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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가 타락하여 사단이 되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사단의 기원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루시퍼’ 라는 천사장이 교만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려다가 타락하여 사단이 됐다는 것인데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하나님께 지음 받은 천사장 루시퍼가 교만하여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반역을 일으켰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공중으로 쫓겨나 마귀 즉 사단이 되고 말았다. 이때 사단은 함께 반역에 가담힌 타락한 천사 1/3 과 더불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땅위에서 인류를 미혹시켜 멸망으로 이끌고 있다.> 는 것입니다.
이 교리의 근거가 되는 성경구절로는
이사야 14:12-13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겔 28:12-17에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지키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냈고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 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각각 ‘바벨론’과 ‘두로 왕’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이 두 구절이 타락한 천사를 가리킨다는 것은 하나의 가설일 뿐 분명하고 충분한 증거는 없으며 이보다는 차라리 아래의 두 구절이 타락한 천사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나는 유다서 5-7절 “그러므로 너희가 전에 이것을 알았지만 내가 너희로 생각나게 하고자 하는 것은 주께서 그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어떻게 구원하셨고 그 후에는 믿지 아니한 자들을 어떻게 멸하셨는가 하는 것이라. 6 또 자기들의 처음 위치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주께서 영원한 사슬로 묶어 큰 날의 심판 때까지 흑암 속에 가두어 두셨느니라. 7 소돔과 고모라와 또 그같은 방식을 따르는 그 주위의 성읍들까지도 자신들을 음행에 내어 주어 다른 육체를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한 본보기가 되었느니라”
다음은 베드로후서 2:3-6절 “3 그들은 탐욕을 품고 지어낸 말로 너희에게서 이득을 취하리니, 이제 그들의 심판은 옛부터 지체하지 않으며 그들의 멸망은 졸지 아니하느니라. 4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천사들조차 아끼지 않으시고 지옥에 던져서 흑암의 사슬에 내어주어 심판 때까지 가두어 두셨으며 5 또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셨으나 여덟 번째 사람인 의의 전도자 노아는 구원하시고 경건치 않은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느니라. 6 또 소돔과 고모라 성읍들을 무너뜨림으로 정죄하여 재가 되게 하셔서 후세에 경건치 않게 살 자들에게 본으로 삼으셨으며”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범죄한 천사들이 하나가 아닌 여럿을 의미하는 복수로 씌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천사들은 그들 본래의 천국적 높은 이미지로부터 오히려 그 반대편인 지옥적 낮은 이미지로 떨어졌다는 것 등입니다. 언뜻 보기에 천사가 타락하여 사단이 되었다는 가르침이 제법 그럴 듯하게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실제로 진리와는 거리가 먼, 인간에게 속한 가장 낮은 차원의 감각으로부터 추론된 자연적 이성의 빛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윗 구절들에서 등장하는 천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천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 하나의 상징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윗 구절들을 문맥의 흐름으로 보면 죄를 지은 천사, 그리고 처음 위치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처소를 떠난 천사가 심판 때까지 흑암에 감금되어 있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은 믿음 안에 경건한 삶을 살지 않은 자들이 결국에 심판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심판이 거행될 때에 어떤 이유로 어둠의 편에 서 있게 된 천사들이 있을 수 있으며 또 그들이 어떤 이유로 감금되어 있다고 증언되는지 그 이유를 충분치는 않으나마 계시록 9장에 결박되어 있는 네 천사들 이야기를 통해 살펴봅니다.
이 9장은 영계에서 심판이 신성한 진리에 의해 진행되는 상황인데 그동안 이 세상 삶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숨겨져 있던 악한 인간의 내적 본성이 적나라하게 그 실체가 드러내지게 되는 장면입니다. 이 세상에서 겉보기로는 선과 진리를 생명으로 삼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에 속한 듯, 천사의 내적 성품을 가진 듯 여겨졌으나 심판을 당해서는 그의 내면에 속한 모든 품성이 파괴적이고 부정적이며 지옥적인 것으로 바뀌어져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하늘에 드높이 반짝이고 있어야 할 별이 땅에 떨어지고 그 결과 영혼을 해하는 온갖 그림들이 펼쳐져 있고 밝고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가져야 할 천사조차 유브라데강에 결박당해 있다는 표현을 아래 계 9장은 쓰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결박당한 천사라는 표현 안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이해한다면 천사가 타락하여 사단이 되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제고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9장
“(계 9: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계 9:2)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계 9: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계 9:4)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계 9:13)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계 9:14)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계 9:15)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
앞서의 나팔소리는 하늘과 땅을 향해서였으나 지금은 그보다 더 낮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다섯째의 나팔소리에 별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데 이는 네 번째의 경우와 흡사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그 별은 심연, 끝이 없는 구덩이를 열고 있습니다. 인간의 오류는 천국적 지식을 거짓으로 만들어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리고 그것을 마침내 저주의 수단이 되게 합니다. 참된 지식은 하늘을 열리게 하고 지옥은 닫히게 하지만 왜곡된 지식은 천국을 닫고 지옥을 엽니다. 교회의 첫 시기에 그 별은 주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으로 박사들의 발걸음을 안내했고, 또 인간 심정에 일어나 희망과 용기를 주던 샛별이었건만 교회의 마지막 시기에서는 영적 마음이라는 하늘로부터 자연적 마음이라는 땅으로, 심지어는 감각적 원리라는 더 낮은 곳으로 그 별은 떨어져 버렸습니다.
중간 영역, 중간 상태에 머물고 있는 이들의 심판과 관련해 위 구절을 생각하면 끝이 없는 구덩이가 열린다는 것은 하늘로부터 땅에 떨어진 별 곧 왜곡된 지식에 의해 이제 지옥 자체가 마음에 열려지는 크나큰 저주를 뜻합니다. 먼저 연기가 큰 용광로에서 솟구치듯 하면서 해와 공중을 어둡게 했습니다. 용광로란 지옥에 팽배해 있는 악의 사랑을 상징하고 해는 천국을 비추일 경우 사랑을 상징하며 연기란 악한 애정으로부터 유출되는 왜곡된 생각을 상징하고 공기는 진리를 상징합니다. 불이 연기를 생산하듯 악은 오류를 생산합니다. 연기가 태양으로부터 오는 광선을 가로막듯 오류는 마음을 어둡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연기 속에서 나와 땅에 퍼진 메뚜기들이란 감각에 가장 가까운 인간 마음속의 애정에 관한 모형으로 이 애정은 모든 것을 감각적인 바탕으로부터 판단하고 간주하고 모든 것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목적이 감각적인 욕구충족을 위해서입니다. 이어 그 메뚜기들에게는 땅에 있는 전갈들이 가진 것과 같은 권세가 주어졌는데 물면 상대편을 마비시키는 전갈은 감각적 인간의 지성에 소속된 설득력을 상징합니다. 감각적 인간은 감각으로부터 추론하고 판단하고 또한 감각이 내주는 증거를 발판으로 상대방의 애정을 마비시키고 지성이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믿음만을 고집해서 나온 구원이라는 관념보다 인간 마음을 마비시킬 수 있는 게 또 무엇이 있을까요? 사람들은 회개와 정의로움을 수단으로 여러 해 동안 하느님과 화해하고 마음의 평화를 달성하느라 헛되게 애를 쓰지만 믿음이라는 행동만으로 양심과 심정에 즉각 이를 성취하는 것이 믿음만으로 이루어지는 독특한 효력이라고 하는 근사한 증거를 우리는 주위에서 얼마나 자주 듣는지 모릅니다. 이는 전갈이 쏘아서 정신을 마비시키는 것밖에 더 아닙니다.
삶의 선함이 아니면 하느님과의 재회도, 화합도, 마음의 평화도 있을 수 없습니다. 자아를 복종시키고 하느님을 드높이는 것외에 참된 선함은 없습니다. 회개와 수정 없이 참된 선함은 성취될 리 만무합니다. 삶의 목적과 의도가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참된 선함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본래 그대로를 가지고 그리스도에게 오라, 당신의 정의로움으로 그분께 칭찬 받으려 하지 말라...그분이 당신의 정의이다...네 스스로 정의로움을 달성하려들면 너는 그분의 정의를 업신여기는 격이 된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는가?...”라는 식으로 정의로움과 선함을 살짝 비꼬아 버린 설득이 전갈의 힘인 것입니다.
그 메뚜기들이 주는 고통은 마치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주는 고통과 같은 것이었고 그들은 풀을 해칠 수 없고 단지 이마에 하느님의 도장을 받지 않은 사람들만 해치도록 허락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나와 도장받은 사람들은 구원되는 각가지 계층의 교인들이고 도장받지 않은 자란 구원되지 않는 불신앙자들입니다. 이들은 메뚜기의 권능에 복종 당하게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의 속성은 감각적 추론이 둘러대는 설득력에 즉각 복종할 태세를 완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각적 인간은 전쟁터의 말이 전투를 위해 준비되는 것만큼 지적인 싸움을 위해 열심을 냅니다. 그들은 백전백승이라는 자신 있는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성공이 눈에 띄게 실패로 보일 때에서도 조차 승리를 장담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메뚜기의 모습, “전투준비가 갖추어진 말 같고 머리에 금관 같은 것을 쓴 것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감각적 인간이 합리적 인간보다 더 동물적이라 해도 자기들이야말로 다른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라고 간주합니다.
그런고로 메뚜기는 사람의 얼굴과 여자의 머리털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남자의 특성인 지혜, 여자의 특성인 애정, 즉 사랑의 지혜와 지혜의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람의 얼굴을 가졌는데 이빨은 사자의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그들은 “아무도 구출하지 못하는 동안에 물고 뜯고 갈기갈기 찢을” 준비가 항상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런 공격용 무기와 함께 방어용인 쇠로 만든 가슴방패를 하고 있습니다.
금속 중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풍부히 땅 속에 존재하며, 가장 유용한 쇠(iron)는 자연적 진리 또는 최말단의 진리, 즉 말씀의 글자적 의미에 함유된 진리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글자적 의미는 진리를 떠받치는데 사용될 뿐 아니라 오류를 방어해 보호하는데에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말씀의 글자에 있는 가상적 진리(apparent truth)들은 감각적 인간에 의해 진짜 진리로서 확증되어 사용됩니다. 사탄도 진리를 반박하는데 성서를 인용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제자들도 그와 같이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사탄이란 진리를 뒤집는 수단으로 오류를 옹호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공통된 이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말의 모양을 했다고 해도 이 생물은 아직은 메뚜기입니다. 그들이 전투하러 돌진하게 되면 “그것들의 날개소리는 전쟁터로 달려가는 수많은 전투마차 소리 같았습니다.” 전투마차란 교리를 상징하고 마차바퀴는 추론을 상징하는데 이 바퀴가 달리면 공격이든 수비이든 이루어냅니다. 바퀴와 날개는 움직이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서로 유추되는 게 있는 고로 메뚜기의 날개소리가 전쟁터로 내달리는 많은 말의 마차와 비교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이끌어 가는 권세를 쥔 통치 아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왕은 끝이 없는 구덩이의 천사였습니다. 이 구덩이는 믿음만(faith alone)을 생명과 교리로 삼아 살다가 죽은 이들의 영이 거처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구덩이의 파괴하는 천사란 믿음만이라는 교리가 인격화된 것입니다. 이 믿음만은 히브리어로나 그리스어로나, 즉 구약성서에서나 신약성서에서나, 율법에서나 복음에서나 공히 진리의 파괴자가 되어왔었습니다. 듣고도 행하지 않는 것, 고백하면서도 실제화하지 않는 것은 유대교회 모두에게 파멸의 원인이었습니다.
그 후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큰 유프라테스강에 매여 있다가 사람의 삼분의 일을 죽이려고 네 천사가 풀려났는데 이 천사들이란 누구일까요? 한 마디로 유브라데에 결박된 네 천사는 거짓과 거기서 나온 광적인 것으로 가득 찬 사람의 내적 성품을 뜻하고 그들이 풀려났다는 것은 영계에서 심판이 거행되자 이 세상에서 그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던 외적 속박이 제거되어 그들 속마음의 본성이 드러나는 것을 뜻합니다.
파괴적인 천사는 그 강에 묶여 죽이는 일을 준비하고 있고 풀려나기만 하면 거룩한 땅의 주민을 섬멸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어떤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는데 이성이 참된 종교편이 아닌 그 반대편에 서 있을 경우 적극성을 띄우면 참된 종교를 파괴하려든다는 것입니다.
메뚜기가 연기로부터 출현하듯, 번개가 구름에서 나와 번쩍이듯, 나방이가 번데기에서 까고 나오듯, 유충이 알에서 부화하듯, 천사가 강가에서 출현하듯, 추론은 이성으로부터 튕겨 나옵니다. 그 와중에 자연적 이성은 자연적 추론만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적 이성이 자연적 수준의 것만을 추론한다면 올바르게 추론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적인 것을 추론하려 시도할 때면 언제든지 올바르지 못하고 왜곡되게 추론합니다. 그 이유가 자연적 이성은 어둠 가운데서 추론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영적인 것을 올바르게 추론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빛을 축출하려고 그 자체 주위에 어둠을 불러 모으기만 할뿐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적 이성이 올바르지 못하고 왜곡되게 추론하는 이유는 영적 문제들에 관해 물어오거나 토론의 주제가 될 경우 자연적 인간은 무능할 뿐 아니라 악의를 품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적 인간은 오류뿐만 아니라 악을 찬성하는 쪽으로 추론하다가 결국 진리에 반대하고 선에 대항하려 듭니다. 하지만 자연적 인간 스스로는 이 세상 삶 동안 자기 내면에 진행되는 이러한 일을 전혀 모른 채 자신이 빛 가운데 있다고 여깁니다. 한 마디로 빛으로 가장된 천사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이를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제 심판이 진행됨에 있어 그들의 본질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 일을 위해 네 천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 넷이라는 숫자는 선과 진리의 결합을 언제나 말해주는데 본문의 경우 악과 오류의 결합입니다. 강에 천사가 묶여있었으나 지금 풀려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삶 동안 자연적 수준의 인간은 자기 내면의 자발적인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그 주변 바깥 측면의 억제 수단 곧 법이나 체면, 지위 등에 마음이 묶임을 당하여 노골적으로 악하고 거짓된 삶을 사는 것으로부터 방지되어 왔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 사람 내면에 형성된 지옥적인 면모를 가리키는 파괴적인 천사들은 외양만의 종교와 더불어서 그 사람의 자연적 삶의 기간에는 묶여 있게 되지만 이 세상 삶이 끝나 심판을 받기에 이르르면 그들은 이제 묶임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됩니다.
밀과 가라지는 수확 때까지 중간 상태인 섞여있음에서 함께 자라도록 허용되지만 추수 때는 분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즉각 있어지지 않는다 해도 종국에 가서는 세상이 강요한 바깥쪽의 모든 억제 수단은 제거되어져서 심정 속의 비밀스럽던 생각과 의도들이 공개되어 명백해집니다. 당사자 스스로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하지 않은 바깥쪽의 강제적인 억압은 악한 바램과 왜곡된 생각을 소멸시켜 주지 못합니다. 아마 오히려 그것들을 부추기거나 더 완숙되게 만들는지 모릅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된 악한 바램과 왜곡된 생각은 그칠 줄 모르고 상당히 세력이 강해집니다. 그것들은 마음의 모든 상태들, 가장 세분된 상태로부터 가장 일반적 상태까지, 지극히 작은 상태로부터 가장 큰 상태에 이르기까지 잠입해갑니다. 그리하여 그것들이 뜻하려한 악한 일을 준비해놓고 결국은 그 일을 저지르고야마는데 그것들은 영혼의 생명을 모조리 죽이게 되는 결과로까지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