⑲ 최일도 목사와의 인연
맨발 걷기 명상을 시작하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지 7일째 되는 날, 부처님 다비(茶毘,불교에서 화장을 가리키는 말)가 진행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장작에 불을 붙여도 이내 꺼질 뿐 불길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때, 길을 떠났던 마하카사파가 눈물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도착합니다. 부처님께 예배하고 싶었지만 관속에 드신 부처님의 머리와 발자리를 알지 못해 마하카사파가 안타까워하던 순간, 부처님이 황금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미셨습니다.
마하카사파의 예배가 끝난 후 비로소 다비가 진행됩니다. 이 장면을 그려낸 시인이 있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담당 프로듀서인 문태준 시인입니다.
◇ 죽기 직전의 개조개가 삐죽 내밀고 있는 살에서, 죽은 부처의 맨발을 떠올린 문태준 시인 *일러스트=권신아
「맨발」이라는 시에서 문 시인은 어물전 개조개에서 부처님 맨발을 떠올립니다. 이내 부처님 맨발은 가족을 위해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온 가장의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맨발」을 읽으면, 맨발로 가르침을 전하러 길 위에 선 부처님 모습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난을 자처하는 가장의 모습이 겹쳐서 떠오릅니다. 삶이 곧 수행이라는 깨달음이 가슴 저미게 다가옵니다.
‘맨발’은 신발을 신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발입니다. 자연의 구성원들은 인간 말고는 모두 맨발입니다. 문명의 이로움을 경험하지 못한 존재들은 온몸으로 자연을 견뎌야 합니다. 따라서 맨발의 사람에게는 시간이 참으로 더디게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비바람과 불, 산과 바다, 식물과 동물마저도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저는 걷기 명상을 지도하면서 인간은 맨발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여 걷기 명상을 할 때는 맨발로 걸으면서 발바닥에 닿는 대지의 온기를 그대로 느끼고 있습니다.
◇ 2022년 기준 33년간 밥퍼 봉사를 하고 있는 최일도 목사 *출처=다일공동체
걷기 명상을 시작하게 된 것은 최일도 목사의 영향이 컸습니다. 최일도 목사가 운영하는 다일공동체의 ‘밥퍼’ 봉사에 참가하면서부터 걷기 명상으로 세상에 회향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밥퍼 봉사는 말 그대로 어려운 이웃에게 밥을 주는 봉사입니다. 23년간 밥퍼 봉사를 했다는 최일도 목사의 말을 듣고서 저는 잠시 아연해졌습니다. 영양실조로 청량리역 광장에 쓰러진 한 노인에게 설렁탕을 사준 일을 계기로 최일도 목사는 밥퍼 봉사를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당시 최일도 목사는 신학을 배우기 위해서 독일로 유학을 가려고 준비하던 신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청운의 꿈을 접고 밥퍼 봉사에 매진했습니다. 최일도 목사에게는 어려운 이웃에게 한 끼니 양식을 주는게 제 꿈을 이루는 것보다 더 절실했던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듣고서 최일도 목사가 예수님처럼 보였습니다. 같은 성직자로서, ‘내 도량이 생기면 세상에 제대로 부처님 은혜를 갚겠다.’고 막연하게만 생각해왔던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자 부처님 은혜를 갚는 데 반드시 도량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다 도량이라는 마음을 지녔더니 제가 할 일이 떠오르더군요. 바로 걷기 명상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걷지 않는가? 걷기 명상을 지도해보자.’
그런 생각에 2010년 4월부터 서울 남산에서 걷기 명상을 지도하기 시작했습니다.
◇ 마가스님이 이끌고 있는 남산 걷기 명상 모습. *출처=불교신문
걷기 명상의 궁극 목적은 ‘지금 이 순간, 깨어 있는 것’입니다. 걷기 명상을 지도하면서 저는 마음속으로 대지를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걷기 명상 장소가 남산이어서 자연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터라 남산에서는 자연과 문명, 산과 도시의 차이를 십분 비교할 수 있었으니까요. 특히 봄날의 걷기 명상은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일깨워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개나리, 진달래, 철쭉 등 알록달록 피어 있는 봄꽃들의 향연은 물감을 엎어 놓은 것 같았고, 귓 바퀴에 파고드는 새소리는 마음속 찌꺼기를 떨쳐버리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코끝에 스쳐가는 진한 흙냄새는 고향 집에 돌아온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맨발로 흙길을 밟을 때는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터벅터벅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눈앞에 스쳐갔습니다. <계속>
글 | 마가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