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연금술의 달인
요1:1을 보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은 요한 사도의 탁월한 언어연금술을 보여준다.
“그가 生水를 네게 주었으리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님도 언어연금술의 달인이셨다. 언어는 文化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고대 文化를 모르면 언어연금술로 가득 찬 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사서삼경에도 금강경에도 “복음”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성경에만 나온다. “복음” 즉 유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이란 그냥 좋은 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좋은 소식”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역시 기독교적인 언어연금술로 표현된 단어이다.
광물에서 찌꺼기를 걸러내고 정련하려면 반드시 연금(鍊金) 과정을 거처야 한다. 이는, 정신세계에서 “많은 묵상”의 과정을 거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구약의 대 선지자였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은 묵상의 대가들이었다. 신약에서는 요한과 바울을 꼽을 수 있다.
예수님은 첫 사역을 시작하면서 하고 싶었던 말씀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 마디로 끝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 한 마디에 기독교의 핵심 내용이 다 들어 있다. 예수님께서 오랜 세월 묵상하신 후에 이 한마디로 정리하신 것으로 보인다. 저는 이것이 묵상(鍊金)의 힘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