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하느님 앞에 충실하게 살기
오늘은 이 땅에 신앙의 선구자로 살았던, 124위의 복자들의 삶을 기념하는 날로 지냅니다. 서양에 비교하여 신앙의 역사가 짧은 우리 나라에서는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서 피를 흘린 순교자들의 행위를 더 높고 크게 보기에, 순교에 이르지 못한 분들은 따로 구별해서 2014년에 프란체스코 교황님께서는 124위에 드는 복자들로 선언하셨습니다.
신앙을 증거하면서 우리보다 먼저 사셨던 분들을 복자나 성인으로 부르고 모시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로 오늘을 축제일을 지냅니다만, 그분들이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셨을 거라고 우리가 믿는다면 성인이라고 부르든 복자라고 부르든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은 일을 중요하다고, 바꾸어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할 시간입니다. 세상의 목숨으로 90살에 이르기까지 오래도록 살았던 엘아자르는 자기가 세상에서 어떤 본보기의 일을 했고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그 중요성과 그 의미를 몰랐을까요? 어쩌면 젊은 사람보다는 자기 목숨의 중요성을 더 잘 안다는 것이 세상에서 산 길이가 긴 사람이 드러내는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랬던 분인데, 엘아자르는 하느님께 충실한다는 생각으로 목숨의 길이가 더 길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복자들이 보였던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삶에서 어떤 모습을 드러내야 하겠습니까? 의미가 있는 삶을 만들려면 빨리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엘아자르는 세상에서 길게 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더더구나 그 내용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면 더 그렇게 했을 일입니다. 그렇게 특별한 태도를 가졌던 삶의 어른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겠습니까?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졌는데, 다음 세대에 더 많은 곡식과 밀알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다면, 현실의 세상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살고 죽는 것이 내 마음이나 내 생각대로만 되는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생명의 힘을 가진 작은 씨앗이 드러내는 모습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나의 모습을 드러내겠다고 결심하고 실천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주실 지혜를 청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