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2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일오삼 1·5·3
요 21:3~11
<지구의 배꼽>
수년 전 갈릴리 바다에 갔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함께 간 목사님과 갈릴리 바다에 발을 담갔습니다.
내륙호수인데 꽤 커서 물가에 마치 파도치듯이 잔잔한 물결이 밀려왔다 밀려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다’라고 불렀던가 봅니다.
호수의 둘레가 약 53km, 남북 직경이 21km, 동서 11km입니다.
갈릴리 호수 수면이 해발 마이너스 213미터입니다. 바다 수면보다 한참 밑에 있습니다.
여기서 물이 다시 낮은 곳으로 흘러흘러 그 유명한 사해에 이릅니다.
소금 바다, 사람이 누우면 둥둥 뜨는, 사해,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까지의 직선거리는 104키로미터입니다.
물길이 어디 직선으로 흐릅니까? 구불구불 256키로 물길이 이어집니다.
사해 바다는 해발 –400 미터입니다.
세계 지형상 매우 독특한 구조입니다.
해수면보다 낮은 갈릴리 호수, 사해!
우리 몸의 피부 아래에 자리 잡은 곳이 배꼽입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수와 사해를 ‘지구의 배꼽’으로 부릅니다.
‘지구의 배꼽’은 더 나아가서 ‘우주의 배꼽’입니다.
2천 년 전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요한복음 21장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먹고사는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예수님이 불렀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마!”(마 4:19, 막 1:17)
어부가 물고기를 잡으면, 그 물고기는 사람의 양식이 됩니다.
만일 어부가 사람을 낚아 올리면요? ~ 그 사람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어떤 사람을 낚았어요 ~ 그러면 그 사람은 내 밥이 됩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는 생선을 안 먹고 사람을 먹습니까?
베드로가 고기를 안 먹고, 사람을 먹겠다고 생각한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 베드로와 제자들은 ‘사람 낚는 어부’어떻게 해석하고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사람 낚는 어부 VS 고기 잡는 업부>
☞ 2천 년 전 갈릴리 호수, 거기서 그물을 던져 고기 잡는 베드로~
예수님이 그에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즉시 따랐습니다.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베드로와 제자들은 ‘사람을 낚는다’는 말을 ‘구원한다’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부가 낚은 물고기는 사람의 양식이 되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갑니다.”
‘사람 낚는 어부’에게 잡히면요? ~ ‘구원’받고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 뿐 아니라 우리가 낚는 사람들, “구원으로 이끄신다!”
이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물도 팽개치고, 배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3년을 따라다니면서 보니, 과연 예수님은 구원자이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십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바다 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 예수님 따라오기를 잘했다. 그물, 배, 전재산이 아깝지 않다.
☞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나도 구원받고, 다른 사람도 구원해야 되겠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형언도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지금까지 두 번을 뵈었지만 홀연히 떠났습니다.
이게 뭐지? 우리가 사람 낚는 어부되기는 물건너 갔나?
에라 모르겠다. 고기나 잡으러 가자! 다시 고기 잡는 어부로 되돌아갔습니다.
☞ 고무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가 ‘탁’ 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원래 위치로 되돌아갑니다. 용수철도 한껏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도로 오그라듭니다.
예수님이 열한 제자를 팽팽히 잡아당겼다가 ‘슬쩍’ 놓으셨습니다.
열한 제자들, 오늘 본문에는 일곱 명의 제자들입니다.
이들이 마치 고무줄처럼, 용수철처럼 원래 위치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어떻게 하실까요?
한번 불러서 3년 가르쳤는데, ‘원위치’ 했으니, ‘에라 모르겠다’하고 내버려 둡니까?
<3년 전 상황의 재연출>
☞ 우리는 3년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가로 오셨습니다.
오늘처럼 배를 타고 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들에게 말씀합니다.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 말씀에 “우리도 구원받고, 다른 사람도 구원하자!” 큰 기대를 품고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죽음, 부활이라는 경천동지할만한 사건 앞에 경황이 없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이 혼란스럽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2번 뵈었는데,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는 어떻게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하는지 가닥이 잡히지 않습니다.
“에라, 고기나 잡으러 가자!” 하고 다시 갈릴리 호수로 갔습니다.
☞ 그곳에 예수님이 다시 오셨습니다. 3년 전과 매우 흡사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가에 서 계시고, 제자들은 배 타고 그물질을 합니다.
예수님은 이번에는 3년 전과 다르게 말씀합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6절)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얼핏 보면, 3년 전과 정반대입니다. 그때는 배와 그물을 버리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계속 고기나 잡으라!” 이런 말씀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3년 전에도, 지금도 베드로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배 오른 편에 그물, 던졌습니다!
“나를 따르라~” 대신, “그물을 던져라~” 하셨는데요~
“너희는 애시당초 글러먹었으니, 사람 낚는 일 그만두고 평생 고기나 잡고 살아라~”
이 뜻입니까?
예수님이 아무려면 그런 분이시겠습니까? 그건 아닐 겁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 알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1. 일하시는 하나님>
밤새 한 마리도 안 잡혔는데,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그물을 한 번 더 던져봐라!”
순종하여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혔습니다. 세어보니 153마리입니다.
153마리, 일오삼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은혜는 무엇입니까?
☞ 이번에 잡힌 153마리, 어부가 잡았습니까? 예수님이 잡았습니까?
일오삼 153마리는 어부의 능력으로 잡은 고기가 아닙니다.
일오삼 153마리는 예수님이 잡은 고기입니다. 그렇지요? 할렐루야~
153마리는 우리 말로 하면 ‘일오삼’입니다.
오늘 설교에서 요지는 3가지입니다. 이 셋을 제가 ‘일·오·삼’으로 선포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일’입니다. ‘일’은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153마리는 어부가 일해서 잡은 것이 아니라 “일하시는 하나님”이 잡은 물고기입니다.
☞ 먼 바다로 ‘통통통통’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가는 어부들이 있습니다.
어부들은 바다 속에서 일년 내내 통통하게 살이 쪄 오른 고기를 건져 올립니다.
어부들이 그 고기를 키웠습니까? 어부들이 그 고기들에게 먹이를 주었습니까?
어부들은 아무 것도 안했습니다. 배와 그물을 준비했을 뿐입니다.
어부들이 그물을 던지기까지 고기가 알을 낳아 번식하고 물속에서 살이 오르도록!
그 일은 누가 했습니까? 바다를 만든 이가 했습니다.
바다에 소금물을 가득 채운 이가 했습니다.
그 속에서 생선들이 번식하고 자라게 하신 이가 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어부들은 어떤 일을 했습니까? ~ 아무 것도 안했습니다.
어부들은 단지 배와 그물을 준비했을 뿐입니다. 나머지 일은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억지쓰고 있습니까?
어부들이 고등어, 갈치, 꽁치, 삼치, 번식시키고 먹이 줘서 키웠습니까?
어부는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고기를 잘 키워놓으면, 어부들들이 그물을 던져 잡아갑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물 속에 든 물고기는 모두 153마리, ‘일·오·삼’
‘일·오·삼’에서 첫번째 ‘일’은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할렐루야~
<2. 오라 하시는 하나님!>
믿음 좋다 하는 사람들도, 요 21:6 말씀을 ‘황당하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베드로와 도마 등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 전문 어부들입니다.
그들이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예수님은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 하십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더니 갑자기 큰 물고기 153마리가 잡혔습니다.
마치 이솝 우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 첫째는 “일하시는 하나님!”
둘째는 뭘까요? 당연히 ‘오’로 시작합니다. 둘째는 “오라시는 하나님”입니다.
3년 전에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마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3년 전에는 고기잡는 베드로에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오라” “오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6절)
☞ 이 말씀은 주님을 따라오라는 말씀인가요, 아니면, 계속 고기나 잡으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지요!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3년 전에는 예수님이 직설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이번에는 “그물을 던져라!”
3년 전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이 밧줄로 끌어당긴 말씀이라면,
오늘 “그물을 던져라” 이 말씀은, 누구도 거절하지 못할 ‘강력접착 본드’입니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해서 던졌더니 공교롭게도 153마리 ‘일·오·삼’
첫 번째는 “일하시는 하나님” 두 번째로 “‘오라’ 하시는 하나님”
제가 글자 수를 맞췄습니다. “일하시는 하나님” “오라시는 하나님”
이제 ‘삼’이 남았습니다. 제가 삼으로 시작하는 어떤 말로 설교를 할까요?
궁금하시지요?
아까 “일하시는 하나님” 설명하면서 바다를 만드시고, 바다에 고기를 살게 하시고,
그 고기들이 통통하게 살이 오르기까지 ‘일하시는 하나님’을 말씀드렸습니다.
☞ 그러나 어디 어부뿐이겠습니까? 씨를 뿌리는 농부도 똑같습니다.
농부는 땅을 일궈 받을 만들고 거기에 씨를 뿌렸습니다.
햇볕과 비를 주시어 싹이 나게 하고, 자라게 하고,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어부들, 농부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죽기 전에 깨달아야 합니다. 또 죽기 전에 고백해야 합니다. 뭐라고 고백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고백하셨습니까?
<3. 삼위일체 하나님>
“에이, 저는 어부도 아니고 농부도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와 하나님은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옳습니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옳습니까?
제가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는데요, 의사 말씀에 저에게 비타민 D가 필요하답니다.
제가 비타민 D를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습니까?
햇볕을 바라보고 있으면, 제 피부 밑에서 비타민 D를 만들어요!
요즘 햇볕이 참 좋습니다. 그래서 햇볕 아래 열심히 피부를 드러내는 중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냐?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지금 섭리하십니다.
물고기 153마리 “1. 일하시는 하나님” “5. 오라시는 하나님” “3. 삼위일체 하나님”
평생 예수 믿었다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러면 고개를 갸웃합니다.
그러면 겨자씨보다 작은 그 믿음이 “후~”하고 날아가버립니다.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요즘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보셨지요?
사람낚는 어부라고 다 신령한 어부가 아닙니다.
사이비 어부 따라갔다가는 ㅈㅁㅅ, ㅇㅈㄹ, ㅌㅇㄱ ㅁㅅㅁ, ㅅㅊㅈ ㅇㅁㅎ
그들의 밥이 됩니다. 그들의 아가리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이 신비를 알아야 제대로 된 성도입니다.
☞ 물고기 153마리!
1 일은, 일하시는 하나님
5 오는, 오라시는 하나님
3 삼은, 삼위일체 하나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