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세계 축구 시장의 중심은 유럽이다. 그리고, 유럽 스카우트들이 가장 주목하는 대회는 유럽챔피언스 리그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이나 유럽컵에 비해 매년 열리는 챔피언스리그 쪽의 기록이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최고의 타이틀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린다는 점에서 각국의 축구 실력을 정확하게 반영해주지 못한다. 올림픽도 23세 이하로 출전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각 대륙 선수권 대회도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
축구가 가장 발달한 유럽에서는 각 나라의 상위 클럽들이 참가하는 챔피언스 리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매년 거행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시즌 내내 펼쳐진다는 점에서 단기전과는 격이 다르며, 각 나라의 실력을 가장 정직하게 알려주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시아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 경우 그들은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일을 진행한다. 아시아 클럽선수권대회의 기록을 최우선적으로 검토한다는 뜻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축구가 아시아 최강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다른 대륙 클럽들의 경기를 볼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유럽 사람들은, 유럽식 시스템을 기준으로 아시아나 아프리카 팀의 수준을 가늠한다. 따라서, 최근 4년 사이에 한국팀이 세 번이나 아시아 클럽 선수권 대회를 제패했다는 사실만큼 그들의 마음을 확실하게 움직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선수의 이적에 관련해서만이 아니라, 한국 축구가 아시아 최정상이라는 사실은 눈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무형의 자산이다. 국민들의 자긍심을 드높인다는 대내적 효용 이외에도, 국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정치와 외교의 현장에서 대한민국에 엄청난 이익을 상시적으로 그리고 현재 진행형으로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방송사와 일반팬들의 무관심도 가슴이 아프지만, 그런 점에서 2003년 성남과 대전의 4강 진출 실패는 그래서 생각보다 더 커다란 타격이다. 정규시즌을 준비하느라 상대적으로 준비를 소홀히 했다는 변명도 들리는데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해서는 K-리그보다 아시아클럽선수권대회 쪽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아시아 클럽컵은 유럽의 경우를 본 따 1967년에 창설한 대회. 한국은 제1회 대회에서 대한중석이 4강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중앙정보부가 창설한 구단인 양지(陽地)가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두 번 다 우승팀은 이스라엘 리그 소속팀. 이 대회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파행적으로 운영되다 72년부터 84년까지 긴 동면에 들어간다. 85년 통산5회, 재건 1회 대회의 챔피언이 바로 한국의 대우 로열즈. 1986년 1월 24일 사우디의 제다에서 벌어졌던 결승전. 한국은 홈 팀 알 아흐리를 변병주, 박양하, 강신우의 연속골로 잠재우며 3-1로 승리한다.
그러나, 87년부터 K리그(당시 명칭은 수퍼리그) 우승팀은 아시아 챔피언스 컵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국내 리그에 전념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기권했기 때문이다. 국제무대에 내세울 수 있는 역사적 근거를 조금도 축적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축구 선진국들이 한국 축구를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했던 건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이러한 '우물 안 개구리'식 행마는 최근까지 이어진다. 2000년과 2002년 수원이 아시아 수퍼 컵을 제패했을 때, 삼성 그룹이 보여준 행보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외국인들에게 별다른 설명 없이 삼성과 한국의 이미지를 단번에 고취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 왔는데도 이를 그대로 흘려버렸기 때문이다.
눈앞의 현금을 몰라보고 다른 사람이 집어갈 때까지 이를 그냥 놓아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아시아 챔피언스컵은 유럽은 물론, 아시아 지역의 위성 방송이 취급하는 최고의 히트 상품이다. 일곱 차례나 전 경기가 재방송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유럽까지 갈 것도 없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만 수십억 달러 어치의 광고 효과를 올릴 수 있는 기회란 그리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실수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최종 결승전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격전 끝에 아시아 클럽 선수권 대회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수원 삼성 구단에게 늦게나마 뜨거운 감사와 축하의 뜻을 전한다. K리그 소속팀 가운데 어느 누군가가 2004년 아시아 챔피언스 컵의 패권을 되찾아 오기를 희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