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용어들이 온통 외래어다. 길거리 간판도 외래어 투성이다. `한글 도시`라면 다른 지역과 뭔가 다른 게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면서도 툭하면 외솔 선생, 한글 도시 운운한다. `제 것 귀한 줄 모르는 집안치고 올바른 집안이 없다`는 말이 있다. 울산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글날을 맞아 곳곳에서 행사, 축제가 줄을 잇고 있다. 매해 이맘때마다 반복됐던 일이다. 그러다가 시간만 지나면 행정관서에서부터
기업, 각종단체, 개인에 이르기 까지 죄다 `인프라` `글로벌` `에코`란 말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러고서도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이 울산
출신이라며 너스레를 떨 수 있는가.
`한글 도시`라면 그에 걸 맞는 최소한의 준칙이 있어야 하고 다른 곳과 달리 한글화 돼 있어 도시가 색다른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다른 도시보다 거리 간판에 외래어가 오히려 더 많다. `글로벌`이란 말이 대표적인 예다.
세계로 나아가려면 기업이나 공공기관, 단체가 외래어를 사용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우리말이 있음에도 굳이 외래어를 그대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 `생태도시` 대신 `에코 폴리스`를 사용하는 게 한 예다.
우리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혁신을 외치면서도 고유의 가치는 제대로 모르고 있다. 남의 것을 가져다
고쳐봤자 그것은 결국 모방의 영역에 속한다. 우리만 가진 것을 갈고 닦아야 세계가 주목하는 혁신을 이룰 수 있다. 때문에 유독 문화ㆍ예술분야에서
외래어가 마치 모국어처럼 통용되는 현실을 우리는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외솔 선생을 앞세워 도시 자부심을 부채질하는 울산은 더욱 그래야
한다.
서울시는 2012년 `한글 마루지 사업`을 시작했다. `마루지`는 `랜드 마크(land mark)`란 외래어를 순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부산에 가면 아시아 태평양 정상회담을 했던 곳으로 `누리 마루`란 곳이 있다. 누리 즉 `세상`에다 꼭대기를 뜻하는 `마루`를 합성한
것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고상한 우리말이 수두룩하다면 자칭 `한글 도시`라는 울산은 이들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가야 할 것이다.
한글날을 전후해 잠시 호들갑을 떨다가 어느 순간 도시가 외래어로 뒤덮이는 현실을 그대로 두고만 볼게 아니라 연중 모든 기관들이
외래어 대신 한글을 사용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글 도시`답게 우리가 먼저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꾸고 사용하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전국에 퍼져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기사입력: 2017/10/09 [18:17] 최종편집: ⓒ 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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