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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씨?
해롤드와 대령, 또 다시 소리난 방향으로 홱 돌아선다.
[해롤드: 아니 전공이!
[뱀버거: 여보세요, 혹시?
[멜케트大領(대령): 도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오?
슈판찌히가 마루 뚜껑문에 나타난다.
휴즐 고쳤읍니까?
[해롤드: 밤새도록 우릴 캄캄한 데 놔 두려는 거요?
[슈판찌히: 염려 놓으십시오. 다 고쳤읍니다.
그는 마루 뚜껑문에서부터 나온다. 뱀버거, 무대를 돌아 우측으로 갔다.
[해롤드: 그건 고맙군.
[뱀버거: (여전히 더듬는다) 저 안녕하시요? 밀러씬 - 어디메요? 이렇게 깜깜한
건? 농담인가요?
[슈판찌히: (몹시 화가 나) 아니 이보시오! 하나도 우습지가 않아 - 내가 외국
사람이라고 해서 목소리를 흉내까지 내고.
[뱀버거: (엄연하게) 밀러씨! 난 당신의 조각을 보러 왔오!
[슈판찌히: 원 이런!
[뱀버거: 원 이런!
[브린즈리: 야 그 어르신네이다! 뱀버거!
[클레아: 오셨어요!
[해롤드: 뱀버거!
[페이지: 155
[멜케트大領(대령): 뱀버거!
일동, 멈칫한다. 백만장자, 좌측의 열린 마루 뚜껑문으로 가기 시작한다.
[브린즈리: 염려 마십시요, 뱀버거씨. 휴즈가 끊어졌읍니다. 다 고쳐놨으니깐.
[뱀버거: (성급하게) 밀러씨!
[캐롤: 큰소리로 말하세요. 그 사람 귀머거리라는데두.
[브린즈리: (큰 소리로) 염려 마십시요, 뱀버거씨! 휴즈가 나갔지만 다
고쳐졌읍니다!
테이블 위에서 일어서며 기쁨에 넘쳐 클레아를 껴앉는다. 뱀버거, 열린 마루
뚜껑문 쪽으로 간다.
아, 클레아, 정말이야. 인제 만사 잘 돼가! 아슬아슬한 때에!
하지만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뱀버거, 돌아서다가 그만 열린 마루 뚜껑문
속으로 떨어지고 만다. 슈판찌히, 발로 탕 하고 문을 닫는다.
[슈판찌히: 그렇습니다! 인제 여러분의 걱정은 끝났읍니다! 구약성서의
여호와처럼 천지창조의 가장 신기한 선물을 드리겠읍니다! 광명이올시다!
[클레아: 광명이라!
[브린즈리: 오, 신이여 감사드리옵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슈판찌히, 더듬더듬 스위치 쪽으로 나아간다.
[해롤드: (잔인하게) 브린즈리, 내가 당신이라면, 너무 성급하게 신에게
감사드리진 않을 꺼요!
[멜케트大領(대령): 나도 그렇소!
[캐롤: 저도요 제가 당신이라면!
[슈판찌히: (호기있게) 그럼 내게 감사를 올리시오! 잠시 신의 역할을 하리다.
(손뼉을 친다) 자 여러분. 신께선 말씀하셨읍니다. "광명이 있으리라"고.
[페이지: 156
그 마지막 대사 때 해롤드, 캐롤, 대령이 브린즈리에게 최후의 공격을 하기
위해 서서히 그들의 무기를 쳐든다. 그때
갑자기 나타났읍니다. 놀라웁게도! 즉석에서! 이해가 안가지만! - 무진장으로 -
불멸의 - 영원의 광명이
우렁찬 행진곡에 맞춰 슈판찌히, 전기 스위치를 넣는다. 그때 갑자기 무대가
어두워진다. 축음기의 회전반이 돌기 시작하여 용감한 <스자의 행진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며 어둠 속에서 부리나케 돌아간다.
4월 9일
극단 연우무대
해설
-이 작품은 1974년 소위 '인혁당사건'을 소재로 한 것으로, 인혁당사건을 유신이라는 집단적 정신이상의 폭력시대를 만들어낸 정권에 의해 조작된 사건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김지하의 옥중수기 '고행 1974년'의 한 대목에서 시작한 이 작품은 끝까지 당시 인혁당사건 관련 정부발표, 희생자 가족과 피해자들의 증언과 기록, 일부 공개된 공판기록, 당시의 신문기사, 그리고 당시의 정부간행 홍보물 등을 바탕으로 문장의 특별한 가감 없이 구성하여, 사실 자체의 기록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공연은 시종 차가운 분위기에서 진행되며 배우들의 의상이나 무대의 색채도 흑백의 무채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극단 '연우무대'에서 제작되어 1988년 12월 1일부터 1989년 2월 26일까지 석 달간 서울 혜화동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되었고 3회의 대학초청공연을 가졌으며, 제2회 민족극 한마당 참가작으로 1989년 4월 8일과 인혁당 희생자들의 14주기일인 4월 9일에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 대본은 1989년 4월의 공연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나오는 사람들
- 8명의 배우가 이 연극의 모든 역할을 분담한다
1-해설자, 시인, 희생자, 귀빈, 수사관, 개헌 백만인 청원운동 성명서 낭독자, 신부, 코러스
2-희생자의 목소리, 해설자, 장관, 판사, 수사관, 언론, 코러스
3-희생자의 목소리, 장준하 선생의 목소리, 희생자, 농민, 해설자, 코러스
4-희생자의 목소리, 해설자, 각하, 수사관
5-희생자의 목소리, 부장, 수사관, 검찰관, 코러스
6-희생자의 목소리, 농민의 부인, 희생자의 부인, 코러스
7-희생자의 목소리, 희생자 부인의 목소리, 희생자의 부인, 아이, 코러스
8-희생자의 그림자, 대학생, 희생자의 아들, 아이, 희생자 가족의 목소리, 코러스
(무대는 간소하다. 덧마루를 사용하여 높이를 주고 뒤에는 창살을 만든다. 무대는 전체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덧마루 위, 바닥, 덧마루와 바닥을 잇는 계단. 덧마루 가운데 벽에 각하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제1막-1972년 가을부터 1974년 봄까지
(무대 한쪽에 부분조명 떨어지면 조명 속에 첫 번째 해설자가 들어선다)
[해설자: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특별선언, 그들은 그것을 시월유신이라고 부르고 각하의 용단을 찬양하고 각하에게 예배했습니다.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학생들과 민주세력의 저항도 각하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거세어지고 있었습니다. 1974년 새벽 벽두, 각하는 드디어 대통령 긴급조치라는 칼을 빼어 쳐들었습니다. 각하의 집권 18년 동안 가장 살벌했던 긴급조치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각하는 한번 치켜든 칼을 그대로 거두려 하지 않습니다. 그 해 4월 3일 밤, 각하는 긴급조치 4호와 함께, 대한민국 사상 최대의 정치사건이자 희대의 조작 사건으로 기록된 민청학련사건을 터뜨렸습니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소위 인혁당, 정확히 말해서 인민혁명당재건 단체는 민청학련의 배후조종단체로 국가전복을 기도한 공산계 비밀지하조직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비상군법회의는 형식뿐인 재판 절차를 거쳐 김지하 시인을 비롯한 민청학련과 인혁당 관계자 14명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형집행정지로 출소하자마자 1975년 2월 26일자 '동아일보'에
옥중수기 '고행(苦行) 1974'를 발표하여 인혁당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세상에 폭로하고 보름
후 재구속되었습니다.
(조명 바뀌면, 실루엣으로 철창 사이사이에 희생자들의 그림자가 보인다. 해설자는 마침 출소하려는
시인으로 역을 바꾼다. 때는 1975년 1월쯤)
[소리1: 여보세요!
[소리2: 여보세요!
[소리3: 여보세요!
[소리4: 들립니까?
[소리1: 제 말이 들립니까?
[소리2: 여보세요!
[소리3: 여보세요!
[시인: 거기 누구요?
[소리1: 하재완입니더!
[소리2: 이수병입니다!
[소리3: 우홍선입니다!
[소리4: 송상진입니더!
[소리1: 김용원입니다!
[소리2: 서도원입니다!
[소리3: 여정남입니더!
[소리4: 도예종입니더!
[시인: 당신들 누구요?
[소리1: 인.혁.당입니다.
[시인: 아하, 그래요? 인혁당 그거 진짭니까?
[소리2: 물론 가짭니다.
[시인: 그런데 왜 거기 갇혀 계슈?
[소리3: 고문 때문이지요.
[시인: (사이) 고문을 --- 많이 당했습니까?
[소리4: 말도 마이소. 창자가 다 빠져나와 버리고, 뼈가 부서지고 엉망입니더.
[시인: 저런 --- 쯧쯧쯧 ---
[소리1: 자기들도 정치 문제니까 조금만 참아달라고 합니다.
[시인: 아하, 그래요.
[소리2: 처음에 중앙정보부에서 뭐나 있나 하고 고문할 때는 그래도 참을 만 했습니다. 그런데 각본에 맞춰서 간첩으로 몰려고 고문할 때는 삼층에서 떨어져 죽고만 싶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두어 번만 더 돌리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 날 고문하던 수사관은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시인: 아하, 그래요.
[소리3: 정말 부끄럽습니다. 이거 나라 위해서 뭐 하나 해보지도 못하고 이리 끌려들어와서 슬기로운 학생운동 똥칠하는 데 어거지 부역이나 하고 있으니 ---
[시인: 아하, 그래요.
(무대 전체가 어두워지면서 '대통령 찬가'. 각하 얼굴에 부분조명 떨어지고 여배우 하나에게 부분조명 떨어진다)
[여자: (이북식 발성법으로 각하의 수식어를 낭독한다) 무질서와 비능률, 분열과 파장, 타락과 나태 속에서 조국을 건져내시었으며, 반만년 가난 속에서 민족을 구제해내시었으며,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백척간두에 선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결단과 예지로 구해내시었으며, 조국과 민족의 앞날에 화합과 번영과 통일의 미래를 약속해주시며, 용맹스런 우리 60만 국군의 통수권자이시며, 예비역 육군대장이시며, 한국적 민주주의와 수호자이시며, 우리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이신 박.정.희.대.통.령 각하께 대하여 경례!
('대통령 찬가' 끝나면 조명 바뀌면서 배우들 바닥에 내려놓았던 각하의 대형 사진들을 들고 메트로놈의 박자에 맞춰 행진하기 시작한다)
[남자: 11.7 선언에 대한 우리 만화인의 결의!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단에 의한 11.7 특별선언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우리 만화 동인은 다음과 같은 결의와 신념을 이에 천명하는 바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우리 만화 동인은 11.7 선언에 힘입어 만화 예술의 중흥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한국 아동 만화가 협회!
(다함께 메트로놈의 4분의 4박자에 맞춰 구령하듯 외친다)
[일동: 재건 국민 운동 중앙회! 전국 주부 교실 운동회! 축산 기업 조합 중앙회! 단군 숭녕회 중앙 본부! 대한월남 귀순 동지회! 대한 관광 협회 중앙회! 한국 완구 수출 진흥회! 한국 우유 협동 조합! 한국 제지 공업 연합회! 한국 불교 태고종 총무원! 한국 과학 기술 진흥 재단! 한국 기계 공업 진흥회! 유신 유신! 시월 유신!
(대열에서 하나가 튀어나오며 성명서 낭독을 시작하면 조명 바뀌고, 모두들 각하의 대형 사진을 내던져 독재타도 시위대로 변한다)
[대학생: 학우여!
[일동: (스크럼을 짜고) 독재타도! 유신철폐!
[대학생: 자유, 정의, 진리는 대학의 생명이다! 오늘 우리는 너무도 비통하고 참담한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며, 사회에 만연된 무기력과 좌절감, 불의와 권력에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한 모든 패배주의, 투항주의, 무사안일주의와 모든 굴종의 자기기만을 단호하게 걷어치우고 의연하게 악과 불의에 항거하여 이 땅에 정의, 자유, 그리고 진리를 기어이 실현하려는 역사적인 민주투쟁의 첫 봉화에 불을 붙인다! 우리의 외침을 억누르는 자 그 누구냐! 정부는 파쇼통치를 즉각 중지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자유 민주체제를 확립하라! 대일 예속화를 즉각 중지하고 민족자립경제체제를 확립하여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중앙정보부를 즉각 해체하고 만인 공노할 김대중 사건의 진상을 즉각 밝혀라! 기성 정치인은 각성하라!
[일동: 유신철폐! 독재타도!
(조명 바뀌어 덧마루 위에 부분조명 떨어지면 1973년 12월 24일. 배우 중 하나가 뛰어오른다.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 본부)
[남자: 민주주의 회복, 현행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운동을 전개하면서 --- 오늘의 모든 사태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완전히 회복하는 문제로 귀착한다. 그러나 오늘의 헌법은 그 개정 발의권이 사실상 대통령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현행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백만명 청원운동을 전개하는 바이다!
(다시 무대 다른 쪽에 부분조명 떨어지면, 다른 배우 하나가 뛰어오른다)
[장준하: 박정희라는 사람은 일제 때 독립군을 때려잡던 일제 만주군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똑똑히 알고 있다! 박정희씨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땅에서 대통령을 시켜서는 안될 사람이다!
(다시, 덧마루 중앙의 단 위에 부분조명 떨어지면 각하의 모습. 검은 검도복을 입고 목검을 들었다)
[각하: 작금,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른바 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불법단체가 반국가적 불순세력의 배후조종 하에 그들과 결탁하여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인민혁명의 수행을 기도하였습니다. 따라서 나는 국가의 안전보장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이 같은 불순활동의 비록 초기단계에 있다 하더라도 이를 신속하고도 강력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오늘 헌법 제 53조에 의하여 대통령에게 부여되고 있는 긴급조치권을 불가피하게 발동하게 된 것입니다.
(배우들, 각하를 향해 예배드리면서 유신 찬송가를 합창한다. 유신 찬송가는 마치 미사곡처럼 웅장하고 성스럽고 경건하게 부른다)
[일동: 유신 유신 시월 유신.
(모두 각하를 향해 움직여 각하의 앞 계단에서 합창단이 된다. 찬송가가 진행되는 동안 배우 중 하나가 부장이 되어 대통령 긴급조치 4호를 마치 기도 하듯 장중하고 경건하고 엄숙하게 낭독한다)
[찬송가: 대한 상공 회의소
대한 교육 연합
대한 반공 청년회
대한 불교 불입종
대한 불교 조계종
대한 종교 협의회
대한 한의사 협회
대한 방직 협회
대한 제당 협회
대한 증권 협회
대한 건설 협회
대한 간호 협회
대한 보관 협회
대한 의학 협회
대한 탄광 협회
대한 곡물 협회
[일동: 대한 주정 협회
한국 잡지 협회
한국 사진 협회
한국 국악 협회
한국 영화인 협회
한국 화섬 협회
한국 관세 협회
한국 소모방 협회
한국 석유 협회
한국 무용 협회
한국 선주 협회
한국 선급 협회
한국 박람회 협회
전국 극장 협회
생명 보험 협회
국제 기능 올림픽
대회 한국위원회
[부장: 첫째,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과 이에 관련되는 제 단체를 조직하거나 또는 이에 가입하거나 단체나 그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 고무,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그 구성원과 회합, 또는 통신 기타 방법으로 연락하거나, 그 구성원의 잠복, 물건, 금품, 기타의 편리를 제공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단체나 구성원의 활동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여덟째, 제1항 내지 제6항에 위반한 자, 제7항에 의한 문교부장관의 처분에 위반한 자 및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유기징역에 처하는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부과 할 수 있다. 제1항 내지 제3항, 제5항, 제6항 위반의 경우에는 미수에 그치거나 예비음모한 자도 처벌한다. 열 번째, 열 한 번째, 열 두 번째, 이 조치는 1974년 4월 3일 22시부터 시행한다.
[일동: 유.신.유.신.시.유.신.
(찬송가 합창이 끝나면 스피커를 통해 일본군의 군인칙유(軍人勅諭)가 일본어로 터져 나온다. 배우들 대형사진을 들고 퇴장하면 무대에는 각하만 남는다. 군인칙유 낭독이 끝나면 각하 목검을 치켜들고 무대 앞으로 공격자세로 달려나와 멈춘다)
[각하: 빨갱이 새끼들 다 잡아넣어!
(조명 사라졌다가, '새마을 노래' 웅장하게 터져나오면 다시 밝아진다. 조명 환하게 밝아지면 새마을운동 찬양대회장. '새마을 미래'라는 홍보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무대 뒤쪽에 귀빈들이 자리하고 앉아 계속감탄과 박수와 찬사를 보내고 있음을 동작으로만 보여준다. 무대 한쪽에는 두 명의 아나운서가 등장하여 영화를 해설한다. 무대 가운데는 미래의 영화 속에서 연기한다)
[아나운서1: 시월 유신! 이제 우리는 어려운 시련을 극복하고 화합과 번영의 미래를 넘겨다보게 되었습니다. 분단과 전쟁이 굶주림의 비극은 이제 끝났습니다. 5.16을 계기로 전진이 시작된 조국 근대화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도 하에 눈부신 업적을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시월 유신으로 번영하는 조국의 미래! 오늘 미리 가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나운서2: 어.느.중.농.가.의.미.래.도!
농가 소득 8백만 원과 농촌에 이룩될 문화생활 환경을 바탕으로 해서 90년대의 우리나라 농촌의 미래를 그려보자! 때는 1991년 10월의 어느 토요일, 곳은 경상북도 상주군 어느 농촌 마을. 그곳을 전라북도 부안이라 해도 무방하고, 강원도의 어디라 해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나운서1: 농촌 김동철씨는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이때 무대 한쪽에 마네킹처럼 서 있던 남녀가 연기를 시작한다) 대전 근교 전문연구자가 감기가 들어 침대에 누워 있노라니까 어머니가 보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아나운서2: 오늘은 연휴의 첫날. 김동철씨는 우유축사를 잠시 돌아보고 온수 꼭지에서 알맞게 더운물을 받아 세수를 했다. 식탁에는 쌀밥 한 공기와 생선구이, 그리고 야채 샐러드가 놓였다. 김동철씨는 오렌지 주스를 마셨고 아내는 우유를 들었다.
[아나운서1: 지난봄에 농업고등학교를 마친 아들의 방문을 두드리며 면소재지의 미곡 집하장에다 추수한 벼 30가마를 입고시켜야 할 그 날의 일거리를 부탁한 다음, 김동철씨는 차고로 갔다. 4기통승용차, 아내가 진작 운전기술을 배워두었더라면 혼자 대전에 다녀올 수 있었을 텐데 --- 하면서도 부부 동반으로 드라이브를 겸하여 딸을 찾아가는 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구릉 위 주택지에서 큰길로 나가는 15도 경사를 그는 조심스럽게 운전했다.
[아나운서2: 고속도로까지는 15분 가량 걸렸다. 차선 증축공사가 한창인 하이웨이는 주말을 즐기려는 행락차량으로 줄을 이었다. 아내가 카 텔레비전의 채널을 고른다. 마침 월드컵 축구 극동지역 예선전이 이날 하오 두시부터 인천 론 그라운드에서 열리는데 그 예상을 왕년의 스타 차범근이 나와서 해설하고 있다.
[아나운서1: 그들은 한시간 정도로 대전에 닿았다. 주말이 아니었다면 10분 정도 단축되는 구간, 딸이 묵고 있는 아파트 숙소는 5층 건물, 정원 잔디밭 한가운데 샐비어가 불타듯 피어 있다.
[아나운서2: 이하 생략!
[아나운서1: 이것이 1991년의 우리나라 어느 중농 가정의 어느 날 소묘이다.
('새마을 노래'그친다)
[아나운서2: 내일의 한국, 부제 대망의 80년대. 1977년 12월 15일 초판 발행, 1978년 1월 25일 4판 발행. 백두진, 편집인 윤주영, 발행처 유신정우회. 164쪽부터 167쪽까지 인용.
(조명 바뀌면 귀빈석의 두 남자, 수사관으로 바뀌어 농부 김동철씨를 체포한다. 조명 갑자기 어두워진다. 어둠 속에서 '새마을 노래'의 마지막 부분이 웅장하게 터진다)
제2막-1974년 봄
(무대 한쪽에 부분조명 들어오면, 조명 안에서 해설자 등장)
[해설자: 각하의 사고방식은 군인답게 단순했습니다. "꼼짝마라! 움직이면 쏜다!" 그리고 움직이는 사람은 쏘았습니다. 각하는 감히 유신체제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끝까지 저항하는 일부 불순학생들에게 자신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줄 계기를 찾고 있었습니다. 1974년 봄, 전국의 몇 대학들은 대규모 유신반대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학생들에게는 조직적인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 벼르고 있던 각하는 긴급조치 4호라는 초헌법적인 폭탄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시위에 참가해도 사형, 수업을 거부해도 사형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3월부터 중앙정보부는 한편으로 4월 위기설을 퍼뜨리면서 예비검속을 통해 학생들을 잡아다가 한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해가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일부 유인물에 편의에 따라 붙인, 이름뿐인 민청학련을 유혈 폭력혁명으로 정부전복을 기도한 반국가단체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제, 시나리오에 따라 그럴듯하게 연기를 시킬 주연급 배우들이 필요했습니다.
중앙정보부는 4월말까지 모두 1,024명을 체포, 수사하여 그 중에서 윤보선 전대통령, 지학순 주교, 박형규 목사, 김동길 교수, 김찬국 교수, 김지하 시인 등을 공범과 배후조종혐의로 구속하고 배역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청학련의 괴수로 찍은 서울대학생 이철과 서울대학원생 유인태를 현상수배하고 체포하는 과정에서 정보부는 뜻밖의 수확을 올리고 환호했습니다. 이철, 유인태를 자신의 하숙에 숨겨준 졸업생이자 반정부학생운동의 전력이 많은 여정남을 체포하여, 그로부터 과거 혁신계 인사들과 1964년도 소위 '1차 인혁당사건' 관련자들의 이름을 짜낸 것입니다. 시나리오는 점점 붉은색이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인민혁명당'은 그 해 봄, 이렇게 탄생하고 있었습니다.
(조명 바뀌면, 무대 한쪽에 취조실. 희생자의 한 사람, 책상 밑에 고문에 지쳐 쪼그린 채 쓰러져 있다. 가끔 공포와 고통으로 몸을 떤다. 해설자, 희생자 방향으로 몸을 돌리면서 수사관이 되어 취조실에 들어선다. 수사관, 손에 증거물인 노트 몇 권과 진술서 뭉치를 들고 있다)
(이하 수사 장면에 등장하는 12명의 남자는 각각 특정한 희생자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이 사건으로 희생되고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을 형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극에서는 두 명의 배우가 각각 6명씩 역할을 나누어 양쪽 무대에서 연기하고, 수사관은 3명의 배우가 각 장면에 등장하는 모든 수사관 역할을 분담하여 양쪽무대를 번갈아가며 연기한다)
[수사관1: 당신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어. 앞으로 대한민국 수사기관을 존경하게 될 거야. 당신, 4.19 직후에 민족자주통일 경북협의회 부위원장을 지냈군 --- 젊었을 때부터 사상이 불온했어. 먼저 말해두는데 여정남이가 벌써 다 자백했어. 도예종이 서도원이 이수병이도 다 불었어. 계속 버텨봐야 당신만 괴로울 뿐이야. 자, 민청학련에 대해 아는 대로 불어.
[남자1: 정말 아는 게 없습니다.
[수사관1: 다시 한번 말하는데, 대한민국 수사기관을 허술하게 보지마! 당신뿐 아니야! 당신 주위가 모두 새빨갛더군 --- 당신 성의를 봐서 살려줄 수도 있고 죽여줄 수도 있어! 자, 민청학련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봐!
[남자1: 정말 나는 민청학련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수사관1: 하재완! 당신 그만큼 당해봤으면 이제 반성할 때도 되지 않았나? 아직, 모자란가?
[남자1: 정말 민청학련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수사관1: 좋아, 민청학련은 전혀 모르신다고? 그럼 이 노트는 뭔지 아나?
[남자1: ---
[수사관1: 설마, 이 노트를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남자1: 압니다.
[수사관1: 누가 썼나?
[남자1: 내가 썼습니다.
[수사관1: 무슨 내용이지?
[남자1: ---
[수사관1: 시간 끌지 마! 이게 무슨 노트지?
[남자1: 북한 방송을 받아쓴 노트입니다.
[수사관1: 북괴 방송의 뭘 받아쓴거지?
[남자1: ---
[수사관1: 뭘 받아쓴 거냔 말이야?
[남자1: 조선노동당 5차 전당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회 보고서입니다.
[수사관1: 아주 잘 알고 계시는군 --- 그게 무슨 보고서지?
[남자1: ---
[수사관1: 김일성이 말씀을 왜 받아썼나?
[남자1: ---
[수사관1: 말해!
[남자1: 알고 싶었습니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사관1: 뭘 알아?
[남자1: 북한의 통일정책을 알고 싶었습니다.
[수사관1: 당신이 그걸 뭐하러 알아? 당신, 공산주의자지?
[남자1: 아닙니다.
[수사관1: 공산주의자도 아닌데 뭐하러 김일성의 말씀을 받아써?
[남자1: 조국통일을 생각하는 것이 공산주의입니까?
[수사관1: 너 간첩이지?
[남자1: 아닙니다.
[수사관1: 이 노트 누가 시켜서 썼나?
[남자1: 내가 혼자서 썼습니다.
[수사관1: 간첩이 아니라면서 꼭 간첩 같은 말만 하고 있어! 누가 시켰어? 그리고 누가 누구한테 보여줬나?
[남자1: 내가 혼자 했습니다.
[수사관1: 거짓말하지 마! 빨갱이 새끼!
[남자1: 난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수사관1: 그럼 뭐야?
[남자1: 난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수사관1: 개소리 하지 마! 빨갱이 새끼야! 너 수령님 뵙고 싶지? 보내줄까? 나한테 협조만 잘해주면 공화국으로 조용히 보내줄 수도 있어. 자 이 노트, 누구 지시로 작성했나? 말해!
[남자1: 지시 받은 적 없습니다.
[수사관1: 아직 몸이 편안하신 모양이야? 너 도예종이, 서도원이 알지?
[남자1: ---
[수사관1: 도예종이는 1964년에 인혁당사건으로 3년 복역했고, 서도원이는 민족민주청년동맹 위원장으로 있다가 5.16때 잡혀서 2년 7개월 간 복역한 사상전과자라는 사실 알고 있었지?
[남자1: ---
[수사관1: 서도원이, 도예종이 자주 만났지?
[남자1: 가끔 만났습니다.
[수사관1: 새빨간 놈들이야 전부 다! 이 친구들이 김일성이 말씀을 노트하라구 시켰지?
[남자1: 그렇지 않습니다.
[수사관1: 여정남이를 집에 숨겨두고 이 노트로 공산주의 혁명사상을 교양 시켰지?
[남자1: 여정남이는 아들놈 가정교사였을 뿐입니다.
[수사관1: 여정남이를 배후 조종하여 서울에 있는 이수병이에게 올려보내 서울의 운동권 학생들과 접선시켜 민청학련을 조직하고 전국적인 학생데모를 유도하여 정부를 전복시킬 모의를 했지? 도예종이, 서도원이, 이수병이, 그리고 또 누구누구야?
[남자1: 그런 일없습니다.
[수사관1: 다른 놈들은 벌써 다 불었어. 너만 버텨봐야 소용없어!
[남자1: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수사관1: (일어서며 밖을 향해 차갑게) 이 새끼 다시 지하실로 데리구 가!
(수사관1 무대 밖으로 퇴장, 각하의 역할을 준비한다. 조명 사라지면서 희생자, 뒤로 물러나며 공포의 신음소리 --- )
(무대 다른 쪽에 조명'탁상등' 떨어지면 다른 취조실. 또 한 사람의 희생자가 책상을 가운데 두고 다른 수사관에게 신문을 받고 있다)
[수사관2: 이수병! 너 왜 잡혀 왔는지 알아?
[남자2: (밖으로 향하는 시선에 공포의 빛이 보인다)
[수사관2: 너 4.19 때 경희대 학생위원장이었더군. 그래서 겁없이 날 뛰다가 5.16 때 잡혀 들어가서 7년 살았지?
[남자2: ---
[수사관2: 학생 때부터 대단히 극렬분자였군 --- 너 사상이 뭐야? 오른쪽이야? 왼쪽이야?
[남자2: ---
[수사관2: 대답 안해?
[남자2: 사상이 있다면 민주주의잡니다.
[수사관2: 그래 빨갱이 새끼들이 민주주의는 더 찾지. 안 그래? 응? 어쨌든 경험이 많은 친구니까, 긴 말은 하지 않겠어. 민청학련을 배후 조종한 게 너하구 또 누구누구야?
[남자2: 나는 아는 게 없습니다.
[수사관2: 이거봐! 이 선생! 나두 빨리 끝내고 집에 좀 들어가 봅시다. 나 좀 도와주쇼!
[남자2: ---
[수사관2: 하재완이, 여정남이, 이철이, 유인태 잘 아시지?
[남자2: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압니다.
[수사관2: 여전히 뻣뻣하시군 --- 좋아 --- 걔네들이 다 불었어. 그러니까, 서울에서 민청학련을 배후조종한 중심이 바로 이선생이야. 안 그래? 이선생 말고 누구겠어? 다른 놈 있으면 대봐.
[남자2: 나는 민청학련과 관계가 없습니다.
[수사관2: 이 새끼 영 구제불능일세 --- 다른 놈들이 다 자백했다잖아! 민청학련 배후조종자들이 누구누구야?
[남자2: 나는 배후조종한 일이 없습니다.
[수사관2: (잠시 사이) 어이 공과장!
(조명, 사라지면 숨넘어가는 소리 간헐적으로 들린다)
(무대 중앙의 각하의 대형 사진에 조명 들어오면 각하 등장한다. 살벌한 분위기, 각하는 약간 술에 취해 있고 분노해 있다)
[각하: 부장 들어오라고 해!
[부장: (등장하여 각하에게 절하고 부동자세로 선다) 중앙정보부장, 각하의 부르심 받고 왔습니다!
[각하: 어떻게 돼가고 있나?
[부장: 문제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예 뿌리를 뽑아버리겠습니다. 각하!
[각하: 우리는 지금 전쟁중이야. 적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 게야.
[부장: 명심하고 있습니다, 각하!
[각하: 분명히 얘기하겠다. 나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다.
[부장: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각하!
[각하: 내가 할 일이 너무 많아. 경제 건설해야지, 자주국방 해야지, 통일해야지 ---
[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각하!
[각하: 지금은 어느 때보다 국론통일이 필요한 때야! 적을 코앞에 두고도 이 나라 민족은 항상 사분 오열, 파쟁만 일삼아왔잖아! 썩어빠진 새끼들 --- 이런 국가적 중대한 시기에 정부를 반대하는 놈들은 전부 빨갱이하고 똑같은 놈들이야!
[부장: 잘 알겠습니다, 각하!
[각하: 다시는 전염병균 같은 놈둘아 이 사회를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이번에 정부의 의지를 강력하게 표시해!
[부장: 각하의 뜻대로 시행하겠습니다, 각하!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마지막 한 놈까지 철저히 색출해서 씨를 말려버리겠습니다, 각하!
[각하: (술과 피로에 지친 목소리) 좋아, 이리 와!
[부장: (각하 앞으로 다가와 등을 돌려대 각하를 업는다)
[각하: (잠시 사이 부장의 등에 기대어 일본말로 중얼거린다) "나는 결코 물러나지 않는다 --- "
(조명 사라지면, 무대 한쪽에 조명(탁상 등). 다른 취조실. 수사관 두 명이 또 한 사람의 희생자를 신문하고 있다)
[수사관2: 민청학련에 대해 아는 대로 써!
[남자3: 정말 아는 게 없습니다.
[수사관2: 송상진이하구 무슨 관계야?
[남자3: 친굽니다.
[수사관2: 송상진이한테 돈 빌려줬지?
[남자3: 아들 등록금이 급하다고 해서 빌려줬습니다.
[수사관2: 얼마?
[남자3: 5만 원입니다.
[수사관2: 이거봐 송상진이가 다 자백했어.
[남자3: 등록금이 급하다고 해서 빌려줬을 뿐입니다.
[수사관2: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네 --- 송상진아가 다 불었다잖아! 임마! 니가 소상진이한테 유신반대 학생데모 자금으로 5만 원을 줬잖아! (탁상등 꺼지면서, 신음 소리. 무대 다른 쪽, 신문 소리와 함께 탁상등 조명. 수사관 한 명이 또 다른 희생자를 신문하고 있다)
[수사관1: 당신, 하재완이 잘 알지?
[남자4: 친구 형님입니다.
[수사관1: 당신은 긴급조치 위반으로 결정됐어. 아무한테나 유신헌법을 비방했다구 진술해. 이웃에 잘 가는 곳이 있나?
[남자4: 없습니다.
[수사관1: 당신은 옆집은 뭐하는 집이야?
[남자4: 복덕방입니다.
[수사관1: 잘 오는 사람들이 누구누구야?
[남자4: --- ..
[수사관1: (노려본다)
[남자4: 목재소 하사장 ---
[수사관1: 이름이 뭐야?
[남자4: 하진오씹니다.
[수사관1: 또?
[남자4: 블록 공장 이사장.
[수사관1: 이름?
[남자4: 이종규입니다.
[수사관1: 하나 더!
[남자4: ---
[수사관1: 빨리!
[남자4: 철공소 김종태씨가 자주 옵니다.
[수사관1: 좋아, 이 사람들한테 긴급조치를 비난했다구 씨!
[남자4: ---
[수사관1: 씨!
(탁상등 꺼지면, 신음 소리. 무대 다른 쪽에서 고함 소리와 함께 조명. 수사관 두 명이 또 다른 희생자에게 달려들며 조서를 내던진다)
[수사관3: 이 새끼! 지금까지 자백한 게 전부 거짓말 아냐? 이 새끼가 누굴 허수아비로 아나? 꿇어앉어!
[남자5: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나는 묻는 대로 대답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선량한 시민을 잡아다가 이래도 되는 겁니까? 정말 대한민국이 이래도 되는 나랍니까?
[수사관3: 이 새끼가 완전히 돌았군? 선량한 시민이라고? 야 이 새끼야! 니가 선량한 시민이면 여길 왜 잡혀와?
[남자5: 저두 그걸 알고 싶습니다.
[수사관2: 이 새끼 봐라! 이걸 그냥 거꾸로 매달아놓고 콧구멍에다 고춧가루를 부어서 폐기종을 만들어 죽여버릴까? 너 작년에 서울 법대 최교수가 여기서 자살했다는 얘기 들어봤지? 어떻게 해서 죽었는지 보여줄까? 너 똑바로 자백하지 않으면 온전히 살아나가지 못할 줄 알아! 너 이재문이, 나경일이 자주 만나지?
[남자5: ---
[수사관3: 대답 안해?
[남자5: 네 ---
[수사관2: 그 친구들하고 자주 만나서 긴급조치를 비난했지?
[남자5: 그런 일없었습니다.
[수사관2: 그 친구들하고 접촉하면서 공산주의 서적을 탐독하고 ---
[남자5: 공산주의 서적이라뇨? 지금 누굴 빨갱이로 만드는 겁니까?
[수사관2: 좋아, 그럼 사회주의 서적이라구 해두지.
[남자5: 정말 이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수사관2: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고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위해 각자동조 세력을 포섭하여 ---
[남자5: 아니, 여보세요!
[수사관3: 여보세요? 이 새 끼가?
[수사관2: 각자 세력을 포섭하여 학생데모에 편승하여 민중봉기를 야기시켜서 국가를 전복할 것을 모의했지?
[수사관3: 북괴의 평화통일 5개 강령을 찬양하여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고 민청학련과의 직간접 관련 사실을 정보수사기간에 숨김없이 고지하지 않았잖아?
(조명 사라지면, 신음 소리. 무대 다른 쪽은 고문실. 손전등 불빛 밑에 고문당하는 또 다른 희생자의 얼굴만 보인다)
[수사관1: 너 퇴근길에 광화문 근처 다방에서 김용원이를 만나 김용원이가 소지하고 있던 민청학련 관계 유인물을 함께 봤지?
[남자6:(숨소리만 --- )
[수사관1: 이 새끼 왜 대답이 없어?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야 이 새끼야! 김용원이 하구 그 유인물을 같이 보면서 유신헌법을 비난했잖아!
(손전등 꺼지면, 무대 다른 쪽에서 수사관 하나가 라이터 불을 켜서 남자에게 담배를 건네준다. 라이터 불과 함께 조명 떨어지면, 또 다른 신문실. 수사관 두 명이 남자 하나를 신문하고 있다)
[수사관3: 이수병이, 우홍선, 이성재하구는 어떤 관계야?
[남자7: 오래 전부터 압니다.
[수사관3: 친구야?
[남자7: 그렇습니다.
[수사관3: 친구라면 사상적으로도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사이란 말이지?
[남자7: 네?
[수사관3: 좋아, 충무로 지다방에서 세 사람과 몇 차례 모여서 유신헌법을 비방한 사실이 있지?
[남자7: 네? 나는 유신헌법을 지지하지도 않지만 개인적으로 비방하고 다닐 처지도 못됩니다.
[수사관3: 우홍선이하구 이수병이가 벌써 자백했어. 민청학련을 지원하여 이 정부를 전복시킬 것을 모의했다구 자백했어.
[남자7: 그럴 리가 없습니다.
[수사관3: 그럴 리가 없다구? (사이) 담배 꺼!
(조명 사라지면 무대 다른 쪽에 탁상등 켜진다. 또 다른 신문실. 수사관 하나가 남자 하나를 신문하고 있다)
[수사관1: 하재완이 알지?
[남자8: 모릅니다.
[수사관1: 이 노트 본적 있지?
[남자8: 무슨 노트요?
[수사관1: 김일성의 연설을 기록한 노트야! 봤잖아?
[남자8: 누굴 공산당 만들려고 이러십니까?
[수사관1: 하재완이 아들 방에서 여정남이와 함께 바둑을 두면서 노트를 탐독하고 북괴 노선에 동조하여 인혁당에 가입했지?
[남자8: 하재완이구, 노트구, 인혁당이구 난 모릅니다!
[수사관1: 몰라? 그럼 이 노트 외워! (남자의 머리를 노트에 대고 짓누른다) 외워!
(조명 사라지면 신음 소리. 무대 한쪽에 손전등 불빛. 지하실)
[수사관2: 나를 위해 하는 일이니까 협조를 해! 너는 한 일년만 고생하면 나갈 수 있어.
[남자9: (거친 숨소리)
[수사관2: 인혁당 조직원으로 포섭됐다구 시인해!
[남자9: 못합니다!
[수사관2: 날인해!
[남자9: 못해
(손전등 꺼지면 우당탕 소리와 비명 소리. 무대 다른 쪽에 조명 떨어지면 또 다른 신문실. 수사관 두 명과 남자 하나)
[수사관1: 서도원이, 도예종이 알지?
[남자10: 모릅니다.
[수사관1: 기억나게 해줄까?
[남자10: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기억해냅니까?
[수사관1: 그럼 이수병이나 우홍선이가 그 사람들이 훌륭한 분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은 있지?
[남자10: 그런 말도 들은 적 없습니다.
[수사관1: 이수병이 진술서에는 당신도 함께 서도원이와 도예종이를 지하당 지도위원으로 추대했다고 했는데.
[남자10: 그렇게 진술했을 리가 없습니다. 자꾸 이러시지 마시고 대질시켜주십시오.
[수사관1: 당신 건강 상태로 봐서 더 이상 버티는 건 무리야.
[남자10: ---
[수사관1: 자 받아써! 우리는 인혁당과 유사한 지하당을 조직했다!
[수사관3: 받아써!
(조명 사라지면 무대 다른 쪽에 또 다른 신문. 수사관 하나와 남자 하나가 실루엣으로 보인다)
[수사관2: 서도원이, 도예종이. 송상진이하고 몇 명은 벌써 사형으로 내려왔어. 나머지 몇 명은 무기 야. 자 이제 다 끝났어. 이래도 저래도 마찬가지야. 몸이나 편한 게 낫지.
[남자11: (꿈틀거리는 실루엣)
[수사관2: 우홍선, 이수병, 전창일과 함께 1973년부터 1974년까지 수 차례 다방과 술집에서 만나서 과 거의 인혁당과 같은 비밀 지하조직을 만들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모의했다.
[남자11: ---
[수사관2: 어느 날 네 사람이 시내 모다방에서 만나서 정세를 논의하던 중 우홍선이가 평양방송에서 이남 학생들이 유신반대 데모를 했다고 보도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자11: ---
[수사관2: 이수병, 우홍선, 전창일과 4인 지도부를 결성하고 4인 지도위원의 한 사람인 이수병이가 여정남을 접촉하여 유신반대 데모를 조종하고 그 경과를 4인 지도부에 보고하였다.
[남자11: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내가 공산주의자라면 어떻게 지금까지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조명은 그대로 두고 정지동작. 무대 다른 쪽에 조명 들어오면 남자 하나를 앉혀두고 수사관 두 명이 실루엣으로 보인다)
[수사관1: 나는 하재완에게 대남 방송을 청취하여 기록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습니다.
[남자12: ---
[수사관1: 나는 경북대 데모를 주동해온 여정남이를 상경시켜 이수병이에게 인계, 유신헌법 반대투쟁 단체인 민청학련을 결성케 한 사실이 있습니다.
[남자12: --- ---
[수사관`: 나는 도예종과 함께 과거의 인혁당과 같은 지하 공산조직의 지도위원으로 추대된 사실이 있습니다.
[남자12: ---
[수사관1: 나는 민중봉기로 현 정부가 전복되면 혁신계와 학생, 지식인. 종교인으로 과도정부를 수립하여 점차 통일된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을 이수병, 우홍선이와 합의한 사실이 있습니다.
[남자12: --- ---
[수사관1: 다 썼으면 지장 찍어!
(수사관 하나가 남자의 손을 들어 지장을 눌러준다. 전체조명, 서서히 사라진다. 암전 되면서 아이들 소리 들린다)
[아이들: 간첩이래요! 간첩이래요! 간첩이래요! 간첩이래요!
[아이1: 야, 니네 아빠 간첩이지?
[아이들: 철이 아빠는 간첩이래요! 철이 아빠는 간첩이래요!
[아이2: 간첩 새끼 잡아라!
[아이: 잡아라! 잡아!
[아이2: 그쪽으로 도망간다! 잡아라!
(암전 속에서 부분조명 들어오면 희생자의 부인,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있다)
[아이1: 알았다 오바!
[아이2: 오른쪽이다! 포위하라!
수의 머리.
+++++++++++++++++
길의 풍경.
아이들 뒤로 시커멓게 쌓여있는 연탄이 어쩐지 한심스럽고 답답하다.
방 안.
작은 상을 마주 하고 앉아 초라한 반찬으로 밥을 먹고 있는 희주와 정진 모.
달그락달그락 숟가락 소리만 나는 게 어색한지 문득 정진 모를 보고 말하는.
희주: 아버님이 검도 도장하셨다면서요?
희주를 힐끗 바라 보는.
정진 모: (이내 다시 밥을 먹으며) 정진이가 말해 줬냐?
희주: (정진 모의 대꾸에 신이 난 듯) 정진이가, 아니 정진씨가 워낙 칼을 잘 써서 형님들이 뒤게 이뻐 했거든요. 칼만 잡으면 하두 방방 날아서…….
말 하다가 화제가 잘못된 걸 알고는 멈칫하는 희주.
정진 모: (물 주전자를 들어 밥그릇에 부으며 한 숨 섞어) 뭐 하나 제대로 된 거 남겨준 게 없지.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희주. 그 때 밖에서 들리는 꼬마의 목소리.
“연탄 아줌마! 가게 전화요!”
이 때다 싶은지 발딱 일어나 튀어나가는
희주: 갈께, 지금 가!
요란하게 뛰어나가는 희주를 잠시 보고는 이내 달그락 수저질하는 정진 모.
밥맛을 잃었는지 수저를 놓고.
고물이 된 라디오를 튼다. 유행가가 잠시 흐르고.
창밖을 보면 여름 햇살이 흘러든다.
유행가 끝나고 나오는 뉴스. 박정희 대통령의 남북 대화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설명하는 뉴스가 나오고.
눈을 반짝이며 돌아보는 정진 모. 볼륨을 크게 틀면 다시 이어지는 유행가.
아쉬움이 잔뜩 남는 듯 한 정진 모의 얼굴.
그 때,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
희주: 어무니, 박장군 댁에서 잔치 한다구 와서 좀 도와 달라는데요.
정진 모: (라디오 끄며) 알았다.
방문을 열고 나가기 전, 잠시 라디오를 한 번 더 돌아보는 정진 모.
씬 27. 통신 설비 막사/낮.
헤드폰을 끼고 통신 장비를 통해 무엇인가를 듣고 있는 재현.
그 때,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김 준위: 신임 교관들 도착했습니다.
재현: (헤드폰을 벗으며) 연병장에 집합시켜.
나가는 재현, 뒤따라 나가는 김 준위.
씬 28. 연병장/낮.
상의를 벗은 훈련병들이 정좌하고 앉아있고, 그 앞으로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은 신임 교관 세 명이 열중 쉬어 자세로 서있다.
그들 앞으로 걸어 나오는 재현과.
김 준위: (파일을 들고) 오늘 부터 실전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고난도 기술을 체득하여 실질적 작전에 활용할 수 있는 훈련을 시작한다. (파일을 펼치며) 이 앞에 서있는 교관들은 폭파, 검술, 사격 특기 교관들이다. 너희들에게 최고급 기술을 가르칠 것이다.
박수로 환영한다.
그러나 의례적으로 두세 번 박수를 칠 뿐 냉담한 표정인 훈련병들.
파일을 덮는 김 준위. 훈련병들을 보고 의아한 표정.
교관1, 2 와 모범생 스타일로 생긴 상민도 조금 당황한 듯 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재현.
나무로 만든 테이블 위에 척척척 놓이는 폭탄 제작에 쓰이는 부속품들.
화면 넓어지면 테이블 뒤에 서서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는 원상.
마치 몸을 풀 듯 손가락을 털고 가볍게 뛰기도 하는 모습이 여유 있게 장난을 치는 듯하다.
연병장 한쪽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 돌려 눈앞의 재현에게 말하는.
교관1: 저희는 이 부대에 교관으로 발령받았습니다. 그런데 피 교육 대상자와 실력을 겨루라는 말씀입니까?
재현: (교관1, 2와 상민을 보며) 이름뿐인 교관이 되고 싶지 않으면 실력을 입증하는 게 빠르니까.
교관1: (발끈하여) 납득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재현: (말을 자르며) 겁이 나나?
교관1: (자존심이 상한 듯) 대장님.
재현: 훈련병들에겐 자기 생명을 보호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일이다. 실력 있는 자에게 배워야겠다는 걸 이해 못하겠나?
더 이상 말 못하고 입 다무는 교관1, 2와 상민.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폭탄 재료들을 다루기 시작하는 원상의 손 CU.
카메라 천천히 이동하면서 교관1의 손 CU.
거의 똑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힐끗 원상 쪽을 보는 교관1.
그 빠른 솜씨에 멈칫 놀라는 교관1.
빠르게 손을 움직여 폭탄을 조립해 가는 교관1.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는 원상.
조립 부품 가운데 복잡한 선이 나와 있는 것을 집어 관감하게 붉은 선 하나를 끊어 낼 듯이 집게를 댄다.
시선을 돌리다가 그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외치는.
교관1: 그거 자르면 안 돼!
소리치는 교관을 보고 피식 비웃으며 툭 끊어내는 원상.
교관1, 머리를 감싸며 엎드리는 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 있다가 놀라 돌아보는 교관1.
킥킥킥 웃음을 터뜨리는 훈련병들.
아무렇지도 않게 조립을 하고 있는.
원상: 책에는 이거 자르면 금방 무슨 일 일어날 것처럼 난리 부루스를 쳐놨겠지만, 이게 세운상가 스타일이고, (쾅! 완성된 폭탄을 제 자리에 놓으며) 이게 훨 빨라요.
와아아! 박수치며 소리치는 훈련병들.
얼굴이 시뻘게진 교관1. 시간을 재고 있는 김 준위와 시선이 마주치자 일어나 나머지 조립을 마친다.
김 준위: 훈련병이 39초 빨랐다.
으쓱거리는 시선으로 교관1을 보는 원상과 참담한 표정이 되는 교관1.
재현: 해체 시작.
의아한 시선으로 재현을 보는.
원상: 해체라뇨?
김 준위: 뭘 그렇게 놀래? 폭탄 조립했으면 해체도 할 줄 알아야지.
김 준위 말이 떨어지자 능숙하게 해체를 시작하는 교관1.
원상: 아, 씨발. 폭탄이란 게 쾅 떠뜨려 버리면 그만이지 해체는 무슨, 해체……. ( 빠르게 해체하는 교관1을 보며) 아니, 해체하려면 뭐 할라고 좆나게 조립합니까.
재현: 폭탄 설치 후, 작전 취소 명령이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건가?
울상이 되어 폭탄과 교관1을 보는.
원상: 아, 씨발! 해체하려고 아까 그거 잘라내면 안 되는 거란 말예요.
모든 부속품을 완전히 분해해 원상 복귀 시킨 교관이 마지막 부속품을 호기롭게 쾅 테이블에 놓고.
아휴……. 머리 박박 긁으며 속 타 하는 원상.
그 모습 보고 빙긋이 웃는 김 준위.
해안가에 거리를 두고 서있는 교관2와 민호.
바다 위로 끼룩끼룩 거리며 새가 날아다니고 있다.
각자 소총을 어깨에 메고 있고, 손에는 권총을 들고 있다.
시계를 든 김 준위가 호루라기를 불고.
동시에 권총을 쏘기 시작하는 교관2와 민호.
총소리가 날 때 마다 새가 한 마리씩 떨어지기 시작하고.
새들이 놀란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날아오른다.
권총의 총알이 떨어지고.
빠르게 소총을 장전해 드는 교관2와 민호.
이제 높이 날아오른 새들을 조준하여 쏘기 시작한다.
조준해서 쏠 때마다 한 마리씩 새가 떨어진다.
새가 떨어진 바다에는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는 경득이 신바람이 나서 떨어진 새를 주워 푸대 자루에 담고 있다.
연병장에 앉아 이 광경을 보고 있는 훈련병들과 빙 둘러 서있는 기간 병들.
근재: (빙그레 웃으며) 경득이 저놈아가 신이 났구마. 오늘 밤에 고기 파티 열겄네.
이제 눈에 보이는 새는 빙빙 선회하고 있는 한 마리 뿐.
신중하게 겨누고 있는 민호와 교관2.
민호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고.
그러나 새는 떨어지지 않는다.
교관2가 총을 쏘고 떨어지는 새.
경득: (첨벙거리며 뛰어가 바다에 떨어진 새를 잡아들며) 교관님이 딱 한 마리 어치 이겼네요.
후……. 한숨을 내쉬는 교관2.
김 준위: (훈련병들을 보며) 우리 부대에 모신 교관들은 공군에서도 최정예들이다. 이쯤에서 그만하고 조 별로 특기 훈련 시작한다.
상필: 아직 남았잖습니까? (상민을 보며) 검술 교관이시라면서요. 진검 승부 한 번 하시죠.
와아 환호하는 훈련병들.
재현을 돌아보는 김 준위. 고개 끄덕이는 재현.
김 준위: 질긴 놈들. 좋아. 1조 조장, 앞으로.
대답 없이 고개 숙이고 앉아있는 정진.
김 준위: 1조장!
상필: (힐끗 보고 잔뜩 비웃으며) 목검 들고 잘난 척 하던 게 후회 될 거다.
민호: 우리 조장님이 진검으로는 못할 거라는 겁니까?
상필: (빙글 빙글 웃고 있지만 눈은 제법 살기를 띄고 빛나는 얼굴로) 아가리 찢어버리기 전에 가만있어라.
멈칫 시선 들어 상필을 보는 정진.
상필: (계속 웃으며) 사양하겠으면 내가 하고. 난 나무 막대기 갖고 장난질은 못해도 목숨 걸고 하는 건 자신 있거든.
재현: 1조 조장.
다시 고개 숙이며 갈등하는 정진.
상필이 슥 일어서려는데 말하는.
재현: 이 정진. 위치로.
재현의 말에 휙 고개 돌려 재현과 재현이 바라보고 있는 정진을 보는 상민.
그러나 상민의 시선에서는 고개 숙이고 있는 정진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 숙인 정진의 얼굴에 갈등이 스치고.
민호: (안타까운 듯) 형.
팟 일어서는 정진.
상민이 기다리고 있는 앞 쪽으로 향하는 정진. 모자를 깊숙하게 눌러 쓴다.
그렇게 걸어 나오는 정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상민.
상필: 옆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이야기하는 20대 중반 (야비한 인상. 이하 재룡)
재룡: 어느 쪽이 이길까요?
상필: (한 쪽 입 꼬리 말고 웃으며) 어느 쪽이든.
무슨 뜻인가 하여 상필을 보다가, 어느 쪽이 다치든 좋겠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는 아하……. 입 벌리고 고개 끄덕이는 재룡.
진검을 들고 마주 선 정진과 상민.
잠시 거리를 재듯이 칼을 앞세우고 원을 그리며 돈다.
먼저 공격에 들어가는 상민.
크게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상민의 칼을 여유 있게 막아내는 정진. 마치 상민의 움직임을 알고 있는 듯 한 움직임이다.
챙챙- 부딪히는 검 날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모자를 눌러쓴 정진을 쏘아 보며 생각에 잠기는 듯 한 상민의 얼굴.
두 사람의 모습 위로 OL 되는 소년들의 웃음소리.
“머리-머리- 허리! ”“ 허리- 허리- 손목” “하하하하” “내가 이겼어!” “나라니까!”
작정한 듯 정진을 향해 깊이 공격해 들어가는 상민.
막아내는 정진.
그대로 칼을 앞세우며 정진 쪽으로 바짝 다가서는.
상민: (칼날을 마주한 채 힘을 겨루는 상태로) 나 상민이다. 너, 정진이 맞지.
순간 이압! 비명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상민과 그의 검을 밀어내는 정진.
뒤로 두세 걸음 물러나는 상민.
연속해서 공격해 들어가는 정진.
마침내 상민이 중심을 잃으며 쿵 쓰러지고.
정진이 상민의 내리 찍을 듯 칼을 휘두르면 순간 누운 채로 정진의 머리를 향해 칼을 뻗는 상민.
상민의 칼끝이 정진의 모자에 걸려 있고 정진의 칼끝이 상민의 가슴을 향하고 있다.
헉헉 숨을 몰아쉬는 상민과 정진.
박수치는.
근재: (일어서며) 훌륭한 교관들이시구마 (훈련병들을 보며) 그렇지 않나?
근재를 따라 일어서며 박수치는 훈련병들.
상필: (못마땅한 얼굴로) 덜떨어진 새끼들을 교관이랍시고…….
칼을 거두는 정진.
일어서는 상민. 그러나 돌아보지도 않고 훈련병들 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정진의 뒷모습.
씬 29. 식당 막사/밤.
테이블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새 뼈다귀들.
요란한 박수를 치며 ‘노란 샤쓰 입은…….’ 같은 유행가를 부르고 있는 훈련병들. 가운데 테이블 위에는 두 명의 훈련병이 올라가 노래에 맞춰 요란한 막춤을 추고 있다.
주변으로는 비교적 즐거운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는 기간 병들의 모습이 보인다.
씬 30. 초소/밤.
아련하게 노래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보초를 서고 있는 기간 병1과 정진. 두 사람 다 완전 무장한 상태.
기간 병1: (입가를 쓸어내리며) 걸려도 꼭 이런 날이라니까. (시계 보며) 시간두 드럽게 안 가네.
그 때 부스럭 소리 들리고 철컥 총을 겨누는 기간 병과.
정진: 주문진.
상민: (올라오며) 제물포.
경례를 붙이는 기간 병1과 정진.
상민: 교대하지.
기간 병1: 교관님들은 보초 안 서시는 건데요.
상민: (빙긋이 웃으며 기간 병1의 총을 받아 들고) 주방장 솜씨가 좋던데.
기간 병1: (입이 쭉 벌어지며) 정말 그래 주시겠습니까?
웃는 상민.
경례를 붙이고 좋아라 달려 내려가는 기간 병1.
기간 병1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담배를 꺼내는 상민. 정진에게 내밀지만 정진은 전방만 주시하고 있다.
상민: (잠시 보다가 자기만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며) 독한 자식. 하나도 안 변했군.
정진 대답 없고.
상민: 내가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 알기나 하냐? 사범님 소식 듣고 그날 아침에 갔더니 벌써 사라지고……. (생각해보니 그 때의 화가 치미는 듯) 명색이 친구라는 자식이 쪽지 하나 안 남기고, 어떻게 (화를 삭이 듯 고개 돌리며) 진짜 내가.
잠시 흐르는 침묵.
정진의 옆모습을 계속 보는 상민. 그러나 정진은 전방만 주시하고 있다.
상민: 여긴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냐? 왜 들어온 거야? (벌컥 소리치며) 야, 이 정진!
상민을 돌아보는 정진.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눈동자다.
이내 천천히 고개 돌려 다시 전방을 보는 정진.
후……. 한숨 쉬며 고개 돌리는 상민.
담배를 비벼 끄는.
상민: 어머니는 건강하시냐?
모자 밑으로 움찔거리는 정진의 얼굴.
상민: 너 여기 있는 것도 모르고 계실 거 아냐.
순간 와락 상민의 멱살을 잡아 바짝 세우는.
정진: (내 씹듯이) 흔들지 마라.
상민: 무슨 짓이야?
더욱 강하게 멱살을 틀어잡는 정진. 컥 기침하는 상민.
정진: (그대로 잡고서) 날 흔드는 건 뭐든지 누구든지 다 죽여 버린다.
말마치고 멱살을 풀어주는 정진.
숨을 고르고 정진을 돌아보는.
상민: 정진아.
정진: (돌아보지 않고) 그 따위로 부르지 마십시오. 1조장입니다.
상민: 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정진: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상민을 돌아보며) 어떻게 되든 뭐가 되든 상관 마십시오, 교관님. 나는 아무 것도 관심 없습니다.
그 때 뒤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려오고.
기간 병2: (훈련병1과 함께 나란히 서서) 22시 04분 제 1 초소 경계 근무 교대 보고.
정진: (돌아서서 척 경례를 붙이며) 이상 없습니다.
기간 병2: (경례를 받고) 교대.
척척 걸어 내려가는 정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상민의 얼굴이 착잡하다.
씬 31. 계곡/낮.
법 넓고 가파른 계곡.
계곡을 가로 질러 밧줄이 매여져 있다. 밧줄 좌우로 뻗어 올라간 두 개의 밧줄이 V 형태를 이루고 있다.
양쪽으로 뻗어 올라간 줄을 양손으로 잡고, 밧줄을 타고 있는 기간 병1.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밧줄이 크게 출렁이고 기간 병1의 얼굴에 땀이 범벅이 돼 있다.
간신히 계곡 저편으로 건너 온 기간 병1.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시계를 들고 있는 김 준위와 재현, 교관1, 2,와 상민이다.
김 준위: 52초 03입니다.
재현: 40초로 해.
멈칫 놀라는 교관1, 2, 상민, 기간 병1.
김 준위: 알겠습니다.
계곡 이쪽에 조 별로 열을 지어 앉아있는 훈련병들.
그 앞에 서서 설명하는.
김 준위: 40초 내에 전 조원이 모두 건너편으로 이동 완료해야 한다.
밧줄 이쪽 편에 기관총을 세워 놓고 앉아있는 기간 병과 그 뒤에 서있는 재현이 보이며.
김 준위: (E) 정확히 40초 이후에 발사된다. 준비.
척척 일어서는 훈련병들.
김 준위가 호루라기를 불자 척척척 제자리 뛰기를 시작하는 훈련병들.
김 준위: 3조 앞으로.
“앞으로!”
복창하면서 밧줄 앞으로 서는 상필의 조원들.
시계를 보고 있는 김 준위.
호루라기 불면 선두의 훈련병부터 거침없이 밧줄을 내딛는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밧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듯이 밧줄을 타고 건너는 3조 훈련병들.
계곡 건너편에서 시계를 보고 있는 교관1,2와 상민.
15초가 지나자 선두의 훈련병이 도착하고 속속 계곡을 건너오는 훈련병들.
마지막 훈련병이 계곡을 건너왔을 때, 35초를 가리키는 시계.
교관1: (감탄하며) 사람들이 아니군.
김 준위가 호루라기를 불자 근재의 조가 앞으로 나오고.
역시 빠른 속도로 밧줄을 건너오기 시작한다.
중간의 훈련병 하나가 비틀거리며 떨어질 듯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자 중간에서 소리치는.
근재: 정지!
모든 훈련병들,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빠르게 흘러가는 초침.
초조한 듯 보는 상민. 초침이 25초를 넘어가고 있다.
위태롭던 훈련병 자세의 균형을 잡자 소리치는
근재: 출발!
앞서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근재의 조.
38초를 지나가는 초침.
기간 병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리고.
마지막 훈련병이 간신히 발을 내디디면 39초가 되는 초침.
후…….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교관들.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내리는 기간 병.
김 준위가 호루라기 불고 정진의 조가 대기한다. 선두에 서있는 지용.
맨 마지막에는 정진이 서있다.
근재이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빠르게 밧줄을 타고.
앞의 두 조에 비해 훨씬 빠르게 이동하는 정진의 조원들.
근재: (건너오는 훈련병들을 보며) 하따 빠르네. (시계 보고 있는 상민을 보며) 빠르지요?
괜히 자랑스러운 듯 저절로 미소 지으며 끄덕이는 상민.
정진까지 밧줄로 올라와 이동하기 시작한 순간 멈추는 대열.
놀라 앞을 보며 소리치는.
정진: 무슨 일이야!
고개 빼서 보면 선두의 지용이 가슴을 움켜잡고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컥컥……. 숨이 막히는 지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재현, 김 준위, 기간 병, 교관1,2, 상민의 얼굴이 빠르게 스치고.
사정없이 흘러가는 초침.
정진: 김 지용! 아래로 매달려! 내려가.
정진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지용.
손잡이용으로 뻗은 밧줄 사이로 몸을 빼내면서 딛고 이동하는 밧줄을 잡고 매달리는 지용.
그러나 내려가는 동작만으로도 심장에 무리가 갔는지 고통스러워한다. 그가 매달린 방향은 뒷사람이 달려오는 모습을 마주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다.
매달린 지용의 손을 넘어 달리듯이 이동하기 시작하는 훈련병들.
초침은 35초를 넘어서고 있고, 마지막으로 지용의 손을 넘어서는 정진.
매달린 지용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채 정진을 올려다보는 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정진의 눈동자가 얼어붙은 듯 지용을 바라보고.
그대로 지용의 손을 넘어가는 정진의 발.
초침이 40초를 가리키는 순간 마지막 걸음을 내디뎌 계곡에 도착하는 정진.
재현을 돌아보는 기간 병.
재현: 까맣게 변한 지용의 얼굴을 보며) 필요 없다.
방아쇠에서 손을 떼는 기간 병.
기관총을 잡고 있던 기간 병이 일어서는 것을 보자 다시 빠르게 밧줄을 타고 지용에게 다가오는 정진.
그 뒤를 민호가 따르고.
정진과 민호가 각각 한손으로만 밧줄을 의지한 채 손을 뻗어 지용을 잡아 올린다.
계곡 이쪽 편에 지용을 품에 안고 앉아있는 정진. 주변으로 일동이 둘러서있다.
정진의 손을 잡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지용: 꼭……. 성공……. 하라우…….
그리고 눈을 감는 지용.
눈을 감기는 정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상민.
씬 32. 연병장/밤.
바닷가에 세워 놓은 나무로 만든 테이블 위에서 지용의 시체가 불타고 있다.
열 지어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훈련병들. 맨 앞줄은 정진의 조원들이다.
열의 한쪽 끝에 서서 시체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재현: 오늘 1조장의 선택은 훌륭한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한 명의 조원을 구하기 위해 시간을 지체했다면 나머지 조원 모두의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앞으로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오늘 1 조장의 선택을 기억하고 똑같이 행동한다. 알겠나?
훈련병들: (일제히) 알겠습니다!
조금 떨어진 위치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기간 병들과 교관들.
상민의 옆으로 다가와 서는.
김 준위: 놀란 얼굴들이군.
상민: 훈련을 중단하고 응급조치를 했으면 살았을 겁니다.
김 준위: 1조장이나 조원들이 응급조치 한다고 시간을 지체했다면 대장님은 주저 없이 그들을 향해 기관총을 쐈을 거다.
놀란 얼굴로 김 준위를 돌아보는 상민과 교관1, 2.
김 준위: 아직도 여기서 우리가 하는 일이 훈련으로 보이나? (대답 못하는 교관들을 보며) 실미도에 훈련은 없다.
상민: 미친 짓입니다.
김 준위: (쓰게 웃으며) 미치지 않고 완수할 수 있는 명령이 아니지.
그 때, 훈련병들이 부르기 시작하는 애국가에 고개를 돌리는 김 준위와 상민, 교관1, 2.
불타는 시체를 바라보며 애국가를 부르는 훈련병들.
그리고 한쪽에서 경례를 하고 있는 재현의 모습은 기묘하게 장엄한 느낌을 준다.
씬 33. 몽타주.
입에 칼을 물고 잠영하는 훈련병들.
표적 판에 표시된 심장, 머리 부분을 정확하게 사격하는 훈련병들.
완전 군장을 한 채 나무를 뛰어 넘고 나무 여러 대를 단 칼에 베는 모습이 빠르고 박진감 넘치게 보여 진다.
씬 34. 숲 속/밤.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침투용 복장을 한 훈련병들이 낮은 자세로 빠르게 숲 속을 이동하고 있다.
선두에 정진이 조원들을 이끌고 있다.
정진이 일정 위치에 자리를 잡고 뒤쪽을 향해 수신호를 보내면 상필이 이끄는 3조가 정진의 위치를 지나 앞으로 전진 한다.
그 뒤를 따르는 근재의 조.
그 때, 숲 저편에서 랜턴 불빛이 반짝거린다.
손으로 표시하는 정진, 근재, 상필.
순간, 나무 위로 올라가거나 가시덤불 사이로, 혹은 나무뿌리 사이로 몸을 숨기는 훈련병들.
빠른 솜씨도 놀랍지만 일단 자리를 잡은 그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인 것이 놀랍다.
그들이 자리 잡고 있던 위치로 내려오며 수색하는 기간 병들.
그러나 훈련병들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친다.
기간 병 들이 지나가자 귀신처럼 은신처에서 빠져 나오는 훈련병들.
근재의 수신호에 모이는 정진과 상필.
근재가 지도를 펼친다.
정진이 지도 위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으면 정진을 힐끗 본 상필이, 근처의 다른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는다.
근재가 둘을 보면.
상필: (낮은 목소리로) 저 새끼들이 나타난 방향을 향해 가자는 건, 잡아 주십쇼 잖아.
정진: 우리를 유인하려는 의도된 움직임이야. 감시조가 나타난 방향을 피해서 움직이면 그쪽에 매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상필: 우리가 니 말대로 그렇게 생각할 줄 알고 저 새끼들이 또 한 번 틀었으면.
정진 대꾸 없이 상필을 보고.
상필: 잔대가리, 너만 굴리는 거 아니잖아. (근재 보며) 이 쪽 길이 시간도 단축하는 거고, 씨발, 마주 치면 다 조지고 들어가면 그만 아냐. 저 새끼들도 우리 발견하면 그냥 쏘기로 돼 있는데.
생각에 잠긴 듯 기간 병들이 나타난 쪽을 돌아보는 근재. 그 때 같은 방향에서 다시 보이는 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