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국어의 이해 - 고대어와 중세어
중세국어의 이해
(고대어와 중세어)
독자 여러분들 중에도 우리 국어에 대한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많으신 것으로 안다. 그러나 국어의 연구는 그리 만만하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고 그 동안 많은 세월 동안의 여러 학자나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진 결과를 도외시하고 혼자서 자료를 찾아 살피고 체계적인 추정과 결론을 내기에는 무척이나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하고 그 결과 또한 확실하다고 단정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국어에 대한 토론 과정에서 국어에 대한 왜곡된 자신의 사고에서 비롯되는 편집적이고 터무니없는 주장들이 있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물론 국어의 연구가 자료가 적은데다가 그 범위나 체계에 있어서 전체를 한눈에 어림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에 여러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지만 명확하게 밝혀져 있는 기본적인 사실들 까지도 외면한 채, 토론에 임하게 되면 전혀 무가치한 토론으로 시간만 허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부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을 절약하고 보다 능률적이며 체계적인 연구와 토론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이 글을 쓰는 동기라 하겠다. 물론 많은 자료와 접하고 그를 바탕으로 공부와 연구를 통해 실력을 쌓으신 독자들께는 이미 아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관점에서의 학설도 있겠기에 서로 비교하고 발전적 논의와 교류로 국어의 올바른 이해와 정립을 위해서 기존의 연구자들이 밝혀 놓은 학설을 바탕으로 이 글을 올리고자 한다. 이 글들이 국어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공부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여러 문헌을 참고하였고 필자가 보고 배운 바를 적는 것이며 아울러 중세국어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문헌이나 자료도 중간 중간 소개될 것임을 밝혀 둔다. 부디 공부에 많은 발전이 있으시기를 바라는 바이다.
중세국어를 공부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그 이전의 국어의 모습을 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 할 것이다. 다만 중세 이전의 국어에 관한 자료가 크게 부족한 아쉬움이 있다. 따라서 고대국어의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자료에 의해서 많은 연구가 있었으나 자료의 턱없는 부족으로 밝혀진 바가 그리 많지 않아서 안타까운 일이다.
-고대어와 중세어
기록 이후의 국어의 역사는 대체로 고대국어, 중세국어, 근대국어, 현대국어 등의 네 시기로 구분한다. 고대국어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가 패망하기까지의 약 1,000년 동안의 국어를 말하며, 중세국어는 고려 건국부터 임진왜란까지의 시기로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을 전기 중세국어, 한글 창제 이후의 시기를 후기 중세국어로 구분한다. 근대국어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오늘날까지의 국어를 가리키고 현대국어는 대체로 광복 전후부터의 국어를 가리키는데 높게 잡으면 갑오경장 이후부터의 국어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고대국어의 경우 고구려어와 백제어는 자료를 거의 남기지 않고 있어서 그 모습을 거의 알 길이 없고 그나마 자료를 남긴 신라어를 가지고 추정할 수밖에 없어서 고대국어라 하면 신라어가 그 주가 된다 하겠다. 신라어를 보여 주는 자료로는 이두(吏讀)와 향찰(鄕札)이 가장 큰 비중을 갖는데 두 가지 다 한자를 빌려 신라어 표기를 위해 만들어진 표기법이다. 이두는 문법형태의 파악에 큰 구실을 해주며, 향찰은 문장의 모습까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가진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린 인명, 지명, 官名 등의 고유명사도 중요한 자료이다. 백제어는 신라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고 보이며 백제어 보다 많은 자료를 남기고 있는 고구려어는 주로 지명 등 고유명사의 표기에서 추출되는 것이지만 꽤 많은 고구려어의 모습이 밝혀졌다. 고구려어는 신라어나 중세국어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특징을 꽤 많이 가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 장에서는 간략하게 신라어의 음운과 문법형태의 특징을 살펴보고 다음 장에서 좀 더 구체적 예문 등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신라어의 표기법은 한자의 음(音)을 빌려 표기한 음차표기(音借表記)가 매우 규칙적이었다. 어떤 한 음의 표기에 사용된 한자는 고유명사에서나 향찰에서나 거의 통일되어 사용되었는데 ‘아’는 ‘阿’로 ‘이’는 ‘伊’로, ‘라’는 ‘羅’로 ‘리’는 ‘理, 里, 利’로 표기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음차 이외에 훈차표기(訓借表記)로 한자의 뜻을 빌려 표기하였는데, ‘밤’, ‘낮’, ‘쇠’ 등을 ‘夜’, ‘日’, ‘金’으로 표기한 것이 그 예다. 이 밖에 말음첨기(末音添記)라고 하여 훈차식 표기법에 음차에 따른 글자를 하나 더 첨가하여 그 단어의 말음을 중복하여 표기한 예도 있었는데, ‘밤’, ‘날’ 등을 각각 ‘夜音’, ‘日尸’로 표기한 것이다. 그러니까 ‘밤’의 말음인 ‘ㅁ’을 ‘音’으로 ‘날’의 말음인‘ㄹ’을 ‘尸’로써 한 번 더 중복하여 표기한 셈이다.
신라어의 자료는 질로 보나 양으로 보나 그 음운체계를 수립하기에는 미흡하다. 다만 그 몇몇 특징에 대해서만 논할 수 있을 뿐이다. 대개 자음체계는 평음(平音) /ㅂ, ㄷ, ㅈ, ㄱ/과 유기음(有氣音) /ㅍ, ㅌ, ㅊ, ㅋ/의 대립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된소리 계열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성마찰음 계열인 /ㅸ/, /ㅿ/은 /ㅂ/, /ㅅ/과 구별되는 음운으로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ㄹ/도 혀옆소리인 /l/과 혀떨림소리인 /r/로 구별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즉 ‘달’이라고 발음할 때의 혀옆소리 ‘ㄹ’과 ‘다리’라고 발음할 때의 혀떨림소리인 ‘ㄹ’의 음운이 구별
되어 졌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것이다.
신라어의 모음체계는 재구하기가 어렵지만 대개 /ㅣ, ㅜ, ㅗ, ㅡ, ㆍ, ㅓ, ㅏ/와 같은 7모음 체계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두와 향찰에 단편적으로나마 드러난 신라어 문법 특징의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주격조사 : 伊, 是(-이)
속격조사 : 矣, 衣(-의), 叱(-ㅅ)
처격조사 : 中, 良中(중세국어에서는 ‘아’로 읽었음.)
대격조사 : 乙(-을), 肹(-흘-)
조격조사 : 留(-루)
특수조사 : 隱(-ㄴ), 置(-두)
다음으로 현재의 동사 활용체계는 고대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동명사어미 : 尸(-ㄹ), 隱(-ㄴ)
부동사어미 : 良(-라), 米(-매), 㫆(-며), 如何(-다가), 遣(-고)
정동사어미 : 如(-다), 羅(-라), 古(-고), 齊(-져)
이처럼 신라어는 중세국어와 매우 흡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중세국어가 신라어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따라서 현대국어는 중세국어에서 이어져 온 것이므로 신라어는 현대국어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세국어의 이해
(소실된 음운)
(1) 순경음(脣輕音) ‘ㅸ’
중세국어에서 관심을 끌었던 입술가벼운소리 ‘ㅸ’은 ‘ㅂ’음 보다 입술이 덜 다물어지는 양순마찰음(兩脣摩擦音) [ß]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ㅸ’은 ‘사’, ‘글’, ‘리’처럼 모음과 모음 사이, ‘ㄹ’과 모음 사이, ‘ㅿ’과 모음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분포의 제약을 보였다. 이 ‘ㅸ’은 나중에 ‘글>글월, 스>스올(>시골), 더>더워’처럼 반모음 [w]로 음가가 변했으며 1450년(세조대)에는 이미 문헌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2) 반치음(半齒音) ‘ㅿ’
‘ㅿ’은 훈민정음 해례에서 맑지도 탁하지도 않은 반치음(半齒音)이라고 규정하였는데, 그 음가는 [z]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자음은 ‘’, ‘몸’, ‘한’, ‘리’, ‘애’처럼 모음과 모음 사이, ‘ㅁ’과 모음 사이, ‘ㄴ’과 모음 사이, 모음과 ‘ㅸ’ 사이, 모음과 ‘ㅇ’ 사이에서 나타났다. ‘ㅿ’은 ‘ㅸ’보다는 오래 쓰였지만,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전반에 이르러서는 거의 소실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음가가 영(零, zero)으로 바뀌었다. 예 : 사>사이
(3) 모음 ‘ㆍ’의 비음운화(非音韻化)
‘ㆍ’는 16세기부터 그 음가가 소실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음가를 주변의 음이 대체하게 된 것이다. ‘ㆍ’의 소실은 16세기에 첫 단계로 2음절 이하에서의 소실이 일어났는데 ‘기마>기르마’처럼 주로 ‘ㅡ’로 바뀌었다. 둘째 단계(18세기 중엽 근대국어)에서는 1음절에서 소실이 일어 났으며 ‘래>다래’처럼 주로 ‘ㅏ’로 바뀌었으며 ‘매>소매, >턱, >흙’처럼 ‘ㅗ’, ‘ㅓ’, ‘ㅡ’로도 바뀌었다. 그런데 글자는 금방 사라지지 않아서 발음과는 상관없이 1933년까지도 그대로 사용되었다.
★비음운화(非音韻化) : 문자만 존재하고 음가가 없어지는 현상.
※ 참고문헌
• (2000), 『국어학 개설(개정판)』, 학연사.
• 이익섭․이상억․채완(1997), 『한국의 언어』, 신구문화사.
• 이익섭․장소원(2008), 『국어학개론(개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