨어요.
엄마가 진짜 재밌어하는 것 같아서 저도 재밌었어요. 입원하는 날에는 ‘우리, 병원 슈퍼에서 이것도 사 먹고
저것도 사 먹고 TV도 실컷 보자! 재밌겠다, 그치?’ 웃으면서 짐 싸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병원에 있는 내내 개미도 잡고 식물도 관찰하고 분명 몸 아팠던 거 기억나는데 되게 재밌었어요.
엄마가 얼마나 많이 아는지 재밌는 동서양 동화 얘기도 엄청 많이 해줬어요. 제가 유독 아픈 날에도
‘아픈 거 계속 가지 않아. 잠깐이야. 알지? 끝나고 재밌게 놀자’ 이런 말 꼭 해주고 항상
‘우리 ○○야, 아파도 돼. 맨날 아파도 되고 맘껏 아파도 돼.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괜찮아.’ 이런 말을 자주 했는데,
이상하게 그 말이 ‘아프지 마. 얼른 나아야지’ 그 말보다 듣기 좋았어요."
글은 이렇게 끝납니다.
“가끔 드는 생각이 그 응급실 침대에서 ‘○○야, 재밌겠다, 그치?’ 했던 엄마가 속으로는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을까 그 생각하면 맘이 참 아프고 많이 고마워요. 그냥 아픈 것도 아니고 암이었는데.
엄마 나이 그때 서른한 살인데.... ㅠㅠ 저는 35살 먹고도 철없거든요.
정말 엄마가 보여준 최고의 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이 글에 대해 감동의 댓글이 쇄도하자 그는 추가로 이렇게 썼습니다.
“엄마는 병원 생활 내내 보통 어른이 하기 힘든 상상 얘기나 놀이 같은 걸 많이 해줬어요.
의사 선생님이랑 간호사 선생님을 외계인이라고 그러고, 간호사들이 아픈 처치 같은 거 해줄 때
어린 마음에 진짜 외계인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를 쳐다보면 눈 찡긋하고 쉿 하던 게 생각나요.
그런 식으로 주변 상황이나 인물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재밌는 얘기를 해줬는데
얼마나 재밌었는지 몰라요. 엄마가 즐거워하면 나도 덩달아 즐거웠던 기억이 생생해요.
주사를 왜 맞아야 하는지 세균맨 만화 같은 그림 그려서 재밌게 설명해주고... 나중에 ‘엄마도 엄청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웃으면서 날 대했냐’고 물어보니 뒤에서는 많이 울고 힘들었는데
내가 오랜 투병 생활하면서 보통 아이들처럼 못 크고 마음도 우울한 아이로 클까 봐 그게 젤 무서웠다고,
그래서 이왕 아픈 거 병원 생활이라도 즐겁게 해서 마음은 안 다치게 하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참 좋은 할아버지, 슬기로운 엄마입니다.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유희하듯 게임하듯 즐겁고 가볍게, 그러나 결코 경솔하거나 허술하지는 않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인생은 아름답다'는 말은 어느 개인의 삶이 아름답다기보다
함께 사는 세상과 사람들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인생은 끝내 살 만한 것이고 어디까지나 아름다운 것입니다. <12.16 자유칼럼>
<데일리임팩트 주필· 전 한국일보 주필, 편집국장(한국일보 견습 29기)/近著:"한국의 맹자 언론가 이율곡",
"손들지 않는 기자들",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 "노래도 늙는구나"/보성고 문예반장~고대 독문학과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