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몇달째 노숙생활을 하는 러시아인 5명이 드디어 주요 외신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러시아의 부분 동원령을 피해 한국으로 온 이들은 우리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지만, 법무부의 심사 거부로 인천공항에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이들의 운명은 31일 법원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들이 시민단체 '난민인권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법무부의 난민 심사 불회부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낸 소송이 이날 법원에서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난민 신청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국내에 체류할 수 있는 G1 비자를 받게 된다. 기각할 경우, 법적 절차에 따라 추방될 것으로 보인다.
인천공항에서 노숙중인 러시아 도피 5명에 대한 법원 판단이 31일 내려진다. 사진은 사건과 관련없음/사진출처:러시아 매체 오픈소스
인천공항에서 생활하는 러시아인은 모두 5명으로, 시베리아 출신의 안드레이(30)는 지난해 10월 부분 동원 소환장을 받자, 러시아를 탈출해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대학생 블라디미르(23)는 몽골과 필리핀을 거쳐 11월 12일 한국으로 왔다. 또 축구 선수인 자샤르 쿠비예프(31)는 징집에 불응하면 탈영병으로 처벌한다는 통보를 받고 한국으로 향했다고 한다. 다른 두 명은 신원 공개를 꺼리고 있다. 러시아인 3명은 지난해 10월, 2명은 11월에 들어왔다.
그러나 법무부의 난민 심사 거부로 이들은 출국 대기실 구석에서 잠을 자고, 법무부가 제공하는 간편식으로 세 끼를 해결하며 출국하지 않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아침과 저녁엔 빵과 우유·주스, 점심엔 기내식으로 때우고, 낮에는 공항 라운지를 산책하거나 책을 읽고, 또 한국어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천공항에서 노숙하는 홈리스(노숙자)로 보면 된다.
외신 보도를 촉발한 코리아타임스의 인천공항 체류 러시아인 관련 기사/코리아타임스 웹페이지 캡처
이들의 존재는 국내 언론의 보도로 해외로 알려졌다.
러시아 언론들은 지난 9일 '코리아 타임스'를 인용, 이들의 인천공항 체류 모습을 전했다. 가제타루와 라이프 등 현지 언론들은 "한국 정부는 '동원 회피'가 난민 지위 획득의 근거가 아니기 때문에 망명 허가를 거부했다"며 "한국은 전체 난민 신청의 1.3%만이 인정된다"고 이들이 노숙생활을 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또 에릭 반데르부르크 네덜란드 법무부 장관이 동원령을 피해 네덜란드에 온 러시아인들은 떠나야 한다고 말한 사실을 거론하며 이들에게 거취 결정을 압박하는 듯한 시각을 보여줬다.
특히 라이프는 "인천공항 체류 자국민들이 언제든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해외에 장기체류하는 자국민들에게는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총 183일(6개월) 이상 해외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은 놀랄만한 액수의 세금 고지서를 받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인들의 존재는 29일 미 CNN의 보도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됐다. 러시아인들을 돕는 이종찬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CNN에 “이들은 하루에 점심 한 끼만 제공받을 뿐, 나머지는 빵과 음료수로 때우고 있다”며 “의료 서비스를 접할 기회가 제한적인 데다, 불안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신건강에 대한 지원은 전무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또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을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전쟁에 반대하는 병역 거부는 난민인정 사유가 된다”며 “적어도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CNN은 그러나 러시아인들이 난민으로 인정될 경우, 군 복무와 관련한 사안을 민감하게 보는 한국에서 논란이 일어날 것으로 봤다. CNN은 “18∼35세 사이의 모든 건강한 남자들이 의무적으로 군에서 복무해야 하는 한국에서는 국위를 선양한 운동선수나 케이팝(K-POP) 슈퍼스타조차 군 복무를 면제받을 수 없다"며 "양심적 병역 거부나 대체복무제와 관련한 논란도 여전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