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회심과 소명(행9:1-19)
갈등
1. 사도행전 이야기(내러티브) 15번째 시간입니다. 스데반과 빌립 이야기에 이어서 사도 바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누가는 사울-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바울의 이름-에 대한 언급을 스데반의 순교 이야기에서 시작했어요. 사울이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서 최고 책임자 역할을 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율법에 따라 죽어도 된다고 판단했습니다.(7:58) 그는 스데반이 죽임당한 것을 마땅히 여겼어요.(8:1) 사울은 초대 교회를 박해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사울의 초대 교회 박해 행적에 대해서 1-2절,“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사울의 마음에 예수님의 제자들-초대 교회 성도들에 대해서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어요. 그는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유대 지역만 아니라 유대 지경을 넘어서 다니며 기독교인들을 체포해서 예루살렘으로 압송했습니다. 사울의 발걸음이 다메섹을 향하였습니다.
2. 이때 사울의 길을 누군가 막아섰습니다. 3-4절,“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사울은 자신의 길을 막는 이가 누군지 몰랐어요. 이 일은 홀연히-갑자기 이뤄졌습니다. 하늘로부터 강한 빛이 사울에게 임했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하늘로부터 빛이 임하고 누군가의 소리만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태양보다 강한 빛이 임하며 사울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소리만 들렸어요. 사울은 이 일이 어떤 자연현상이나 우발적인 사건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생애 처음 경험한 신비한 일이었어요. 그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시는 줄 알고“주여 누구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직 말씀하시는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알지 못했어요. 주님이 사울에게,“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울을 만나주시며 6절,“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주님은 사울이 다메섹 시내로 들어가서 숙소에 머물면, 누군가 그를 찾아와서 말해줄 것이라고 예고해주셨어요. 주님은 이날 이 시간을 D-day로 예정하시고 모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사울에게 나타나실 방법과 대화, 그를 도울 사람을 예비하는 일까지요. 사울은 혼자 가지 않고 동행자들이 있었어요.(기독교인들 체포조)
동행자들은 소리만 듣고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습니다. 신비한 경험은 당사자만 알고,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다른 이들은 알 수 없습니다. 이 경험을 하면서 사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못했습니다.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거룩한 하나님을 실제 만나며 이런 현상이 따랐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울을 다른 방식으로도 만나주시고 소명을 주실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극적인 방식으로 만나주셨을까요?
갈등 심화
4. 사울을 부르신 하나님은 때가 되자 그를 도울 사람을 예비하셨습니다. 10절,“그 땡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나님은 사울을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과정에서 몇몇 사람들을 그에게 보내주셨어요. 그 첫째 인물이 아나니아입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협력자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혼자 일하시지 않고, 이렇게 사람들을 부르시며 협력하게 하세요.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일어나 사울에게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찾을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직가(도로명입니다. 곧은 거리, straight)라 하는 거리에 다소 출신 사울을 찾으라, 그는 지금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실 때, 이렇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시는 것은 그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나니아는 거역할 수 없는 주님의 명령이었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주님께 물었어요. 주님은 온전한 인격적 존재이시기에 질문도 들어주십니다.
5.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해 이미 자세히 들어왔습니다. 그는 주님께,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게 해를 끼쳤다고 합니다. 이곳 다메섹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 받았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지만 사울을 향한 편견을 아나니아가 뿌리칠 수 없었어요.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15-16절,“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부활하신 예수님은 사울만 아니라 아나니아에게도 필요한 것들을 세세히 말씀해주셨습니다.
네가 사울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진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는 내가 택한 사람으로 그의 회심과 소명이 이어지고 있다. 너는 염려하지 말고 그에게 가서 안수하여 눈을 뜨게 하라. 아나니아는 사울의 회심 과정에만 성경에 나타나고 이후는 보이지 않아요. 아나니아는 사울을 찾아갔고, 그에게 안수하여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는 사울에게 주님이 나를 보내셨고 나로 당신에게 안수하게 하셔서 다시 보게 하며, 또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선언했습니다. 사울의 회심과 부르심 이야기에 사울이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순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살기등등하던 사울이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실마리
6. 오늘 본문은 사울의 회심과 소명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일방적으로 임합니다. 아브라함 이야기를 보더라도 비슷해요. 초대 교회를 박해하는데 첨병 역할을 했던 사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아니, 부활하신 주님이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신비한 방법으로요. 사도 바울이 훗날 이 사건을 기억하고, 복음을 전하며 두 차례 간증을 했습니다.(22장과 26장) 22:6, 이때가 정오쯤 되었다고 합니다. 26:13,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둘러 비췄다고 해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울을 압도했습니다.
초대 교회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던 그가 주님 앞에서 고꾸라졌어요. 사울은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어요. 그는 단지 강력한 빛으로 임하신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정오에 비치는 태양 빛이 가장 강렬한데 주님은 이보다 강력한 빛으로 사울을 둘렀습니다. 이 빛으로 사울은 아나니아가 안수할 때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또 그의 눈에는 비늘 같은 것이 덮었어요. 부활하신 주님의 얼굴은 황인종이나 백인이 아니고 빛이십니다. 얼굴에서 빛을 발하십니다.
7. 계1:14,“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희다는 것은 깨끗함을 의미합니다. 눈은 불꽃 같다고 사도 요한이 천상에 올려져서 본 그대로 증언했어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울을 이런 방식으로 만나주신 것은 그를 단번에 제압하신 것입니다. 사울을 압도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은 그가 단번에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게 하고, 이제부터 삶의 방향을 바꾸기를 원하셨습니다. 사울은 당시 누구보다 율법에 정통한 지식인이었어요. 율법에 대한 순수성과 열정 또한 누구도 모방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습니다.
사울이 삶의 방향성(orientation)만 바뀌면 그가 위대한 전도자가 될 것을 주님께서 잘 아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의 삶의 방향성을 바꿔주시기 위해 강력한 방식으로 임하셨어요. 그가 평생 잊을 수 없도록요. 쟁기를 손에 들고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눅9:62) 사울도 이 사건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무슨 증거를 더 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 세상에 대해서 미련이 사라집니다.(권력-돈-쾌락...) 사울이 멀리서만 보고 들었던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을 확신하였습니다.
8. 사울은 이 사건을 통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평생 처음 경험했습니다. 이후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로 갔어요.(갈1:17-18) 그는 다른 사도들을 만나는 것보다 3년간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소명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예수 그리스도-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갈1:15-16) 사울의 회심 경험에는 눈물 콧물 흘리는 감정적인 이야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깨닫고 그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습다. 순종과 결단이 그의 회심 이야기 전부입니다.
복음 제시
9. 사도 바울이 자신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갈라디아에서는 어머니의 태로부터라고 말했지만, 엡1:4,“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갈1:15과 이 말씀을 합하면, 하나님의 선택은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어머니 태에서부터 실행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즉흥적으로 하시지 않으세요. 이렇게 오래전에 계획하시고 때가 되면 이루십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것은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사람마다 때를 따라 바울처럼 주님이 만나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누리는 과정이 이렇습니다.
기대
10.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선택받을만한 사람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도 있어요. 선택받지 못할 것 같은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절대 주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최고 기적은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만 아니라, 나 같은 사람에게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서 쓰임 받는다면 더욱 큰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의 회심과 부르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 가졌던 장점들이 많았어요. 그것들이 방향성이 잘못되어 교회를 박해하고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고난당하게 했습니다. 주님을 만난 후에 그의 영적인 눈이 열렸습니다. 비늘 같은 것이 눈에 벗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눈으로 아라비아 광야에서 (구약)성경을 읽을 때, 그는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수많은 복음을 발견했어요.
11.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정리해서 로마에 편지를 보내며 복음을 나눴습니다.(로마서) 기타 서신서에도 복음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모두 구약 성경을 인용하면서 전했습니다. 그의 남은 인생은 세상 모든 것들을 버리고(포기하고), 오직 복음 전도에만 전력을 다했습니다. 예수님이 예고하신 것처럼 고난을 수없이 받으면서요. 우리 인생의 최고 가치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 찬양하며 우리도 바울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