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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
주님의 일과 우리 일! / 지용수 목사
갑자기 이 찬송을 부르고 싶습니다.
「나는 주의 화원에 어린 백합꽃이니 은혜 비를 머금고 고이 자라납니다」
우리의 얼굴은 은혜로 마냥 행복해야 됩니다. 그래야 정상적인 크리스천입니다. 이지러진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아픈데, 얼굴이 이지러지는 것은 은혜가 없어서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백합꽃처럼 아름답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불러 봅시다.
「나는 주의 화원에 어린 백합꽃이니 은혜 비를 머금고 고이 자라납니다
주의 은혜 감사해 나는 무엇 드리리 사랑하는 예수님 나의 향기 받으소서」
꽃이 사람들의 눈에 아름답듯이, 은혜를 받은 성도는 하나님께는 물론 사람들에게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또 꽃은 향기가 그윽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도 향기롭습니다.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은혜의 비를 머금고 자라는 백합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를 날리는 주의 화원의 꽃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3절에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민수기 6장 24절, 25절, 26절 말씀대로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지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은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또 낮에 말씀 드린 대로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시기를 원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기 원하시고, 우리를 굳세게 해 주시기 원하시고, 우리를 높여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등록금은 부모님이 대주어도 공부는 자녀가 해야 됩니다. 공부는 부모님이 대신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자녀가 해야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시고 우리를 평탄케 해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는 내려 주십니다. 그러나 그 만나를 쌀독이나 뜨락에 내려 주신 것이 아니라, 먼 곳 빈들에 새벽이슬과 함께 내려 주셨습니다. 그 만나를 돈을 받고 파신 것이 아니라 그냥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만나는 해가 뜨면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매일 새벽에 일어나 들에 나가 만나를 쓸어 모아야 했습니다. 들에 만나가 가득해도 늦잠을 자면 그날 모든 식구가 굶어야 했습니다. 가족 중의 누군가 들에 나가 “주여, 감사합니다.”하고 만나를 쓸어 모아야 그날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만나를 내려 주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지만, 만나를 쓸어 모으는 일은 사람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낮 예배 때에도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와서 쓸어 모은 사람만 그 은혜를 받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큰 은혜를 주셔도 나오지 않은 사람은 은혜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 시간마다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예배드리러 교회에 나와서 은혜를 받는 일은 우리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20절에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몸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집에서 예배하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있는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예배인 것입니다. 헌금을 매달 3억씩 보내도 주일에 집에서 예배하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 시간마다 은혜를 주시지만 교회에 나와서 은혜를 받는 일은 내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4장 3절에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은혜를 받아도 살고 받지 않아도 산다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주지 않으십니다.
은혜를 받지 않아도 대통령이 되고, 사장이 되고, 고등고시에 합격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않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만 살맛이 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나를 사랑하는 주님」
저는 오늘 오후에 기뻐서 이 찬송을 많이 불렀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왠지 기쁘고 찬송이 나옵니다. 그러나 은혜가 없으면 백악관에 앉아 있어도 청와대에 앉아 있어도 괴롭습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지만 교회에 나와서 받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그런데 나사로를 살리러 오신 예수님께서 “무덤 문을 옮겨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사로를 살리시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그러나 무덤 문은 사람이 옮겨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무덤 문을 굴리실 수 있지만 굴리지 않으십니다. 왜입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나면서부터 소경된 거지를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경이 실로암에 가서 씻으니 보게 되었습니다. 눈을 뜨게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지만, 실로암에 가서 씻은 사람은 소경 자신입니다. 만일 소경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싫어요!”라고 했다면 그냥 소경으로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열 나병환자가 소리 높여 말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그들이 믿음으로 제사장들에게 가는 사이에 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을 행하시지만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하는 기도는 그들이 해야 했고, 제사장들에게 가는 것도 그들이 해야 했습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오른손으로만 손뼉을 쳐보십시오. 한 손으로는 손뼉을 칠 수가 없습니다. 두 손바닥을 마주쳐야 손뼉이 됩니다. 하나님의 일이 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해주시지만 믿는 것은 우리가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다 해 달라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되는 비결을 알려 줍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리라.” 이 얼마나 좋은 복입니까? 여러분과 저도 이런 복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학력도 없고 가문도 별로 좋지 않았고, 더구나 모세의 하인이었습니다. 모세의 사촌형 고라는 영향력이 대단하고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고라 같은 똑똑하고 쟁쟁한 인물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하인 여호수아를 택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대학총장, 박사, 회사 사장 등등 쟁쟁한 인물이 많아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일꾼으로 세우지 않으십니다. 지위가 낮고 형편이 어려워도 겸손하고 깨끗하고 맑은 사람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사람의 눈과 다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눈에 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삼손은 들릴라의 마음에 들려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비밀까지 양보했습니다. 들릴라의 사랑을 얻으려고, 들릴라의 마음에 드는 남자가 되려고 머리카락까지 싹둑 잘랐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에게 버림을 받고, 눈도 뽑히고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머리카락은 주일성수입니다. 주일성수하면 능력이 옵니다. 하늘의 힘이 옵니다. 주일성수하는 사람을 마귀가 꺾을 수 없습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에 죄를 짓고 약해져도 주일 예배를 드리는 중에 우리가 강해집니다. 용서함을 받습니다. 목숨을 걸고 주일을 지키면 마귀를 이깁니다. 마귀에게 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눈에 들려고, 직장 상사의 눈에 들려고 주일성수를 흐지부지하면 머리카락이 잘려서 힘이 빠져 주저앉게 되고 마귀의 밥이 됩니다. “저 사람이 옛날에 양곡교회 집사였대. 양곡교회 찬양대원이었대.” 하는 조롱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의 비밀의 이 시간을 잘 지키면 능력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가 마음에 드니 그를 세우시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하겠다. 너를 꺾을 자가 없게 해주겠다. 너를 당할 자가 없게 해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여호수아는 이기고 또 이기고 이겨서 31개국을 정복했습니다. 여호수아를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오늘의 여호수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은 형통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일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러면 여호수아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먼저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6절에도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라고 말씀하시고, 7절에도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라고 말씀하시고, 9절에도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마음이 강하고 담대해야 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에 데얼린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30년간 나라를 다스리면서 선정을 베풀었는데, 어떤 일로 두 신복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두 신복을 죽인 것이 실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왕은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하며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며칠 후, 밥상에 올라온 생선을 먹으려 하는데, 생선 눈알이 얼마 전 목매여 죽인 신하의 눈 같아 보였습니다. 생선 이빨은 죽은 신하의 이같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복수하겠다!”하는 신하의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왕은 겁이 나서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몸이 불편해서 밥을 못 먹겠구나.”하며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생선의 눈과 이빨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그러다 삼일 후에 그 왕이 죽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됩니다.
정부의 허락을 받은 한 기관이 사형 선고를 받은 두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 보았답니다. 먼저 한 사람의 눈을 가린 다음 큰 주사기로 그 사람의 피를 뽑아 큰 통에 주루룩 주루룩 부었습니다. 그렇게 일곱 번을 뽑으니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었던 다른 사형수의 눈을 가린 다음 피를 뽑았습니다. 그 사람도 일곱 번째 피를 뽑아서 주루룩 부으니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두 번째 사람에게서는 피를 뽑은 것이 아니라 뽑는 척만 했다고 합니다. 마음이 이렇게 중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말씀하십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 마음이 약해지고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 벌써 지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나아갈 때 담대했습니다. 다윗이 덜덜덜 떨었으면 돌로 골리앗을 명중시키지 못했습니다. 담대하게 던지니 골리앗의 이마에 딱 맞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한 동네에 조그마한 가게를 경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게 옆에 큰 슈퍼마켓이 들어섰습니다. 가게 주인이 랍비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랍비님, 나는 망했어요. 옆에 큰 슈퍼마켓이 들어섰으니 나는 어떻게 하면 좋아요?”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장사만 잘 해라.” “우리 가게 옆에 큰 슈퍼마켓이 들어왔는데 왜 상관이 없습니까? 우리 가게에 손님들이 오겠습니까?” “어허, 괜찮아. 오히려 넓은 마음으로 장사하고 매일 그 슈퍼마켓을 위해 기도해라. 네 가게도 잘 되고 그 슈퍼마켓도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라.” 구멍가게 주인이 랍비의 말대로 담대히 손님을 맞이하며 장사를 했더니 구멍가게가 잘 되어 일 년 후에는 구멍가게의 주인이 슈퍼마켓의 주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언제나 담대해야 됩니다. 내가 구멍가게를 하는데, 옆에 큰 슈퍼마켓이 있어도 담대해야 합니다. ‘아이고, 저 큰 슈퍼마켓이 있으니 이제 우리 가게는 망하겠네.’하며 덜덜 떨면 정말 망하게 됩니다. 내 구멍가게 옆에 아무리 큰 슈퍼마켓이 있어도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마음이 얼마나 중한지 모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작은 교회에서 목회해도 큰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님들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몇 년 후에는 우리 교회가 더 커질 것이라 마음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도 들어주시지만, 우리의 생각에도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과 우리의 생각까지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학교에 갈 때 덜덜 떨면서 가면 기분이 좋습니까? 여러분의 남편이 직장에 갈 때 덜덜 떨면서 가면 좋습니까? 직장인은 담대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학생들은 담대하게 공부를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왕자나 공주는 벼슬이 없어도 열 정승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정승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성령께서 친히 증거하십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로마서 8:16)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의 왕자이고 공주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 앞에서도 기죽을 일이 없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 드렸듯이, 점이 있어도 그 점을 다 떼어 내고 떳떳하고 담대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재판을 받을 때도 담대했습니다. 빌라도 총독에게 재판을 받는데, 너무 담대하니 오히려 재판을 하는 빌라도 총독이 덜덜 떨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담대함이 우리 신앙의 힘인 줄로 믿습니다. 또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자들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 말씀대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미국 시민권자들은 얼마나 당당한지 모릅니다. 미국 시민권자만 되어도 그토록 당당한데 하물며 우리는 천국 시민권자입니다. 언제나 당당하시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갈 때도 당당하고 시험을 칠 때도 당당해야 합니다. 시험에 실패한다고 인생에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 실패할 때 실패하는 것이지, 대학 시험에 실패했다고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 승리하면 대학 시험에 실패해도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할 일은 말씀을 입에서 떼지 말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말씀대로 행하여 지키는 것입니다. 7절에도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라고 말씀하시고, 8절에도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담대해도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 죄를 막 지으며 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반듯하게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며 정직하게 살고 성실하게 일할 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반듯하게 나아갈 때 담대하게 되고, 또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계속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할 때에도 내가 ‘부모님 생신을 어떻게 해드릴까?’라고 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잘 섬길까?’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잠언 23장 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May your father and mother be glad; may she who gave you birth rejoice!)』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생신 잔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버지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릴까?’를 생각해야 됩니다. 주일을 지킬 때도 그냥 교회에 왔다 가면 안 됩니다. 이사야 58장 13절, 14절에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일을 즐거운 날, 기쁜 날이라 하여 존귀히 여기고 설레는 가슴으로 주일을 기다리며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좋은 구두를 신고 가장 좋은 음식을 먹으며 기뻐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하루를 드리며 주일 때문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 낮에 교회에 와서 한 시간 예배만 드리고 가는 것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 밤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천국에 갈지 못 갈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주일 밤 예배에 참석하지 않겠습니까?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주일 밤에도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올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어찌 주일 밤에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오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TV나 볼 수 있겠습니까?
주일뿐만이 아닙니다. 회사 일을 할 때도 사람 눈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눈치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월급을 받지만 복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회사에서 좀 억울한 대접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채워 주십니다. 그러니 말씀대로,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유업의 상을 주십니다. 언제 어디서든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잠언 16장 20절에 말씀하십니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할렐루야! 말씀은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미국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6%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전 세계 경제력의 50%를 갖고 있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6%밖에 되지 않지만 그 부의 50%를 미국이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큰 부자는 우리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잘 삽니다. 미국이 그렇게 잘 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에는 백악관을 처음 지었을 때 쓴 존 아담스 대통령의 글이 지금도 걸려 있습니다. “이 집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미국인들은 정직합니다. 현 대통령 부시도 기도하는 사람으로 의롭습니다. 부시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욕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국무장관이 된 콘돌리자 라이스도 의롭습니다. 목사님의 딸인 그는 “나는 하나님과 결혼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신앙이 좋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스탠퍼드 대학의 교수가 되었는데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국무장관이 된 것입니다. 대통령이 기도하고, 국무장관이 기도하고, 국무회의할 때도 기도하는 나라를 하나님께서 복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니 미국이 흔들리지 않고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십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나를 의지하고, 누가 내 뜻에 따라 사는가?’를 살펴보시고 그런 사람에게는 형통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든지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억만 장자라도 내 아들이 술이나 마시고 마약이나 하고 도박이나 하고 다닌다면 그 아들에게 10억, 20억을 주겠습니까?
여호수아서에 보면, 아픈 일 한 가지가 있습니다. 여호수아 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대 승리를 합니다.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엿새 동안 돌고,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돕니다. 그리고 백성이 외칠 때 여리고 성이 와르르 무너져 대 승리를 거둡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7장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 성에 들어갈 때 여호수아가 정탐꾼을 보냅니다. 정탐꾼이 돌아와서 “여호수아 대장님, 아이 성은 아주 약한 성이라 우리 군대가 다 갈 필요가 없겠습니다. 삼천 명 정도만 가도 되겠습니다.”라고 보고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 성에서 밀리고 밀려 서른 여섯 명이 죽고 패배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 우리가 이 작은 성에서 왜 패배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간의 죄 때문에, 아간이 금과 은과 외투를 훔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간의 죄를 다 보셨습니다. 그래서 승리를 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 사람의 죄가 우리 한 사람만 잘못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의 죄로 우리 교회가 잘못된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아간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여호수아 군대가 실패했듯이, 우리 중에서 한 분이 죄를 지으면 그 죄 때문에 교회가 전진하다가 주춤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나 하나가 참 중하다.”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몰라도 아닙니다. 한 사람이 중합니다. 한 분이 귀하게 살면 모두가 그 영향을 받아 귀하게 됩니다. 한 분이 헤매면 모두가 헤매는 것입니다. 한 분이 새벽기도회에 나오면 모두가 새벽기도회에 나오는 것이고, 한 분이 나오지 않으면 모두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귀합니다. 한 사람이 의로우면 모두가 의로워지고,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것이 누룩이 되어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간을 돌무더기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아간의 지은 죄가 누룩처럼 퍼질까 봐 그를 죽이신 다음에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1절, 2절에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에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우리는 결단코 죽어도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죄를 지으면 형통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반듯하게 의롭게 살면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든지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것을 믿고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면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반드시 승리하고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을 잘 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