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CIVID 19) 사태로 반정부 야외 시위가 사라졌던 러시아에서 23일 투옥된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모스크바 등 전역에서 벌어질 전망이다. 이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한 러시아 당국은 시민들의 참여를 차단하고 강제 해산에 나설 계획이어서 자칫 대규모 충돌사태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은 러시아 거주 미국인들에게 집회 개최 일시및 장소를 공지하고 신변 안전에 유의해줄 것을 당부했다. 미 대사관이 파악한 집회 예정 도시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토크, 노보시비르스크, 페름 등이다.
주모스크바 미국대사관 23일 집회 시간및 장소 공지/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통신·정보 감독청(로스콤나드조르)은 22일 브콘닥테(vK)와 '틱톡'(TikTok), 인스타그램 등 주요 SNS 업체들에게 '나발니 집회'에 미성년자의 참여를 촉구하는 메시지의 유포를 차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로스콤나드조르는 동영상 공유 앱인 '틱톡'과 vK,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 보낸 통지문에서 "미성년자들을 불법 대중 행사에 참여하도록 조장하는 정보를 유포할 경우, 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10대 젊은이들의 시위 참여를 막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틱톡'의 차단에 특히 신경을 쓰고 있는 이유다.
모스크바 시는 신종 코로나의 대규모 감염 우려를 이유로 일찌감치 '23일 집회'를 불허한 바 있다.
모스크바 법원, 불법 집회 참석을 촉구한 혐의로 나발니 언론 담당 (9일간) 구류 조치/얀덱스 캡처
법원의 구류 조치로 경찰서로 들어서는 나발니 언론 담당 키라 야르미슈/SNS 동영상 캡처
러시아 치안당국도 집회 조직을 추진 중인 나발니 측근 주요 인사들을 구금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발니의 언론담당 키라 야르미슈를 비롯해 나발니의 '반부패재단' 소속 변호사인 류보피 소볼, 재단 탐사팀 소속의 게오르기 알부로프 등이 21일 경찰에 연행됐다고 한다.
앞서 독일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치료한 뒤 귀국한 모스크바 공항에서 긴급 체포된 나발니는 지난 19일 '반부패재단'을 통해 푸틴 대통령의 흑해 휴양단지를 유튜브에 폭로하고, '숨겨진 딸'로 알려진 엘리자베타의 근황을 공개하는 등 '푸틴 정권'에 대한 공세를 재개했다. 이미 타블로이드 신문이나 탐사전문 온라인 매체를 통해 알려진 이 내용들을 또다시 반복한 것은, 젊은 층의 관심을 끈 뒤 '반 푸틴' 시위 장소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의 하나로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나발니 지지세력이 방역을 이유로 대규모 군중 집회를 막으려는 러시아 당국의 단속을 뚫고 어느 정도 세과시에 성공할 지 불투명하다. 지난해에도 푸틴 대통령의 집권 연장을 위한 헌법개정안에 대한 반대 시위도 사실상 무산된 바 있다. 1인 시위 혹은 온라인 시위에 그쳤다.
신종 코로나 시대의 러시아 시위 양상들. 지난해 개헌 반대시위에 나선 인형 캐릭터들. '이번 국민투표는 우리(장난감)보다 더 장난감스럽다'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아래)/사진출처:미니 시위대 SNS 캡처
길거리에 드러눕고, 개헌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지난해 개헌 반대시위대 모습/동영상 캡처
유럽연합(EU)도 나발니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말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22일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나발니의 즉각 석방을 촉구했다. 미셸 의장은 트위터를 통해 "오늘 푸틴 대통령과 한 통화에서 EU는 나발니 구금을 규탄하며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한다고 거듭 밝혔다"라고 전했다.
유럽의회는 지난 21일 나발니 체포에 반대한다며 독일-러시아간 천연가스관 부설 프로젝트인 '노르트스트림 2'의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