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4일 화요일
저- 정은(사계절 문학상)
이 책의 제목은 제목부터 특이하다, 산책하는 시간이라면 통상적인 표형인데 작가는 '산책을 듣는 시간이라 정했다. 제목에서 부터 '왜?' 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제목이다.
작가의 말
-사람은 각자 세상을 느끼는 범위와 방법이 다르고 각자 방식이 존중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소설 속 주인공 수지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것은 나의 두려움이기도 하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수도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보여 주는 게 소설가의 일인 것 같다. 때로는 허구가 진실을 더 드러나게 할 수도 있다. 나는 마법을 믿는다. 마법의 힘으로 다양성이 포용 되고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청각 장애인의 특징 드러내는 묘사가 세밀하고 참신했다.
-수화-뜨개질하듯이 손으로 말을 엮는 게 좋다. 서로의 눈과 입술을 보며 집중하는 게 좋다.실제로 나는 손안에 투명한 새 한 마리를 기르는 느낌으로 수화를 하며 걸어 다닌다. 새를 쓰다듬기
- 내 귀가 안 들리는 이유를 물으면 엄마는 고래처럼 귀지가 많아서라고 한다. 언젠가 내 귀지가 그동안 수집해 온 소리를 모두 쏟아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미 존재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내 아빠는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한 바퀴 돌면서 그 집들을 보는 것이 이 노래의 마무리였다. 대신 음악가가 되기로 했다.
내 연주를 나는 못 들어도 다른 사람은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사고의 확산이 좋다)
-노래를 부를 때 사람들은 어깨를 동시에 왔다 갔다 하고 손뼉도 동시에 쳤다. 들을 수는
없지만 그게 노래라는 것은 알았다.
-동시에 몸을 움직이게 하고 같은 표정을 짓게 하는 것. 그것이 내겐 노래였다.(청각장애인의 시각으로 본 노래에 대한 개념이 그럴 듯 했다.)
-나는 노래가 좋았다. 아름다워서 좋았다. 세상에 그보다 강력한 것은 없었다. 우리 집은 세계의 전부였고, 하숙생 방은 세계의 끝이었다. 그 방을 탐사하는 것은 내게 모험이었다. 내가 소리를 지를 때면 번개처럼 달려왔다. 이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굴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정상이 되었다며 기뻐하는 꼴이라니 배신감이 들었다.
-비밀 욕 수첩을 만들었다. 씨발? 좆까!(특이 행동이 신선하다)
-농담도 오랫동안 들으면 마음에 박힌다.
내가 분리되어야 할 존재라는 생각을 학교에 입학가기 전에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소리르 못 든는 게 나만의 독특한 성력이라 생각했지. 장애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귀가 잘 안 드리는 건 얼굴에 점이 하나 있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나만의 특성이라 여겼다.
2. <명문장>
-회색 칠한 안쪽 벽은 들떠서 조각조각 부서져 비듬처럼 떨어지고 있었고, 마루 앞 공간을 덮고 있는 반투명 슬레이트 지붕은 군데군데 깨져서 빗물이 샜고, 그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무 기둥 아랫부분은 흰개미가 갉아 먹어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쓸모없는 공간이 많다는 건 빈틈이 많다는 뜻이고, 빈틈이 많다는 건 숨을 공간이 많다는 뜻이다. 엄마는 내가 숨는 걸 싫어했다.
-벽장 안에 숨어 있을 때나 막혀 버린 귀 안쪽에 나 자신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그곳은 아늑하고 편안했다.
-상수도관 뚜껑을 밟았다. 그 진동이 발전체로 올라왔다. 그건 내가 몸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우리 집은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동네 집들이 훤히 다 보였다. 창문이 없는 방인 데다가 불도 켜지 않아 어두웠다. 열린 문틈으로 미세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건반이 그 빛을 받아서 반짝였다. 건반에서 반사된 빛이 춤을 췄다. 그 춤추는 빛을 음악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내 손도 건반과 함께 빛의 춤을 추게 하고 싶었다.
4. 상황 묘사나 정황 설명이 정밀화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의자를 뒤로 빼면 지나가기도 힘든 그런 좁은 공간이었다.
-부품을 사다가 전화기 옆에 달아주었는데 버튼을 누르면 2충에 초인종처럼 소리가 울리고 집안 이곳저곳에 작은 전구를 달아 빛이 들어오게 설비했다 벨 누르는 건 내 담당이었다. 길게 한 번. 짧게 한 번, 다시 길게 한 번, 그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전구의 빛으로 신호로 간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학교 앞에서 하숙생을 치던 엄마는 인원수에 맞게 밥을 차렸다. 신발을 보고 밥 먹을 사람 숫자를 알아내었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신발 개수를 알렸다 손가락으로.
<청각 장애 주인공이 글을 배우고 말을 배운 경위 설명의 글>
-한글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닌 문장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말을 배울 수 있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년 정도 노력한 끝에 몇 개의 단어로 발음할 수 있었다. 손뿐만 아니라 온전한 눈빛과 입술로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눠야만 수화다. 말로 하는 언어는 수화에 비해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엿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폭력적이고 다정하지 않았다. 내가 나라를 세운다면 한 사람 대 한 사람만 수화로 대화하도록 법을 정하고 싶었다. 모든 대화는 은밀해지고 괜히 참견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싸움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나는 기뻐서 크게 씨발! 외치면서 갔다.
농인 반대- 건청인
-세상에는 화가 많았다. 남에게 화를 던진다고 해서 그 화가 줄어들지도 않는데 그런 비효율적 일을 왜 할까? 바보니까. 화가 난 사람들은 생각을 제대로 못 하니까.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도 당연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한 번이라도 상상해 준다면. 내가 절망할 일이 줄어들 텐데.
-각자가 섬이 되어가는 모습이 내 눈에도 보였다. 스타크래프트 게임 출시와 함께 내 눈부신 유년 시절이 끝났다.
5. 인간관계 느낌(한민, 할머니의 캐릭터를 개성적으로 잘 묘사했다.
<한민과의 관계 표현>
-한민은 전색맹이었다. 색을 보개 해주는 원뿔세포의 이상으로 색을 못 보고 명암만 구분했다. 흑색으로 된 세상에 살았다. 햇빛 강한 날에는 눈이 부셔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고 밤이 되면 누구보다 잘 볼 수 있었다. 한민 옆에 개는 ‘시각 장애인 안내견입니다’라고 쓰인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내 뒷모습을 모를 것이다. 내 앞모습은 언제나 둘을 향해 있었으니까. 마치 달이 지구한테 앞모습만 보여주며 도는 것 같았다. 나는 달처럼 지구를 맴돌았다. 더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더 멀어지지도 못한 채. 꼭 그만큼 심장의 터질 것 같은 채로, 그런 걸 중력이라고 하는 걸까?
유성처럼 대기 중에서 타 버리게 될까? 아니면 중력을 잃고 뒤로 떨어지면서 보이저호처럼 태양계의 가장자리로 끝없이 멀어지게 되는 걸까, 교실 문틈으로 사라지는 리트리버(개)의 꼬리 끝을 보았다.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사진 찍듯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다. 그걸로 만족하고 집에 가려 했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더 보고 싶었다.
공기가 멈추고 시간도 멈춘 것 같은 공간이었다.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가서 백 년쯤 지낸 것 같았다 .실제명병이지 헷갈렸다.
-어느새 그 애의 개가 슬며시 다가와 내 발과 다리의 냄새를 맡았다. 내 냄새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다리에 자신의 몸을 살짝 붙이고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어릴 때 나는 어떤 감정들은 특정 공간에 붙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옥상에서만, 벽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 그날 나는 그 감정을 미술실이라고 이름 붙였다. 마르첼로 개가 그의 눈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그가 마르첼로의 시선으로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 했다. 처음 그 개를 만났을 때, 목줄이 달려 있었고 잘 생겼지만 털 관리가 엉망이고 지저분한 골든레트리버였다. 길을 잃은 것 같아서 집에 데려가서 밥 먹이고 씻기고 방에서 재웠다.
-한민이와 우리는 중학교 내내 붙어 다녔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고 3인 지금도 여전히 나를 가장 잘 이해해준다.
나는 그냥 나일 때보다 한민과 같이 있을 때의 내가 더 좋다. 그럴 때 좀 더 완전해진 느낌이 든다. 관계는 길 같은 거지. 많이 걸어 다녀야 길이 반들반들하게 나는 거고, 그러니까 저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려면 최대한 많이 받아 내야 한다. 선물을 달라고 해. 이것저것 달콤한 거 있잖아. 진정한 고독은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거야. 그것은 처음부터 둘이야, 너무 가까워서 닿을 수 없는 둘이야 그러니까 사람은 자기 안에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자신을 가지고 있는 거야.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누구도 닿을 수 없는 부분이 각자 안에 있으니까 그리고 그걸 인정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한 단계 성장하는 것 같다.
<-할머니 캐릭터>
어른들의 관계란 멀어지지 않으면서 아주 가깝게 다가가는 어떤 지점이 있어. 사람마다 그 적절한 거리를 찾아내서 유지하는 거야-할머니 말
독후감:
이 책에서 제일 신선했던 점은<산책을 듣는 시간 사업 계획서>-엉뚱스러운 사업 계획서. 값없는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바꾸어 값을 받고 떳떳하게 수입을 올리는 계획서가 참신했다.
산책하는 시간 동안 당신의 눈과 귀와 코와 손으로 무엇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는지 그 순간을 나눠주세요. 그것을 듣겠습니다산책 신청자가 눈 감은 한민을 안내하면서 산책하고 보고 느낀 것들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사업의 골자였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들, 화가나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이 주로 지원했다.
① 눈 감은 한민이와 산책하며 눈에 보이는 것을 한민에게 설명하기
② 신청자가 개의 대변인이 되어 개가 보고 있는 것들을 말로 풀어 설명하기
③ 신청자가 눈을 감고 시각 외에 다른 감각으로 느낀 점 설명하기
산책 프로그램에서 한민이 말했다.
“나는 사람들 내면에 있는 자각하지 못하는 낯선 감각을 깨우처주고 싶어.”
-내내 나뭇잎을 지켜봐야 하는 나무의 고독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떠어지는 나뭇잎 하나하나가 음이어서 나무만 들을 수 있는 긴 노래 한 곡을 사계절 내내 연주한다면? 시를 쓴다면?
-그때 블랙홀에 있던 엄마는 마음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가장 아름답던 시절로 돌아가 비밀들드을 하나씩 꺼내와서 그것을 새로 펼쳐질 날에 한씩 대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존중하고 내 선택을 존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할 것이다. 그 시간을 존중할 거라고 다짐하면서 나는 산책을 계속했다.
※ 4년간 쓴 소설이라는 작가의 말에 존경심이 일었다. 정성 들인 만큼 허구가 진실보다 더 진실성을 가져다 주었다.(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