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모임[동기모임]오상회(62학번) 가을나들이 / 치악산 구룡사,제천 배론성지와 의림지
금년도 오상회 가을 야유회 나들이는 몇 개의 장소 중에서 원주지역을 선정했다. 필자도 포함된 사전 답사반이 미리 한달 전에 현지를 답사했다. 우선 구룡사는 역사성과 풍광이 좋아서 무조건 합격점을 받았고, 비교적 가까운 충북 제천의 배론성지는 가을 단풍의 명소로 유명해서 필자가 강력하게 추천했고 원주 시내의 박경리 문학관이 내부공사로 인해 후보지에서 빠지는 대신 제천 관광명소 10경 중 1경이라는 의림지를 포함했다. 10월 20일 이른 아침 압구정역 주차장에 옛 학우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여학생 장윤자, 강춘구 두 여사도 환영을 받았고, 미국서 일시 귀국한 배규태 동문이 당초 참석 계획이었으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버스 안에서 인사로 대신했다. 예정대로 8시 출발한 버스는 동천역 환승 정류장에서 10명의 동문을 마저 태우니 오늘 참가 인원이 27명이다. 이남수 사무총장이 준비한 김밥과 물 그리고 간식거리로 귤과 갖가지 과자를 담은 큼직한 비닐 봉지를 받아든다. 매번 이토록 세심한 배려로 먹거리를 준비하는 사무총장께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이인희 회장의 즐거운 하루를 보내자는 인사말에 이어 오늘의 일정 스케줄과 점심 식사 안내까지 이어진다. 매 여행시마다 佑齋 석풍장동문이 준비하는 여행지 안내 영상물은 아마추어 경지를 벗어난 프로급 수준이다. 여성 아나운서를 동원하였고 이번 여행지 구룡사, 배론성지, 의림지에 관한 기존 방송영상물 중 선별하여 편집하였단다. 또 긴 버스 탑승시간에 음악 공연물을 틀어주니 지루한 줄을 몰랐다.
원주 치악산(雉岳山) 구룡사(龜龍寺), 1400년 역사를 간직한 고찰 고속도로가 밀리는 바람에 당초 예정보다 20여 분이나 늦게 구룡사에 도착했다. 버스가 일주문인 원통문(圓通門)과 사천왕문(四天王門)을 지나 구룡사 경내 본당까지 들어가 주차하는 바람에 해설사도 보광루 앞에서 만났다. 박성남이라며 자기소개를 한다. 스스로 성공한 남자라며 너스레를 떤다. 치악산(비로봉 1,288m)은 우리나라 5대 岳山(설악산, 치악산, 월악산, 운악산, 삼악산) 중 두번째로 높은 산으로 가을 단풍경치가 절경이며 겨울 눈꽃 산행이 인기다. 해설사의 구룡사 창건과 사찰 이름에 관한 설명이 이어진다. 구룡사는 668년(문무왕8) 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하였는데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지금의 절터에는 깊은 소(沼)가 있었는데 거기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의상이 절을 지으려 하자 용들은 이를 막으려고 뇌성벽력과 비를 내려 온 산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의상은 불화(火)자를 쓴 부적을 연못에 던지니 모든 물이 말라 버리고, 용 한마리는 눈이 멀어버렸고 여덟 마리는 앞산을 여덟 조각으로 쪼개며 동해 바다로 달아났다. 의상은 절을 창건하면서 이런 연유로 구룡사(九龍寺)라 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부터 절의 사세가 기울어지자 어떤 노인이 이는 절 입구에 있는 거북 바위 때문이라 하여 바위를 구멍을 내고 혈을 끊었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 사세는 쇠퇴하여 어떤 고승의 제언으로 절 이름을 九龍寺에서 龜龍寺로 바꾸었다.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들은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경사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절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다. 석가모니불과 협시보살을 모시는 대웅전 맞은편은 보광루가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양쪽으로 관음전, 응진전, 지장전 등 전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앞마당 오른쪽에는 심검당, 설선당, 적묵당 등 요사채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종무소와 기도접수처로 사용하는 설선당(說禪堂)은 행서 예서 초서의 글씨를 섞어서 글씨 자랑하듯 편액과 주련을 나열해 놓아 한참 글씨를 감상했다.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관음전 역시 편액은 초서로, 주련은 해서로 글씨를 나열하여 특이했다. 법고, 범종 ,목고 등이 있는 불음각(佛音閣) 앞에서 해설사는 범종에 새겨진 박정희 대통령과 그 아래로 최규하 이후락 구태회 등 많은 정치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알려준다.
구룡사에서 해설을 듣고 있다
구룡산 숲길 걷기 구룡산 숲길 걷기는 해설사가 안내했는데, 시간이 부족해 10여분 동안 맛보기만 하여 모두 아쉬워했다. 나무 데크로 시작되는 숲길은 출렁다리를 건너며 내려다보니 아래로 구룡소가 보였다. 눈이 먼 용 한마리가 이 소에서 3년동안 갇혀 지내다 불쌍히 여긴 의상 스님이 하늘로 승천시켰다고 한다. 걷는 도중에 거북바위도 구경했다. 바위에는 구룡동천(龜龍洞天)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었다. 해설사는 치악산의 황장목(금강송) 벌목을 금지한다는 황장금표(黃腸禁標)가 새겨진 바위도 설명해 주었다. 또 산책 중에 보이는 박쥐나무잎, 물푸레나무잎을 소개해 준다. 잎이 갈라진 갈래 수로 단풍나무 종류를 구별하는 방법도 설명해주었다. (잎이 세 갈래는 신나무, 다섯 갈래는 고로쇠나무, 일곱은 단풍나무, 아홉은 당단풍) 또 도토리나무 6형제의 설명도 재미있었다.
구룡사 산책길
또랑길 식당의 버섯전골 구룡사에서 근 한 시간이 걸려 제천 배론성지 입구에 있는 ‘또랑길’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식당에 도착했다. 풀밭 마당이 있어서 날씨가 좋으면 야외 테이블 식사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감히 그런 생각은 접어야 했다. 배가 고픈지라 버섯 전골이 끓기 전에 미리 나온 찬 종류가 동이 난다. 주류는 미리 준비해온 와인으로 건배를 했다. 오늘 와인은 조중헌 전회장이 협찬했다고 한다. 부득이한 개인 사정으로 참석은 못하면서도 협찬에는 빠지는 경우가 없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창 너머로 바깥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니 과연 멋진 식당이구나 실감한다. 이집 주인 여자는 전공을 살려 도예 작품을 실내에 전시판매하고 있었다. 바깥 정원도 그의 정원 꾸미기 취미와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구경거리였다.
배론성지 배론성지를 한자로 표기하면 舟論聖地이다. 계곡이 깊은 지형이 배 밑바닥 같다 하여 배론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1801년 조선조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박해 이후 숨어 들어온 천주교 교인들의 피난처였다. 역시 해설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황사영 순교자의 백서(帛書)사건과 우리나라 두 번째의 사제인 최양업 신부가 선종한 곳이며 이곳에 그의 묘소가 있다고 하였다. 답사할 장소를 미리 알아보니 황사영 토굴, 황사영 순교현양탑, 순교자 황사영 동상, 배론 신학당, 최양업 신부묘소,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대성당과 소성당 등 보고 싶은 곳이 많았으나 시간이 부족해 우선적으로 황사영 순교자가 백서를 썼던 토굴과 최초의 신학교육을 했던 초가 건물을 구경했다. 백서를 썼던 토굴은 바깥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위장하였고 안을 들여다 보니 꼭 한 사람이 앉을만한 좁은 공간이었다. 황사영(알레시오)는 8개월 동안 여기 옹기굴을 가장한 토굴 속에 머물며 중국 북경교구장 구베이 주교에게 명주천에 세필로 한자 13,384자의 긴 편지글을 썼다. 백서(帛書)란 비단에 쓴 편지글이란 뜻이다. 이 백서가 전달하는 과정에서 발각되고 그는 서소문 밖에서 대역부도의 죄로 능지처참 되었다. 현재 백서 원본은 로마 교황청 바티칸 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한창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이곳 연못의 단풍풍경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남겼다. 배론성지는 천주교 신자들이 필수적으로 찾는 성지일 뿐만 아니라 단풍 관광지로도 소문난 명소임에 틀림이 없다. 벗들과 담소하며 천주교 성지를 돌며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구경하는 오늘은 참으로 행복한 날이다.
황사영 토굴 배론성지에서 단체 사진 배론성지 연못 단풍
제천 의림지(堤川 義林池) 배론성지에서 20여 분 거리의 의림지에 도착했다.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제골,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로 용두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막아 가뭄과 침수로부터 농경지를 보호해 왔다. 김제와 밀양의 저수지는 말라 물이 없는 상태이나 이곳 의림지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여전히 관개농업에 활용되고 있다는 게 해설사의 설명이다. 현재의 의림지는 제천 10경 중 제1경이라는 명승지로도 유명하다. 인공폭포도 만들었고 높이가 10m나 되는 실제의 용추폭포도 있다. 용추폭포 위에는 유리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유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폭포 구경도 아찔하면서도 재미있다. 이 의림지 제방은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처음 쌓았다고 하고 그 뒤 약 700여년 뒤에 박의림이 쌓았다고 전해 온다. 문헌에 기록된 바로는 세종 때 충청도 관찰사였던 정인지가 수축,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1972년 큰 장마로 둑이 무너지자 1973년 다시 복구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호반 둘레는 약 2km, 면적은 약 4만5,000평 크기이다. 수심이 깊은 곳은 13m나 된다고 한다. 충청도 지방을 호서(湖西)라는 말이 바로 이 저수지 서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단다. 호수 주변에는 노송과 수양버들이 늘어서 있어 경관을 한층 아름답게 꾸며준다. 삼삼오오 저수지 주변을 산책하는 오상회 친구들 심신이 큰 힐링을 받았는지 밝은 표정이다.
의림지
이천 청목식당에서 금요일 저녁은 고속도로가 항상 밀린다. 늘 간식 타임을 가진 것이 전통인데 이번에는 생략하고 바로 이천으로 가서 쌀밥집 ‘청목’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6시에 청목 식당에 도착했다. 이곳은 코로나에도 상관없었는지 예전보다 더 휘황찬란한 조명을 발하며 성업 중이었다.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한 상 가득히 차려진 푸짐한 밥상이다. 거기에 이번에 동참한 장윤자 동문이 막걸리를 협찬했는데 200병 값을 선불했다 하여 모두 놀랐다.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과연 몇 병을 먹었을까? 궁금해진다. 이제 귀가하는 일만 남았다. 저녁 7시에 이천을 출발한 버스는 빠르고도 안전하게 신나게 달린다. 얼큰한 막걸리에 배부른 포만감으로 모두 눈을 감고 있다. 감미로운 음악을 감상하면서. 주관한 회장단에 감사함을 전한다. <글: 김수철(오상회 카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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