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 – 장일우 (1963)
백철씨의 한국적인 것
백씨가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에서 감격과 흥분을 가지고 짧지 않게 서술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즉 1962년도의 노벨문학 수상작품으로 일본 작가가 세 사람이나 후보로 추천되었는데 우리 한국문학도 가만히 구경만 하고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경제5개년계획과 같이 문화5개년계획을 해서 일본의 가와바다(천단)의 《설국(雪國)》과 같은 토산물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수출하자는 것이다.
씨에 의하면 일본문학은 대륙문화를 가져다가 자기의 취미에 맞게 「공예한 그 전통」을 형성하여 그 기초 위에서 오늘과 같은 노벨상 후보작품을 내놓게 되었다는 것이며, 한국은 대륙문화가 거쳐가는 「중간역」 밖에 되지 못하여 아직 「한국적인」 문화전통이 형성되지 못하고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대주의의 배임적인 행위로 인하여 모방문화의 평면성이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는 어차피 「자기 것」을 강조해야 할 「막다른 골목의 반격전」과 같은 「시츄에이션」에 도달했으니(일본과 미국의 본을 따서) 한국문학도 3년 혹은 5년내로 「한국! 한국!」 하고 「신민족주의」를 내걸고 외국문학, 세계문학을 바라보면서 해외수출을 계획해 보자는 그것이다.
이렇게 노평론가 백씨의 전기 논문은 요약된다. 그러면 이 백씨의 취지를 독자들은 그 소녀적인 감상과 흥분 외에 무엇을 탓할 것 있느냐고 질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독자들이여! 양해해 주기를 바란다. 이 백씨의 글에는 백씨다운 양면성과 무지와 유식의 한국적인 입상(立像)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백씨가 이 나라의 문화전통을 이조 5백년에만 국한시키고 있는 것은 씨의 무지에서 오는 것이라고 선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씨가 이 나라의 문화전통이 보잘 것 없고 빈곤한 것은 대륙문화가 거쳐 지나가는 중간역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며, 근대 5백년의 문학예술인들은 유흥기분과 센티멘탈리즘에 사로잡힌 사대주의자들이라고마구 질책을 가하고 있을 때, 우리는 백씨를 현대한국문학의 옹호자라고 해야 하겠는지 혹은 사대주의자라고 해야 하겠는지 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씨는 사대주의를 한편에서 타매(唾罵)하면서도 씨 스스로가 세계비평사에서 그 효용가치가 보잘것없는 아메리카식(式)의 강담적(講談的) 뉴우 크리티시즘의 자막대기를 가지고 한국의 문학을 재단하고 처리하였으며 노벨상과 가와바다의 《설국》 앞에서는 국궁재배를 아끼지 않으니, 우리는 씨를 어떻게 보아야 바로 본다고 할 수 있을까?
씨가 일본문학의 전통과 그 세계적 수준을 볼 때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수 얼 마이너와 일본인의 《명치시대의 일본문학》의 눈을 가지고 보았을지언정 백철씨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씨는 남의 눈으로 남을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의 눈으로 자기 것을 보고 남의 자막대기로 자기 것을 재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백철씨는 일본차(日本茶)에서는 일본적인 전통을 보고 있으나 이조의 백자기(白磁器) 속에서는 이 나라의 전통을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한 씨로서는 이조의 사대주의를 배임적 행위라고 질책한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설국》의 본을 따서 문화의 주체성이 없는(씨의 말대로) 이 나라의 현대문학을 5개년계획을 해서 노벨상을 따오자고 하는 백철씨 자신이 사대주의자로 되고 있지 않는가 생각된다.
그러면 이제부터 백철씨의 논문의 진면모가 어데 있는가를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이것을 말하려면 씨의 비과학적인 이론이 의거하고 있는 문화의 비교학적 방법론을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씨가 우리 민족의 문화전통을 경시한다고 할 수 있는 모든 관점이 바로 이 낡은 비교학적 방법론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매개 나라 매개 민족은 민족의 성립과 함께 자기의 고유한 민족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종족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기층문화를 가지고 있을 때는 물론 두 말 할 것없거니와 설혹 외래문화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문화창건의 민족적 주체성이 있는 조건에서는 민족문화의 독자적 형식 속에서 굴절된다. 이것은 문화의 다원성과도 연관될 뿐만 아니라 민족문화의 독자적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의 비교학적 방법론자들이 흔히 범하는 착오는 항상 이 민족문화의 일원론에 입각한 동질성만을 추상하는 데 몰두한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높은 문화는 낮은 문화를 병탄하고 그것은 하나의 시발점에서 다른 종점으로 유랑한다고 보고 있다. 이리하여 그들은 한 민족의 문화적 주체성을 말살하기에 급급하고 독자성 속에서 보편성, 세계성, 인류성을 찾는 것을 포기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문화의 「세계성」은 바다 건너에 있으며, 또 그들은 종종 「남이 이렇게 하니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하지 않는가」 하고 사고하여 제 것은 무엇이나 시시하다는 관점에 서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문화에는 조국이 없다는 유랑아들인 것이다. 우리의 노평론가 백철씨가 우여곡절을 거쳐 오늘에 도달한 방법론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그러면 과연 이 나라의 문화는 백씨가 말한 바처럼 중간역에 지나지 않았는가? 아니다. 각 민족문화는 크고 작고간에 그대로의 종착역이다. 삼국시기 대륙문화와 가장 접촉이 많은 고구려만 하더라도 외래문화를 거저 통째로 삼키지 않았으며, 자기의 독자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강서고분의 벽화를 비롯한 적지 않은 유물들이 보여 주고 있다. 일본 법륭사의 금당에 그린 유명한 벽화가 바로 대륙문화가 아니라 고구려의 승 담징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사실)은 무엇을 말하여 주는가!
고려에 있어서 당송문화가 그처럼 크게 영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규보를 비롯한 당시의 일류 문인들은 두자미와 소동파의 문학을 그대로 모방하는 일부 경박한 문인들을 반대하면서 자기 독자적인 문학의 경지를 개척하였다. 후대에서 이규보를 「창의」시인이라고 부른 것이 결코 우연하지 않으며 오늘의 견지에서 볼 때에도 그의 시 속에는 민족적 주체성과 독자성으로 넘쳐흐르고 있는 것이다. 백씨가 「한글 전용」을 찬성한다거나 그가 「주체성」을 몇 마디 말했다고 해서 우리는 그를 주체성에 서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씨가 이 나라의 문화전통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의해서 백씨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규보는 비록 한문으로 시를 표기하였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백씨보다 그가 민족적 주체성에 튼튼히 서 있었다. 왜냐하면 백씨는 뉴우 크리티시즘과 비교학적 방법론에서 자기를 잃어버렸으나, 이규보는 대륙문화에 자기의 정신을 상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씨가 일본다도(日本茶道)에 혹하여 예를 들고도 설명과 평가를 주지 않은 이조의 백자기(白磁器)를 두고 보자. 이조의 백자는 삼국시대의 신라의 기술적 토대와 고려의 청자가 없었던들 그처럼 개화한 독자적 경지를 예상할 수 없었다는 것은 물론이다.
그것은 결코 명요(明窯)의 모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양과 색조에 있어서 독자적인 새로운 경지였다. 그 뿐만 아니라 백씨가 말한 바 대륙문화의 종착역에서 『일본차를 마시며 그것을 소화하는』 그 다잔(茶盞)이 바로 대륙의 것이 아니라 이조의 도자기공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임진왜란 때와 그후에도 일본의 다이묘(大名)들이 서로 경쟁까지 하면서 이조의 도자기공들을 데리고 가서 도자기 굽는 기술을 전습(傳襲)받았기 때문이다.
백자는 그만 두고, 백씨가 말한 바와 같이 이조문학은 그 태반이 사대주의의 모방품이었던가? 백씨가 가장 모방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퇴계와 율곡의 성리학까지도 결코 주자(朱子)의 단순한 모방품이 아니었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이 방면에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다. 김만중의 《구운몽》을 사대주의적인 모방품이라고 하거나 연암의 《열하일기》를 또한 모방품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는 납득이 가질 않는다. 약간의 군담소설(軍談小說)을 제외하고는 이조문학은 국문학, 한문학을 합쳐서 말하더라도 백씨가 지적하는 것처럼 사대주의적 모방은 없는 것이다. 물론 이조 시기 양반 통치층 속에는 사대주의 사상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이것은 적거나 많거나 치욕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조문학의 태반 이상은 사대주의적 모방품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문제는 백씨가 이조문학을 사대주의적 모방품이라고 규정한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씨는 일본은 일본적인 공예품을 만든 데 성공했고, 일본문학의 현대적 수준은 그들의 전통의 소산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고전문학의 시대, 즉 전통을 갖지 못하였다고 한다. 백씨의 견해대로 한다면 한국의 현대문학은 일본 전통에 뿌리를 박았거나 문학의 대륙문화나 일본문화의 모조품이라고 말해야 될 것이다. 또한 춘원문학(春園文學)은 어느 나라 누구의 모방이요, 동인문학(東仁文學)은 일본의 자연주의문학의 모방품이라고 시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춘원이나 동인을 시비하는 것은 그들이 이 나라 현실을 얼마나 진실하게 반영했으며 이 나라 전통에 서서 얼마나 이 나라 문학을 전진시켰느냐에 있는 것이 아닌가?
백씨가 말한 일본문학의 세계적 수준은 미국에서 일본 불교를 본따고 일본 바둑이 그 사람들의 취미에 맞고, 「노오」와 「가부끼」가 미국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서 그것으로써 일본 예술의 세계적 수준을 운운한 것으로 보아서 한국문학의 세계적 수준도 결국 미국 사람들의 취미에 맞아야 한다는 것으로 될 것이다. 여기에 바로 백씨가 노벨상 5개년계획을 하자는 진의가 있고, 씨가 주장하는 「신민족주의」의 의도와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백씨의 신민족주의의 내용이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문학5개년의 계획을 작성해서 미국 손님들의 취미에 맞는 「한국적! 한국적!」인 문학을 만들어 노벨상을 따 오자는 것으로 된다. 이 얼마나 한국적 노평론가로서는 하기 어려운 난센스란 말씀인가?
한편으로는 이 나라 민족문화와 문학에 대하여 「중간역」이요 「전통 없는 모방품」이요 하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5년내에 「세계적 수준」에 달한 문학을 내놓고자 하는 백씨의 신민족주의는 사기인가, 그렇지 않으면 아부인가? 이렇게까지 의심하게 된다. 일본문학은 백씨의 말대로 자기의 고전적 전통이 있고 한국문학만은 전통이 없다고 하면서(혹은 빈약하고) 3년 내지 5년안에 갑자기 한국적인 것을 만들어 내라고 하니 그것은 분명히 떳떳한 말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또한 한국문학의 세계적 수준은 바다 건너 사람들의 비위에 맞아야 할 것 같다고 하니 결국 그것은 분명히 아부가 담긴 말이 아니라고 볼 수 없지 않은가?
식자우환(識字憂患, 그릇되게)이라고, 안다는 것이 차라리 모르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러나 백씨의 「한국적인」 것은 한 걸음 나가서 사기와 아부의 칵테일로 되는 일종의 공포증이다. 오늘 한국의 사대주의는 백씨의 말대로 「막다른 기회」라는 인식을 동반하고 있는 신사대주의인 것이다. 백씨의 「신민족주의」도 실은 머리 위에서 로케트가 떠 다니는 새로운 세계에서 이 땅 위에 발생한 신사대주의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진실로 민족적 주체성을 자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조급도 공포도 있을 수 없다. 한국문학의 세계성은 바로 전통의 자각과 그 개화에 내재하여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비추어 유종호씨의 「한국적인 것」에서 좀더 논의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