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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1 <예썰의 전당> [4회] 피터르 브뤼헐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소유권 분쟁: 다시보기
KBS1TV ‘예썰의 전당’에서는 김구라, 재재와 함께 미술사학자 양정무, 정치학자 김지윤, 뇌과학자 장동선, 피아니스트 조은아가 출연해 피터르 브뤼헐의 작품을 통해 나눈 ‘욕망의 재발견’은
예썰 하나. 두 나라의 양보 없는 싸움! -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소유권 분쟁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현재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와 폴란드 두 국가 간의 소유권 분쟁 중심에 있다. 나치 총독 부인이 폴란드에서 훔친 그림이 현재 오스트리아에 전시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은 약 880억 원의 높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그림인 만큼, 두 국가 간 양보 없는 분쟁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소유권 분쟁에 휘말린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은 어떤 그림일까?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은 독특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시기적으로 함께할 수 없는 두 작품을 한 공간에 담은 것이다. 예수의 고난에 동참해 절제하고 금욕하는 ‘사순절’과, 사순절을 맞이하기 전 마음껏 먹고 마시는 기간인 ‘사육제’. 브뤼헐은 이 시기를 각각 욕망과 절제의 상징으로, 마치 대립하듯 그렸다. 고기와 와플, 청어와 프레첼 등 그림 곳곳에 욕망과 절제의 상징이 숨겨진 만큼, 출연진들은 제각기 다양한 ‘예썰’을 풀었다. 특히, 장동선 박사는 “우리 몸 안에도 사육제와 사순절처럼 욕망과 절제를 담당하는 호르몬이 있다”라며 우리 뇌의 신경 회로에 대한 ‘썰’을 풀어 호기심을 자극했다.
예썰 둘. 음식이 저절로 샘솟고, 포도주가 흐르는 환상의 낙원 <코케인>
환상의 낙원 ‘코케인’은 굶주렸던 중세 사람들이 꿈꿨던 상상의 나라다. ‘코케인’에서는 음식이 저절로 샘솟고, 샘물 대신 포도주가 흐른다. 그러나, 브뤼헐이 그린 ‘코케인’ 속 사람들은 어딘가 나태하고 게을러 보인다. 브뤼헐은 ‘코케인’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16세기에 그려진 브뤼헐의 그림이 현대의 우리에게도 여전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육제(카니발)와 사순절은 일전에 소개드린 바와 같이 대립적 관계에 놓여 있다. 포식과 단식, 기쁨과 고통, 만족과 후회, 악덕과 미덕, 죄와 구원이라는 대립의 관계다. 사육제가 사순절이 되기 전에 맘껏 먹고 마시며 즐기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면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되새기는 경건과 자신을 되돌아보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위 브뤼헐의 작품 제목에서 보이듯이 이 그림에서도 대립적 관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대체적으로 왼쪽에는 사육제를 즐기는 사람들이고 오른쪽은 사순절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럼 어디에 그런 것들이 있을까?
1. 즐거움(삶)과 죽음
2. 부유함과 가난함
3. 즐거움과 경건함
4. 건강한 자와 병약한 자
5. 지위 높은 자와 낮은 자
6. 사육제와 사순절
7. 사육제의 준비와 사순절의 준비
8. 루터주의자와 그리스도교인
9. 주는 자와 구걸하는 자
10. 돼지고기와 청어
11. 여관과 성당
12. 촛불과 불 꺼진 등잔
추가적으로 아래 것들은 어디에 있을까?
1. 계란
2. 팬케익
3. 홍합
4. 브레첼(bretzel)
5. 발효하지 않은 얇은 빵
6. 양봉통
7. 먹고 버린 뼈다귀
마지막으로, 이 대립적 관계는 그림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나누어놓았을까?
작가 브뤼헐은 이 그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제목 그대로 사육제와 사순절의 대립관계?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우리 마음 속의 대립관계를 나타내고자 한 것은 아닐까?
마음속에 선과 악이 공존하듯이 사육제를 통해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과 사순절의 의미를 깊이 새기고 올바른 삶을 살고자 하는 대립이 우리 마음에 늘 있다고 말하면서 어느 길을 갈 것이냐고 묻는 것은 아닐까?
사순절이 되면 또는 고난 주간이 되면 금식을 하자고 한다. 물론 금식이 필요할 것이다. 세상의 부정한 것들을 금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끼니를 거르기도 하지만 TV 금식도 생겼으며 핸드폰 금식도 생겼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생각해 보면 금식만이 능사가 아니고 금식 후에 제대로 된 것을 먹어야 하는데 무엇을 먹어야 할까?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도 건강하게 하는 것을 먹어야 하며, 내 마음과 영혼에 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1~33)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
페테르 브뤼헐,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1559년, 패널에 유채. 118×164.5cm,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대(大) 피터르 브뤼헐은 16세기 중반 농민들의 평범한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일명 '농민의 브뤼헐'이라 불린다. 그의 작품에는 당대의 화가들에 비해 풍경이 많이 등장하는데 대체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그린 것이 특징적이다. 이는 단순히 풍경을 좋아하는 화가의 취향 탓은 아닐 것이다. 그는 지리,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인간의 삶과 죽음을 통찰했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확립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성서, 신화, 당대의 민간 설화나 속담까지 아우르며 보통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관찰해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대개의 회화에서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는 건 시대를 견인하는 상류층 사람들인데, 브뤼헐의 작품에는 당대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화면을 빼곡히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무척이나 친근하다. 음식을 먹고, 대소변을 보고. 농사일을 하고 노동을 하다가 쉬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절름발이, 맹인, 거지처럼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도 지극히 소외된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수백 명의 아이들이 등장해 갖가지 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러니 그의 작품은 명확한 주제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고 세심한 눈길로 화면 구석구석을 천천히 탐험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작품은 전 세계에 45점 정도가 있는데16세기 북유럽 회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은 그의 걸작 중 사순과 수난을 주제로 한 두점의 명화를 감상해 보기로 한다.
먼저 사육제와 사순절의 유래를 살펴보기로 하자. 사육제는 유럽과 남미 등 가톨릭 국가에서 매년 2월 중 하순경 개최되는 대중적 축제의 장이다. 당초는 아기예수를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알현한 것을 기념하는 공헌절인 매년 1월 6일부터 시작하여 사순절 직전까지의 시기를 일컫는다. 이 기간이 끝나면 금육과 절제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사순절이 시작되기에 그전에 마음껏 먹고 놀자 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은 술과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각종 축제가 사람들의 본능과 쾌락을 자극하였다. 오늘날에도 유럽의 유명도시에서 매년 개최되는 가면축제등도 이때부터 유래되었는데 가면을 쓰고 짙은 화장을 하고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로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고 신분이 서로 다른 계층간에도 육체적 향락을 나누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던 풍습이 16세기 초반 종교개혁 이후 절제의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의식이 간소화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작품에서의 사육제는 사흘에서 일주일간 계속해서 실컷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고 춤추는 축제였고, 반면에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리고 단식하고 회개하는 6주간의 참회의 기간이었다. 이 기간 중엔 음식을 절제해야 했는데 이런 계율은 18세기까지 지속되었다. 더불어 애초에 사육제는 고기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축제였던 것이 점차 세속적 축제가 되었다. 결국 사순절과 사육제는 포식과 단식, 기쁨과 고통, 만족과 후회, 악덕과 미덕, 죄와 구원이라는 대립의 상징이었다.
작품은 이 기간 중 부활제와 사순절이 충돌하는 날 즉,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사흘간에 걸친 사육제의 마지막날인 ‘고해의 화요일’ 에 사육제와 사순절의 의인상이 맞서 싸우는 모습이다. 작품은 일명 ‘사육제 소시지와 사순절 청어의 싸움’ 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카니발의 기름지고 풍족한 식탁과 사순절 금식기간 동안의 간소한 식탁을 대비한 의미가 된다.
화면을 살펴보자.
1 왼편의 많은 사람들이 사육제 놀이에 몰두하고 있다. 반면에 화면의 오른편에는 사순절을 상징하는 고난과 희생의 이미지로 수도사와 수녀가 수레를 끌고 있고 수레 위 의자에는 바짝 바른 한 여인이 앉아 있다.
2 건물의 배치 역시 왼편엔 축제를 상징하는 주점이 보이는 반면에 오른편은 사순절을 의미하는 교회가 배치되었다.
3 그림 중앙에는 어릿광대가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남녀를 안내한다. 남자는 사육제로 대표되는 루터주의자, 여자는 사순절로 대표되는 그리스도 교도를 나타낸다. 이 한 쌍의 남녀 중 여성의 등에는 불 꺼진 작은 초롱불이 매달려 있다. 이는 이들이 어둠속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4 대부분의 인간 군상들이 벌이는 행동이나 몸짓에서 화가의 냉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브뤼헐은 사육제나 사순절 모두 인간의 어리석음이 낳은 악습으로 바라보았던 게 아닌가 싶다.
5 화면 왼편 건물앞의 한 무리의 거지들은 비참한 현실을 대표하는데 이들 앞을 무관심하게 걸어가는 두 남녀 성직자들과 대비된다.
6 한편 오른편 아래에는 교회에서 막 나온 남자에게 구걸하는 여인이 아이와 함께 그려져 있다. 이 여인에게 돈을 주는 남자는 적선이 영혼을 맑게 하고 구원을 받게 되는 행위임을 암시한다.
7 왼편 아래 구석 술집 앞에서는 노천연극이 열리고 있다. 집시들이 결혼을 소재로 한 광대극 <지저분한 신부>를 공연하는 것이다.
8 한편 화면 아래쪽 가운데의 뚱뚱한 남자는 포도주 통에 걸터앉아 머리위에는 고기파이를 얹고 손에는 긴 꼬치에 꿴 돼지고기를 들고 있다.
9 그의 뒤를 사육제 특유의 복장을 한 시종과 악기를 연주하는 남자들이 따른다. 뒤편의 여인은 달걀을 늘어놓고 팬 케익을 굽고 있고 그림 왼편 구석의 젊은이는 길게 네모난 와플을 머리에 둘러 감은 채 도박에 빠져 있다. 사육제의 마지막 화요일은 남은 달걀이나 버터 등을 전부 써서 팬 케익을 만들어 먹는 습관이 있었기에 ‘팬 케익의 화요일’ 이라고도 했다.
10 이를 마주보는 사순절의 의인상은 비쩍 마른 노파이다. 교회에서 쓰는 삼각의자에 앉아 양봉용 바구니를 쓰고 빵을 굽는데 쓰는 긴 주걱위에 청어를 얹었다. 발치에는 홍합에 담긴 큰 그릇이 있고 프레첼과 누룩을 넣지 않은 납작한 빵이 널려있다. 프레첼은 성찬의 빵처럼 성스러운 의미가 있다하여 사순절 동안 굽곤 했다.
11 노파가 앉은 의자를 두 남녀 수도사가 끌고 뒤에는 맹인과 장애인과 미망인에게 적선을 하는 사람들, 매장하기 위해 죽은 이를 손수레로 나르는 사람, 미사를 끝내고 교회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두 남녀 수도사들 앞의 줄무늬 옷을 입은 광대는 한낮임에도 햇불을 들고 걷고 있다.
12 사육제의 음식은 고기뿐 아니라 와플, 버터, 달걀로 대표되고 사순절의 음식은 물고기, 프레첼, 납작한 빵, 홍합으로 대표된다. 역시 축제에는 음식이 빠질 수 없다. 화면 여기저기에는 참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한다. 당시에는 늘 배가 고팠을테니까... 화면을 크게 펼쳐놓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터 같은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걸맞게 길바닥에는 달걀껍질, 생선뼈, 닭뼈, 소뼈, 돼지뼈등이 나 뒹굴고 있다. 원경에는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모습 그대로 벽돌로 된 3층 주택들의 파사드가 줄지어 늘어선 마을 안쪽이 축제의 무대를 형성한다. 그리고 마치 오페라의 무대 같은 마을 뒤편에선 끊임없이 배우들이 등장하며 화면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여튼 이 사육제 축제기간에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인 술, 음식, 춤, 노래와 육체적 쾌락의 향연이었다.
페테르 브뤼헐, 아이들의 놀이, 1599-1560년, 118×161cm, 빈 미술사 박물관, 오스트리아 빈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4회] 피터르 브뤼헐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소유권 분쟁,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